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벌과 기업에 대한 길들이기 시도가 되풀이된다.
그리고 정권 말기에는 그들 간의 결탁 관계가 어김없이 드러난다.
돈과 권력의 상쟁·상생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 책은 이 물음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하(夏)·상(商)·주(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된다. 주공 단에서 마오쩌둥까지, 중국의 통치자들은 전통적으로 상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상인들은 교묘한 처세술로 이에 저항해 왔다. 상인과 관료의 이 투쟁에는 냉혹한 사이클이 있었다. 새로운 왕조의 시작 단계에서는 상인들이 조정의 비호 아래 국력 신장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로 접어들어 어느 정도 부가 축적되고 힘이 세어지면, 조정은 태도를 바꾸어 상인들을 악당 취급하고 무자비하게 검거하며 토굴감옥에 감금시킨다. 상인들은 감옥 속에서 돈과 재물을 숨겨둔 장소를 자백하라며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웬만큼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주의가 느슨해지면 그 틈을 이용하여 그때까지 살아남은 상인들은 석방된다. 이렇게 해서 풀려난 상인들은 다시 힘을 내어 일을 시작한다. 이와 같은 과정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고, 오늘날 정치인과 기업가의 관계로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잘 간추려진 중국의 역사이며, 또 한편으로는 불꽃처럼 살다 간 인물들의 연대기이자 그들이 얻고 잃었다가 또다시 얻게 되는 돈과 권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국의 5천 년 역사를 이 책은 관료와 상인, 즉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고 소설적 구성과 문체로 유려하게 써 내려간다.
중국의 전통적 지배이념이라 할 수 있는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볼 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맨 아래인 상인 계층은 노예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사익(私益)만을 추구하는 상인들은 뭔가 다루기 힘들고 순종적이지 않은 위험한 존재들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사회기강을 바로세울 필요가 있을 때 통치자들이 가장 먼저 제물로 삼은 것이 바로 상인들이었다.
그런데 관료와 상인의 관계가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관료들에 의해 상인들이 수탈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정치가 혼탁해지고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권력자들은 상인들과 결탁하여 재물을 챙기기에 바빴다. 상인들 또한 권력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면서 더 큰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저자는 “상인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재물을 추구하고, 관료들은 재물을 얻기 위해 권력을 추구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주공 단. 공자에 의해 현인으로 추앙받은 그이지만, 상인들에게는 가혹한 탄압을 일삼은 불구대천의 원수일 따름이다. 지나치게 엄격한 법 적용이 관료들의 부패는 막았을지언정 상인들의 모험심과 자유로운 기상마저 막지는 못했다. 결국 상인들에게는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졌고, 이를 견디다 못한 상인들은 미개지나 다름없는 대륙의 남부지방으로 도망가거나 해외로 탈출했다.
주공 단 외에 진시황, 한무제, 명태조와 영락제, 침략자인 원·청 제국과 일제, 장제스, 마오쩌둥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도 상인들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양쯔강 이남, 즉 고대의 월(越)나라 지역은 상인들의 거대한 유배지가 되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정치적 탄압을 피해 대륙의 남부 해안지역으로 달아난 상인들은 이곳을 영원히 변모시켰다. 중앙조정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이곳에서 상인들은 밀무역과 해적 행위 등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베이징을 비롯한 양쯔강 이북, 즉 강북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고, 상하이·광저우·홍콩 등 강남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고 선언한 덩샤오핑에 이르러 중국에도 마침내 돈의 물결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돈은 만 가지 결함을 덮어 준다.”는 속담을 부르짖으며 14억의 중국인들은 노골적으로 돈을 향한 욕망의 질주를 시작했다. 이 거대한 물결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의 거대 자본가들은 베이징 정부가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