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서 보내 온 등기우편 / 조재태
어제 둘째에게서 내일 일정이 어쩠느냐고 전화가 왔었다.
별일 없다고 했더니, 어머니 아버지 하루 모시고 싶다며, 가시고 싶은 곳이나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생각해 두시라고 말했다. 아침 일찍 둘째가 직장이 있는 익산 봉동에서 내려왔다. 몇 곳 다닐 만한 곳을 찾았다. 백수해안도로 길도 거론되었으나, 곡성 구례 방향으로 정했다. 우리는 그동안 둘째와 함께 여러 곳을 여행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둘째는 그때마다 빠르고 편한 길 보다는 국도나 지방도를 이용한다. 왜냐하면 지형 따라 돌고 도는 꼬불꼬불한 그런 길이 운치가 있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서 더 좋다고 말한다. 운전대는 아들이 잡으니까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여행을 기대하며 집을 나서려는데 카톡음이 울렸다. 우체국 집배원이 보낸 문자다. “조재태 고객님! 우체국입니다. 우체국등기를 오늘 배달합니다.” 그런데 우편발송인이 곡성경찰서로 되어있었다. 곡성경찰서에서 무엇 때문에 나에게 등기편지를 보내는 것일까 로부터 시작된 의문은 꼬리를 물고 뒷 따랐다. 머릿속이 여간 어지러웠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시내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간 적이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의문에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묘한 생각은 모처럼 나들이하는 기분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나는 내색은 자제하고 있었지만, 경찰서에서 보낸 등기우편이 희소식일리는 만무하다는 지례짐작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동안 나는 몇 차례 경찰서로부터 교통범칙금 통지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언제나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내색은 안했지만 속마음은 많이 어둡고 우울한 기분이었다. 곡성 시가지를 지날 때에는 경찰서를 직접 찾아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 혼자가 아니어서 그것도 어려웠다. 우리는 우선 곡성역으로 향했다. 거기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 것이다. 건너다보이는 곡성경찰서가 웬일인지 내 눈에 곱게 보이지 않았다. 곡성역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을 했지만, 보나마나 사진 속에 담긴 내 얼굴은 어두워 보일게 뻔했다.
우리는 곡성역에서 군도 9번 도로인 섬진강 종주 자전거도로로 접어들었다. 압록까지의 길은 정말 운치 있고 아름다운 길이다. 꼬불꼬불한데다 급경사진 곳이 더러 있는 스릴만점의 길이어서 더 좋았다. 군데군데 차들이 비켜가도록 넓은 공간이 조성되어 있어서 그나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강 건너편의 널따란 국도 17번 도로로는 여러 번 수 없이 다녔지만, 동편의 자전거 종주 도로는 이번이 처음 길이다. 강을 따라 수없이 오르내리며 다녔던 섬진강에 대한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자전거와 차가 함께 이용하는 공용도로이다. 산세가 험하고 낭떠러지와 절벽이 많아 우선 좁은 길을 그대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군도의 열악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차들의 왕래가 드물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파르고 낭떠러지가 많아서 위험한 만큼 경치는 더 아름다웠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여울목횟집 까지 찾아가서 포식한 후 귀로에 접어들었다. 구례구에서 남행하여 황전, 월등, 서면, 승주, 주암을 거치는 동안 짙푸르게 물든 산야는 너무나 아름답고 정겨웠다. 세상은 몹쓸 역병과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불안한 소식이 우리의 귓전을 두드리지만, 초여름 산야의 푸르름과 평화로움이 나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푸른 산과 온통 풀빛 녹음뿐이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꽃의 호사스러운 짧은 생명에 비하면, 만천하의 산야를 푸르름으로 물들인 녹음은 조물주의 영원한 수채화라 해도 좋을 듯싶다. 신선한 실록의 향기가 차창 속으로 밀려든다. 깨끗하고 시원한 바람이 좋아 차창 열기를 거듭했다. 둘째가 국도로 운전하기를 즐겨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 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김광섭의‘비 개인 여름 아침’의 시가 생각난다.
남광주 어시장에 들렀는데, 지금이 제철이라기에 2kg 남짓한 큰 농어 한 마리를 횟감으로 준비해 집으로 향했다. 이른 저녁을 생각하니 먼저 입에 군침이 돈다. 대문 앞에 섰다. 문을 열려는데 우편함에 곡성경찰서에서 보낸 등기 우편물이 꽂혀 있었다. 편지를 손에 든 둘째가 개봉하더니, “아버지! 운전면허증이네요”라며 그것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온 방을 다 뒤지며 찾았던 운전면허증이 곡성경찰서로부터 보내온 것이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더듬어 생각해 보았다. 달포 전 쯤, 세 분 장로님들의 초청을 받아 섬진강변 어느 맛집으로 쏘가리 매운탕을 먹으러 갔던 일이 생각났다. 귀로에 태안사를 거쳐 독도사진박물관을 들른 일이 있다. 분명 거기서 흘렸던 것 같다. 돌고 돌아 다시 되돌아 온 운전면허증을 되찾은 기분은 확실히 농어 회 맛보다 더 좋았다. 경찰서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은 희석되는 순간이다. 습득하신 분과 곡성경찰서 관계자 분들께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야 오늘 수고했다. 오늘 하루가 많은 날이 남지 않은 부모를 위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고맙다는 생각과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진한 감동을 느꼈다. (202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