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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히데요시의 죽음 25-1
게이초(慶長) 3년(1598년) 11월 말.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오후가 되어도 그칠 줄을 몰랐다. 오사카 다마츠쿠리(大坂玉造)에 있는 호소카와 저택의 한 방에서 다다오키(忠興)가 차를 끓이고 있었다. 리큐 칠철(利休七哲) 중 한 사람이라 불리는 다다오키의 활달하고 시원시원하고 큰 동작에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손끝을 다마코는 장남인 다다타카(忠隆), 시아버지인 유사이(幽斎)와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유사이는 다나베성(田辺城)에서 어제 오랜만에 오사카로 올라온 참이었다. "태합(히데요시) 전하께서 돌아가신 지도 벌써 석 달이 지났구나." 유사이의 말에, "참으로 그렇습니다." 다다오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선(茶筅-말차른 젓는 도구)의 움직임을 멈췄다. 다다오키는 찻잔을 유사이 앞에 놓았다.
"쇼군(将軍-아시카가 요시아키)께서 돌아가신 것도 8월이었지." "예, 요시아키 님은 작년 8월 28일이었습니다." 다다타카가 조용히 답하자, "그렇다면 태합 전하는 딱 1년 뒤인 8월 18인가." 다다오키가 말했다. "음. 그야말로 태합 전하의 사세구(辭世句-임종 전에 남기는 시구) 그대로구나. 모든 것이 꿈속의 꿈이야."
차를 다 마신 유사이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다다오키가 다음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ㅡ 이슬처럼 떨어졌다 이슬처럼 사라질 내 몸인가. 나니와(오사카)의 일도 꿈속의 꿈이로다.ㅡ 히데요시의 이 사세구를 각자 가슴속으로 되새기고 있었다.
유사이는 아시카가 요시아키 쇼군의 일생과 히데요시의 일생을 비교해 보고 있었다. 요시아키는 몰락해 가는 쇼군가에서 태어나 입칠거리조차 부족한 나날을 보냈다. 그 쇼군을 자신은 미츠히데와 함께 노부나가에게 소개했었다. 노부나가는 요시아키 쇼군을 옹립하여 교토로 상경했고, 천하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노부나가와 쇼군의 사이가 벌어져, 결국 쇼군은 모리 씨를 의지해 도망쳤고, 10년 전에 출가하여 쇼잔(昌山)이라 칭했다. 히데요시를 따라 히젠 나고야(肥前名護屋)로 출진하긴 했으나, 그 후 기력이 크게 쇠하여 결국 작년 8월,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쇼군을 몰아낸 노부나가도, 쇼군을 옹립했던 미츠히데도 진작에 죽고, 요시아키 자신은 그 후로도 16년이나 더 장수한 셈이 되었다.
쇼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무렵, 노부나가의 일개 신하에 불과했던 히데요시가 미츠히데의 반역을 기회 삼아 천하를 잡고 조선에까지 출병했으나, 그 역시 63세로 죽었다. 긴 것 같으면서도 짧은 인생이 그야말로 이슬처럼 허망하다고 유사이는 생각했다. "혼노지(本能寺)의 변도, 오사카성 축성도, 조선 침략도... 모든 것이 꿈속의 꿈이로구나." 유사이의 말에, "참으로 그렇습니다."
다다오키는 조용히 아버지 유사이를 바라보며,
"그 사세구를 읊으셨을 때의 마음을 생각하면 애달픕니다." 하고 깊이 절감하듯 말했다. 하지만 다마코에게는 히데요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 따위는 없었다. 처음 히데요시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9월 초였다. 아케치 가문 때부터 다마코를 따르던 가신 가와키타 이와미(河喜多石見)가 그 죽음을 전했을 때, 다마코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 뻔했다.
6월 말, 조정에서는 히데요시의 쾌유를 비는 카구라(御神楽-신에게 바치는 음악과 춤)를 올렸다고 들었다. 히데요시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7월에는 전국 신사와 사찰에서도 기도가 이어졌다고 들었다. 8월 5일, 히데요시는 고타이로(五大老)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를 후시미성(伏見城)의 병상으로 불러, 여섯 살 난 히데요리(秀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
고부교(五奉行)인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아사노 나가마사(浅野長政), 마시다 나가모리(増田長盛), 나츠카 마사이에(長束正家), 마에다 게니(前田玄以) 이하 여러 다이묘들에게도 충성 서약서를 제출하게 했다. 나아가 마에다 토시이에에게는 히데요리의 보호를, 이에야스에게는 후견인으로서 그 지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부탁했다. 두 사람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굳게 맹세하여 히데요시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그것만으로는 안심하지 못해, 이에야스의 손녀를 히데요리의 아내로 맞이할 것까지 맹세하게 했다. 이때부터 히데요시는 히데요리로 하여금 이에야스를 아버지라 부르게 했다. 여섯 살 난 자기 자식에 대한 히데요시의 애정과 그 앞날에 대한 염려는 언뜻 보기에는 비정상적으로까지 보였다. 하지만 결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겨우 여섯 살인 제 자식의 운명을 히데요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알면서도 몇 번이고 여러 다이묘들에게 뒷일을 부탁해야만 하는 그 마음은 불쌍하기도 했다. 고타이로에게 남긴 유서에는 히데요시의 불안한 심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거듭거듭 히데요리를 부탁하오. 다섯 분께 부탁드리오. 자세한 사항은 다섯 분께 전하였소. 아쉬움이 크오. 이상. 히데요리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 글을 남기는 바이니 진심으로 부탁하오. 이 외에는 아무런 한도 남지 않소. 가식(敬具)."
이러한 사정들을 다마코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들의 아버지 미츠히데를 멸망시키고, 일족을 사카모토성에서 몰살시킨 히데요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히데요시는 미츠히데를 멸했을 뿐만 아니라,
문장에 뛰어난 오오무라 유코(大村由己)에게 '아케치'라는 요곡(謡曲)를 짓게 하여 공연까지 시켰다. 노(能)극은 히데요시에 의해 연극화되었고, 히데요시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다섯 개의 요곡을 만들었는데 '아케치'가 그중 하나였다. 꺾이지 않는 성격의 다마코는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뼈에 새겨두고 있었다.
히데요리에 대한 이야기만 구구절절 유언으로 남기고 "이 외에는 아무런 한도 남지 않소"라고 써 붙인 히데요시의 죽음을, 다마코는 비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히데요시가 노부나가 도노의 유족들을 훌륭히 대우했었더라면, 이런 걱정 따위는 없지 않았을까 하고 다마코는 생각한다.
주군이 남긴 자식에게 무장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히데요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히데요시가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미키 파울로를 비롯한 26인의 죽음과 비교하면, 히데요시의 죽음은 너무나도 불쌍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히데요시에게는 조선에까지 전쟁을 일으켜, 전후 7년에 걸친 그 전쟁으로 인해 전국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따위는 조금도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줄줄이 다마코의 머릿속에는 히데요시의 헛된 영화와 악행들이 떠올랐다. '(황금 다실도, 침실도,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그 다실은 다타미 석 장 크기로, 천장도 벽도, 장지문의 뼈대도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가지고 이동하여 조립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이 황금 다실을 궁궐에 조립해 놓고 오기마치(正親町) 천황에게 차를 올린 일은 유명했다.
또한 히데요시의 오사카성 침실에는 길이 7척, 폭 4척, 높이 1척 5촌의 침대가 있었고, 침대 머리쪽에는 이 역시 황금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고 들었다. 이 침실로 히데요시는 몇 명의 측실을 맞아들였던가. 다마코는 가슴속으로 세어 나갔다. '아사이 나가마사(浅井長政) 님의 장녀 요도기미(淀君) 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님의 셋째 딸 마아(摩阿) 님은 카가의 츠보네(加賀の局)...'
여기서 다마코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마아의 동생 치요(千世)가 다다타카(忠隆)의 아내이다. 카가의 츠보네는 겨우 14세의 나이에 측실이 되었다. '(게다가... 마츠마루 님, 산조 츠보네, 히메지 님, 산노마루 님...)'다시 한번 다마코는 미간을 찌푸렸다. 산노마루 님은 노부나가 님의 다섯째 딸인 것이다.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에 "관백(히데요시)은 더할 나위 없이 파렴치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 동물적인 육욕에 빠져 그 여러 궁전 내에는 200명 이상의 여성을 두고 있다"고 쓰여 있을 정도라, 다마코로서도 다 세기 힘들었다. 다마코는 단 한 번 만났을 때의 히데요시를 떠올렸다.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보였으나, 순간 번뜩이는 눈빛으로 변했던 그 당시 히데요시의 얼굴이 원치 않아도 떠올랐다. 단도(懐剣)를 떨어뜨려 결의를 보여줌으로써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생각해 봐야 소용없는 일, 아니, 생각해서도 안 될 일.)' 다마코는 문득, 히데요시의 행실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리 아버지를 몰락시킨 상대라 해도, 그리고 아무리 많은 키리시탄(크리스천)을 박해했다 해도, 그 죽음을 기뻐하는 것 같은 태도는 허용되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마코에게 히데요시의 죽음은 기쁜 일이었다. '(흉측한 것은 내 마음이로구나...)' 다마코는 다다타카를 돌아보았다.
다다타카는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작년에 다다타카는 마에다 토시이에의 여섯째 딸 치요히메와 막 결혼한 참이다. '(참 빠르기도 하지...)' 이 구마치요(다다타카의 아명)를 남겨두고 미토노로 떠나던 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어린 날, 어머니와 헤어졌던 2년의 공백이 어떤 형태로 이 다다타카에게 남아 있는 것일까. 다다타카는 어머니에게 그다지 정을 붙이지 못한 채 자랐다.
"그나저나, 문제는 이제부터라네." 유사이가 양무릎에 손을 얹고, 세 사람을 쓱 둘러보았다. "그렇습니다." 다다오키가 깊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다오키, 자네는 어떻게 보나?" "예, 누구라 해도 동쪽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서쪽의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의 세력은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음."
"게다가 이번 11월 초, 테루모토는 하카타(博多)에서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를 주빈으로 모시고 다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과연, 자네는 변함없이 귀가 밝군." "아닙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그때 두 사람은 심야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또 그 후로도 이시다가 테루모토를 다회에 초대하고 있는 듯하며..." "과연. 그렇다면 마에다는 어찌 생각하느냐?"
유사이와 다다오키 모두 다다타카를 바라보았다. 아직 19세인 다다타카는 천하의 정세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다다타카는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의 딸 치요히메(千世姫)의 남편이었다. 히데요시는 토시이에에게 히데요리의 보호를 정중히 부탁했었다. 그리하여 토시이에는 오사카성에 있고, 이에야스는 후견인으로서 후시미성에서 정무를 맡고 있다.
이 토시이에에게 고부교(五奉行)의 으뜸인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가 접근하고 있었다. 즉, 이에야스와 토시이에가 대립하고, 그 토시이에에게 미츠나리가 접근하며, 다시 미츠나리와 모리 테루모토가 손을 잡은 셈이 된다. 보통이라면 인척 관계가 있는 마에다 토시이에와 호소카와 가문이 손을 잡아야 했으나, 다다오키는 이시다 미츠나리를 싫어하고 있었다.
"이시다는 싫습니다. 음험하고, 책사라." 하고 말하곤 했으며, 이시다 미츠나리 역시 다다오키와는 의견이 맞지 않았다. 다다오키(忠興)가 말했다. "아버님, 이시다는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마에다 토시이에는 늙은이다. 지금은 손을 잡고 도쿠가와를 멸한 뒤, 다음은 마에다를 멸한다. 그러면 천하는 나의 것이다'라고요." "그놈이 할 법한 말이로구나."
"이시다의 속셈도 모른 채, 토시이에 공은 그자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들었느냐 다다타카, 지금이라도 토시이에 공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손을 잡아야 한다." 다다타카(忠隆)는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마에다와 도쿠가와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즉, 호소카와 가문도 도쿠가와 편에 선다는 뜻이 되겠구나."
유사이는 한 단어 한 단어 확인하듯 말했다. "그렇게 되는 셈이지요. 그건 그렇고 다다타카, 내가 치요의 오라버니인 토시나가에게 이시다의 속셈을 귀뜸해 두마." 다다오키의 말에 다다타카는 점잖게 "예" 하고 대답했다. '(또 큰 전쟁이 시작되는구나.)' 다마코는 입안에 남아있는 씁쓸하고 걸쭉한 차의 맛을 느끼며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몇 번의 전쟁이 있었다. 하지만 도쿠가와와, 히데요리를 봉하는 이시다의 전쟁은 녹록지 않은 큰 싸움이 될 것임을 여자인 다마코조차 느낄 수 있었다. 다다오키도, 다다타카도, 시아버지인 유사이도 그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것이다. 다마코는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훌륭한 차였네." 유사이가 말했다. 다마코에게는 의미심장한 인사로 들렸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히데요시의 죽음 25-2
해를 넘어 게이초 4년(1599년) 2월, 병을 얻은 마에다 토시이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히데요리의 뒷일을 부탁했다. 다다오키가 중재에 나선 결과였다. 그 후 토시이에의 병세가 위중해지자 이에야스가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정보를 접한 미츠나리는 아직 다다오키의 진심을 깨닫지 못하고, 이에야스를 암살하자는 모의를 제안해 왔다. 다다오키는 반대했으나 미츠나리가 계획을 바꿀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에 동조하는 척했다. 하지만 다다오키는 비밀리에 이에야스를 도피시켰다. 마에다 토시이에의 죽음은 이에야스의 세력을 순식간에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토시이에가 죽은 다음 날, 다다오키를 비롯해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구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 등 7명의 무장이 이시다 미츠나리를 치려 했다. 미츠나리는 어처구니없게도, 과거 자신이 습격하려 했던 이에야스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게다가 그때 미츠나리는 여장(女装)을 하고 가마를 탄 채 찾아갔다.
이에야스는 기가 차서 "이상한 놈이 왔군" 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이에야스는 다다오키 등 7명의 장수들과 미츠나리 사이를 중재하였고, 미츠나리는 당분간 사와야마(佐和山)에서 근신하게 되었다. 그해 9월, 히데요리의 어머니 요도기미(淀君)의 방탕한 행실이 소문으로 퍼지자, 무장들의 마음은 요도기미에게서 떠났고 그녀가 낳은 히데요리에게서도 멀어졌다. 그들은 히데요시의 정실인 기타노만도코로(北政所-네네)를 친근하게 여겼으며, 이에야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에야스가 오사카성에 들어가 고타이로(五大老)의 한 사람으로서 정무를 보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당시 다다오키는 영지인 단고 미야즈로 가 있었다. 남편이 비운 자리를 지키는 다마코는 평소처럼 시녀들과 함께, 다다타카의 새신부 치요히메도 불러들여 베를 짜거나 그림을 그리고,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힘쓰고 있었다. 이러한 나날 속에서도 《콘템츠스문지(Contemptus Mundi, 묵상서)》를 읽는 모임은 계속되었다.
치요히메의 오라버니 마에다 토시나가는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를 깊이 믿고 있었기에, 치요히메 역시 그 영향을 조금은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콘템츠스문지》를 읽거나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깊은 구도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치요히메는 다이묘 가문에서 자라 몸도 마음도 아직 어렸다.
저택 안에서 올려다보는 오사카성은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나, 세상의 움직임이 날로 험악해져 가는 것을 다마코 일행도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마코들이 머무는 안채에는 불안해하는 세간의 분위기와 달리 이상하리만치 안정이 감돌고 있었다. "싸우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단 한 사람도 칼날에 맞아 죽는 일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다마코는 가요나 치요 등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전쟁이 일어나면 다다토시 님도 출진하시게 될까요?" 가요가 언젠가 불안한 기색으로 다마코에게 물었다. "정말이지 그 아이도 벌써 14세가 되었구나. 태어났을 때는 너무 약해서 도노(영주님, 다다오키)께서 버리라고 하셨을 정도였는데..." "정말로 의젓하게 잘 자라주셨습니다." 셋째 아들 다다토시(忠利)는 아버지 다다오키를 따라 미야즈로 가 있었다.
'(오키아키도 훌륭하게 자랐겠지.)' 다마코는 문득 오키모토의 양자로 간 오키아키(興秋)를 떠올렸다. 오키아키와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오키아키 역시 출진해야 할 것이다. 다마코는 인간이 전쟁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전쟁보다 훨씬 더 존엄한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무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자식은 아침저녁으로 무술에 힘써야만 한다. 그리고 언제 전장에서 사라질지 알 수 없다. 사내아이이기에 언제 전사하더라도 좋도록 세례를 받게 하고 싶은 바람을 다마코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다타카는 아직이었다. 다다오키로부터 세례에 대한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신앙은 적당히 하면 된다." 이것이 다다오키의 평소 지론이었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히데요시의 죽음 25-3
11월에 접어들자 오사카에도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다. 하지만 주인이 없는 나날은 어딘지 모르게 안채의 공기를 한결 느긋하게 만들어 주었다. 시녀들의 들뜬 목소리가 오늘도 들려온다. 가요가 다마코에게 말했다. "가라샤 님, 다음 달은 예수님의 성탄절입니다. 미야즈는 벌써 눈이 내리고 있겠지요."
"정말이지, 얼마나 쌓여 있을까." "도노께서도 추우셔서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설날이 가까워 올 때까지 다다오키는 돌아오지 않는다. "도노의 성품으로 보아, 눈을 보면 더욱 기운을 내실 게다. 그건 그렇고 마리야, 올해 성탄절에는 도노께서도 함께해 주신다고 하셨으니 잘 부탁하네." 다마코는 얼마 전 다다오키가 했던 말을 전달했다.
"어머나, 도노께서도 참가해 주신단 말씀입니까?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렇다면 올해는 어떻게 성탄을 축하드리면 좋겠습니까?" "그야 마리야, 그대가 모두와 상의해서..." "그럼 올해는 다 같이 노(能)극이라도 해볼까요?" 교회에서는 성탄절 밤, 신자들이 키리시탄 노극을 공개하곤 했다. 신약·구약 성경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노극은 사람들에게 희귀하게 여겨지며 기쁨을 주었다. 가요나 시녀들의 입을 통해 들은 적은 있지만, 다마코 혼자만 본 적이 없었다.
"어머, 그것 참 흥미롭겠구나." "마님께서 그 요곡(노래)를 만들어 주신다면..." "그건 무리라니까." 두 사람은 즐겁게 웃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뜻밖에 미야즈에서 다다오키가 돌아왔다. "도노, 돌아오셨습니까." 다마코는 미소를 지으며 뚱한 표정으로 꼿꼿이 서 있는 다다오키 앞에 두 손을 짚었다. 아랫입술을 깨문 다다오키의 얼굴은 핼쑥하게 쇠약해져 있었다.
"도노,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다마코는 변함없는 어조로 조용히 물었다. "오타마, 큰일이 났다."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겨우 다다오키는 입을 열었다. "큰일이라니요?" "이 다다오키에게 반역의 마음이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다다오키는 다마코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놀라는 다마코에게,
"도쿠가와 님께서 호소카와 가문을 정벌하기 위해 미야즈로 군대를 보내려 하신다는구나." "설마요!? 도노, 뭔가 착오가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다, 착오가 아니다. 평소 내가 정보를 모으고 있었기에 다행히 일찍 귀에 들어왔다만... 오타마, 도쿠가와 님은 마에다 토시나가와 그 친척 관계인 내가 짜고 반기를 들려 한다고 의심하고 계신다."
"...도노, 그것은 누군가의 모함이 아니겠습니까." 단호하게 다마코가 말했다. "음, 확실히 그렇다. 그 고부교(五奉行) 중 한 사람인 마시다 나가모리(増田長盛)의 모함이다." "마시다 님께서요?" "그렇다. 마에다 토시나가(前田利長)가 아사노 나가마사(浅野長政) 등을 포섭하여 이에야스 님을 살해하려 한다고 말한 모양이다."
"그리고 도노 또한 그 패거리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음. 뒤에서 이시다가 조종하고 있는 기미가 보인다." 다다오키는 탄식했다. 가요가 밥상을 올려왔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숭늉이나 찻물에 밥을 말아 단숨에 먹어 치우는 것이 다다오키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입궐할 준비를 하여라. 어쨌든 도쿠가와 님께 나와 마에다 모두 결코 딴 마음이 없음을 변명해야 한다. 오늘이라도 출병한다 하니 서둘러야 한다." 밥상에 손을 대긴 했으나, 다다오키는 두세 숟가락 만에 대접을 내려놓았다. "도쿠가와 님께서 알아주실까요?" "그건 모른다."
다다오키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혼자 오사카성에 나아갔다가 무사히 끝날지 어떨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다오키는 의복도 예복인 스오(素襖)로 바꿔 입고는, "오타마, 각오는 되었겠지?" 하며 다마코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될 것입니다." 다다오키를 격려하며 다마코가 말했다.
"음." 오가사와라 쇼사이와 두세 명의 동반자를 거느리고 바삐 입궐하는 다다오키를, 다마코는 현관 디딤돌에 앉아 배웅했다. '(서로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사람은 살아가고 있구나.)' 다마코는 깊이 생각했다. 다다오키는 평소 도쿠가와 편이었고, 실제 그 목숨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이에야스 역시 여러모로 다다오키에게 호의를 보이면서도, 막상 타인의 밀고를 듣자마자 즉시 다다오키 정벌 명령을 내린다.
'(믿어주지도 않는 도쿠가와 님 앞으로 목숨을 걸고 변명하러 가시는 것인가.)' 나도 모르게 다마코의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호소카와 가문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다다오키의, 남자로서의 괴로움을 다마코는 비로소 깊이 느꼈던 것이다. 이대로 성안에서 죽임을 당할지, 할복을 명령받을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다다오키는 가문의 흥망이 걸린 일대 사건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다마코는 안방으로 들어가 다다오키의 무사함을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일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는 성경의 말씀을 떠올리며 다마코는 간절히 기도했다. 사람의 눈에는 아무리 나쁜 상황으로 보여도, 결국은 좋은 결과를 향해 가는 과정일 때가 있다. "도쿠가와 님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소서." 다마코는 그렇게도 기도했다. 아버지 미츠히데가 노부나가를 쓰러뜨렸을 때도 호소카와 가문은 대혼란에 빠졌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호소카와 가문 자체가 직접 멸망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때처럼 다다오키는 미야즈에서 유사이나 중신들과 협의를 거듭한 끝에, 직접 파발을 달려왔을 것이리라. 다다오키의 귀가가 늦어짐에 따라 다마코에게도 사태의 중대함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복도를 오가는 시녀들의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심상치 않은 사건이 터졌음을 느끼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밤이 되었다. 하지만 다다오키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야기가 꼬인 것일까, 아니면...)' 다다오키의 신상에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밤 9시가 지날 무렵, 현관 쪽이 시끄러워지더니 시녀가 다다오키의 귀가를 알렸다.
"무사하셨군요"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다마코는 조용히, "다녀오셨습니까." 하고 고개를 숙였다. "음, 방금 돌아왔다." 한마디 던진 채, 다다오키는 가신들이 거처하는 별채로 쓱 들어가 버렸다. 어떤 결과가 되었는지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하나의 위기를 넘겼음을 다마코는 느꼈다.
다마코는 즉시 주방 사람들에게 다다오키와 동행한 자들을 위한 음식 준비를 명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다다오키는 자정 조금 전에 방으로 돌아왔다. 술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취하지는 않았다. "걱정을 끼쳤구나." 옷을 갈아입으며 다다오키가 말했다. "얼마나 고단하셨습니까." 다마코는 새삼 확인하듯 다다오키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길이었다. 출진보다도 비장한 입궐이었다. 무사히 돌아와 주어서 다행이라는 감회가 깊었다. "도쿠가와 님은 처음에 나를 의심하셨다. 하지만 진심 어린 말은 통한 모양이다." "통하였습니까?" 정말로 믿어준 것일까 하고 다마코는 생각한다.
"음, 알아주셨다. 본래 말이 통하는 분이시다. 마에다를 위해서도 변호하여 그 혐의도 벗겨냈다." "어머나, 참으로 잘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용서해 준 것은 아니다. 마에다 쪽에서도 가신이 와 있었지만, 어쨌든 일단 반역의 뜻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인질을 내놓으라고 하시는구나." "예? 인질..." 다마코는 다다오키를 바라본 채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역시 도쿠가와 님은 믿어주지 않은 것인가. 목숨을 걸고 변명하러 간 다다오키를 왜 믿지 못하는가. 인간은 인간을 믿을 수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마코는 사람 마음의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인질 말이다..." 다다오키는 양반다리를 한 자신의 무릎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다다타카, 치요, 다다토시... 이렇게 생각해 보니..."
말을 건네는 다다오키에게, "도노, 제가 가면 안 되겠습니까?" 다마코는 무릎을 앞으로 당겨 앉았다. "안 된다!" 단번에 다다오키는 거절했다. "어째서입니까?" "그대는... 그대는 내게 없어선 안 될 존재다." "......"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그대를 인질로 보낼 수 없다." "말씀 송구하옵니다만..." "안 된다. 그대는 아직 너무나 아름답다. 남의 눈에 띄게 하고 싶지 않다."
떼를 쓰는 듯한 어조로 다다오키는 말한다. 그 다다오키의 마음이 다마코의 가슴에 와닿았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누구를 인질로 보내야 할지 다마코는 막막했다. 다마코에게 자식은 제 몸보다 더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오타마, 나는 다다토시로 정했다." "어머나! 다다토시를..." "음, 다다토시도 14세다. 출진할 수 있는 나이다."
"그렇다면 다다토시를 혼자 저 멀리 에도로 보낸단 말씀이십니까?" " 그렇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고생은 어릴 때부터 해보는 것이 좋다. 이에야스 님을 보아라. 겨우 여섯 살에 이마가와 씨에게 인질로 보내지지 않았느냐. 게다가 도중에 오다 노부히데 님에게 빼앗겨 2년 동안 오다의 인질, 그러고 나서 다시 이마가와의 인질이 되어 고난을 겪으셨다. 14세인 다다토시가 인질로 가는 것쯤으로 놀라서는 안 된다." "예..."
다마코는 눈시울을 붉혔다. 셋째 아들 다다토시는 어릴 적 젖을 빨 힘조차 없을 정도로 약한 아이였다. 그 약했던 갓난아이 때의 모습이 지금의 다다토시 위에 겹쳐지면서, 다마코는 다다토시가 가엾어 견딜 수 없었다. 다마코에게는 둘째 아들 오키아키를 오키모토의 양자로 보낸 것조차 서글프고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하물며 다다토시를 알지도 못하는 에도의 도쿠가와가에 인질로 보내는 것은, 아무리 하느님을 믿는 몸이라 해도 견디기 어렵고 슬픈 일이었다. 물론 인질인 이상 귀하게 대우받겠지만,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인질인 다다토시는 참혹하게 죽임을 당해야만 한다.
다마코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 토요가 인질로 야카미성에 맡겨졌다가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일은, 다마코에게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오타마, 조만간 무슨 일이 있어도 이시다 미츠나리와 도쿠가와 님은 싸우게 될 것이다." "예." 언젠가 한번은 그리되어야 수습될 것임을 다마코 역시 느끼고 있었다. "그때 호소카와 가문이 어느 편에 설지, 이것으로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예..." 다다토시를 죽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시다를 완전히 적으로 돌려도 좋은가 어쩐가, 이것이 문제다." "어째서입니까?" "호소카와 가문은 살아남아야 한다. 원래 누가 천하를 잡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호소카와 가문은 강한 쪽에 붙어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 " 그렇다면 다다토시는..." "도쿠가와 님이 만약 약하다면, 나는 이시다 편에 설 것이다." "그렇다면 다다토시의 목숨은..."
"다다토시의 목숨보다 호소카와 가문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타마, 나 역시 오늘 내 목숨을 걸었다. 그것이 무가의 각오라는 것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의 엄혹함은, 동시에 추악함이자 허망함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다마코는 서글픔을 느꼈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은총의 불꽃(恩寵の炎) 26-1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대두, 그리고 이에야스와 이시다 미츠나리의 대립. 역사는 다시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에 뜻하지 않게 다마코의 목숨이 삼켜지려 하고 있었다. 음력 6월, 무더운 밤이었다. 모두가 잠든 저택 안쪽 방에서 다다오키와 다마코만이 아까부터 마주앉아 있었다. "출진은 물론이고..." 다다오키의 말끝이 괴로운 듯 흐려졌다. 다마코는 그런 다다오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각오는 하고 있다만..." 다시금 다다오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전란의 시대에 태어나 15세에 첫 출진에서 이름을 알린 이래, 출진에는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번 출진은 다다오키의 가슴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명령에 따라 출진하고 전쟁이 끝나면 돌아오면 된다는 단순한 문제가 다다오키 앞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출진 명령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서 내린 것이었다. 이에야스는 도요토미가의 고타이로(五大老)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이에야스가 마찬가지로 고타이로 중 한 사람인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를 정벌하라고 명한 것이다. 다른 세 사람은 각자의 영국(領國)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에야스는 이제 히데요시가 죽은 후 도요토미 정권의 실권을 쥔 자였다. 도요토미의 이름을 빌려 이에야스는 여러 장수들을 자신 밑으로 달려오게 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 정벌의 구실은 카게카츠의 모반이었다. 오랜 기간 영지를 비우고 교토에 있던 카게카츠가 귀국했다. 돌아오자마자 도로와 다리를 정비하고 성을 수리하며 무기와 병사를 모았다. 카게카츠는 본래 에치고(越後-니이가타)의 영주로, 재작년 아이즈(会津-후쿠시마)로 막 옮겨온 참이었다. 새로운 영지에서 성과 도로를 정비하고 병량과 사람을 모으는 것은 영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데와(出羽-山形/秋田)의 성주 토자와 마사모리(戸沢政盛)가 "우에스기 카게카츠에게 모반의 뜻이 있다"고 이에야스에게 모함했다. 이에야스가 이를 모반이라 믿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모함을 이에야스는 구실로 삼았다. 바로 전해, 이에야스는 마에다 토시나가의 모반이라는 모함에 정벌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토시나가는 즉시 사죄하고 그의 어머니를 인질로 바쳤다.
호소카와 다다오키에게도 마찬가지로 정벌군을 보내려 했으나, 다다오키 역시 즉시 아들 다다토시를 인질로 보내며 석명에 힘썼다. 이에야스로서는 이러한 일들이 오히려 셈법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이에야스는 도요토미가의 타이로(大老)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여러 장수들을 제 뜻대로 싸우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역시 싸울 상대는 비단 우에스기 카게카츠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이 시점에 자신에게 따르지 않는 장수들이 곧 적이었다. 그 이에야스의 속셈을 호소카와 유사이도, 다다오키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러하옵니까... 도쿠가와 님께서 아이즈로 출진하시면, 그 배후를 이시다 님께서—" 다마코가 말을 꺼내자,
"그렇다. 이시다 미츠나리 그놈이 반드시 배후를 칠 것이다. 아마도 카게카츠와 이시다는 이미 도쿠가와 님을 협공하기로 속셈을 맞추었겠지. 그것을 도쿠가와 님도 뻔히 알고 계신다. 아니, 아이즈 정벌은 도쿠가와 님이 이시다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니라." "그렇다면 멀지 않아 도쿠가와 님과 이시다 님께서 천하를 가를 싸움을..."
"그렇다. 현명한 그대는 여자의 몸으로도 잘 꿰뚫어 보는구나. 우리로서는 도쿠가와 님의 속내도, 이시다의 속셈도 모르는 척 출진해야만 한다." 다마코는 굳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얼굴을 들었다.
"평소의 싸움이라면 출진하여 싸우고 오면 그것으로 일이 끝나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라 할 것 없이 가운을 걸고 벌이는 싸움이다. 도쿠가와가 승리하면 이 호소카와 가문은 안태할 것이요, 이시다가 승리하면 멸망해야 한다." "참으로 다마 역시 그리 생각되옵니다."
"그러니 오타마, 도쿠가와 님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하시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따르는 우리 역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해. 우선 첫째로, 우에스기를 치는 것 외에 딴뜻은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도쿠가와 님의 유인책을 이시다가 찰나에 파악할 테니까."
"예, 그렇습니다..." "사실은 말이다, 오타마." 다다오키는 괴로운 듯 숨을 내쉬며, "이번 출진에 앞서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것은 말이다 오타마, 우선 그대를 비밀리에 어딘가로 숨겨두고 출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구나." 다마코는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다오키를 바라보았다.
"우에스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제 영지의 성과 다리를 수리한 것만으로도 당장 모함을 받는 세상이다. 만약 그대를 피신시키고 출진한다면, 우리가 도쿠가와 님께 바치는 남다른 각오를 이시다가 금세 읽어내겠지. 어찌 되었든 이시다는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면서도 언제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느니라."
"도노, 도노의 말씀 이 다마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오타마, 알아주겠느냐. 나는 괴롭다. 오타마, 그대를 이 저택에 남겨두고 가는 것은 내 살점을 베어내는 것처럼 괴롭구나. 고통스럽다. 이시다는 도쿠가와 님을 추격할 때 반드시 그대를 노릴 것이다. 인질로 삼아 나를 견제하려 할 것이 눈에 선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타마, 그대가 이시다의 손에 넘어가서도 안 되는 법이다."
숨길 수도 없고, 인질로 잡혀서도 안 된다는 것은 곧 만약의 경우에는 죽으라는 뜻이다. 그것을 말하려 하면서 차마 직접 입에 담지 못하고 다다오키의 매끄럽지 못한 말이 이어졌다. 다마코는 다다오키의 말을 들으며 18년 전 그날 밤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아버지 미츠히데가 본능사에서 노부나가를 쓰러뜨렸다. 그 미츠히데의 딸인 자신의 처신이 중신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아리요시가 다마코를 베겠다고 했다. 다다오키는 "다마코를 베는 자는 내가 베겠다"며 다마코를 감싸 안았다. 그 주고받음을 다마코는 문을 사이에 둔 복도에서 들었다. 그때 다다오키의 고뇌가 지금도 가슴에 새겨져 있다. 그때는 미토노에 숨겨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다다오키의 지금 고뇌는 그날 밤에 못지않은 괴로움이 틀림없었다. 다마코의 입술에 아련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서 말이다... 오타마." 말을 머뭇거리는 다다오키의 말을 가로막듯 다마코는 조용히 말했다. "도노, 안심하시옵소서. 다마는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 저택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나이다. 아무 걱정 마시고 출진하시옵소서." 다마코의 마음이 다다오키의 전신을 관통했다. "오타마!"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다다오키는 다마코를 바라보았다. 다마코는 조용히 다다오키를 맞바라보았다.
"오타마! 그대에게 여기 머물라 하는 것은... 그대에게 죽으라 하는 것이다..." 다다오키의 목소리가 막혔다. "도노, 각오는 되어 있나이다." 청초한 눈동자가 눈시울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 "죽겠다는 말이냐, 그대는..." 비통한 목소리였다.
"예, 도노. 언젠가 다마가 드렸던 말씀, 기억하고 계시옵니까? 도노께서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버리라 하셨을 때,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나이다. '그 말씀에는 설령 죽임을 당할지언정 따를 수가 없나이다. 하지만 다른 일이라면 어떤 말씀이든 따르겠나이다. 음식을 끊으라 하시면 끊을 것이요,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라는 명령이라면 평생 이 방에서 나오지 않겠나이다'라고..." "....."
"도노, 그것은 다마가 목숨을 걸고 말씀드렸던 진실이었나이다. 괴로운 김에 거짓을 아뢴 것이 아니었나이다. 그 이후로 언제나 다마는 그 각오로 도노의 말씀에 따라왔나이다." "오타마! 그렇다면..." "안심하시옵소서. 다마는 도노의 말씀은 목숨을 걸고 지키겠나이다."
"오타마, 그대는..." 다다오키는 눈물을 참으며, "만약 이시다 쪽에서 그대를 인질로 잡으러 온다면..." "예, 결코 인질은 되지 않겠나이다. 만약 제가 인질이 된다면 도쿠가와 님께서도 도노의 충성을 의심하실 것입니다. 다다토시를 도쿠가와 님께, 저를 이시다 쪽에 인질로 보낸다면 딴 마음을 품었다 의심받아도 할 말이 없사옵니다. 도노, 다마는 죽어도 인질은 되지 않겠나이다." "오, 오타마!" 다다오키는 다마코의 손을 꽉 쥐었다.
"그대를... 그대를 죽이고 싶지 않다." 다다오키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마코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도, "도노, 하느님을 믿는 자에게는 육신의 죽음은 있을지언정 영혼의 죽음은 없나이다."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다오키는 다마코를 꽉 껴안으며, "아아, 그 미토노에 다시 그대를 숨길 수만 있다면..." "아닙니다, 도노. 그때 도노께 구원받아 다마는 오늘날까지 살아왔나이다. 도노, 다마는 충분히 행복하옵니다."
다마코는 다다오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다마코는 총명했다. 지금 자신들 부부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시대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꼈다. 다다오키가 호소카와 가문의 안태를 바라고 도쿠가와 편에 서는 것도, 자신을 오사카에 남겨둘 수밖에 없는 것도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래 다다오키가 아내인 자신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죽게 버려둘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조차 총애하는 측실을 오사카성에 남겨두고 출진한다고 하지 않던가. 다마코는 문득 20여 년 전 언니 오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시집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오린은 이렇게 말하며 쓸쓸히 웃었었다. 그 오린도 혼노지(本能寺)의 변 이후 사카모토성에서 어머니, 남동생들과 함께 죽어갔다. 하지만 지금 다마코는 자신에게 있어 결혼이란 죽는 자리가 아니라 살아가는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시다 미츠나리가 자신을 인질로 삼으려 한다면 자신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죽음 역시 자신에게는 살아가는 길이라고 다마코는 생각했다. 이후로 몇 년을 더 산다 한들 결국 육신은 죽어야만 한다. '(죽어야 할 때에 사람은 죽는 법.)' 다마코는 다다오키의 가슴에 안긴 채 생각했다. "도노." "...음." 다다오키는 다마코의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칼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눈에 눈물이 빛나고 있었다. 손안의 옥처럼 아끼던 이 다마코를 사지에 두고 내일은 미야즈로 떠나야만 한다. 출병 절차는 6월 27일로 정해져 있었다.
"무엇이냐, 오타마." "...지거나 할..." "지거나 할?" "예. 지거나 할 때를 알아야 비로소 세상의 꽃도 꽃이요 사람도 사람이거늘." "지거나 할 때를 알아야 비로소 세상의 꽃도 꽃이요 사람도 사람이거늘... 오타마!" 사세구인가, 하고 입 밖에 내려다 다다오키는 말을 삼켰다. 서로 16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한 두 사람이었다.
그때로부터 22년, 수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다마코의 입에서 사세구를 들어야 하는 비통한 밤이 있었던가. "지거나 할..." 다시 말하려다 다다오키는 말문이 막혔다. 다다오키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곁에 놓인 촛불이 아련히 흔들리고 있었다.
다다오키가 아이즈로 향하는 이에야스를 따라 미야즈를 출발한 것은 6월 27일, 이시다 미츠나리가 이에야스 토벌의 병사를 일으킨 것은 7월 17일이었다. 미츠나리는 20년에 걸친 도요토미가의 은혜를 이에야스를 따르는 장수들도 저버리지 못할 것이라 보았다. 자신이 거병하면 반드시 대부분의 장수들이 달려올 것이라 오판했던 것이다.
한편 이에야스는 이시다 미츠나리의 움직임을 알자 자신을 따르는 여러 다이묘들을 집결시켜 말했다. "오사카의 정세가 이렇게 되었으니 장수들은 자유롭게 거취를 정하라. 오사카에 있는 처자의 안위도 걱정될 터."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먼저 답했다. "여쭤보고 싶은 것은 히데요리 공의 일입니다. 히데요리 공만 안태하시다면 저는 이시다 따위에게 붙지 않겠습니다.
태합 전하께서 임종의 병상에서 눈물을 흘리시며 부탁하신 히데요리 공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드려야 합니다." "그렇다, 나 역시 후쿠시마 님의 의견에 찬성이다." 구로다 나가마사, 가토 기요마사 등 도요토미의 신하들도 저마다 입을 모았다. 이에야스가 답했다.
"그것은 물론이다. 나 역시 히데요리 공 앞에서 굳게 맹세한 바다. 히데요리 공을 받들고 있기에 지금 이처럼 다이로(大老)로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시다 패거리는 그 히데요리 공에게 활을 겨누는 자들이다." 이렇게 해서 이에야스 일행은 이시다를 반역자로 규정했다. 무장들은 히데요리 공만 안태하다면 굳이 평소 싫어하던 이시다에게 달려갈 이유가 없었다.
한편 이시다 미츠나리는 예상대로 먼저 호소카와 다다오키를 겨냥했다. 다다오키는 과감하고 이에야스에게 심복하고 있다. 그 다다오키의 아내 다마코를 인질로 삼고, 영지 단고를 지키는 호소카와 유사이를 친다. 다다오키는 이름난 애처가이자 효자이다. 반드시 전선의 앞잡이인 다다오키도 동요하여 서군에 항복할 것이다. 다다오키가 항복하면 다른 자들도 불안해할 것이 틀림없다고 미츠나리는 보았다.
이때 단고(丹後) 정벌 요청이 베쇼 붕고노카미(別所豊後守) 앞으로 보내진 서간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전략) 이번에 아무런 허물도 없이 카게카츠 추벌을 위해 나이후(内府-이에야스)에 조력하고자 에츄노카미(越中守다다오키) 일당이 남김없이 떠났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소. 그러한즉 히데요리 공의 정벌을 위해 각자 파견하오니 군공을 세우시기 바라오. 하급자에 이르기까지 공에 따라 포상을 내릴 것이오."
다다오키, 오키모토, 다다타카 등이 미야즈에서 아이즈로 향한 뒤, 단고의 유사이 곁에는 영내에서 끌어모은 무사가 50여 명, 잡병이 500여 명뿐이었다. 이시다 미츠나리는 단고 정벌 준비와 함께 신속하게 오사카의 호소카와 저택을 비롯하여 구로다 나가마사 저택, 가토 기요마사 저택 등에 인질을 요구할 수순을 정했다.
이에야스를 따른 다이묘의 부인을 인질로 잡는다는 소문은 13일에 이미 오사카 시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구로다 나가마사의 아내는 소문을 듣자마자 비밀리에 저택을 탈출했다. 가토 기요마사의 아내는 큰 물통 밑바닥에 이중 바닥을 만들고 그곳에 숨어 배를 타고 도망쳤다. 오사카에 있는 다이묘의 아내들은 인질 소문에 두려워 떨었다.
오늘 인질로 잡힐지 내일 잡힐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저택을 지키던 코가사와라 쇼사이는 그 소문을 다마코에게 알릴지 말지 망설였으나, 역시 일단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안채로 상후했다. 기요하라 마리야와 오시모라는 시녀에게 쇼사이가 먼저 말했다. "이시다 쪽에서 오늘에라도 도쿠가와 님을 따른 장수들의 부인을 인질로 잡는다는 소문입니다. 괴로운 일이나 알려 드려야 할 듯하여..." "예? 오늘이라도요!?"
시녀 시모는 홱 얼굴빛이 변했으나 마리야는 "알겠습니다" 하고 조용히 답했다. 두 사람은 쇼사이를 그 방에서 기다리게 하고 급히 다마코의 방으로 갔다. 다마코는 조용히 자신이 쓴 글 등을 되읽고 있었다. ---- 만난 듯하여 겹쳐 베고 자는 소매에 남은 향기 남지 않음에 비로소 꿈인 줄 알았네 ---- 예전 미토노에서 지은 시였다. 선명하게 다다오키의 모습을 보고 깨어나 꿈인 줄 알았을 때의 쓸쓸함이 어제의 일처럼 떠오른다. ---- 아침저녁 잊지 못하고 몸에 바짝 다가와 마음을 나누던 그 모습조차 없구나 ----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은총의 불꽃(恩寵の炎) 26-2
그 시절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허한 쓸쓸함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가 하고 다마코는 생각한다. 다다오키가 미야즈를 향해 떠나던 아침, 다마코도 문에 서서 배웅했다. 다다오키는 다마코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무슨 말인가 하려 했으나 입술만 경련할 뿐이었다. 겨우 다마코에게서 시선을 떼어내듯 돌리더니 다다오키는 훌쩍 말에 올랐다.
"쇼사이, 이와미, 이나토미, 뒷일을 부탁한다!"
말을 마쳤나 싶더니 다다오키의 말은 달려 나가고 있었다. 가만히 배웅하는 다마코를 다다오키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 돌아보지 않는 다다오키의 마음이 다마코에게는 아플 정도로 느껴졌다. 언덕을 동쪽으로 달려가는 다다오키와 그 일행의 그림자가 왼쪽으로 꺾여 사라질 때까지 다마코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배웅하고 있었다.
그때 다다오키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눈에 떠오른다. '(다시는 결코 만나지 못하겠지.)' 하지만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미토노 시절보다 지금은 마음이 충만해 있었다. 평안했다. "뜻대로 따르게 하소서." 지금도 다마코의 입술에서 나지막하게 기도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가라샤 님." 기요하라 마리야의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오시모와 둘이서 무슨 일이냐?" "예, 방금 코가사와라 님께서 오셔서 오늘이라도 이시다 군이 인질을 잡으러 몰려온다는 소문이라 합니다.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지 물어오셨나이다." 다마코는, "출진하실 때 도노께서 지시해 두신 바가 있을 터이다. 그대로 답변하라 전하여라." 물러갔던 두 사람이 잠시 후 다시 다마코 앞으로 왔다.
"코가사와라(小笠原) 님과 카와키타(河喜多)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질로 보낼래도 당가에는 적당한 사람이 없노라고 이시다 쪽에 답변하면 어떠냐 하옵니다." "과연." "장남, 차남은 아이즈로 향했고, 삼남은 에도의 도쿠가와 님 저택에 인질로 가 있는 몸. 바칠 사람조차 없노라고 이렇게 아뢴다 합니다." "그래, 그래도 단단히 내놓으라 하면?"
"예, 그때는 단고의 대전(유사이) 님과 상의한 후 지시를 기다려 답변하겠노라 하겠다 합니다. 도노가 계시지 않으니 가신들의 일존으로는 일을 처리하기 어렵다 답하겠다 하시는데 어떠실지요?" "과연. 처음부터 죽어도 인질은 못 내놓는다 모나게 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구나." 하고 조용히 웃었다.
그때 다른 시녀가, "우곤 님께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하옵니다." 하고 알리러 왔다. 우곤은 일 년에 한두 번 얼굴을 비추는 비구니(比丘尼)였다. 마리야와 시모가 물러가고 비구니가 허리를 굽히며 들어왔다. "어머나, 안녕하셨습니까. 변함없이 아름다우시고..." "우곤 님께서도 변함없으시고..."
"마님, 이런저런 일로 또 시끄럽사옵니다. 듣자 하니 이시다 님께서 안부인님들을 인질로 삼으신다 어쩌신다..." 다마코는 미소를 띤 채 잠자코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이시다 님께서는 인질을 귀하게 대우하신다 합니다. 언제 인질로 잡힐까 두려워 떠시는 것보다 얼른 오사카성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안심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친절한 척 우곤이 말한다.
다마코는 우곤이 이시다 미츠나리의 밀명을 받고 왔음을 감지했다. "우곤 님, 친절은 감사하옵니다만, 저는 조금도 이시다 님을 두려워하지 않나이다." 단호하게 다마코가 말했다. "예?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말씀하십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답이 설마 여자인 다마코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비구니는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나 그후 다다음날 우곤은 다시 찾아왔다.
"마님, 이시다 님께서는 무력을 써서라도 인질을 잡을 생각이신 듯합니다. 나쁜 뜻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니 얼른 피신하십시오. 가토 님의 부인도, 구로다 님의 부인도 이미 도망치셨나이다." "아닙니다, 도노께서는 이 저택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성경에도 '아내는 그리스도를 섬기듯 남편 섬기라' 하신 말씀이 있나이다. 저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겠나이다. 도노를 거역할 수는 없나이다."
비구니는 난감한 듯 창백한 얼굴을 숙이고 있었으나, "마님, 이웃한 우키타(宇喜多) 님 댁은 친척이 아니신지요?" 우키타가에는 마에다 토시이에의 딸이 시집와 있다. 그 동생이 장남 다다타카의 아내인 치요이기도 했다. "예, 친척입니다만..."
"우키타가라면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이니 숨으시기에 딱 좋은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 저택이 병화에 둘러싸인다 해도 우키타가에 계시면 목숨은 안전합니다. 나쁜 뜻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니 우키타가로 피신하십시오." "우곤 님, 아무리 친척이라 한들 우키타가는 이시다 님과 뜻을 같이하는 분이 아니십니까. 손쉽게 잡혀 오사카성의 인질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다마코는 우곤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았다. 우곤이 돌아갔다. 다마코는 툇마루에 서서 오사카성을 올려다보았다. 아름다운 노을 아래 천수각이 반짝인다. 회랑에 서 있는 것은 수많은 무사들일 것이다. 호소카와가에는 코가사와라 쇼사이, 카와키타 이와미, 이나토미 테츠노스케를 비롯해 열 명도 되지 않는 무사가 저택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저마다 무술에는 뛰어났다. 특히 이나토미 테츠노스케는 실로 매달아 놓은 콩을 쏘아 맞춘다고 할 만큼 천하으뜸의 조총 명수였다. 하지만 수만 병력을 지닌 이시다세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게다가 이나토미는 타고난 겁쟁이로 지극히 소심했다. '(성이란 무엇인가.)' 위압하듯 솟아있는 오사카성을 올려다보며 다마코는 생각한다. 일본 국내에 얼마나 수많은 성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성을 의지 삼아 무장들은 목숨을 걸고 싸운다. 하지만 그 성은 어느 것 하나 절대적으로 견고한 것이 없다. 아버지 미츠히데의 사카모토성도 떨어졌다. 천하에 자랑하던 안치성도 멸망했다. 이 오사카성도 언제까지 견고함을 자랑할 수 있을까. 성이란 인간의 덧없는 의지처에 불과하다고 다마코는 나지막이 웃었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머지않아 죽는다. 그 사람들은 죽어서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도노께서도 아직..." 다다오키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이 다마코에게는 마음에 걸렸다. 그때 현관이 와글거렸다. 이시다 쪽의 정식 사자였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사자는 명령을 전달했다. "히데요리 공에 대한 충성과 순종의 마음이 있다면 즉시 안부인을 성중으로 바치라. 만약 이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무력을 써서 안부인을 모셔갈 것이다."
틈을 주지 않는 고압적인 명령이었다.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안부인을 즉시 바치라, 바치지 않으면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자 앞에 카와키타 이와미가 답했다. 이와미는 아케치 가문에서 온 중신이었다. 다마코가 태어나기 전부터 미츠히데의 신하였으며, 시집오는 다마코를 따라 호소카와가에 온 충의의 신하였다. 79세의 늙은 몸이었으나 꼿꼿한 태도로 답했다.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씀이신가. 당주 다다오키 님의 부재는 진작 알고 계실 터. 그 도노의 부재중에 신하인 우리가 임의로 마님을 내어드릴 수 있겠소?" "그런 것은 소인이 관여할 바가 아니오. 봉행 이시다 미츠나리 님의 명령이오." "기다리시오. 이만한 중대사를 어찌 당주에게 직접 파발을 뛰어 알려주지 않는 것이오? 혹은 우리가 대전 유사이 님께 사자를 보낼 길도 있을 터." "....."
"이시다 님 정도 되는 분이 그 이치를 모르실 리 없소. 어찌 되었든 무사에게 주군의 명령은 최상인 법이오." "그렇다면 봉행 님의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오?" "봉행(奉行)이라 한들 대로(大老)라 한들 우리의 주군은 아니시오." "그렇다면 무력을 써도 상관없다는 말씀이오?" "그런 부당한 명령에는 도저히 따를 수 없소. 이 늙은 배를 가를지언정 마님을 이 저택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내보내지 못한다고 복명하시오." "좋소, 그렇다면 각오하시오!"
거친 발소리를 내며 사자가 돌아갔다. 쇼사이와 이와미는 위급한 일이라 급히 직접 접견하기를 다마코에게 청했다. "마님!" 이와미가 가엾은 듯 눈을 파르르 떨었다. 사카모토성 이래 어릴 적부터 다마코를 지켜봐 온 이와미에게는 육신에 못지않은 정이 있었다. "이와미 님, 건강하시니 무엇보다 다행이오..." 위로하는 다마코의 말이 이와미의 눈물을 보고 끊어졌다.
"마님, 드디어 이시다 쪽에서 사자가 왔나이다." 쇼사이가 경과를 전하며, "인질을 무력으로 끌고 가겠다 함은 들어본 적이 없는 일..." "이와미 님, 쇼사이 님, 무력 따위에 결코 겁먹지 마십시오. '사람을 따르기보다 하느님을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도 있나이다. 또한 '아내는 그리스도를 섬기듯 남편을 섬기라' 하신 말씀도 있나이다. 저는 이 말씀을 지키겠나이다. 도노의 뜻을 어기고 인질 따위는 결코 되지 않을 터이니 안심하십시오."
"예, 마님의 뜻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도 무력을 써서 싸우겠습니다만, 저희가 전사한 후 마님 혼자 남으시면 그대로 성으로 끌려가실 것입니다. 그리되면—" "이와미 님, 어찌 저 혼자 살아남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마님께서는 키리시탄이시라..." "과연, 키리시탄이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지요. 자살은 무서운 죄이기에 스스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이 목숨은 쇼사이 님, 이와미 님, 당신들의 손에 끝맺겠습니다."
"마님..." 이와미의 백발이 떨렸다. "할 수만 있다면 저희는 마님을 어떻게든 피신시켜 드리고 싶사옵니다." "이 지경에 이르러 이와미 님, 미련을 두시는군요. 저는 이제 살아남겠다는 따위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나이다. 도노께서 도쿠가와 님을 따른 이상 만에 하나라도 제가 이시다 쪽의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도쿠가와 님께 충성심이 없다 의심받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의심을 받아 다다토시를 인질로 빼앗겼는데 말입니다. 도노께서 아무 걱정 없이 일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다마코에게 이와미는 할 말을 잃었다. 쇼사이는, "마님, 그 마음 헤아려 드립니다. 저희도 마님의 목숨을 거둔 후 즉시 뒤를 따르겠나이다." "뒤를 따른다고요? 쇼사이 님, 당신들은 순절할 작정이십니까?" 다마코는 그 아름다운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예, 도노께 순사(殉死)의 허락을 받았사오니 신하로서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나이다."
"안 됩니다. 저 혼자 죽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저의 죽음은 하느님을 믿기에 맞이하는 죽음. 하느님께서 남편에게 순종하라 하시기에 기꺼이 죽으러 갑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제가 죽은 후 이 저택에 불을 지르고 떠나주십시오..." "도노의 명령이시니 함께하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이와미 님, 쇼사이 님. 죽어서 당신들은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로 가냐 하심은...?" "죽어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 죽음을 서두르면 안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와미 님." 하며 다마코는 풍성한 무릎을 앞으로 바짝 당겨 앉으며, "이와미 님, 어릴 때부터 참으로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이제 당신도 79세, 고생만 시켜드리고...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지금 또 저와 함께 죽겠다 하시는 말씀 결코 소홀히 듣지 않겠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당치 않으신 말씀입니다." "아닙니다, 당치 않은 것은 제가 드릴 말씀이지요. 이와미 님, 쇼사이 님, 함께 죽는다면 함께 같은 천국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천국으로요?" "그렇습니다. 죽어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당신들과 함께 죽는 것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부디 당신들도 하느님을 믿어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당신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믿어주십시오. 믿으면 함께 천국에 갈 수 있나이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뜨거운 어조로 다마코는 두 사람에게 신앙을 권했다. "말씀 감사하옵니다. 하지만 이러는 중에도 이시다의 군사가 몰려올지 모릅니다. 소인들이 신자가 될 시간은 안타깝게도 없사오니..." 쇼사이가 말했다. 이와미는 노안의 눈물을 닦으며, "마님, 공주님들과 집안 사람들과 작별할 준비를..."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렇다면 부디 두 분 모두 절대로 죽음을 서두르지 마시고 저 혼자 조용히 하늘로 보내주십시오." 다마코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방에 혼자 들어가 미리 준비해둔 소복을 입고 조용히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려 할 때 문득 맑고 단아한 피리 소리가 담장 밖에서 흘러왔다. 수사가 된 하츠노스케가 부는 거룩한 찬미가 곡조였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은총의 불꽃(恩寵の炎) 26-3
다마코에게 힘을 보태주듯 하츠노스케의 피리 소리는 담장을 넘어 조용히 흘러왔다. 그 하츠노스케의 마음을 다마코는 순간 깊이 받아들였다. 미토노에 나타난 이래 하츠노스케의 충성을 다마코는 새삼 되새겼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는 없었다. 다마코는 무릎을 바르게 하고 하느님 앞에 마음을 정돈하여 기도를 올렸다.
"존귀하신 천지의 주이신 하느님, 거룩하신 이름이 영원히 높임을 받으소서. 이 비천한 몸을 38년 동안 오늘 이 날까지 지켜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나이다. 보잘것없는 이 몸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고 믿는 자가 되게 해주신 깊은 은총에 오직 감사를 바치나이다. 제가 깨닫고 있는 죄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소서.
또한 제 마음속에서 이시다 님을 향한 원망스러운 마음을 모조리 거두어 주시고, 깨끗하고 부서진 영혼이 되어 주님 곁으로 부름받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아버지 미츠히데의 딸로 태어난 것, 다다오키 님의 아내가 된 것,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은총이었음을 감사하나이다. 남겨진 호소카와가 사람들의 집안에, 특히 남편 다다오키 위에, 내 자식 다다타카를 비롯해 어린 만(万)에 이르기까지 한없는 자비의 손길로 신앙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나이다.
또한 기요하라 마리야, 시모, 시녀들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이와미 님, 쇼사이 님, 가신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아버지 미츠히데가 보내준 하츠노스케 위에 동일한 은총을 내려주소서. 부디 저 한 사람의 목숨을 거두시고 다른 이들의 목숨은 구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리나이다. 은총으로 신앙을 주시고 은총으로 신앙의 죽음을 주시는 하느님 위에 한없는 영광이 있기를 기도하나이다."
마음을 다해 기도를 마치자 다마코는 가슴에 십자가를 그렸다. 그 다마코의 눈은 더없이 맑았다. 예배를 드린 곳을 나오니 벌써 저녁 7시가 지날 무렵이었을까, 어둠이 짙어진 방에서 시녀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다마코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력을 써서라도 다마코를 인질로 모셔가겠다 하고 이시다의 사자가 돌아간 것이 한 시간 전, 곧바로 이시다세가 몰려올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소복 자락을 길게 늘어뜨린 다마코의 청초한 자태를 시녀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장남 다다타카의 아내 치요와 70세를 넘긴 다다오키의 고모가 있었다. 다다오키의 고모는 지난가을부터 호소카와가에 얹혀살고 있었다.
"치요 님, 벌써 7시도 지났을 터이니 이제라도 이시다세가 몰려올지 모릅니다. 한발 먼저 우키타 님 댁으로 고모님을 모셔다 드리지 않겠습니까?" 인형처럼 어린 얼굴의 치요히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 어머님께서는요?" "한꺼번에 가면 눈에 띌 터이니 나중에 가겠습니다... 고모님, 이런 상황이 되어 마음고생을 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자, 치요 님, 고모님을 급히 모시게—"
나이가 들어 사리 분별을 못 하는 고모와 아직 어린 며느리 치요에게는 불필요한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다마코는 일부러 영영 이별하는 티를 내지 않고 말했다. 치요는 소복을 입은 다마코의 모습을 보고도 설마 죽을 각오가 있으리라고는 감지하지 못할 만큼 이시다세의 습격에 겁을 먹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럼 먼저 가 있겠습니다."
시시각각 시간이 흐르고 방 안은 이미 어스름해졌다. 시모가 일어나 등불을 켜놓았다. "마리야, 급히 타라와 만을 이리로." 등불 빛을 받은 다마코의 자태는 고결할 만큼 꼿꼿했다. 곧 가요가 13세의 타라(多羅)와 3세의 만(万)을 데리고 왔다. 타라는 벌써 머리를 늘어뜨리고 소소데(小袖)를 입어 키도 크고 처녀다운 티가 났다.
세 살 난 만은 다마코의 소복차림을 보고, "엄마, 옷이 하얗고 예뻐요. 어디 가세요?" 하고 천진하게 의아해했다. 다마코는 만을 꽉 안아 끌어당기며, "만아, 너는 똑똑한 아이니 잘 들으렴. 엄마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 곁으로 하얀 옷을 입고 간단다." 겨우 세 살 난 만이 무슨 뜻인지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어린 나이에 엄마인 자신을 잃을 만의 앞으로의 일생을 생각하면 다마코는 더욱더 어린 영혼 속에 신앙을 새겨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만도 엄마랑 같이 갈래요." 작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만이 말한다. 다마코는 나도 모르게 볼을 비비며,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지금은 엄마한테만 용무가 있으시단다." 누나 타라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다마코에게 매달렸다.
"왜 울어, 누나?" 만은 이상하다는 듯 타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타라, 울면 안 된다. 네가 만의 엄마 대리란다. 엄마가 고아원 아이들에게 했던 것을 너는 보았을 것이다. 타라, 너도 부디 엄마가 믿은 하느님을 믿으렴. 그러면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흐느끼면서도 타라는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타라도... 꼭 하느님을 믿을게요." "타라, 잘 말해주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이란다. 하지만 그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간에게는 있단다. 그것이 신앙이야. 이 사실을 너는 만에게 가르쳐주려무나."
"예, 엄마. 엄마는 그 목숨보다 중요한 신앙 때문에 하늘로... 하늘로... 부름받았다고... 만에게... 일러줄게요..." "잘... 말해주었다. 타라, 그 말이 엄마에게 무엇보다 큰 제물이란다."
흐느끼면서 타라가 말했다. 다마코는 타라와 만을 양팔에 안았으나 이미 어둠이 짙어진 바깥 기운을 느끼고 앗 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와,
"그럼 마리야, 즉시 두 아이를 교회로 피신시켜 주십시오." 하고 가요에게 부탁했다.
"예? 저더러요?" "그렇습니다. 아이들의 앞날은 당신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마님! 저는 마님을 모시게 해주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경과를 보고 있던 시녀들이 무릎을 앞으로 내밀며 다마코에게 매달리며, "마님, 저도..." "저에게도 모시게 해주십시오..." "모시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저마다 외쳤다.
"안 됩니다. 당신들의 마음은 고마우나 죽는 것은 안 됩니다. 오랜 세월 당신들에게는... 참으로... 신세를 졌습니다. 이 저택을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저에게 당신들은... 얼마나... 귀하고 귀한 친구였으며 신앙의 자매였던가요. 이제 여기에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인사를 드립니다."
일동은 말이 없었다. 눈물을 참으며 절박하게 다마코를 바라보는 자, 어깨를 떨구며 엎드리는 자, 어느 누구 하나 다마코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이시다 쪽이 들이닥칠 기세이니 자,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아주십시오. 아, 잊을 뻔했군요. 여기에 준비해둔 유품들을 마음을 담아... 드립니다."
한지에 싸둔 향주머니, 작은 비단보자기, 머리개 등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수 나누어주기 시작하자 시녀들은 오열하며, "마님, 저희와... 저희와... 어딘가로..." "한시라도 빨리 피신하십시오. 신분을 숨기시고..." "정말입니다, 어둠을 타서..." "이웃 우키타 님 댁으로라도 숨으십시오. 우키타 님은 친척이시니 목숨은 지켜주실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마코는 꼿꼿하게, "안 됩니다. 도망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구로다 나가마사 님의 부인도, 가토 기요마사 님의 부인도 진작 무사히 도망치셨는데... 어째서 마님 혼자서만..."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당신들도 신자이니 사정을 잘 알아야겠지요. 도노께서 출진하실 때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도노에게는 도노의 입장이 있어 하신 이 무거운 한마디를 저는 아내로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아내 된 자는 남편에게 그리스도처럼 섬기라 성경 말씀에도 있나이다." "아, 알겠나이다!" 시모가 외치듯 말하며, "그렇다면 마님, 더더욱 부디 저희도 모시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모시겠나이다, 저도!" "가요도 함께 천국에 가고 싶사옵니다..." 가요도 절박하게 두 손을 짚었다.
"이것은 마리야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군요. 내가 지금 여기서 죽는 것은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른 죽음이 아닙니까? 당신들은 어떤 신앙 때문에 함께... 함께 죽자는 것입니까?" "...오직 사모하고 있기때문에..." "마님과 헤어지고 싶지 않나이다."
"그 뜨거운 마음 소홀히 듣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신자입니다. 마리야도, 다른 사람들도 잘 들으세요. '모든 신앙에 따르지 않는 것은 죄니라' 하는 가르침을 당신들도 잘 알고 있을 터. 일시적인 감정에 맡겨 하느님께 맡겨진 귀한 목숨을 마음대로 제 손으로 줄여서는 안 됩니다." "예, 예..." "하느님께 맡겨진 목숨은 하느님의 것,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일동은 그저 오열할 뿐이었다.
그때 복도를 달리는 소리가 나더니 코가사와라 쇼사이가 나타났다. "아뢰옵니다! 방금 오사카성 다마츠쿠리 문이 열리고 300명 가까운 병사가 빠져 나갔다 하옵니다!" 라고 전하고 갔다. 일동이 앗 하고 서로 얼굴을 맞대었다. 다마코는 꼿꼿하게, "자, 이것으로 급히 작별하겠습니다. 평생 신앙을 지켜가시기를."
아무도 떠나려 하는 자가 없었다. 그저 바닥에 엎드려 목놓아 울 뿐이었다. "마, 마님!" 한 사람이 앞뒤 가리지 않고 다마코에게 매달렸다. 그때까지 이상한 방 안 분위기에 멍하니 서 있던 어린 만이 따라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마리야, 자, 타라와 만을 부탁합니다. 당신에게는 시집오던 날부터 오늘까지... 함께... 고생을... 특히 그 미토노에서의 2년 여 동안 보여준 정성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과는 언니, 동생으로 남들에게 여겨질 만큼... 신앙으로 인도받고... 세례를 당신 손으로..."
역시 말이 끊어지는 다마코에게, "마님!"하며 가요는 울며 엎드렸다. "가요, 타라와 만을 나를 대신해 인도해 주지 않겠습니까? 아, 저 소리는... 자, 서둘러..." 점차 수많은 함성이 가까워졌다. 가요도 이제 끝이라 생각하고 타라와 만의 손을 잡으며, "그럼 작별하겠나이다." 하고 일어섰다. 다마코는 다시 만과 타라를 안아 끌어당기며, "행복하여라..." 눈물을 뚝뚝 흘렸다.
타라는 이제 얼굴도 들지 못했다. 가요는 "자, 함께 작별을" 하며 시녀들을 독려하여 일으켰다. 시녀들은 울며 울며 한 사람 일어서고, 두 사람 떠나고 남은 것은 시모와 카가 두 사람뿐이었다. "당신들도 서둘러..." "아닙니다, 마님, 적어도... 적어도..." 시모가 몸을 비틀듯 엎드렸다.
"그렇다면 당신들 두 사람은 나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도노와 대전(유사이)께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각각 전달해 주십시오." 다마코는 눈물을 훔치고 깃을 바르게 한 뒤 문함에서 시아버지 유사이(幽斎), 남편 다다오키(忠興)와 아들 다다타카(忠隆), 다다토시(忠利), 오키아키(興秋)에게 남기는 유서를 건넸다. 서쪽 문이 한층 시끄러워졌다. 다시 코가사와라 쇼사이(笠原少斎)가 장도(長刀)를 안고 달려왔다.
"마님, 드디어 이시다세가 대거 몰려왔나이다. 가엾은 일이나... 각오를!" 평복(平伏)하는 쇼사이에게 다마코는 조용히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의 당신의 충의 감사히 생각합니다. 그럼 마음 조용히 당신 손에 맡깁니다." 십자가를 그리고 눈을 감는 다마코의 신성함에 곁에 있던 시모는 숨을 죽였다.
다마코의 가슴속에 사카모토성, 비와호의 물, 시집오던 날의 노을, 미토노의 찬바람, 아버지의 죽음, 일족의 죽음, 남편 다다오키의 얼굴, 제 자식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아케치 일족은 아버지를 비롯해 어머니도 언니도 남동생도 모두 비참하게 죽었다.)'하고 다마코는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도 지금 아이들을 두고 38세의 마지막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죽음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영광스러운 죽음이 되었다.)' 깊은 감사와 환희로 빛나는 다마코의 얼굴을 등불이 비추고 있었다. 다마코는 맑은 눈을 조용히 뜨며, "그럼 하느님 곁으로!" 긴 늘어뜨린 머리를 돌돌 말아 하얀 목을 내밀었다. 순간 얼굴이 확하고 홍조를 띠었다.
문턱 근처까지 무릅걸음으로 기어온 쇼사이는 방 밖에서, "송구하옵나이다 마님, 가슴을!"
하고 엎드렸다. 다마코는 "틀렸습니까?" 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힐끗 시모에게 눈길을 주며 미소마저 띠고, "그럼." 하며 소복의 가슴께를 홱 열었다.
"송구하옵나이다 마님, 조금만 더 이쪽으로 다가와 주십시오. 방에 들어가는 것은 불경하오니..." "알겠습니다." 다마코는 문턱 가장자리까지 나아가 눈을 감고, "주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며, 주의 나라가 임하시며,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며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쇼사이는 물러서서 장도를 겨누고, "마님, 그렇다면 각오를. 즉시 저희도 뒤를 따르겠나이다. 하지만 마님 곁에서 끝마치는 것은 너무나 황송한 일이오니 저희는 현관에서 뒤를 따르겠나이다." "자살은 허락지 않습니다. 하느님 곁으로 가는 것은 나 한 사람으로 족하도록 하십시오. 그럼 어서 쇼사이 님, 부탁합니다."
"마님, 용서하십시오!" 번뜩인다 싶던 쇼사이의 장도가 순간 다마코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갔다. 진붉은 피가 솨 하고 튀고 다마코의 상체가 갸우뚱 앞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그대로 다마코는 바닥에 쓰러졌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 은총의 불꽃(恩寵の炎) 26-4
희미하게 다마코의 입이 움직였다. 다마코의 눈에 천사 무리에 둘러싸여 자신 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님!" 시모와 카가가 나도 모르게 달려가려 했다. "안 된다! 둘 다 즉시 떠나라!" 엄연하게 쇼사이가 말하고는 미리 준비해둔 하얀 비단이불을 다마코에게 덮어주고 손을 모았다.
그리고 일어서자마자 방에 화약을 뿌리고 문과 병풍을 다마코 곁에 쌓아 올린 뒤 불을 지르고는 서쪽 문으로 달려 나갔다. 시모와 카가는 정신을 차리고 염화 속을 후문으로 빠져나갔다. 서쪽 문을 지키던 조총의 명수 이나토미는 300 병사에 겁을 먹고 이미 도망쳐 버렸다. 병사들을 상대로 응대하며 시간을 벌고 있던 이와미가 달려온 쇼사이의 장도를 붉게 타오르는 횃불에 높이 들고 외쳤다.
"야, 야! 모두들 똑똑히 들어라! 이 장도 끝에는 우리 도노의 마님 다마코 님의 새빨간 피가 떨어지고 있다!" 이어 쇼사이도, "장엄한 죽음을 너희 겁쟁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과연 용맹하기로 이름 높은 호소카와 다다오키 님의 마님, 죽을지언정 포로가 되는 욕됨을 받지 않으셨다!"
다시 이와미가 백발을 흔들며 목청껏 외쳐 말했다. "남은 우리도 이 문 앞에서 장하게 마님의 뒤를 따르노라! 똑똑히 가까이 와서 그 마지막을 보아라!" 말을 마치자마자 쇼사이, 이와미, 이와미의 조카 로쿠자에몬(六左衛門)과 그 아들, 그리고 카나츠 수케지로(金津助二郎)와 다른 서너 명이 장하게 할복하여 숨졌다.
이들이 호소카와 저택, 다다오키가 비운 자리를 끝까지 지킨 전원이었다. 일동이 할복함과 동시에 굉음을 내며 호소카와 저택은 화염에 싸였다. 그날 밤 호소카와 저택을 태우는 불길은 오사카의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다마코, 세례명 가라샤, 향년 38세. 게이초 5년(1600년) 7월 17일 밤의 일이었다.
이 비보는 즉시 다나베성의 유사이에게, 그리고 전장의 다다오키에게 전해졌다. 다마코의 죽음을 들은 다다오키는 순간 망연자실한 태도였으나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다다오키의 동생 오키모토 역시 다다오키 못지않게 울부짖으며 다마코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시다 미츠나리는 죽음으로써 인질을 거부한 다마코의 장렬한 죽음에 놀라 다른 무장의 아내를 인질로 잡는 것을 싹 멈추었다. 이 다마코의 죽음이 전국을 감동시키고 미츠나리에 대한 반감을 높였기 때문이다. 다마코의 죽음은 도쿠가와 쪽의 사기를 크게 고취시키고 결속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천하를 가른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合戦)에서 도쿠가와 쪽을 승리로 이끈 한 원인에 실로 이 다마코의 죽음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에야스 역시 다마코의 죽음에 깊이 감동하여 스스로 치사를 내리고 훗날 유사이, 다다오키를 중하게 등용하게 되었다. 다마코가 승천한 다음 날, 교회의 오르간티노 신부를 비롯해 기요하라 마리야, 시녀들이 탄 자리에 다마코 부인의 유골을 찾아 나섰다.
아직 연기가 매케하게 피어오르는 뜨거운 탄 자리에 서 있던 마리야와 시녀들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한 점도 남김없이 타버린 집 주위에는 타버린 담장과 나무들뿐이었다. 타다 남은 나무에 매미가 띄엄띄엄 우는 것조차 다마코를 애석해하는 듯 느껴져 시녀들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 근처라 생각되는 뜨거운 재 속에 다마코의 하얀 뼈가 있었다. "이렇게 되시다니..." 울부짖는 한 사람에게 오르간티노 신부가 "부인은 하느님 곁에 계십니다. 평안히..."라고 말했다. 묵묵히 뼈단지에 주워 담기를 마치고 돌아가려 할 때 시녀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어머, 여기에도... 뼈가..." 5미터쯤 떨어진 뒤쪽 편에 뼈가 있었다.
다마코의 뼈와 달리 굵은 뼈였다. 뼈 곁에 약간 타다 남은 피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피리를 발견한 마리야는 앗 하고 가슴이 철렁했으나 하츠노스케의 이름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하츠노스케는 수사였을 터이다. 끝까지 다마코를 지켜보라고 미츠히데에게 당부받았다 한들 신자에게 순사(殉死)는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누군가 가신 분이겠지요." 이 뼈도 시녀들은 주워 담았다. 다마코의 유골은 순사한 카와키타 이와미(河喜多石見)랑, 코가사와라 쇼사이(小笠原少斎), 하츠노스케(初之助) 등과 함께 오사카 숭전사(崇禪寺) 경내에 정성껏 매장되었다. 다다오키는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호소카와 저택의 탄 자리에 하룻밤 다마코를 그리워하며 서서 몇 번이고 격렬하게 통곡했다.
그리고 오르간티노 신부와 상의하여 그해 10월 성대한 기독교식 장례식을 치렀다. 당일 간사이에 있는 신부, 수사는 물론이고 타카야마 우콘, 구로다 부자 등 키리시탄 다이묘 및 그 부인들, 다마코의 죽음에 감동한 수많은 신자 등 실로 1,000명이 넘는 참석자가 성당에 가득 찼다. 이때 일본인 교사(教士-선교사)가 일어나 회중을 향해 설교했다.
"참석자 여러분과 함께 지금 여기에 호소카와 에츄노카미 다다오키 님의 부인 고(故) 다마코 부인을 그리워하며 한때를 보내고자 합니다. 다마코 부인의 죽음이 천하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했음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다마코 부인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충실히 천지의 주이신 하느님을 따라 살아온 길 위의, 하느님을 향한 충실한 죽음이었습니다.
평소의 삶이 그 마지막에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다마코 부인은 세례명을 가라샤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은총, 은혜라는 뜻입니다. 다마코 부인은 이 이름을 남달리 기뻐하셨으며, 평소 모든 것이 은혜라 말씀하셨다 들었습니다. 자, 이번에 남편이신 에츄노카미 님께서 출진하실 때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 발자국도 저택을 나가서는 안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다이묘의 부인들 중에는 일찍이 그 저택을 빠져나가신 분도 있다 들었습니다만, 다마코 부인은 이 남편의 말씀을 죽음으로써 지키신 것입니다. 본래 그 말씀이 어떤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지 총명하신 부인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숨으로 지켜낸 것은 실로 부인의 신앙에 의해서였습니다."
여기까지 교사가 말했을 때 다다오키는 남의 눈도 잊은 채, "으윽..." 하고 신음인지 통곡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다다오키는 자신에게 시집오고 4년 뒤 그 부모와 언니, 남동생을 한꺼번에 잃은 다마코의 쓸쓸함을 생각했다. 미토노 깊은 곳으로 다마코를 보내던 밤을 생각했다. 그 1년 반 동안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자신의 비정함과 다마코의 쓸쓸함을 생각했다.
겨우 미토노에서 돌아온 다마코에게 측실 오료를 인사시키던 자신의 무정함이 후회스러웠다. 특히 키리시탄이 된 다마코를 박해하여 시녀들의 코와 귀를 베었던 일이 부끄러웠다. 모든 것을 참아내고 오히려 자신에게 뜨거운 사랑을 쏟아주었던 다마코를 생각했다. 이제 그 맑은 눈빛도 풍성한 가슴도 이 세상에는 없다. '(죽이지 않고 살릴 길은 없었을까.)' 다다오키는 그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렸다.
'(결국은 내가 오타마를 죽인 것이다.)'다른 다이묘들은 단 한 사람도 아내를 잃지 않았다.'(미토노에서 돌아와 십수 년, 어째서 한 발자국도 밖에 내보내 주지 않았던가.)' 자신의 무정함에 견딜 수가 없었다. '(오타마, 그대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다다오키는 다마코가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것이다. 다마코를 보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남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인질이 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 한 원인에 그 사실도 있었다. 비밀리에 피신시킨다 해도 어딘가에서 이시다 쪽에게 잡히지 않는다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잡혀서 다른 남자의 먹잇감이 되느니 차라리 죽기를 바랐던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슬픔 속에서 그러나 다다오키는 한편으로 한 가닥 안도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드디어 오타마는 나만의 것이 되었다.)' 히데요시조차 단도로 물리쳤던 다마코를 생각하면 다다오키는 오열하면서도 깊은 안도감이 있었다.
결혼 이래 광기 어린 다마코에 대한 집착으로 종지부를 찍었던 다다오키였다. 사랑하는 다마코를 잃고서야 비로소 평안이 찾아왔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다마코가 아름답고 총명했기 때문이라고 다다오키는 생각하며 다시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부인은 죽기 직전까지 하느님을 믿을 것을 권하고 계셨습니다. 즉 부인이 남겨진 분들께 남긴 바람은 하느님을 믿고 진정한 평안, 진정한 희망,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교사의 이야기가 끝났다. 감동에 흐느끼는 소리가 예배당에 가득 찼다. 아름답게 갠 가을날 오후였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27
● 마치며
이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은 1973년 1월부터 1975년 5월까지 2년 5개월 동안 『주부의 벗(主婦の友)』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나에게는 첫 역사소설이다. 처음에는 혼자서 취재나 자료 조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분들이 자료를 보내주셨고, 편집자 후지타 케이지 씨, 와타나베 세츠 씨, 사진작가 타케이 타케히코 씨의 도움 덕분에 자료도 갖추고 취재도 할 수 있었다. 또한, 가라샤와 인연이 깊은 사찰과 교회, 향토사학자와 학자분들의 큰 협조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연재 내내 매월 나카무라 테이이 선생님의 훌륭한 삽화에 격려받고 끌어 올려진 것 역시 감사한 일이었다.
또한 단행본으로 간행될 때 호리 후미코 선생님의 정감 어린 장정을 받게 된 것도 마음 깊이 기쁘게 생각한다. 집필을 마친 지금, 나는 새삼 가라샤 부인의 죽음과 삶을 참으로 무겁게 느끼고 있다. 아니, 가라샤 부인뿐만 아니라 누구의 삶과 죽음이든 그것은 누군가가 말했듯 “이 지구보다 무거운”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형처럼 사는 것도 아니고, 개나 고양이처럼 사는 것도 아닌, 진정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케이센 여학원의 창립자인 카와이 미치 선생님은 사람이 혼자 식사를 할 때도 결코 츠쿠다니(조림 반찬)나 장아찌만으로 서둘러 먹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셨다고 한다. 남편이나 가족이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성을 다해 요리를 만들고 식탁에 정갈하게 차려놓고 식사를 하라고 가르치셨다고 한다.
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이다. 인간다움은 다양한 곳에서부터 무너져 내린다. 혼자 사는 생활 속에서 나태하게 살아가면 이내 인간성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혼자 있더라도 정돈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시대처럼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지고 권리도 대부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조금만 방심하면 인간다움은 무너지고 만다. 하물며 400년 전,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자 정략의 도구였던 시대에 여성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상상된다.그러한 시대에 영성에 눈을 뜨고 신앙 속에 살았던 가라샤의 삶 방식은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웃집으로 도망친 치요는 타마코(가라샤)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소문으로 타다오키의 노여움을 사 분가(이혼)당했다. 남편인 타다타카는 "한 발 먼저 가라"는 타마코의 말을 들은 치요가 뒤이어 타마코도 올 줄 알고 도망친 것이라며 감싸 안았으나, 이 역시 타다오키의 격노를 샀다. 그리하여 타다타카는 적장자 자리에서 쫓겨나기까지(폐적) 했다. 또한 타다오키의 동생 오키모토는 타마코를 짝사랑했다는 이유로 양자로 삼았던 오키아키를 되돌려보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장례식 때 타다오키는 교회에 금 200량을 바치고 그날 밤 성대한 추모 연회를 열기도 했다. 나아가 이 기독교식 장례를 영지인 코쿠라에서도 거행했다. 타다오키의 타고난 격렬한 성품은 타마코가 죽은 후에도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타마코에 대한 애통함과 애석함, 혹은 자책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에게는 느껴진다.
타다오키는 타마코 사후 45년을 더 살아 83세에 세상을 떠났다. 3대의 쇼군을 섬겼으며, 쇼군을 호통칠 정도의 중신이 되었다. 이처럼 호소카와 가문을 부동의 지위에 올린 것은 물론 타다오키의 기량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타마코의 죽음이 크게 기여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타다오키는 83세로 죽는 그날까지 지난날의 타마코의 모습과 그 최후를 떠올렸을 것이다. 타마코가 죽은 후 그는 다시 아내를 맞이하지 않았다.
역적 미츠히데의 딸이라는 수치를 멋지게 씻어내고 훌륭한 최후를 맞이한 타마코를 생각하면, 나는 문득 호손의 『주홍글씨』 속 여주인공이 떠오른다. 죄지은 여자라는 증표인 주홍글씨를 평생 가슴에 달아야 했던 그 여주인공은 신앙과 선행을 통해 그 주홍글씨를 죄의 표식에서 존경의 표식으로 바꿔놓았다. 되돌아보며 나의 빈곤한 신앙을 생각하며 펜을 놓는다.
■ 참고문헌
• 『일본의 역사』 전국대명(戰國大名). 스기야마 히로시. 중앙공론사
• 『일본의 역사』 천하일통. 하야시야 타츠사부로. 중앙공론사
• 『일본의 역사』 에도개부(江戶開府). 츠지 타츠야. 중앙공론사
• 『일본의 역사』 연표지도. 코다마幸男 편. 중앙공론사
• 호소카와 유사이. 호소카와 모리사다. 구룡당
• 아케치 미츠히데. 타카야나기 미츠토시. 요시카와홍문관
• 일본무장열전. 쿠와타 타다치카. 아키타서점
• 타카야마 우콘. 에비사와 아리미치. 요시카와홍문관
• 가라샤 호소카와 타마코 부인. 미야지마 신이치. 중앙출판사
• 탄고의 미야즈. 이와사키 히데세이 편.
• 호소카와 타다오키 부인. 오오이 소고. 타케미야출판부
• 선불교 (이나바 우라 편 『선과 학생』에서)
• 붉은 십자가. 나가이 미치코. 문예춘추
• 호소카와 가라샤. 코야마 칸지. 신풍사
• 호소카와 유사이. 카와다 준. 갑문사
•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H. 호이베르스. 카톨릭. 중앙서원
•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미츠에 이와오. 도강서원
• 호소카와가 가계도. 대덕사 고동원 소장
• 공교요리(가톨릭 교리서)
• 『일본고전전서』 키리시탄 문학집. 아사히신문
• 『역사독본』 1966년 11월 특별호
• 『역사독본』 1972년 12월호
• 『역사독본』 1973년 2월호
• 신명장언행록. 마츠모토 세이초 외. 카와데쇼보신샤
• 일본식생활사. 와타나베 미노루. 요시카와홍문관
• 일본여성사. 야마모토 후지에·와카모리 타로.集英社
• 『토야마 마사노리 유고집』 일본사 속의 불교와 경교. 동대출판회
• 일본성곽사전. 오오루이 노보루. 아키타서점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 (하권) 28
● 해설 - 미즈타니 아키오 (1986)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은 1973년 1월호부터 1975년 5월호까지 잡지 『주부의 벗』에 연재되었다. 29회, 원고지 900매에 달하는 장편이다. 『빙점』으로부터 대략 10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이다. 이 10년 동안 미우라 아야코 씨는 『양의 언덕』, 『길은 여기에』, 『속 빙점』을 비롯해 15편의 장편소설을 쓴다. 그 외에 2권의 중단편 소설집과 에세이집을 출간하는데, 모두 초기 미우라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며 전설적인 『빙점』 열풍을 뛰어넘는 독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마치 분류처럼 뿜어져 나온 10년이었다. 이 뒤를 이어 『천북원야』로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가 이어진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은 바로 이 10년의 중심 마디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제나 구상, 작품의 형식 면에서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추구해 온 저자가 여기서 또다시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려 하고 있었다. 저자는 「맺으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로서는 첫 역사소설이다.”
아마 저자에게는 10년간의 집약이라기보다는 『천북원야(天北原野)』로 시작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의식이 더 강했을 것이다. 상세히 자료를 조사한다.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까지의 작품에서도 기본적으로 시도되어 온 것이지만,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에서 명확히 확립된다. 이후 이 태도는 미우라 문학에 일관되게 흐르는 특징이 된다.
다만 미우라 아야코 씨의 ‘조사함(調べる)’에는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뇌류지대』를 취재할 때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그녀의 ‘조사함(調べる)’에는 그러한 대상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고뇌로 가득 찬 생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녀의 가혹한 투병 생활에 대해서는 여기서 새삼 되풀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0년에 걸친 중증 척추 카리에스를 앓으며 다가오는 죽음과 대면한 채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스스로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으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견디기 힘든 적막감을 유일한 등불 삼아 영혼의 깊은 어둠 속으로 스스로를 침전시키는 것뿐이었다. 다만 겨우 손을 움직일 수 있었기에 눕혀진 채 창밖의 풍경을 손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즉, 깊은 정신의 정적 속으로 생각을 침전시키는 것과, 그리움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외계를 향해 순진한 호기심의 날개를 펼치는 것. 이 두 가지모순(矛盾)된 마음의, 비애로 가득 찬 균형 위에 미우라 아야코 씨의 문학은 구축된다. 찢겨 나가면서도 영혼을 날아오르게 한다. 독자가 자주 작품 속 생생한 풍경 속에서 문득 침묵하는 영혼의 고백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이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을 논함에 있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시오카리 고개』이다. 여러 의미에서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의 선구가 되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나가노 노부오, 그리고 그 모델이 된 나가노 마사오는 자신의 생애를 말해주는 전기적 자료(예컨대 일기, 서간 등) 일체를 이 지상에 남기는 것을 거부하고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다.
마찬가지로 메이지 시대 최초로 『소공자』, 『소공녀』 등을 번역한 와카마츠 시즈코 역시 “크리스도의 천한 하인”이라는 말 외에는 일체 무용하다고 유언을 남겼는데, 나가노 노부오는 더욱 절통했다. 승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폭주하는 열차에 던져 바쳤다. 그의 생애에 남아있는 확실한 사실은 그것뿐이었다. 해석은 가능하다. 그러나 미우라 아야코 씨는 해석이 아니라 그의 존재 그 자체를 추적했다.
그리고 지금, 이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의 여주인공 역시 불타오르는 저택 속에서 그 생애를 마감한다. 자료나 단서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라샤이지만, 그 생애의 핵심은 『시오카리 고개』의 주인공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그것을 추적한다. 사람은 자신의 자기실현을 위해 움직인다. 더욱 알기 쉽게 말하자면 이해타산(이익과 손해)으로 움직인다. 프로이트의 ‘쾌락·불쾌 원칙’을 파고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의 생애의 핵심은 이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 사학자의 합리적 유효성의 원리로 보면 이상한 생애라고 여겨질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을 “미친 자와 같다”고 표현한다. 이해타산에 따르지 않는,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열정이 자주 역사에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언제나 그것을 추구한다.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은 이 시점에서 “모든 것을 공리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에 존귀한 것은 없다”고 말했던 모리 오가이 역사소설의 정통한 계승자가 되어 있다. 미우라 아야코 씨는 말하자면 아버지 아케치 미츠히데의 최후도, 가라샤의 최후도 똑같이 인간의 이 부조리한 열정이 빚어낸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열정에 이끌려 ‘역사’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더 위대한 환영을 본 자의 모습을 그린다.
작품은 먼저 가라샤의 아버지 미츠히데가 당대 축성 및 포술의 일인자이자 차도, 와카, 하이카이(俳諧)부터 화도(꽃꽂이)에까지 능했던 최고급 교양인이라는 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란이 끊이지 않던 시대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 또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을 이 미츠히데의 생애를 통해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미츠히데의 혼인 과정은 그의 인간다운 열정을 말해주기에 적합하다. 가마를 타고 시집가기 직전, 갑자기 천연두를 앓게 된 츠마키 노리히로의 딸 히로코. 미모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노리히로는 아케치가와의 좋은 인연이 깨질 것을 두려워해 추해진 딸 히로코 대신 여동생을 바꿔치기하려 한다. 그러나 사정을 알게 된 미츠히데는 오히려 기꺼이 추녀가 된 히로코를 맞아들인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외모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흔들림 없는 생각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미츠히데는 말한다. “당신은 나의 분신이오.” 그리고 "그대가 병든 것은 곧 내가 병든 것이오. 그대에게 천연두 흉터가 생긴 것은 곧 내 몸에 생긴 것과 다름없소. 결코 부끄러워하지 마시오.” 저자는 직설적으로 ‘사랑’의 빛남을 이처럼 풀어낸다.
사람을 이야기할 때도, 역사를 이야기할 때도 변함이 없다. 근대 이후의 냉소적인 시니컬함에 익숙해진 눈에는 다소 눈부신 광경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견디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한층 더 솔직하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가라샤가 미츠히데 모반의 여파를 맞아 미토노의 깊은 산속에 유배된다. 저자는 여기서도 직설적으로 허무한 허무관을 말한다. 절망한 그녀의 내면에서 H. 호이베르스는 감상적 무상감과는 다른, 일본 최초의 ‘스토아 철학’적 니힐리즘을 지적한다. 미우라 아야코 씨는 이 철저한 허무관을 멋지게 그려낸다. ‘임종의 자리’에 있던 경험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을 것이다. 엄한 정적 속에서 바라보던 적막을, 저자는 가라샤 부인의 미토노의 정적 속에서 발견한다.
미우라 아야코 씨는 투병 생활 속에서 『전도서』를 알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말씀과 만나 억장이 무너졌다. 마찬가지로 미우라 아야코 씨가 그리는 가라샤 부인 역시 미토노 유배의 정적 속에서 신비로운 말씀을 알게 된다. 그녀를 시중들던 카요가 말한다. “...여러 고난이 마님께 큰 은총으로 여겨지실 수 있기를...”
이 고난을 떠나가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 고난을 기뻐하고 감사한다는 기도이다. 미우라 아야코 씨는 그 치열했던 ‘임종의 침상’을 견딜 때도 ‘하느님이여, 병을 낫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신앙 고백을 했을 때 옆에 있던 니시무라 히사조가 “하느님이여, 이 하인을 당신의 일에 쓰이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녀가 마음 깊이 경애하는 니시무라 히사조의 이 기도는 이후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울려 퍼졌다. 후년 암을 앓았던 그녀가 『북국일기』 속에서 “하느님이 주시는 것에 나쁜 것이 있겠는가. 나는 암을 받았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고 정결하게 말한다. 이 놀라운 기도는 그 ‘임종의 침상’에서 올렸던 기도에서 한 줄기로 흘러내려 오는 것이다. 그것이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의 주제가 되어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처음에 부인은 카요의 기도를 듣고 “데우스(하느님)의 신도 부처도 나는 믿지 않는다”며 냉정하게 말한다. 그러나 마음은 깊이 흔들리고 있다. 훗날 그렇게 말했던 그녀가 “주여. 바라건대 순교자의 영관(栄冠)과 행복을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몸을 던지게 된다. 인간의 운명을 열고 역사를 바꾼다. 이 부조리한 드라마가 이처럼 펼쳐진다. 미우라 아야코 씨의 ‘역사소설’은 그것을 전하고자 한다.
이러한 가라샤 부인의 생애는, 천하인이 되어 이 지상의 부귀영화와 화려함을 극에 달했던 타이코 히데요시가 다음과 같이 읊은 유명한 세상을 떠나는 시(辭世の歌)와 선명하게 대치된다. "이슬처럼 떨어져 이슬처럼 사라지는 내 몸이여, 나니화(浪華-오사카)의 일도 꿈속의 또 꿈이로다."
가라샤 부인은 노래한다. "지고 떨어져야 할 때를 알기에 비로소 세상의 꽃도 꽃이요, 사람도 사람이라네." 어떠한 전국시대 무장이나 영웅의 영광보다도 빛나고 풍요롭다. 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 말하는 ‘때를 안다’는 미우라 아야코 씨를 신앙으로 이끈 『전도서』의 계절이다.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다”고 한다. 그것이 이 가라샤 부인의 생애에 겹쳐져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중략)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나니..." 라는 아름다운 말씀이 이어진다. 그 때를 아는 것이 한 송이 꽃조차 영화를 누린 솔로몬보다 아름답듯, 사람 역시 인간다운 것이라고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에게 고하게 하는 것이다.
모리타 소헤이가 염문을 뿌렸던 연애 사건의 상대 히라츠카 라이초를 ‘새로운 여성’으로 그린 『매연』은, 그 라이초를 은밀히 호소카와 가라샤 부인에 비유한 작품일 것이다. 또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암벽처럼 아름다운 미술품 같은 호소카와 가라샤를 『이토죠 오보에가키(糸女覚え書)』에서 썼다. C. S. 루이스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모든 사상과 운동에 공통된 점은 인간다운, 어떤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憧憬-향수)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미우라 아야코 씨가 그린 가라샤는 그저 ‘새로운 여성’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풍부하게 살아낸 인간다운 여성이다. 독자는 그렇기에 화염 속으로 사라진 그녀의 생애를 미술품처럼 감상하고 찬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함 없는 애정의 마음과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문제’를 통절히 생각하며 이 작품을 읽어 마치게 될 것이다.
덧붙여 이 작품의 자료 수집 비화는 같은 저자의 에세이 『첫 역사소설 이런저런 이야기』(작품집 18권 수록)에 자세히 나와 있다.
(1986년 2월, 관서학원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