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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봉(三神峰1,284m)
<삼신봉 전경>
靑鶴洞에서 花開洞天까지
<내 삼신봉에서 내려다 본 청학동과 묵계저수지>
지리산 靑鶴洞(청학동)이다. 자칭 천장지비처(天藏地秘處; 하늘이 땅을 감춰 숨긴 곳)라고 하는 청학동은 도인촌, 삼성궁, 상가지역 이렇게 3개 구역으로 나눈다. 산행에 앞서 시간 관계상 도인촌만을 들러봤다. 내가 30년 전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청학동을 찾았을 때 천왕봉에서 하산한다는 청바지 차림의 어느 등산객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몇 년 전만해도 청학동 사람들은 산행하다가 날이 저물면 등산객들에게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던 곳이었지요. 운 좋으면 산에서 채취한 약재로 담근 약술이나 머루주 같은 술도 실컷 얻어먹었고요.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외부사람이 찾아오면 좋아 했었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어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산에서 채취한 약초와 산나물 그리고 토종벌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청학동 사람들이었다. 길이 생기니 자동차를 소유하고 전기가 들어오니 TV, 컴퓨터를 들여 놓은 지가 이미 오래전이다. 도인촌이라 해서 문명을 외면 할 수 없는 일, 관광지로 변모하다 보니 반달 같은 텃밭들은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 산골이지만 채소마저 멀리 시장에서 사들여 와야 할 지경이다. 젊은이들은 바깥구경 한번 하고나면 돌아오질 않고, 나이든 사람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노인들만 남아 도인촌을 지키고 있었다.
<청학동 도인촌의 풍경>
지리산 청학동(靑鶴洞)은 삼신봉 주변 3개 지역을 두고 “여기다 저기다 하고.”설(說)이 구구한 전설의 이상향 일뿐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 청학동은 천석(泉石)이 빼어난 승경(勝景)으로 신선과 함께 상상의 동물 청학이 깃들어 살만한 인간 세계가 아닌 별유천지(別有天地) 이상향(理想鄕)을 말한다. 고운이 위치를 알리지 않고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지리산과 가야산을 오갔다는 전설에 의하여 생겨난 곳이 바로 지리산 청학동이다. 하여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병자호란(丙子胡亂1636~1637),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1910~1945)등 난리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상향 청학동을 찾아 지리산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지리산에는 옛적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워낙 깊은 산골이라 격리된 생활로 외부 사람이 찾아와 말을 시켜도 말이 어눌하고 머리털은 잡초처럼 무성하고 수염은 길어 가슴을 덮었다. 거기다가 짐승의 털옷을 걸친 것이 세상 사람과 같지 않아 바깥에서 온 사람들은 이곳 사람을 보고 원숭이(猿人)라 불렀다 했다. 사람이야 이 골짝 저 골짝 살았지만 신선이 살고 상상의 동물 청학이 깃들어 산다는 이상향 청학동은 아무도 찾지 못했다. 하여 쌍명재 이인로 (雙明齋 李仁老1152~1220)선생은 청학동을 찾으면서 이런 시를 남겼다.
遊 智異山靑鶴洞 (유지리산청학동)
頭流山熒慕雲底 (두류산형모운저) 지리산은 멀고 깊어 저녁구름 나직한데 萬壑千巖似會稽 (만학천암사회계) 만산 천 바위 마치 회계산과 같네 策杖慾尋靑鶴洞 (책장욕심청학동) 지팡이 짚고 청학동 찾으려하는데 隔林空靑白猿啼 (격림공천백원제) 건너편 숲속에는 흰 원숭이 소리 들리네 樓臺標芼三山遠 (누대표모삼산원) 누대는 아득한데 삼신산은 멀기만 하고 苔蘇依稀四字題 (태소의희사자제) 이끼 낀 옛글 네 글자 아직도 있네 始問仙源何處是 (시문선원하처시) 비로소 묻노니 무릉도원이 어디인가? 落花流水使人迷 (낙화유수사인미) 흐르는 물 지는 꽃이 사람을 헤매게 하네!
<청학동 도인촌 천제궁>
지금의 하동 묵계리 청학동, 묵계(黙溪)라는 지명은 전국에 여러 곳이 있는데 공통점은 깊은 산골짝이다. 외부의 세상소식을 듣지 않아 다툴 일 없으니 인간의 침묵이 흐르는 골짝이다. 묵계계곡의 최상류 삼신봉 남쪽기슭 해발 800m 분지에 자리 잡은 청학동은 8,15 광복직후 전북 부안 변산에서 “유불선갱정유도회(儒佛仙更定儒道會)”, 일명 “일심교(一心敎)” 라는 종교 이름을 가진 일단의 무리들이 이곳에 들어와 20여 가구 45인이 입산수도 하면서 마을을 이루어 속칭 청학동 도인촌이라 불렀다. 처음 문명과 담을 쌓고 화전을 일구며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토종벌을 치며 약초 채취로 생계를 꾸려왔으나 30년 전부터 외부에 알려지면서 관광지화 되어 도시인들이 꾸역꾸역 찾아들어 도시인의 생활과 다를 바 없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청학동 도인촌의 천제궁과 청학서당 전경>
청학동 사람들은 스스로 이곳을 “靑丘甲地 (청구갑지) 푸른 언덕에 최고의 땅이요. 仙區靈符 (선구영부) 신선이 사는 지역으로 신령한 길지”라 했다. 그래서 仙區靈符天下勝地靑鶴洞 (선구영부천하승지청학동)이라 자처한다. “海洩大江流 (해설대강류) 섬진강은 남해에 흘러들고, 靑鶴何處在 (청학하처재) 청학은 어디에 있을까? 白衣大聖地(백의대성지) 백의민족의 위대한 성지, 山高萬水山 (산고방수산) 지리산은 높이 솟았고 섬진강은 유유하도다!” 이렇게 청학동을 찬미하는 여러 수식어가 동원되기도 한다.
청학동 사람들은 자칭 천장지비처(天藏地秘處; 하늘이 땅을 감춰 숨긴 곳)라 하고, 여기에 살면서도 청학하처재 (靑鶴何處在; 청학은 그 어디에 있을까?)라 한다. 옛 사람들은 지리산 청학동을 찾다가 못 찾은 이가 한둘이 아니다. 사실 하동읍에서 이곳 청학동까지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하루 종일 걸어도 닿을 수 없는 심산유곡(深山幽谷) 깊고 깊은 산골짝이다. 이제 여러 가지 문헌들을 훑어보면 여기가 바로 청학동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기대승(奇大升1527~1572)선생은 청학동에 들어가서 고운 최치원을 찾아 이런 시를 남겼다.
孤雲千載人 (고운천재인) 고운은 천년전 사람 鍊形已騎鶴 (연형이기학) 수련을 쌓아 학을 타고 다녔지 雙溪空舊蹟 (쌍계공구적) 쌍계에는 옛 자취만 허전하고 白雲迷洞壑 (백운미동학) 흰 구름만 골짜기에 아득하여라!
<청학동 등산로 입구의 표정, 2006년6월2일 산행자료>
등산로입구에서 도인촌까지 왕복1km에 30분이 훌쩍 지나 09시40분 다시 등산로 입구다. 여기서 삼신봉 2,5km 50분, 세석대피소10km 4시간30분, 쌍계사12km 6시간 거리다. 조금은 이른 시각이라 혼자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나더러 “산에 혼자가면 심심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나는 선문답 같은 말로 “산에 가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형제요, 보이는 만상이 다 나의 벗일세!”라고 답 한다. 세상 사람들은 잘못된 일만 터지면 내 탓이라고 하는 말은 없고 모두가 네 탓이라고 하는 말에 귀를 막고 있다가 오늘에야 귀를 활짝 얼어본다. 이 싱그러운 5월의 산 바람소리, 계곡물소리, 산새소리, 들리는 것은 모두가 자연의 소리다. 삼신봉을 향해 갓걸이재로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시인이 되어 이렇게 서툰 시를 지어 읊었다.
삼신산행
산에 간다했더니 사람들은 산짐승 조심하라 일렀네 삼신산 깊고 깊은 산길은 인적마저 드물고 우거진 숲속은 한낮에도 어둑어둑 하기만 한데 온갖 새들은 낮선 사람 만났다고 놀라 달아났지만 새들의 울음소리는 인간들의 울음과는 사뭇 다르네 필시, 못된 사람 만났다고 울어대는 건 아니겠지?
<삼신봉 전경>
삼신봉(三神峰1284m) 정상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위해 파견대를 보냈던 해동(海東)에 봉래(蓬萊;금강산), 방장 (方丈;지리산), 영주 (瀛洲;한라산)의 3개의 신령한 산을 뜻하는 3산을 총칭해서 삼신산이라 칭했다. 삼신산은 지리산의 별칭임과 동시에 삼신봉을 삼신산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이 지역사람들은 아직도 삼신봉을 삼신산이라 부르지만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국립지리원에서는 지리산에 딸린 하위 계념의 산봉으로 공식명칭을 삼신봉이라 부른다. 삼신봉(三神峰1284m)을 중심으로 좌우로 내 삼신봉(內三神峰1,334.7m)과 외 삼신봉(外三神峰1,280m)이 청학동을 감싸고 있다.
<삼신봉 정상의 제단>
<삼신봉 정상 제단풍경>
삼신봉은 지리산에서 토속신앙이 가장 성행했던 곳이고, 옛 사람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청학동이 바로 삼신산 주변일대이다. 삼신봉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지리산을 가장 가까이서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지리산 주능선이 병풍역할을 하고 삼신봉은 제단 역할을 하여 수년전까지만 해도 민간신앙의 기도처로서 제단에 켜 놓은 촛불이 바람에 넘어져 촛불로 인한 산불이 자주 발생하기도 했다. 내 외 삼신봉이 분기하는 삼신봉에서 지리 남부능선을 타고 북으로 진행하면 백두대간 영신봉(靈神峰1,651,9m) 세석평전에서 지리산 주능선을 타고 천왕봉이나 노고단으로 갈수가 있고, 서쪽에 있는 내 삼신봉 능선을 타면 악양면 평사리 형제봉으로 갈수가 있다. 또 불일폭포를 거처 화개동천 쌍계사로 내려 갈수도 있고, 동쪽에 있는 외 삼신봉 능선을 타면 낙남정맥을 따라 무학산을 거쳐 김해 신어산까지 갈수가 있다.
<삼신봉에서 바라본 외 삼신봉>
삼신봉 정상에서 서서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장엄하게 뻗은 25,5km, 백두대간 지리산 주능선(평균 해발고도 1,500m)을 조망해본다. 민족의 아픔이 골골이 배어있는 지리산, 오늘은 짙은 황사로 시계가 흐리지만 만화방창 봄꽃들의 눈부심은 아닐지라도 녹음이 짙어지는 5월의 산하다. 오랜만에 지리산을 찾아보게 되니 이 어찌 감회가 없을 소냐! 그렇다. 한때 내리 8일 동안을 매일같이 힘든 줄도 모르고 오르내리기도 했던 지리산이 아니더냐! 학을 탄 신선을 찾아 우거진 원시림을 뚫고 삼신봉 일대를 누비고 다녔던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1431~1491)선생은 깊고 깊은 산골임을 이렇게 노래했다.
靑鶴洞
靑鶴仙人何處棲(청학선인하처서) : 청학 탄 신선은 어느 곳에서 사는고? 獨騎靑鶴恣東西(독가청헉자동서) : 홀로 청학을 타고 동서로 마음껏 다니겠지. 白雲滿洞松杉合(백운만동송삼합) : 흰 구름 골에 가득하고 소나무 삼나무가 모여 있으니 多少遊人到自迷(다소유인도자미) : 몇 사람의 유산객만 들어와 저절로 길을 헤맨다네.
<삼신봉에서 바라본 내 삼신봉>
<내 삼신봉정상 표지석 뒤로 황사가 드리운 천왕봉>
내 삼신봉 (內 三神峰 1,334,7m)은 3개의 삼신봉 중에서 가장 높아 특이하게도 頂(정)자가 붙은 삼신산정(三神山頂)이라고 하는 최근에 세운 내 삼신봉 정상 표지석이 있다.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불일폭포를 거쳐 쌍계사로 내려 갈수가 있고, 능선 끝까지 가면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는 악양면 평사리 뒷산 성제봉(형제봉)을 거쳐 섬진강으로 내려 설 수가 있다. 여기서 신록이 짙어지는 오월의 지리산을 가까이서 바라보니 더욱 장엄하다.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1431~1491)선생의 시가 생각난다.
絶頂有感 (절정유감)
遂忘再陟勞(수망재척노) : 드디어 다시 오르는 수고를 잊고서 絶頂窺鴻濛(절정규홍몸) : 정상에서 천지자연의 광대함을 엿보고 浩浩俯積蘇(호호부적소) : 넓고 넓은 우거진 숲을 굽어보니 如脫天地籠(여탈천지롱) : 천지의 새장을 벗어난 듯하구나.
<옛 자물통의 모양을 닮아 이름 붙여진 쇠 통 바위>
내 삼신봉을 내려와 내 삼신봉의 명물 쇠 통 바위봉(1,264m이다. 암봉으로 일명 통천문이라 불리는 석문이 있는데 암봉의 외형이 마치 쇠 자물통처럼 생겨 보여 얻어진 이름이다. 인간세상과 이상향으로 드나드는 통문 역할을 한다. 이곳은 추락사고가 잦아 출입금지 구역이다. 내삼신봉에서 함께 오던 공원 직원의 입회하에 함께 걷던 몇 사람과 잠깐 들어가 봤다. 쇠통바위를 지나 독 바위 부근을 지날 무렵 앞서가던 사람이 돌을 굴리는 바람에 이를 피하려다 발을 잘못 디뎌 발목을 꺾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불편을 느낄 정도라 속도를 낼 수 없다. 상불재 갈림길에서 같은 방향 불일폭포 2,5km, 쌍계사4,9km이다. 너덜 길을 내려와 숲이 좋은 곳에 이르니 계곡물 소리가 크게 들리고 인기척이 들리니 불일폭포가 멀지 않았다. 불일폭포 삼거리다. 여기서 불일폭포까지 왕복0,6km 전 구간 계단길이다. 삔 발목이 욱시근 거리는데 그래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날 칠 수는 없지 않는가?
<지리10경의 하나로 60m의 낙차를 자랑하는 불일폭포>
불일폭포 (佛日瀑布)다. 요즘 같은 가뭄에도 떨어지는 폭포수는 계곡을 진동했다. 수차례 와서 봤지만 아직 무지개는 못 봤다.좌우 청학봉(靑鶴峰)과 백학봉(白鶴峰)사이로 낙차 60m의 물줄기가 흘러내려 장관을 보여주는 지리10경중에 하나다. 보조국사지눌(知訥 1158~1210)이 폭포근처에서 수도하다가 입적했는데 고려 희종(熙宗)은 지눌에게 불일 보조라는 시호를 내려 이후 불일폭포라 칭하고 그가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한다. 불일폭포주변에는 환학대(喚鶴臺), 마족대(馬足臺), 완폭대(翫瀑臺), 취적대(吹笛臺)등이 있는데 모두가 최고운의 글씨로 전해진다.
<불일폭포 휴게소 녹차 밭에서 차 잎을 따는 여승들>
쌍계사 불일암(佛日庵)은 청학봉 중턱에 있는 진각(眞覺1178~1234)국사가 창건한 조그마한 암자다. 송광사 불일암과 이름도 같고 규모도 비슷하여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삼신산 깊은 골짝 불일암에 진달래 붉은 꽃잎은 쏟아지는 비처럼 나부끼고 흔들리는 대 숲은 검푸른 아지랑이 같으니, 산봉우리에는 구름이 머물다가 떠날 줄을 모르고 세상 밖 사람들 찾는 이 없어, 등 넘어 청학동에서 놀러온 청학을 벗 삼아 스님은 졸고 있구나! 쌍계사 주지로 있던 서산대사 휴정(休靜1520~1604)스님이 어느 봄날에 불일암을 찾아 그때의 정경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
佛日庵(불일암)
深院花紅雨 (심원화홍우) 깊은 선원에 붉은 꽃은 비처럼 떨어지고 長林竹翠煙 (장림죽취연) 긴 대나무 숲은 푸른 아지랑이 같네 白雲疑領宿 (백운의령숙) 봉우리에 모인구름 자고가려나 靑鶴伴僧眠 (청학반승면) 스님은 푸른 학 친구삼아 졸고 있구나!
<쌍계사 대웅전과 진감선사 대공탑비>
이윽고 삼신산 쌍계사 (三神山 雙磎寺)다. 지리산 쌍계사라 하지 않고 삼신산 쌍계사라 함은 두 계곡물이 만나는 곳에 돌 곧 쌍계석문이 있어 쌍계사라 한다.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선사(眞鑑禪師 774~850)가 처음 옥천사(玉泉寺)로 시작했으나 인근 (固城 蓮花山?)에 같은 절 이름이 있어 이후, 사명을 쌍계사(雙磎寺)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창건주 진감선사를 기려 최 고운이 글을 짓고 썼다고 전하는 887년에 건립된 진감선사대공답비(眞鑑禪師大公塔碑; 국보 제47호)등 문화재가 있으며 쌍계사는 녹차 시배지로 알려져 있다. 쌍계사 주지를 지낸 서산대사(休靜1520~1604)의 시 한편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花開洞 (화개동)
花開洞裏花猶落 (화개동이화유락) 이름은 화개동인데 오히려 꽃은 지고 靑鶴巢邊鶴不還 (청학소변학불환) 청학동 둥지에 학은 돌아오지를 않네 珍重紅流橋下水 (진중홍류교화수) 잘 가 거라, 홍류교 밑 흐르는 물이여! 汝歸滄海我歸山 (여귀창해아귀산) 너는 바다로 가고, 나는 산으로 간다네!
<쌍계 석문>
<화개동천의 풍경과 암 각자>
쌍계교를 건너 쌍계석문(雙磎石門)이다. 두 개의 바위에 각기 雙磎(쌍계)와 石門(석문)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바위에는 “내 여기에 다녀갔노라!” 이렇게 자랑이라도 하듯 수다한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새겨 놓았다. 경치는 너무 좋은데 주변 상가 건물들이 눈에 거슬린다. 지리산 화개동천은 지리산의 심장의 역할을 한다. 지리산의 심장부 여러 골짝 물을 받아들여 화개천을 이루니 이름 하여 화개 동천(花開洞天)이라! 이곳에 녹차 시배지와 쌍계사가 있다.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857~?)선생이 은거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최 고운이 살다간 화개동천은 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그의 시는 남아있다.
花開洞 (화개동)
東國花開洞 (동국화개동) 동쪽나라 화개동은 壺中別有天 (호중별유천) 항아리 속의 별천지여라 仙人推玉枕 (선임추옥침) 선인이 베개를 밀치며 잠을 깨니 身世倏千年 (신세숙천년) 세대는 벌써 천년을 지나갔는가!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보리 익어 황금물결 일렁이는 섬진강변 악양 들판>
쌍계석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음 버스 주차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사실 여기서 오늘의 행로는 끝났다. 정여창 선생이 “사월 화개는 보리가 익어 이미 가을 같네!” 라고 노래한 시구처럼 오늘 나도 이때를 기다려 때맞추어 왔으니, 쌍계사에서 하동읍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주마간산(走馬看山)을 하듯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섬진강과 악양 들판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화계교를 건너면서 일두 정여창 (一蠹 鄭汝昌 1450~1504)선생의 시 遊 岳陽(유악양))의 시구를 마음속 그림으로 그려봤다.
遊 岳陽 (유 악양)
風蒲獵獵弄輕柔 (풍포엽렵농경유) 바람에 스치는 풀잎은 하늘을 가리키고 四月花開麥已秋 (사월화개맥이추) 사월 화개는 보리가 익어 이미 가을 같네 看盡頭流千萬疊 (간진두류천만첩) 지리산 수많은 봉우리를 다 보고나서 孤舟又下大江流 (고주우하대강류) 외로운 배를 띄워 또다시 큰 강으로 흘러가네!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본 섬진강 풍경>
오늘 행로는 청학동~갓걸이재~삼신봉~내삼신봉~쇠통바위~상불재~불일폭포~ 풀일폭포휴게소~ 쌍계사~ 쌍계석문~ 버스정류장 거리13km 6시간40분, 소요.
2014년 5월27일 화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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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집니다...感謝=\\\=
일찍도 읽으셨군요. 내용도 제법긴데 인내심 없으신 분은 읽기가 조금은 부담스럽겠지요. 혹, 강화도에 사시는지요? 고려산은 진달래가 유명하지요. 감사합니다.
@산이좋아 江華産입니다...............고향이죠...
지리산 삼신산 청학동 쌍계사 잘 봤습니다.감사합니다.
일기예보에 날씨가 맑다고 해서
산행을 결행했는데 황사가 심하더군요.
날씨가 흐려 아쉽게도 삼신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전경을 보여드리지 못했군요.
건승하십시요.
사진이 겻들여 진 산행기..
참 반갑습니다 ^^*
감사합니다.
몽천 선생님!
부족한점 많으니 많이
많이 가르쳐 주세요.
다시 한번 감사!...^^^
멋진 풍취, 아름다운 풍광, 섬세한 정경,멋드러진 詩
한동안 머물다 갑니다.
감사 감사
"한시 속으로" 들어오시면
저도 꼭 좀 찾아주세요.
더워지는 날씨에 유의하시고요.^^
감사합니다.
두번째 감상합니다.
싱그러운 지리산 풍광 싱그러움이 가득한 떡갈나무잎
삼신봉은 삼신할머니가 계신곳이라 그런이름이 붙였는지?
너른 악양들판에 황금보리 물결이 풍요롭고
지명에 맞는 한시와 중요한 곳들 직접 보는듯합니다.
저는 버스로 지리산을 휙~ 돌아왔답니다.
실제로가면 얼마나 지리산풍경에 감탄할까 생각해봅니다.
몇일있다가 팔봉산갑니다.
설레임이로 산행하신 귀한 사진과 한시
곁들여진 지리산행일기 감사히 봅니다.대단하십니다.
요즘 농촌에는 보리베기 ,모내기 등,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속담처럼
바쁜 때인 줄로 압니다.
김제님이 사시는 곳도 그러하겠지요?
이런 때에 정성을 들인 댓글을 달아주셔서
부족한 저의 글이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해 복지관 한문반에서 이 곳을 찾았지요.
10여 년 전 현직에 있을 때도 갔었는데,
그 새 여전하다 싶은 곳도 있었지만 달라진 곳도 많더라고요.
우리 일행은 운이 좋아(?) '삼성궁'을 손수 조성했다는 道人을 만나 잠시 茶會를 갖기도 했었는데,
이야기를 듣는 내내 긴가민가 했으니,
글쎄요 아마 우리가 엉터리 參拜客이었겠지요?^^
'산이 좋아'님의 깊은 공부와 愛情으로 만들어진 멋진 작품 감상하면서,
그 때의 감회에 잠시 젖을 수 있었습니다.
즐겁게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청학동은 도인촌, 삼성궁, 상가지역 등
3개 지역으로 구분 하여, 모두 둘러 보는데
3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요.
저는 관광목적이 아니어서
도인촌만을 둘러 봤습니다.
청학동도 이제 관굉 상품화되어
본질이 변질되어 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삼신봉엔 못올랐지만 거의 밟아본 길이라서 ..
30년전의 청학동은 개발이 되던 때라서 티를 묻지 않았는데
관광객이 붐비면서 모든것이 달라졌습니다. 올리신 산행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진품 사진과 시 까지 주시니
감사히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30년 전에 청학동 갔을 적에는
도인촌 사람들은 외출할 적에는 두루미기에
갓읋 쓰고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임도 같은 비포장 도로라 길가 대나무가
차에 닿아 드르륵 드륵 했습니다.
지금은 승묭차를 이용하지만,
앞으로 30년 후에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감사합니다.
멋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성원을 바랍니다.
작년 여름휴가때
미친듯이 산을 헤메고 다녔는데
그 중 한곳이 삼신봉였죠
대성골~음양수~삼신봉~청학동으로요.
다시 보니
또 가고싶네요.
지리산 계곡수는 수량이 풍부하지요.
그래서 여름 산행지로서 안성 맞춤입니다.
장마가 끝나고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한 때는 8일 동안 매일같이
지리산만 찾은 적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