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대한민국체육상 수상한 인천장애인사격연맹 심재용 사무국장
“오늘도 꿈이라는 과녁을 정조준합니다”
패기 넘치던 20대 청년의 삶이 바뀐 건 갑작스러운 오토바이 사고 때문이었다. 하반신이 마비됐고, 그는 절망했다. 재활을 하면서 접한 사격은 그런 그에게 새 희망의 끈이 됐다. 고된 훈련에 경제적 위기까지 겹치면서 한때는 선수 생활을 포기하려고도 했다. 그때마다 한 발 한 발 방아쇠를 당기며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마침내 2004년 아테네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2008년 베이징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최고의 저격수로 인정받게 됐다.
지난 10월 15일 ‘제58회 대한민국체육상’에서 장애인체육 부문 극복상을 수상한 인천장애인사격연맹 심재용 사무국장의 이야기다. 대한민국체육상은 체육진흥과 국위선양에 기여한 공로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지역 내 장애인 사격 활성화를 위해 오늘도 매진하고 있는 심재용 사무국장을 만났다.
Q. 대한민국체육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A. 제가 상을 받을 그릇이 되는가 싶습니다. 앞으로 장애인체육 발전을 위해 노력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인천장애인사격연맹은 인천 지역의 장애인 사격 활성화와 편의를 도모하는 단체입니다. 연수구에 위치한 옥련국제사격장은 휠체어 보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건축됐습니다. 장애인이 총을 지참한 채 휠체어로 사격 라인까지 스스로 이동할 수 있죠. 저를 비롯한 모든 선수가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대한민국체육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Q. 장애인 사격 활성화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선수로서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장애인 스포츠 분야에서 후진 양성은 더욱더 그러합니다. 장애인 사격은 패럴림픽이나 각종 국제대회에서 이른바 ‘효자 종목’으로 꼽히지만, 장비의 특성 때문에 접근하기 부담스러운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를 바로잡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리는 ‘미추홀 사격클럽’이나 ‘여성생활체육 사격교실’ 등을 열고 있습니다. 취미로 사격을 접하는 분이 늘어난다면 흥미와 자질을 지닌 선수 또한 곧 탄생하리라 기대합니다.
Q.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애인이 됐습니다.
A. 당시 저는 20대 청년이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났죠. 뒷바퀴가 맨홀에 걸리면서 큰 충격을 입고 쓰러졌는데, 눈을 떠 보니 척추에 심한 손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더군요. 너무나 절망적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왜 하필 내가’와 ‘이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죠. 주변에 폐만 끼칠 거라고 생각하니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Q. 사격이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줬군요.
A.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사고 이전에는 조기축구와 농구를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였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하니 견디기 쉽지 않더라고요. 재활에 수영이 좋다고 해서 복지관을 찾았지만 몸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았고, 되레 마음만 상하곤 했어요. 그때 백재환 한국장애인사격대표팀 코치님이 사격을 권해주셨고, 이것이 제 인생 2막을 여는 열쇠가 됐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곧 닥쳤습니다. 외환위기로 집안이 기운 데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장애인이 사격을 하려면 오백만 원에 달하는 스포츠용 휠체어를 비롯해 총과 실탄 값 등 거의 모든 비용을 개인이 마련해야 하기에 경제적 부담이 큽니다. 마음이 무거워서인지 훈련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6kg 소총을 드는 것도 벅차더라고요. ‘몸이 정상이었다면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닐 텐데’ 하는 자괴감도 찾아왔습니다.
Q. 난관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A. 사격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했어요. 그런데 저만 포기했지,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의 응원은 계속됐어요. “차라리 다른 일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하며 흔들릴 때, 아내가 “한 번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자”고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사고 나기 전부터 사귀기 시작해 변함없이 제 곁을 지켜줬죠. 사격을 시작하고 제 표정이 밝아졌다면서 “경제적인 부분은 생각하지 말고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재능도 있는데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느냐”고 설득했죠. 크고 작은 대회가 있을 때마다 저와 함께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믿음에 답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고, 그로부터 딱 한 달 뒤 명중률이 오르기 시작했죠. 이후 패럴림픽에 나가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고요.
Q. 장애인 사격 실업팀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A.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 사격 부문에서 실업팀이 창단된 것은 인천이 강릉과 청주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체육인이라면 누구나 실업팀 입단을 희망하지만, 장애인 체육인에게는 그 의미가 더 남다릅니다. 실업팀 소속이 되면 경제적 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고 안정감도 크거든요. 보통 세 시간 정도 훈련하고 휴식한 뒤 다시 연습하는 방식으로 속도 조절을 합니다. 초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과녁을 조준해야 하니, 심신에 가해지는 부담이 큰 편입니다. 인천장애인체육회 등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기에 온전히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돼 있습니다. 소속된 네 명의 선수 모두 수상 경력이 상당합니다.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선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죠. 앞으로 사격뿐만 아니라 장애인체육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은 실업팀이 창단되길 희망합니다.
Q. 장애인 사격만이 지닌 매력이 있다면요.
A. 기본적으로 모든 운동은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바른 자세, 움직임의 동선 등 신체를 조절해 최상의 결과를 끌어내죠. 장애인에게 운동을 권하는 이유는 체력 증진도 있으나 운동이 불편한 신체에 익숙해지고 적응하기 위한 방편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격은 절제와 인내를 기르는 데 탁월한 스포츠예요. 골볼이나 배구 같은 역동적인 스포츠에 비해 지루하지 않을까 싶지만, 실제 해보면 과녁을 겨냥할 때의 신체 균형, 목표를 향한 정신력, 표적을 명중할 때의 희열 등 모든 것이 심신에 좋은 효과를 주죠. 과거에는 관중의 응원 등 외부 요인이 선수의 몰입을 방해할까 우려해 정숙을 강조했죠. 요즘에는 규정이 바뀌어 박수 소리와 응원이 상당합니다. 0.1점 차이로 승패가 갈리기 때문에 반전이 벌어지기도 하죠.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극복상’은 장애를 포함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체육인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장애인 체육인이 사격뿐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를 당당하게 즐길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전에는 재활과 자립, 혹은 메달 획득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총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예비 사격인들이 장애와 환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들 곁에서 용기를 불어넣고 싶습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 월간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58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