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우형(洪遇亨)
[본관] 남양(南陽[唐])
[생원] 인조(仁祖) 8년(1630) 경오(庚午) 식년시(式年試) (生員) 3등(三等) 37위(67/100)
[생졸년] 1585년(선조 18)~1655년(효종 6) / 壽 70歲
[거주지] 선산(善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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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생원 홍공 묘갈명 병서(成均生員洪公墓碣銘 幷序)
공은 성이 홍씨(洪氏), 이름이 우형(遇亨), 자가 회백(會伯), 본관이 남양(南陽)이다. 고려 때 태사 홍은열(洪殷悅)의 후손이다.
이로부터 대대로 명망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조선에 들어와서 홍응(洪應)은 좌의정(左議政)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으로 시호가 충정(忠貞)이며 성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고조 홍윤우(洪允祐)는 별제(別提)를 지내고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추증되었고, 증조 홍인수(洪仁壽)는 형조 좌랑을 지냈다. 조부 홍사제(洪思濟)는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를 지냈고, 부친 홍할(洪劼)은 황산 찰방(黃山察訪)을 지냈다. 모친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군수(郡守) 윤철견(尹鐵堅)의 딸이다.
공은 만력(萬曆) 을유년(乙酉年, 1585, 선조 18)에 태어나 을미년(乙未年, 1655, 효종 6)에 임종하였다. 양주(楊州) 아차산(峨嵯山) 선영의 무덤 자리가 다하였기 때문에 선산부(善山府) 동쪽 부인 해평 윤씨(海平尹氏)의 무덤에 합장하였는데, 무덤은 신향(辛向)이다.
아, 공은 재주와 학문이 있고 문벌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현달함이 마땅하였다. 그러나 만년인 경오년(庚午年, 1630, 인조 8)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끝내 대과에 급제하지 못했으니 운명이다. 부인 윤씨는 바로 월정 (月汀) 윤근수(尹根壽) 상공(相公)의 손녀이자 판서(判書)에 추증된 윤질(尹晊)의 따님으로, 맑은 행실을 지녔으나 공보다 4년 먼저 죽었다.
딸 넷은 이혐(李馦)ㆍ이무선(李茂先)ㆍ박신(朴愼)ㆍ이달천(李達天)에게 시집갔고, 외아들 홍서기(洪敍箕)는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어리다.
공을 처음 남쪽 땅에 장사 지낼 때에 묘표(墓表)가 없어서는 안 되었고, 이미 장사를 지내서 바로 묘갈(墓碣)을 세워야 하는데 세계(世系)를
서술하고 언행(言行)을 약술하여 선친의 뜻을 따르게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다. 명은 다음과 같다.
대대로 이어진 자손들이 / 蟬聯之胄
재주를 품고도 쓰이지 못했으니 / 抱才不售
어찌하여 때와 운명이 불우했는가 / 奈何時命之不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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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홍응(洪應) :
1428~1492.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응지(應之), 호는 휴휴당(休休堂)이다. 1451년(명종 6)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였고,
1466년(세조 12)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였다.
1468년(세조 14)에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3등 추충정난익대 공신(推忠定難翊戴功臣) 자헌대부 지중추부사 익성군
(益城君)에 책봉되었으며, 1471년(성종 2) 좌리 공신(佐理功臣)에 오르고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에 책봉되었다.
형조 판서와 좌의정(左議政) 등을 역임하였으며, 세종과 세조 때에 경서(經書)의 구결(口訣)을 정하는 데에 참여하였다.
[주02] 윤근수(尹根壽) :
1537~1616.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589년(선조 22)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었으며, 귀국할 때《대명회전(大明會典)》을 가져왔다. 종계(宗系)를 변무(辨誣)한 공으로 광국 공신(光國功臣) 1
등과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으로 봉해졌으며, 1604년(선조 37) 호성 공신(扈聖功臣) 2등에 봉해졌다. 저서에《사서토석(四書吐
釋)》등이 있다.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 권영락 (역)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