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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禪軒 독서일기 2025년 8월 26일 화요일]
《『대동야승』 中 조경남 『난중잡록』 趙慶男 亂中雜錄
1608년 이원익, 심희수, 이항복의 거듭된 사직소》 [127]
○ 금부 경력(禁府經歷) 박일현(朴逸賢)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역적의 괴수 진(珒)은 죄악이 세상천지에 꽉 차게 되었으니 세상천지의 죄인이며, 죄가 종묘사직에 관계되니 종묘사직의 죄인입니다. 그의 흉악하고 어긋남은 관숙(管叔)이나 채숙(蔡叔)에 그치지 않으니 어찌 오늘날에 주공(周公)이 있다면 용서를 받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대의로 결단하소서.” 하였다.
○ 아성부원군(鵝城府院君) 이산해(李山海)ㆍ판중추부사 윤승훈(尹承勳) 등 66인이 아뢰기를, “죄인은 판명되었으나 형의 집행만 늦어지게 되어서 종척과 삼사로부터 여러 관원들까지 말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임금의 명령이 막연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이 갈수록 더욱 답답하게 되니, 삼가 공론대로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못난 사람으로 선왕의 가려 선발한 은덕을 입어 외람되게도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게 되어서 밤낮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중 천륜의 변괴가 문득 상중에 나오게 되었으니 위와 아래로 부끄럽고 속 아픈 마음 어찌 할 줄 모르겠노라. 죄가 종묘사직에 관계된다 하여 내보내어 해변 고을에 두었으니 법은 이미 거행된 것이다. 어찌 꼭 법대로 처단해야만 하겠는가?” 하였다.
○ 이원익이 두 번째 사직서를 올렸다. 비답에, “오직 경의 진심은 하늘만이 알 것이다. 평소의 행실은 옥같이 깨끗하여 조정에서 밝게 보필하니 여러 관원들의 법도가 되고 여러 백성들의 본보기가 되었고, 외임으로 나서면 부지런히 은혜를 베푸니, 때맞추어 내린 비는 고르게 오고 화평한 바람마저 진실로 흡족하게 되어, 청백한 이름이 이미 중부와 외부에 들리게 되었고, 남모르는 행실은 귀신에게도 부끄럼이 없었다. 선왕의 태평성대에 임하여 수상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초(楚) 나라 영윤(令尹)이 집을 헐어서 어려운 것을 펴나간 것은 근본이 한 종파에서 갈려났기 때문이요, 당견공(唐汧公)이 간하는 말을 아뢴 것은 충성을 바치는 것이 귀척(貴戚)으로부터 비롯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부도 다 펴지 못하고 문득 의견 대립으로 훼방을 받게 되었다. 낙사(落仕 송나라 때 낙양(洛陽)에 있었던 명사들의 모임)에서 한가하게 지내도 아동들이 그 이름을 칭송하였고, 교장(橋莊)에서 물러나와 쉬게 되니 오랫동안 사민(士民)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듯이 하였도다. 그러므로 즉위하는 초기를 당하여 나라를 경영하는 책임을 맡기니 전일함에 극진하게 하였는데, 은퇴함을 말하는 것은 타당치 못한 듯하고 올린 상소는 까닭이 없으니 놀랍도다. 생각하면 이때가 어떠한 때인가? 겸양하는 풍도는 말세에 있어서 가상하긴 하나, 크고 공적인 일에 있어서는 종친의 신하인 그대에게 깊이 기대를 가지노라.” 하였다.
○ 심희수가 두 번째 사직서를 올리니, 답하기를, “경은 교목(喬木)같은 고가(故家)이며, 정제된 금과 같은 자품이므로, 큰 선비들의 본보기가 되는 점이 하나 둘로 헤아릴 수 없고 임금을 도와준 지 40년이 넘었다. 그 때문에 선조(先朝)께서 이미 정승의 자리에 올리게 한 것이요, 오늘날 다시 우상의 자리로 발탁한 것이다. 원흉들이 죽은 뒤에 조정에 나와 볼 만한 것이 많았으며, 큰 역적이 자복할 때를 당하여 옥사 처리하기를 조심하였도다. 대사간과 재상이 하는 일이 비록 다르지만 이치는 동일한 것이며, 법대로 하자는 것과 은혜를 보전하자는 것은 아울러 시행하여도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외로운 충성은 정성스러워 평소부터 있는 것이고, 전일한 생각은 단단하여 다름이 없는 것이로다. 바라노니, 신병을 다스려 나라도 다스리고, 몸 아끼는 마음으로 임금도 사랑하라.” 하였다.
○ 이항복이 두 번째 사직서를 올리니, 답하기를, “경의 사직서는 한 번도 옳지 않는데, 어찌하여 두 번씩이나 내는가? 내일에는 영상이, 또 내일에는 우상이, 또 내일에는 경도 또한 물러난다고만 하니, 삼태(三台)의 자리가 일시에 비게 되는 이 같은 일은 근고(近古)에 없는 일이로다. 조정에서 난처한 일이 있으면 누구와 함께 의논하며, 변방에 경보가 있게 되면 뉘와 함께 의논하겠는가? 슬프다 ! 부잡(浮雜)한 풍속을 안정시키는 것을 경이 아니면 할 만한 사람이 없고, 사림을 조화시키는 것도 경 아니면 할 만한 사람이 없으며,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경이 아니면 해결할 사람이 없으니, 경이 자리에 나오고 또 물러가는 것이 어찌 중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 이원익이 세 번째 사직서를 올리니, 답하기를, “경이 아는 것으로는 점치는 시구(蓍龜)보다 뛰어나고 물망으로는 태산보다 무겁고 세상 사람보다 뛰어나기를 수천 길이나 되는데, 지조는 옥이나 얼음처럼 맑고 깨끗하며, 조정에 들어선 지 40년 동안에 충성과 곧음은 하늘과 귀신도 알아주고 보증할 만하도다. 그러므로 이어받아 즉위하던 날에 거듭 정승의 자리를 준 것이다. 동산(東山)에 있던 사안(謝安)을 기용한 듯 물의를 안정시키는 덕도 풍족하였으며, 원우(元祐) 연간에 사마광(司馬光)을 정승으로 삼았듯이 손을 이마에 대고 경사라고 바야흐로 기뻐하던 중 어떻게 사소한 병을 가지고 문득 두 번이나 사직할 줄을 알았겠는가? 슬프다 ! 내가 정승에게 마땅히 정성으로 대접하여 당초부터 조심할 것이니 경도 국가에 반드시 충성을 가지고 보답하여 끝까지 잘해 나갈지어다.” 하였다.
○ 이원익이 네 번째, 이항복이 세 번째 사직서를 올리니, 답하기를, “비록 한때에 불만스러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오직 마음에 있는 일을 설파하고 국사를 다스리기를 변함이 없도록 할 것이니, 병중이라도 힘써 일어나 나와서 나의 근심을 풀어주기 바란다.” 하였다.
○ 심희수가 세 번째 사직서를 올리니, 답하기를, “경은 평소에 도량이 연못처럼 맑고 영특한 자품은 옥같이 윤택하며, 일찍부터 장원급제하여 이미 선왕의 인정을 받아 사헌부와 사간원에 출입하면서 몇 번이나 풍간과 직간을 올렸으며, 의정부와 승정원에 조용하게 있을 때에는 임금에게 자신의 생각을 남김없이 토로할 것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군신 간의 의가 맞아서 바로 정승의 자리로 승진되었다. 여러 왕자들의 분수 지키지 못함을 진술하였으니 백성 생각해 주는 정성을 볼 수가 있고, 여러 관원들의 어긋난 행동을 염려하여 먼저 시국을 바로잡자는 의견을 처음 발론하였도다. 장양(張良)이 적송자(赤松子)를 사모하던 일을 따라서 용감하게 물러나갈 것을 바라지만 배도(裵度)가 녹야(綠野)로 돌아가는 것과는 다르리라 믿고 잠깐 쉴 것을 허락하노니, 쉬는 일이 한량이 없으면 나라를 걱정할 일도 한량이 없는 것이다. 어찌 내 말을 번잡하게 많이 하리오. 형편상 갈 만하여도 의리상 갈 수가 없을 것이니 오지 경은 깊이 생각하라.” 하였다.
○ 심희수가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치료하기 어려운 병과 용서받기 어려운 죄가 모두 신의 몸에 모여서 이미 걸음을 걸어서 공무를 집행할 수도 없고, 또 낯을 들고 조정에 나올 수도 없어서 난처한 심정은 임금께서 이미 통촉하시었으나, 상례(常例)에 구애되어 오랫동안 파직 명령을 아끼시니, 공사나 사적인 일이 민망하고 박절하여 하루가 일 년 같습니다. 삼가 파직시켜 물리치기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이러한 때에 어찌 차마 굳이 사직하려 하는가? 잘 조섭하고 벼슬에 나오라.” 하였다.
[첨언] 이원익, 심희수, 이항복이 한사코 사직서를 올리는 까닭은 난정의 징조를 봤기 때문이다. 정승의 반열에 오른 몸으로서도 주체할 수 없는 사특한 기운이 이미 조정에 드리워져서 난정이 시작될 즈음에 이르러 벼슬에 무슨 연연함이 있겠는가. 광해 왕은 원로대신들을 신임하기 보다는 자기;를 무조건 떠받드는 정인홍 등 북인들에게 이미 마음이 가 있는 상태에서 물러나 일신을 보호함이 노년의 마지막 보신책이다.
○ 정인홍을 숭정으로 승급시켜 좌찬성에 임명하였다. 인홍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구구한 사정으로 여러 번 상소하여 해골이나 고향에 내려가 묻힐 것을 빌었으나, 문득 감당 못할 비답을 내리시더니 이제는 더구나 높은 벼슬을 더하시니, 신은 노쇠하고 질병까지 겸하여 집무에 응할 수 없어 놀랍고 두려워 뒷걸음만 치게 되고 머물러 있고 싶지 않습니다. 신이 지난날에 사신의 기망한 죄와 대신의 파당에 두둔하는 마음과 은혜를 보전하시라는 실수를 가지고 두 번이나 진술하여 강경히 반대하였는데, 전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신 마음으로 양편이 다 옳다고 하신 비답을 내리시고 곧 높은 벼슬을 내려 신을 대접하여 지위가 이공(二公)에 이르니, 대신에게 처지가 혐의스럽고 어색합니다. 전후로 말한 것이 대신에 대하여 침해한 것이 이미 많았고, 벼슬길에 오르기에만 뜻을 두어 작은 벼슬은 사양하고 큰 벼슬을 취하고 물러남을 청하여 나아감을 매개한다는 의심이 있습니다. 형적이 이와 같으니 이제부터는 국가를 위하여 대신의 실수를 말하지 않고 입을 함봉하여 한갓 벼슬과 국록만 누린다면 이 또한 평생에 뜻하였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새로 내리신 명령은 노신으로 하여금 더욱 속히 내려가고 싶도록 하신 것이니, 오직 남방으로 돌아가는 한 가닥 길만이 이 몸의 처할 데라고 보일 뿐입니다. 삼가 빨리 이미 내리신 명령을 회수하심을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천작(天爵)의 자격을 갖추면 인작(人爵)인 벼슬이 저절로 이르러 오는 것인데, 경은 어찌하여 사양하는가.” 하였다.
[첨언] 정인홍이 남방으로 내려가지도 않으면서 한강 가에 누워서 내리신 명령을 회수하심을 바랍니다 하는 것은 더 큰 벼슬을 낚기 위한 공작이다. 정인홍이 심중에는 이미 권력을 잡아 휘두르겠다는 사특한 권력욕이 가득하다. “이제부터는 국가를 위하여 대신의 실수를 말하지 않고 입을 함봉하여 한갓 벼슬과 국록만 누린다면 이 또한 평생에 뜻하였던 것이 아닙니다”란 말은 곧 이원익 등 대신들이 잘못을 많이 저질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원익 등 대신들을 쫓아내고 자기를 영의정으로 앉혀 달라는 말이다. 정인홍 발 권력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북인계 대간들이 이원익 등 대신들을 연일 공격하고 있다. 이후 이들 북인들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철권을 휘들렀다. 그러나 14년 후 인조반정이 성공하고 난 직후에 정인홍은 참수당하고, 이원익이 다시 영의정으로 임명되었다.
○ 이원익의 상소는 다음과 같았다.
삼가 아룁니다. 전하의 비답을 받들어보니, 꾸지람과 일깨우심이 간곡하시니 신은 마음 아프고 절박함이 지극합니다. 자전(慈殿)께서 환후 중에 계시고, 성상의 체후도 평상시와 다르니, 신하 된 분의로서 크게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면 어떻게 병들었다고 누워 있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신이 비록 노둔하고 못났으나 대신의 자리에 있게 되었는데, 대신은 여러 관원과는 달라서 진실로 남의 비난이 있을 때에는 그대로 염치없이 여러 사람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자리에 있을 수가 없는 것인데, 하물며 신은 직분을 봉행하는 데에 형편이 없고 앞뒤로 탄핵을 받아 죄명만 낭자하게 많아서 모두 중대한 법에 관계가 되므로 물러나와 엎드려서 공손하게 죄주시기를 기다렸는데 어찌 감히 낯을 들고 분주히 직무를 본다고 하겠습니까? 사헌부의 비난이 이와 같은데도 물러가지 않으면 사헌부 관원의 풍채는 이로 인하여 떨어질 것이요, 사림의 염치도 이로 인하여 잃어버리게 될 것이니, 전하는 장차 염치없는 대신을 사용하여 어찌 국사를 보시겠습니까? 신의 직위는 수상입니다. 의논을 재단하는 데에는 수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오늘날 죄를 의논한다면 신이 마땅히 제일에 처하게 되었으니 신의 질병 같은 것은 진실로 말할 것이 못 됩니다. 그러나 일의 형편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결코 자리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삼가 파직시켜서 물리치시길 바랍니다.
답하기를. “대신의 체면이란 작은 관원과 다른데, 어찌 한 가지 혐의를 가지고 딱하게도 사퇴할 계획만 하는가? 나는 경등에 대하여 유감이 없을 수가 없노라.” 하였다.
○ 이항복의 상소는 다음과 같았다.
삼가 아룁니다. 물러감을 비는 것이 신의 본심은 아닙니다. 비록 본심이 아니라 하나 영화를 탐내어 구차하게 그대로 있어서 더 지위를 튼튼하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오늘날에 있어서는 옳지 않으므로 우선 머뭇거리는 것은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 가는 것을 결정하려는 것입니다. 정승의 자리에 오르더라도 한 달이나 한 철 사이의 손님에 지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 민첩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관원들의 비방만을 초래한 것입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마음먹었던 것은 반대로 되어가고 내세웠던 말도 실제와 틀리게 되어서 평생에 임금 사랑했던 정성은 도리어 임금을 뒤로 하는 악행만 남게 되었습니다. 대개 임금의 아름다움을 훔쳐 자기의 은공으로 만든 것은 이것이 신하로서 임금을 가린다는 것이니《춘추》에도 없던 죄만을 짓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신의 의(義)를 말할 때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릇되고 망령된다 하여서 배척하여도 신은 또한 사양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신을 보실 때에 어찌 역적에게 은공을 팔겠다는 사람으로 알 리가 있겠습니까? 대개 일의 형적을 가지고 죄를 논할 때 마땅히 먼저 그들의 생각한 것의 근원을 연구하여야 되는 것이므로 그래서 이것을 원정(源情)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당초부터 전은(全恩)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 답답하게 여기는 마음이 어디에서 발단된 것입니까? 임금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죄인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지금 이러고 저러고 말하면 은(恩)의 돌아가는 바가 마침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하로서 이와 같은 자이면 그 죄는 저자에다 죽여도 오히려 가볍다 하겠는데, 전후로 내리신 전하의 비답이 여러모로 설명하시어 두 사람의 말이 다 옳다고 하셨으니, 신은 이것으로 미루어 더욱 전하께서 결단코 이 말이 옳다 보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신이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삼가 전하의 일깨우심을 받들어보니, 말씀하신 바 다만 마음에 있는 일을 설파하고 나라를 위하여 변함이 없으라고 하신 대로 신이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옛날 서적을 읽으니 공족(公族)의 죄를 유사가 세 번 고하여도 세 번이나 용서하라고 하면 대답도 하지 않고 나가서 법대로 처리하는 것은 유사의 직분이요, 사람을 시켜서 쫓아가서 비록 그러하더라도 용서하라고 하는 것은 제왕의 인(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유(先儒)가 이 일을 논하기를, “신하는 법의 집행을 단단히 하여야 되고, 임금은 법 사용하기를 관대하게 하여야 된다.” 하였습니다. 신이 글을 읽다 여기에 이르러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공족의 큰 죄를 단정할 수 있겠다.” 하였고, 그 뒤에 《한사(漢史)》를 보다가 회남왕 유장(劉長)의 반역에 장창(張蒼)과 풍경(馮敬)은 법대로 하자고 논하였는데 원앙(袁盎)은 짐바리 차에 실을 것을 간하였습니다. 다른 때에는 장창의 어진 것이 원앙보다 훨씬 뛰어났지마는 회남의 옥사를 의논함에 이르러서는 두 사람의 너그럽고 맹렬함이 이와 같았었는데, 후세 선비가 논하기를, “장창과 풍경은 모두 어사직에 있던 때이니 당연히 법대로 따져야만 했다.” 하였습니다. 선종황제(宣宗皇帝)가 즉위하던 원년에 한왕(漢王)이 병사를 일으키어 반역을 하였는데, 친히 정벌하여 사로잡았을 때에 여러 신하들은 법에 의거하여 처단하자고 청하였으나 임금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뒤에 《황조자집(皇朝子集)》가운데에서 〈비지(碑誌)〉를 보았는데, 그 때에 상서 벼슬을 한 사람으로서 황제에게 죽이지 말라 권한 사람이 있어, 마침내 소요성(逍遙城)에서 만나볼 때에 그가 발로 황제를 걸어당겨 엎어지게 하는 변을 당하게 하였으나, 그 상서는 오히려 아무 일 없이 관직에 그대로 있게 되어 죄로 여기지 않았다 합니다. 신이 이 두 가지 일을 보고 말하기를, “낭장이나 상서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낭장이 되지 않은 자로서 당연히 구애될 것이 없으리라.” 하여, 마침 의논을 바쳐 대략 어리석은 소견을 진술하였던 것입니다.
당초에는 자신이 충성이라 생각하였으나 다시금 죄 될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공(二公)이 주공(周公)에 대한 처리에 대해서 선유의 말씀은 현재에 말하고 있는 사람의 말과는 다른 듯합니다. 많이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으며, 주공의 변고를 처리한 것에 대해서 또한 구구한 혐의는 피하지 않은 바가 있어 세속 사람의 마음으로는 엿볼 수가 없다고 한 말이 있으니 이것은 더욱 신이 일찍이 강구하지 못한 일입니다. 죽은 이를 다시 일으킬 수 없어서 어떻게 뵈옵고 물을 수 없는 일이니, 오늘날에 어떻게 감히 천년이나 된 옛날의 정미한 뜻을 짐작만 가지고 문득 상고하기 어려운 옛날의 법전이라 규정짓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이미 가버린 일을 따라갈 수 없는 일이요, 현재의 일이 걱정스럽습니다. 전하의 총명하시고 슬기로우심으로 저 세 대신의 낭패된 일에 대해서 반드시 이미 통촉하시어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몸은 벼슬자리에 비록 있다 하여도 그들의 형편은 이미 물러가 버린 것이며, 그들의 죄는 이미 처벌당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도 또한 소나 말처럼 끌어매어서 반드시 사헌부의 법관들이 탄핵하여 용서 없이 하는 것은 전하의 바라시는 마음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상례(常例)에 의하여 반드시 한두 번 사직으로 될 것인데 열 번까지 사직을 하여 달수를 계산하여 벼슬을 옮긴 듯한 뒤에 비로소 물러갈 것을 허락하시어 그것으로 정답게 하는 뜻을 표하신다면 이 또한 오늘날 형편을 처리하는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이 세 가지에 벗어나지 않는 것을 서로 주장만 세워서 날짜만 끌게 되며, 반드시 물러갈 형편에 놓여 있으면서 죄 받을 날을 기다린다는 것은 신의 몸을 돌볼 여유는 고사하고 국사에 있어서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이제 양전(兩殿)께서 실섭 중에 계시고, 삼읍(三揖 경ㆍ대부ㆍ사를 이름)들은 근심을 품고 두 변경에도 놀랄 만한 일이 많아서 여러 가지 사무는 늦어지고 막히게 되는데, 신 홀로 병도 없는 것을 감히 병들었다 하고, 죄가 있는 데 없는 체한다면 죄는 실로 만 번 죽어도 남습니다. 그러나 신의 죄는 아니요, 형편이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삼가 빨리 파면할 것을 허락하시어 공의를 시원케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답하기를, “활달한 의논을 잘 알았으며 진실로 가상하게 여기노라. 장창ㆍ원앙의 의논이 너그럽고 맹렬함이 동떨어지게 다르나 그 당시에도 해가 될 것이 없었으려니와 뒷 세상에도 기롱을 받을 일은 아니다. 오늘날 은(恩)과 법(法)의 의논도 아울러 행하여도 무슨 방해될 것이 있겠는가? 전후로 여러 번 일깨운 뜻이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마땅히 나의 뜻을 짐작하여 속히 나와 국사를 바르게 하도록 하라.” 하였다.
항복이 끝내 역적을 보호했다 하여 죄를 받아 나가서 포천(抱川)의 집에 있으면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사람은 송피(松皮)와 같구나. 송피를 두드려서 떡을 만들듯 또 사람을 두드려서 역적을 만드는구나.” 하고, 또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무슨 일로 침해를 받았는고?” 하니, 답하기를, “지방에는 부역이 많아서입니다.” 하자, 이항복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성 쌓는 부역이나 역적을 두둔하는 것 또한 중대하구나.” 하고, 임금을 생각하고 시국을 서러워하여 항상 문을 닫고 눈물만 흘리다가 얼마 되지 않아 용서를 받게 되었다.
○ 이원익이 다섯 번째 사직서를 올리니, 《비망기》에, “경은 물러갈 만한 의의가 없다. 전후로 일깨우기를 극진히 하였는데 경은 나의 뜻을 참작하지 않고 사직하기만 하려는 것인가? 병든 가운데 나의 회포는 더욱 섭섭하다. 다시는 사양하지 말고 조섭하여 나와 벼슬하라.” 하였다.
○ 심희수가 네 번째 사직서를 올리니, 《비망기》에, “내가 경을 대접하는 성의가 천박하였던가? 전후로 간곡하게 일깨운 말들을 모두 형식적인 말로만 돌려버리니 나는 실로 부끄럽게 생각하노라. 지금이 진실로 어떠한 때인데 경등이 한결같이 허물만 핑계하고 기필코 직무를 벗어버리는 것으로만 상책이라 생각하니, 대신이란 좋고 언짢은 것을 같이 한다는 아름다움이 아마도 이러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경 등은 비록 자신의 편한 것만 간절히 바라니 나는 장차 누구와 국사를 하겠는가? 잘 조섭하여 나올 일이지, 나를 곤욕되게 말지어다.” 하였다.
○ 이원익이 여섯 번째, 이항복ㆍ심희수는 다섯 번째 사직서를 올리니, 《비망기》에, “법을 엄정하게 하는 것은 대간의 책임이요, 임금을 너그러우며 인애로운 데로 인도하는 것은 대신의 도리이다. 경 등은 옥사를 다스림에 밝고 삼감으로써 죄인도 자복하게 되었는데, 전은(全恩)이라는 의논은 실로 임금을 사은하는 정성에서 나온 것이니 경 등에게 무슨 혐의가 있겠는가?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논은 비록 과중한 것 같으나 또한 대의를 밝히고 왕법을 세우자는 것이니 이것이나 저것이나 공도가 아닌 것이 없다. 말하기를 이미 극진히 하였으니 그것을 가지고 굳게 사직하는 장본을 삼을 것은 없다. 나의 병도 심하거니와 국사도 위태롭게 되었다. 가을철 방비할 때가 임박하였고, 변방에 대한 근심도 전보다 갑절이나 더한데, 원로대신은 한결같이 사퇴함으로 인하여 미리 준비할 것을 요량하지 않다가 혹시 하룻저녁에 경보가 터져나오게 되면 경 등은 종사를 어찌 하려는 것인가? 병중에 힘써 일어나 나오도록 하여 나와 함께 어렵고 걱정스러운 일을 치르도록 하라.” 하고, 전지에 이르기를, “승지 중 한 사람이 이《비망기》를 가지고 삼공(三公)을 일깨우도록 하라.” 하였다.
○ 영의정 이원익의 상소는 다음과 같았다.
삼가 아룁니다. 보잘것없는 비천한 신이 지나친 사랑과 알아주심을 입어 승지를 보내어 꾸짖어 일깨우심이 자상하셨습니다. 신이 목석이 아닌 바에야 어찌 두려워 떨리지 않았겠습니까? 자전(慈殿)께서 환후 중이시며 전하께서도 편찮으시니 신하 된 도리로서 크게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면 어찌 감히 물러와 엎드려서 한결같이 지엄하신 명령을 준행하지 않겠습니까? 신의 사직서가 마침 동료들이 아울러 사직하던 날에 올리게 됨으로써 그 형적이 서로 혼동이 되어 구별할 수 없게 되었으나 신은 오로지 일의 형편으로 그리한 것이 아닙니다. 신은 젊어서부터 신병이 있어서 병이 발작되면 흔히 놀라 고함을 지르며 나돌아다니다가 4년 뒤에 겨우 낫게 되었으나, 임인년에 죽을 병이 들 때 심장병까지 다시 발작되어, 낮이면 조금 안정이 되다가도 밤이면 반드시 정신이 없어서 고함을 지르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가 있기까지 하였습니다. 선조(先朝) 때에도 촌집에 나와서 정양한 일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나이도 점점 늙어지고 기력도 녹아 빠져서 날마다 아프지 않은 때가 없고 밤마다 놀라지 않는 때가 없어서 밖으로는 살이 빠지고 안으로는 마음이 흔들려서 기쁨과 성냄과 말하고 웃는 것이 미세한 일에도 또한 정상이 아닌데 또 어떻게 직무를 맡아서 엎어져 낭패함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능(陵) 일도 마치지 못하고 차관이 또 와서 죽음을 참고 분주히 다녀 생명만이 지금까지 붙어 있습니다. 이제 물러가기를 애걸하는 것은 바로 평소에 먹었던 마음이요, 일의 형편을 꺼리는 것은 다른 동료들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신은 수상으로 의논의 옳음을 재단하는 사람이니 여러 가지 죄와 거슬림을 실로 신이 담당해야 하는데, 병으로 보나 형편으로 보나 신은 당연히 물러가야 되니 남보다 먼저 관직을 파면시키라 명령하시고 빨리 다른 정승을 들어 세워서 공사나 사사에 편의케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지난번에 다 말하였으니, 원컨대 경은 잘 조섭하고 나오라.” 하였다.
○ 고부겸청승습사(告訃兼請承襲使) 연능부원군(延陵府院君) 이호민(李好閔)ㆍ부사동지(副使同知) 오억령(吳億齡)ㆍ서장관호군(書壯官護軍) 이호의(李好義)를 대답에 실수하여서 국사를 그르쳤다는 죄로 모두 파직시키라고 이조에 명을 내렸다. 백관들이 날마다 연명 상소를 올림으로 인해서 임해를 폐하여 서인이 되게 하였다.
○ 이원익이 아홉 번째 사직서를 올리고, 이항복이 여덟 번째 사직서를 올리니, 답하기를, “마땅히 전날의 교지에 따라 안심하고 벼슬에 나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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