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아내와 함께 11월 21일에 출발하여 26일에 돌아왔습니다. 중국 선교여행이었습니다.
진안제일교회 담임 이종학목사님이 관여하고 있는 중선회(中宣會)와 이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떠났습니다. 그들이 우리 부부의 비자와 비행기표를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활동장소는 연길(延吉)이었습니다. 연변(延邊)이라고도 합니다.
1. 연변 두레마을
목포성경학교 제자 정병석집사님 부부가 일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들은 한국 두레마을의 본부 파견을 받아 두레마을 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두레 마을을 통하여 여러 가지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 땅 150만 평을 중국 정부로부터 임대하여 50년을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9년을 사용하였습니다. 동북 3성이 옛날 발해, 고구려 땅인데, 그 땅을 찾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우리 농민들이 임대하여 농사짓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땅 찾으러 가자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중국 선교의 한 근거지입니다. 농장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방문하는 재학생 팀, 교회 단위로 방문하는 팀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명지대학의 '명지의 집'도 있고, 대전 한남대가 다녀가서 헌금하여 세워서 '한남의 집'도 있습니다. 장안교회가 세운 '장안의 집'도 있고요.
백두산관광을 띠로 묶었습니다. 이 마을은 연화동(蓮花洞)인데 김좌진장군, 홍범도장군이 독립군으로서 항일 독립을 위하여 활동하던 장소입니다. 2시간을 산 너머 가면 김일성의 처 김정숙이 항일 독립투쟁을 하던 비석이 있다고 합니다.
그 비석이 있는 영역을 청소하고 풀을 깎아준 일이 있는데 김일성대학의 교수 두 분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감탄을 하였다고 합니다. 자기들도 생각지 못한 일을 이 사람들이 하다니... 더구나 남쪽에서 온 사람들이...
북한의 헐벗은 산에 보내고자 잣나무 묘목을 몇 천 주 심었습니다. 작은 활동들이 북한선교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조국통일운동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정병석사장은 조선족과 중국 공안들을 사귀어 선교활동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교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그곳에서 교회활동 세미나도 하게 되었고 대대적으로 찬양집회를 할 수 있게 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정집사의 딸 민주는 연세대학교 도시건축과 졸업반입니다. 아들 평화는 북경대학 중의과(中醫科)에 재학중입니다.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연변대학 복지병원
전주신흥고등학교 교감을 거쳐 애양원 행정국장으로 수고하다가 연변대학과 합하여 한중합작(韓中合作)으로 연변대학 복지병원을 세운 분이 정옥동장로님이십니다.
그는 학생 시절부터 공산권 선교를 꿈꾸어 오신 분이십니다. 대륙복지회를 만들고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전주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운 병원입니다.
연변대학 의과대학이 있고 대학병원이 있지만, 중국의 병원들은 어느 병원도 심장수술을 못합니다. 중국 안에서 유일하게 심장병 수술을 하고 있는 병원입니다. 한족(漢族)들의 심장판막 수술, 심장 관상동맥수술, 등 심장에 관계된 수술을 부원장이신 노박사가 베테랑입니다.
이번에는 단 돈 1원(우리나라 돈 140원)으로 접수비를 받고 건강진단을 해 주었더니 신문도 나고 길림성 자치정부가 감사장도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무료로 수술을 받고 그 은혜가 감사하여 얻어놓은 남편의 직장도 포기하고 전폭적으로 전도에 헌신하여 20개의 교회를 세운 부부가 있다고 합니다. 한족들은 감사할 줄 알더군요.
어떤 장애자도 수술을 받고 그 은혜가 감사하여 교회들을 세우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중국정부는 장애자들을 방치하고 있답니다. 이들을 사람대접 해 주니 이들이 헌신할 수밖에 없지요. 사천(四川)에 장애자 병동을 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천에 짓고 있는 장애인 병동, 나환자를 돌보려는 사역들을 위하여 각 교회가 1년에 10만원이라도 좋으니 친구를 통하여 헌금을 부탁한다고 어렵게 그러나 간절하게 부탁을 받았습니다.
정장로님은 제 중학교 동기 동창생입니다. 72세입니다. 우리 노회 김백옥장로님의 동서이시기도 합니다. 이 난을 빌어서 우리 노회 목사님들 장로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교회 예산에 반영시켜 주시면 감사 감사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환자들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것 까지 제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환자의 눈을 바라보며 말없이 기도합니다.
집도 의사가 환자의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환자들이 나아서 노박사님께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고, 그리고 나를 위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다고 감격합니다.
환자가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가족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간접적으로 선교합니다. 우리는 전도하고 선교하도록 분발하여야 하겠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이 세운 병원에 직원 3분이 2가 경상도 사람들이라 하더군요.
아이들이 학교가면 “하나님은 없다” “기독교는 미신이다”를 100번 써 오라 한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서 세운 학교가 한국 한글 학교입니다.
정옥동장로 복지병원 동사장(同事長)이 초대교장을 하였습니다. 이사장을 거기서는 동사장이라고 합니다. 정장로님 앞에 나는 수식어를 붙입니다. "위대한 내 친구 정옥동장로"라고.
지금은 문교부의 인가로 한국에서 교장 발령을 내어 파견합니다. 아이들 독서 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독서 치료도 하고 있지요.
3. 용정 항공승무학교(航空乘務學校)
김대혁 교장선생, 이 분이 10년 전부터 북한 선교에 힘써 오신 분입니다. 컴퓨터를 가르치는 김계환선생, 여자 서정애 감리교단의 목사님, 미용을 가르치는 여선생 한 분, 몇 분이 운영하는 직업학교입니다.
시험을 쳐서 입학을 시키고, 학적은 연변대학에 두고 전문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 모로 복음 사역을 위하여 힘쓰는 하나님의 종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겠지만 후원하는 헌금도 보내드려야 하겠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미력이나마 공산권 선교사역에 동참하도록 힘을 보태야 할 것입니다. 존경스런 분들입니다.
이들은 공산권 안에 살면서 구역예배를 빼놓지 않습니다. 그저께 밤에도 이 학교에서 일하는 가족들과 함께 예배하며 제가 주기도문을 강해하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와 같이 살기만 한다면 우리의 생활이 변화되리라고 확신하다고 김교장은 은혜 받은 소감을 피력하였습니다.
4. 한족 사역자 양성 과정
한족(漢族)의 사역자를 양성하는 과정은 모두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 종교국의 허가를 받은 3자 교회 이외에는 모두 이런 과정입니다.
3자란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도(自傳道)입니다. 예날 중국에서 선교하던 네비우스목사님의 선교 전략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종교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모인 사람들이 약 40명입니다. 그 중에는 교회를 맡아 일하는 집사님들도 있고요, 교사(敎師)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교사란 반사가 아니라, 전도사입니다. 이번 강의는 유영란목사가 계획하였습니다. 연길에 있는 건공교회 목사입니다. 빈민이 많은 곳에서 목회합니다.
광주에 와서 남정규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그 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호남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대학원에서 신약학을 공부하여 석사 학위를 받은 조선족 여자 목사이십니다.
우리 총회의 어려운 목사고시를 합격하고 광주노회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중국의 대학에서 일본어를 공부하여 유창하게 일본말을 한다고 합니다. 광주노회의 전도목사로 연길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강의하였습니다. 화요일 22일에는 연속 9시간을 강의하였습니다. 월요일 밤에 시작하여 수요일 정오까지 이들을 위하여 요한신학을 중심하여 강의하였습니다. 너무나 아쉬워하면서 또 오랍니다. 다음에 오시면 좀 길게 좀더 많이 강의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통역은 여전도사 이전도사가 했는데 우리 문화를 좀 접하여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철학용어나 신학용어, "샤마니즘", "떡두꺼비 같은 아들" 이러한 말들은 우리 문화를 접하고 나서 이해가 될 것입니다.
여건이 허락되면 초청해서 도와주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가 해야 할 선교사역인 것입니다.
5. 두만강 푸른 물에
두만강에 흘러가는 물이 꼭 전주천(全州川)만 하다고 느꼈습니다. 연변은 조선족의 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수 민족 자치주이기 때문에 모든 안내문 간판을 한글부터 쓰고 밑에 한어(漢語)를 씁니다.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한족(漢族)과 조선족(朝鮮族)이 들어가기 쉽습니다.
북한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쪽 땅은 도문이라는 곳입니다. 건너편 북한 마을은 남양(南陽)이라는 곳입니다.
이쪽에 중조국경(中朝國境)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도문과 남양을 잇는 다리가 있는데 중국쪽 반절은 교각이 빨강색입니다. 북한쪽 반절은 파란색입니다.
그 다리 한 중간이 국경입니다. 양쪽에 국경 경비대가 있습니다. 건너편 산이 보입니다. 땅이 없으니까 산꼭대기까지 밭을 일구어 놓았습니다.
비료가 없으니까 낙엽을 썩혀서 퇴비를 만들고 있습니다.홍수가 나면 다 쓸어버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건너편 아파트도 보입니다. 갈대숲으로 잡초로 가득차 있습니다.
간단한 절차를 밟고 돈 얼마를 내면 관광차원에서 북한쪽 땅을 금방 갔다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족도 갈 수 있고, 조선족도 갈 수 있는데 비단 한국인(韓國人)만 못 갑니다. 이런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동안 추럭이 왕래하였습니다. 이 다리를 통하여 생필품, 전자제품을 운반합니다. 북한 땅에 있는 친족들에게 전달한다고 합니다.
북한 배지를 달고 온 혁명답사팀도 만났습니다. 말하자면 역사 유적지를 발굴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도 없었습니다. 문익환목사님과 윤동주 시인이 동기동창이었던 용정중학교(대성학교)도 갔다 왔고, 민족 시인 윤동주 생가도 다녀왔습니다.
노래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 해란강, 이런 곳을 보면서 피흘려 몸바쳐 나라를 찾고자 하였던 선조의 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래 선구자는 일송정 비문에 "용정의 노래"라고 적혀 있습니다.
간절한 소원들이 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세계 선교가 한국의 예루살렘인 선천, 평양에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하여 기도하고 합심하고 정성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꿈을 꾼 이야기를 하시면서 "중국어를 공부해라! 언제라도 중국 선교를 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나는 중국어를 할 줄 모릅니다.
위로를 받지요. 이번에 통역을 담당한 조선족 이항숙전도사님에게 "내가 중국어를 했더라면 이전도사가 필요 없지 않아? 하나님께서 이전도사님을 사용하시려고 내게 중국어를 안 가르치셨어. 허허..."
다같이 목소리 합하여 읽는 중국어, 똑같이 시작하여 읽고, 똑같이 끊고, 참 아름답습니다. 아마 사성이라는 발음법 때문인가 봅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유대인이 읽으면 마치 노래하는 것으로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산권에서 일하는 선교 동역자들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더욱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형통케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