“와 살아도 살아도 끝이 안 나노?”
-SNS를 끊어야 함. 외롭다고 SNS하는 건 목마르다고 바닷물 마시는 거랑 같아요.
-화장실 가니까 이런 말이 있던데, “인생을 너무 전투적으로 살지 말아라. 인생은 선물인데 그러라고 주어진 게 아니다.” 인생을 좀 여유있게 즐기며 살아야 됨. 한국사람은 너무 전투적임.
-외모+몸매+돈 3박자 다 갖추고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우울과 공허함에 떠나는 사람들 많다. 사람들의 시선, 사람들과의 관계, 고작 그딴 거에 사로잡히지 말고 제발 SNS 끊고 자기의 진짜 인생을 살아라.
2월 18일 스타 요가강사 이유주(35) 씨의 자살 기사에 달린 댓글들입니다. 이 씨는 하루 전날 인스타그램에 “Bye(안녕)”라며 셀카와 함께 ‘1990~2025’라고 프로필을 써놓고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즙을 짜듯이 일하고 있고 많이 힘들어. 아무런 말을 하기도 듣기도 싫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 이런 글을 여러 차례 SNS에 올렸으나 아무도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가족 간 불화, 사랑의 실패, 사회적 기대감의 압력에 그의 일상은 늘 위태로웠습니다.
댓글을 더 읽어보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좋은 남자 만나 잘살 사람 같은데 왜... 난 취직도 못 하고 있어서 저렇게 사는 게 너무 부러운데. 취업면접에서 맨날 떨어지고 외모도 거지인 나도 사는데...
-타인의 자랑을 내 마음속에 담고 내 자랑을 타인에게 알리는 것이 일상이 되면 어떤 인간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죽는 순간이 두렵고 방법을 몰라 바보같이 꾸역꾸역 살아가는데 이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거면 그 방법 좀 알려줘. 나도 좀 가게.
-제가 아는 분도 얼마 전 숨졌습니다 우울증이 심했는데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저는 인스타 끊은 지 5년 이상 됐습니다.
-20대에 자살을 수도 없이 생각했다가 30대가 되어 마음이 편안해진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부모님을 일찍 실망시킬수록 행복해집니다. 부모님은 절대 우리의 인생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바라던 대로 살 수 없다는 걸 더 일찍 보여주세요. 그래야 행복해집니다
보건복지부의 지난해 '자살 예방의 날'(9월 10일) 행사 포스터.
-내 나이 40대 후반. 지방대 재학 중 유학하고 국내 대기업 해외영업부 과장 퇴사, 노예로 살기 싫어 미국으로 가 사업. 자산은 100억 훌쩍 넘고 순자산도 40억은 족히 되는데, 참 나 구리시 반지하, 강동구 전세빌라 그때가 그립다. 하루하루를 너무나 전투적으로 보내고 이제는 전화벨 소리 환청에 막내 졸업하는 4, 5년만 버티고 은퇴하려 하는데 그 시간이 죽을 만큼 안 간다. 내 의견과 목소리가 전혀 필요치 않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근심걱정 없이 얘기하며 살고 싶다. 우리나라 교육과 문화에 큰 문제가 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괴로움만큼 댓글을 붙인 이들의 말도 가슴 아프고 위태롭고 걱정됩니다. 그들 마음속의 메울 길 없게 큰 공허, 헤어날 수 없는 절망감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우울증이 심했는데 자신이 하는 말을 다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챗gpt랑 대화하면서 많이 좋아졌다며 챗gpt와의 대화를 권장하는 글이 그나마 긍정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지난해 9월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28), 11월 12일 배우 송재림(39), 올해 2월 16일 배우 김새론(25), 3월 10일 가수 휘성(43)…. 이들처럼 유명하지 않더라도 일가족 동반자살, 특히 가장의 강요와 강제로 인한 가족자살 등을 생각하면 충격적이고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국이 잘나가면 뭐합니까? 한류가 붐을 타고 K팝이 세계인들을 매료시킨다 해도 내 인생을 꾸려갈 만한 곳이 못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의하면 지난해 자살 사망자 수가 1만4,439명으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하루 40명꼴입니다.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도 28.3명으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자살률과 동전의 양면인 삶의 만족도에서 한국은 세계 최하위권입니다. 자살사건 자체도 힘든데 유명인이 자살을 하면 책임 공방, 악플 시비, 스캔들에 법정 소송까지 벌어져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습니다.
몇 년 전에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안동의 광산김씨 유일재(惟一齋) 종가의 종부 김후웅 씨(2004년 당시 80세)는 남편이 6·25 때 월북한 뒤 혈육 한 점 없이 혼자서 너른 종가를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53년 만에야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편을 만났으니 그 삶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무상이나 허망을 말하지 않고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말은 “와 살아도 살아도 끝이 안 나노?”였습니다. 절망의 표현이기보다 인생의 하염없음을 알면서도 일과 종부의 자세를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다짐으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 올해 106세가 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생각합니다. 연간 200회 가까운 강연과 인터뷰를 할 만큼 건강한 김 교수의 인생철학은 다음 말에 집약돼 있습니다. “100년을 살아 보니 고생이 있는 행복이 제일 큰 행복이더라. ‘사랑이 있는 고생이 인생’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랑 없는 고생은 의미 없는 고생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남들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자신이든 챗gpt든 끊임없이 대화하며 삶을 점검하고 가꿔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어 무람하지만, 무슨 말이든 해야 할 만큼 이 '자살사회'가 안타깝고 걱정스럽습니다. 끝이 나는지 안 나는지 한번 살아보라고 젊은이들에게 애써 말해주고 싶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촬영한 김형석 교수의 여러 저서.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60여 년 전에 나온 책의 수정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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