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터` 서울의 풍수 이야기
동양학자 조용헌의 풍수 특강
[서울톡톡] 지난 5월 중순, 어느 화창한 날. 서초동 우면산 숲속에서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귀 기울이며 다가가니 싱그러운 솔잎 향에 감싸여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울연구원과 서울시 인재개발원이 함께 우리 시대 지성들이 서울의 스토리텔러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는데 그 두 번째 초대 손님이 동양학자로 <조용헌의 명문가>, <동양학을 읽은 월요일> 등의 책을 펴낸 조용헌 씨다. 그가 600년 전 수도로 정해질 때부터 사주명리학의 영향을 받은 서울의 풍수지리를 소개한다.
머리 많이 쓰는 사람, 평창동으로 가라~
"드라마 작가 김수현 씨나 바둑의 조훈현 9단처럼 두뇌를 혹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북한산 자락인 평창동에 사는 게 좋아요. 바위가 많은 평창동에서 글을 쓰면 확실히 덜 지쳐요. 그래서인지 그쪽에 아티스트가 350명이나 산다고 해요. 암벽등반하는 사람 중엔 등반 후 바위에서 받은 기가 날아갈까봐 샤워도 안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바위는 기가 강하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산은 크게 골산과 육산으로 나뉜다. 골산은 바위가 노출된 산이고 육산은 고기육(肉)자를 쓰는데 흙으로 둘러싸인 산을 뜻한다.
"서울의 산 중에서는 유일하게 남산이 육산입니다. 돈은 좀 살이 붙은 사람에게 오잖아요. 그래서 복스럽게 생겼다는 말이 나온 거죠. 육체는 보이는 마음이에요. 통통하다는 것은 마음도 통통하다는 거죠. 바로 그 통통한 산이 남산인데, 그래서 고 이병철 회장은 모든 걸 남산 주변에 잡았어요. 태평로 삼성본관, 신세계 본점, CJ 모두 남산 근방에 있지요. 북창동, 남창동도 남산의 기운이 뭉치는 곳인데 그래서 조선시대에 쌀 창고가 있었어요. 지금 한국은행도 북창동 쪽에 있잖아요. 쌀이 바로 돈이지요."
우리 조상이, 재벌 창업주가 터를 잡은 서울의 명당이야기에 숲속에 모인 100여 명이 모두 숨을 죽였다. 풍수가 무엇인가? 집이나 무덤과 같은 곳의 위치, 지형과 사람의 화복이 관계를 가진다는 학설 아닌가. 평안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내가 있는 곳이, 우리 집의 기운이 어떤지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서울 중에서도 '명당'은 어딜까?
"우선 서울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동아시아 최고의 도시입니다. 북경은 큰 강이 없어요. 열을 식혀줘야 하는데 물이 없으니 도시가 건조하고 사람들의 정서도 팍팍해요. 도쿄나 오사카는 물은 있는데 산이 제대로 없고... 전기, 자동차 등 현대 문명은 모두 불입니다. 문명의 부작용을 해소 시켜주는 게 물이죠. 한강이 없었다면 서울에 엄청난 사건 사고가 많았을 겁니다. 유현진이 LA다저스에서 공 던질 때 구장마다 다른 습도가 제구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어요. 사람에게 물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서울은 외당수 한강이 있고 내당수 청계천이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어디가 좋다는 얘기인가? 서울 중에서도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룬, 이른바 최고의 풍수를 가진 곳, 모두들 귀가 쫑긋 섰다.
"산남강북에 양기가 뭉쳐있다고 말합니다. 산의 남쪽이면서 강의 북쪽이 좋다는 얘긴데, 강북은 북악산 남쪽이면서 강의 북쪽에 있습니다. 평창동은 바위가 많아서 너무 세고 성북동은 좀 온화한편입니다. 종로나 안국동 같은 강북은 화강암과 마사토로 이뤄진 동네입니다. 평창동 바위가 너무 세다면 청담동 흙은 너무 약하고, 딱 미디엄이 좋은데 그게 종로, 안국동 같은 곳이죠. 풍문여고 자리는 조선시대에 비빈들이 아이를 낳는 '산실'이 있던 곳입니다. 그만큼 기운이 좋다는 얘기지요. 배산임수를 기본으로 한다면 한남동, 압구정동도 좋은데 물이 지역을 둘러싸고 흐르는 게 좋으니 한남동이 압구정동 보다는 한 수 위입니다."
좋은 터, 숙면이 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는 사람의 느낌으로 터가 좋은지 나쁜지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어느집에 들어갔을 때 편안하고 환한지, 왠지 음침한지 그 느낌대로 판단하면 된다는 것. 특히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장소가 자신과는 잘 맞는 좋은 터라고 말했다.
"집을 살 때 한 번 자 볼 수 있으면 좋아요. 숙면이 안 되면 수맥이 흐른다고 하죠. 잠을 자고 나서 개운한 집이 자신에게 맞는 집이에요. 또 아파트 고층에 살면 지기(地氣)를 좀 못 받아요. 나무 올라가는 데까지는 지기가 올라간다고 하니, 45세 넘으면 저층에 사는 게 좋겠지요. 젊었을 때는 에너지가 충만하니까 어디 살든 상관없고요.(웃음)"
'풍수'가 과학의 범주 안에는 들지 않지만 인간사 유구한 역사와 경험이 담겨 있으니 사람이 사는 이치나 지혜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서울이라는 땅이 갖는 의미과 각 지역에 대한 풍수지리 해석을 듣고 나니 무심코 보았던 서울 곳곳이 또 달라 보인다.
<모셔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