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해서 상황을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그 거짓말을 상대방이 믿게 만드는 것, 전적으로 거짓말이 갖고 있는 리얼리티와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의 탁월한 연기력에 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주인공 김하늘은, 거짓말에는 내면연기가 필수적이라고 감옥 동료들에게 일장훈시를 한다. 거짓말 하는 본인조차 자신이 진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할 정도로 거짓말에 동화될 때, 거짓말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경형 감독의 코미디 [라이어]가 갖고 있는 비극은, 등장인물들의 거짓말이 거짓말 같지 않다는데 있다. 두 집 살림을 차린 택시기사 정만철(주진모 분)은 자신의 이중생활이 들통 날 위기에 처하자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낳아서 울울창창 거대한 숲을 이루며 자라난다. 이것이 영화의 출발이자 끝이다. 그렇다면 그의 거짓말이 모든 관객들을 속아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치밀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또 그것을 표현하는 그의 내면연기가 완숙한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업그레이드되는 거짓말이 우리를 압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 눈에는 그의 거짓말이 너무 훤히 보인다. 정만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극중 인물들뿐이다. 사건을 조사하던 박형사나 잡지사 김기자는 그래도 이 분야의 전문가들인데 왜 그렇게 정만철의 거짓말에 잘도 속아 넘어가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러면 영화는 긴장감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속고 싶을 정도의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는데, 배우들의 과잉된 연기와 논리의 허점은 너무나 크다. 따라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거짓말에 관객들이 동화되기는 힘들다.
정만철이 이중생활을 하는 두 여자, 달동네의 서민 양명순(서영희 분)과 압구정동의 귀족 오정애(송선미 분)의 환경은 너무나 대비가 된다. 양쪽을 매일 이동하며 이중생활을 하는 주인공의 삶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더 디테일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감독은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않는다. 서영희의 일상적 사실연기에 비해서 송선미는 관습적이다. 부유한 환경의 그녀가 택시기사인 정만철을 무비 스타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투자하는지 우리는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정만철이 스타가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것도 허구적 진실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것만이 아니다. 정만철 부부의 달동네 집에 기숙하고 있는 그들의 친구이자 백수인 노상구는 내러티브 전개에 결정적 공헌을 하면서 정만철 이상의 비중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묘사가 부족하다. 정만철 부부의 오랜 친구인 그가, 정만철이 택시를 운전하다가 우연히 잡은 현상수배범의 현상금을 일부 가로채기 위하여 거짓말에 동참한다면, 그에 적절한 캐릭터가 별도로 구축되었어야만 했다.
정만철이 거짓말을 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코드가 등장한다. 그러나 [라이어]에 비치는 동성애자들은 부정적이다. 희화화되어 있고 기괴하기까지 하다. 오정애의 윗집에 사는 동성애자의 비상식적 묘사가 그렇다. 정만철이 노상구와 동성애 관계에 있다는 거짓말로 위기 상황을 돌파해 가면서 주변인물들의 동성애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는데, 혐오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성적 소수자들의 권익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 영화는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라이어]의 원작인 영국 극작가 레이 쿠니의 [Run for Your Wife]와 우리의 문화적 차이를 생각하면서 각색이 되어야 했다. 대학로에서 힛트한 연극이라고 해도 상업영화와는 기본이 다르다. 오랫동안 준비된 영화처럼 세밀한 계산에 의해 각각의 쇼트가 찍혀졌던 데뷔작 [동갑내기 과외하기]와는 전혀 딴판으로, 김경형 감독은 너무 서두르며 영화를 조급하게 찍고 있다. 전작의 성공에 도취된 것일까? 아니면 거짓말을 소재로 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범죄의 재구성]같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조바심을 가진 탓일까?
두 여자 집을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는 택시기사 정만철 역의 주진모는, [해피엔드][무사][와니와 준하] 등 그동안 꽃미남류의 이미지로 제한되었던 캐릭터를 벗어던지고, 환골탈태, 밉지 않게 망가지고 있다. 특히 그와 찰떡궁합을 맞추는 친구로 순발력 있는 공형진이 등장해서 억지도 많지만, 그래도 연기의 앙상블을 보여 준다. 박형사 역의 손현주, 잡지사 김기자 역의 임현식 등이 코믹 연기의 호흡을 맞추고 있다. 또 정만철의 달동네 부인으로 [질투는 나의 힘]에서 박해일을 사랑하던 하숙집 딸 서영희가 등장해서, 눈물겨운 사실 연기를 보여준다.
코미디언이 결정적 대목에서 먼저 웃으면, 관객들은 우습지 않는 것이다. 시치미 딱 떼고 끝까지 천연덕스럽게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표정을 지을 때 우리들의 웃음은 더욱 커진다. [라이어]는 배우나 감독들이 먼저 웃는다. 관객들은 나중에 웃으려고 하다가 제 풀에 그쳐버린다. 거짓말이 관객들에게 먼저 들통나는 코미디, 라이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