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행로
복효근
한 방울 이슬을 그리기 위해서는 사막 만한 곳이 없다
나비는 마른 오소리똥 위에서 천국을 그린다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감로수로 마신 자도 있다
똥과 꽃을 오가는 그 힘으로 나비는 산다 비로소
난다
출처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
[ 읽어내기 / 강현국 시인]
검은 똥 위에 고운 나비가 앉아 있습니다. 똥은 죽음과 하강의 상징이고 나비는 생명과 상승의 상징입니다. 꽃의 향기가 똥의 악취 위에 나비가 앉아 있다니! 하늘을 지시하는 나비와 땅을 지시하는 똥, 삶과 죽음 만큼의 거리입니다. 날아오르려는 나비의 가벼움과 떨어져내리려는 똥의 무거움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이와 같이 이질적 세계의 낯선 연결이 일으키는 힘을 신비평(new criticism)에서는 텐션(tension)이라 하지요. 이 시의 메시지는 <나비의 행로>에 대해서입니다. 어느 분석심리학자의 말을 빈다면 나비의 꿈, 나비의 개성화(個性化)에 대해서입니다. 요컨대 나비가 나비로서 나비답게 사는 것은 ‘날기’에 있는 바, 똥과 꽃 사이에서 그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터입니다. ‘난다’를 연을 건너 띄어 독립된 행으로 강조한 까닭입니다. 행간걸침의 ‘비로소’가 그 증거입니다. 날기 위해서는 “똥과 꽃을 오가는” 부대낌을, 안고 뛰어넘는 포월(抱越)의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그 지혜의 출처가 “한 방울 이슬을 위해서는 사막 만한 곳이 없다”는 깨달음, 이를테면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시고 행로를 찾았다는 원효대사의 일화입니다. 나비를 ‘나’로 바꾸어 읽어 볼 일입니다. 출처 대구신문 (https://www.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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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과 꽃의 반어적 아이러니(Irony)
위 강현국의 글에서 디카시 창작과 관련 주목해야 할 핵심어는 바로 '텐션(tension)' 이다. 텐션의 모태적인 힘은 객관적 상관물에 대한 '낯설은 비유와 사유의 융합'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이러한 텐션(tension)은 복잡하고도 고도로 지적인 느낌을 주는 현대시로부터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멀티시를 대표하는 디카시의 언어적 함의를 읽어내는데 매우 소중한 지렛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시읽기 태도는 이미 100년전부터 미국에서 T.S.엘리엇 중심으로 정직한 비평을 위한 '신비평(new criticism)' 이란 문학비평 운동으로 오늘까지 적어도 시 부문에서는 도도하게 전개되어 오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이와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이 시를 읽어내기 위해 강현국의 견해에 ' 아이러니(irony)'를 덧대고 싶다. 아이러니도 신비평의 태도에서 텐션(tension)을 더욱 강화시키는 재료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아이러니는 시, 특히 디카시가 존재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아이러니'는 서로 대립되는 객관적 상관물들이 서로 화해 융합하여 하나 이상의 의미를 재현 해 내기 때문이다. 나비가 사는 곧 날 수 있는 힘은 똥과 꽃을 오가는 나비의 행로에 있다는 모순이며 역설이며 부조화로 결합 된 서사가 생기롭게도 문학적 진술을 순산하는 '아이러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아이러니'가 역설적 융합을 통해 디카시를 성공 시키고 있다. 나비의 행로는 곧 우리의 실존이며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나가는 깨달음을 주는 아포리즘을 선사해준다. < 悳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