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자 / 이달균
죽음 곁에 몸을 누이고 주위를 돌아본다
평원은 한 마리 야수를 키웠지만
먼 하늘 마른번개처럼 눈빛은 덧없다
어깨를 짓누르던 제왕을 버리고 나니
노여운 생애가 한낮의 꿈만 같다
갈기에 나비가 노는 이 평화의 낯설음
태양의 주위를 도는 독수리 한 마리
이제 나를 드릴 고귀한 시간이 왔다
짓무른 발톱 사이로 벌써 개미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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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왕국 / 이달균
숲의 평화를 함부로 말하지 마라
숲에도 엄연히 지배자는 있나니
태양의 세기를 지나온 양치식물의 노회함
거미와 사자가 깊은 잠에 들어도
짙은 안개에 지상의 길이 사라져도
뿌리는 지층을 더듬어 지구와 교통한다
오후의 숲 위로 일순 살기가 돈다
팽팽히 휘어진 햇살과 음습한 향기
마성의 입술을 여는 식충식물의 저 요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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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 이달균
북극성은 기울고 새들은 길을 잃는다
누가 하늘에 운하를 파나 보다
달에는 계수나무 대신 굴삭기 바큇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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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 이달균
시를 쓰지 않는 날들이 길어졌다
그동안 두어 개 조선소가 문을 닫았고
시인이 할 수 없는 일들로 술잔을 주고받았다
술병이 쌓여가도 사랑은 오지 않는다
숱한 희망의 말은 화장실에도 붙어 있지만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길은 더 멀어진다
TV 에선 북극의 빙하가 녹는다고 ,
바다의 질량은 그래도 변함없다고 ……
이 저녁 , 눈물에 녹은 술의 질량은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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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이달균
부르지 못해 허기지는 이름이 있다면
하현의 하늘에다 바람으로 말하리라
버려져 아무도 켜지 않는 거문고처럼 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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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새로운 교감
이달균 시집/ [늙은 사자]/ 책만드는집/ 2016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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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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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9월 24일은 토요일, 길일인가 보다. 여산에서는 가람선생을 기리는 축전이 열리고,
창녕에서는 이달균시인의 북콘서트가 열린다고 한다.
그날, 광주에서는 다형 김현승시인을 기리는 다형문학제가 열린다.
다형의 고독과 검은빛을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군산에 가 있을 것이다...... 모든 행사가 성황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