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서 구절리 가는 꼬마기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정동진 바닷가를 떠났습니다. 바다에 밥 준다고(영희 말로는 바다의 밥은 모래라구 하네요) 연신 모래를 퍼다 파도가 닿는 곳에 쌓아 놓는 두 녀석을 달래서 부지런히 달려 정선으로 가는 길은 하마 그리도 구불구불 할까 싶게 까마득히 구비진 길을 끝도 없이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아우라지에 내려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돌맹이로 수제비를 뜨며 아이들과 작은 자갈을 주어 공기놀이를 해 보았습니다. 강 양쪽에 매어진 줄을 당겨 건너는 줄배는 강 건너로 가고는 건너오는 사람이 없어 건너편 강가에서 나른한 오후 한때를 보내고 있고, 강 건너 몇채 보이는 시골집도 마치 그림의 한 부분인양 고요하기 이를데 없더군요.
부지런히 온다고 서둘렀지만, 2시48분 구절리행 비둘기호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과 역전에서부터 한끼를 해결할 식당을 찾아 소박한 정선 거리를 걸었지만, 손님이 별로 없는지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열지 않은 상태여서 거의 마을 끝까지 걸어서 간신히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기차역으로 천천히 걸어와 역전 앞에 있는 '서울다방'이라는 시골 찻집에 묘한 향수에 끌려 들어가보니 손님은 하나도 없고 주인 여자와 친구로 보이는 중년 여자,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모여 앉아 있고, 개 두마리가 아주 익숙한 모습으로 다방안을 서성대고 있었어요. 가운데는 아직까지 커다란 연탄난로가 그대로 있고 사람들은 모두 그 난로 곁에 빙 둘러 앉아 별 말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군요.
커피를 마시고 저녁 찬거리를 사려고 정선 시장에 가기 위해 커피값을 물어보니 한잔에 천삼백원이라고 하네요.
"커피값이 참 싸네요."하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녁 6시33분 구절리행 기차를 타고 해가 지기 시작한 강원도의 깊은 산골로 들어가는 그 기분은 작은 설레임과 함께 다소 쓸쓸한 기분도 들더군요. 아침에 숙소에서 준비한 삶은 계란과 커피, 약간의 빵, 에너지 보충을 위한 햄 몇개를 가방에 넣고 우리는 때묻지 않은 내나라 산천의 그 청정한 품으로 천천히 들어갔습니다.
단 한량의 객차를 매달고 달리는 비둘기호는 동강으로 흐르는 조양강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기차가 작은 강줄기를 건널때면 아이들은 차창으로 밑을 내려다보며 "으악! 꼭 떨어질것 같아!"하며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구절리역에 도착 했을때는 해가 막 떨어져 마지막 남은 회색빛만 간신히 마을의 형체를 분간할 수 있을만큼 비추고 있었어요. 객차를 떼어낸 기관차가 다시 객차를 매달고 돌아가기 위해 선로위를 한바퀴 돌아 나올 동안 우리는 잠시 기차에서 내려 한적한 선로위를 걸어 보았습니다.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를 한껏 호흡하니 잡다한 생각들로 무겁던 머릿속이 일시에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춥지만 너무도 상쾌했습니다.
저만치 어둠속에서 기관차의 노란 불빛이 보이기 시작해서 우리는 다시 기차에 올랐습니다.
정선에서 구절리로 오는 길에 보았던 '여량', '나전' 이라는 작은 기차역과 구절리역엔 차표를 끊어주는 사람이 없답니다. 예전에 광산으로 경기가 좋을 땐 모두 있었지만, 지금은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그냥 기차 안에서 표를 끊어 준다고 합니다.
친절한 차장아저씨와 기차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돌아오는 길은 더없이 정겨운 시간이었습니다. 준비해 간 삶은 계란도 까서 먹고, 커피도 마시며 1시간이 조금 넘는 짧은 기차여행의 아쉬움을 달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