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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바른 중생론을 위하여
갭투유 2014.02.06. 20:05
...(본문 생략)...
댓글
holyjoy 14.02.06. 20:26
모든 회원 분들이 갭투유 님과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중생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중생한 자라면서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교제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 카페가 빨리 중생론이 정립되어서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누리는 그 교제가 회원들 가운데서도 넘치는 카페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
라오스 14.02.06. 22:40
와우! 이런 분이 양무리에 계시다니요! 참으로 놀랍고 기쁩니다.
우리가 반응하지 아니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른다고 합니다. 이런 글은 두고두고 읽혀져야 합니다. 우주의 갱신을 두고 중생이라 하였거늘, 우리 같은 인간들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라오스 14.02.06. 22:56
<결국 관건은 열매이다. 성화없는 회심은 진짜인지 의심해 보아야 하고 회심 없는 중생도 진짜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인 씨 뿌리는 비유는 씨가 뿌려진다고 다 싹이 나는 것도 아니고 싹이 난다고 다 열매 맺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다시 읽어 보았는데, 이 글이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학교에서 숙제를 내 줘도 선생님이 검사를 하는데, 하물며 내 자신이 믿음 위에 서 있는가를 무엇으로 검토해 보아야 하는지, 우리는 심도 있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로빈슨크로소 14.02.06. 23:24
어이쿠야. 성경 전체를 통해 일괄적으로 연중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정리 요약해 주셨네요. 대단하십니다. ^^ 누군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너무 잘 읽었고 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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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론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 못하고는 저런 글 못 쓰는데, 저도 갭투유 님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좌충우돌 자중지란 논리를 펴고 있는 저런 허접한 글에 환호하시는 세 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젯밤 자기 전이었습니다. 라오스(정야베스) 님이 저 허접한 글을 {양무리 마을}에 사진을 곁들어 예쁜 글씨로 올리신 글을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군요. 이단 지방교회 아멘아멘 님 반론이 있어서 지우셨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단 지방교회 교인보다 독해력이 없는 이 일, 창피한 일입니다.
아래 ‘쌍가로《 》’ 속 글은 갭투유 님 위 본문 글입니다.
《결국 관건은 열매이다. 성화 없는 회심은 진짜인지 의심해 보아야 하고 회심 없는 중생도 진짜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
회심 없는 중생이 있을 수 있습니까? 즉, 살아난 자가 살아난 자로서 활동(반응)이 없을 수 있습니까?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다 베어져 불태운다는 것이다. 결국 열매 맺지 않으면 다 가짜이다.》
왜 <씨 뿌리는 비유>에서 <포도나무와 가지 비사>로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와 <포도나무와 가지 비사>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까?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리고 <포도나무와 가지 비사>에서 “나무”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잘려 불태워지신다.’구요?
이런 허접한 글을 비평하기 위해 故 김홍전 목사님 강설을 동원하는 일이 창피한 노릇입니다만, <포도나무와 가지 비사>에 대한 김홍전 목사님 강설은 아래 글을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양무리 마을}에서 있었던 토론, ‘중생자도 귀신이 들릴 수 있는가?’와 ‘중생자도 자살할 수 있는가?’ 토론 때였습니다. 성경 구절들을 대시며 “그 가능성을 1%만이라도 열어 주십시오.”라는 말쿳(라마드) 님 호소를 지지하는 의미로 제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올렸던 강설입니다. 이 강설을 올림으로써 그 토론을 끝냈던 강설입니다. 전문을 읽기 바라시는 분은 링크를 따라 가시기를 바랍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비사>를 갭투유 님과 같이 ‘중생’과 연관 지어 해석하는 신학은 펠라기안 신학의 아류 알미니안 신학입니다. 즉, ‘성도의 견인 교리’를 부정하는 알미니안 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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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GxUb/17
김홍전 [존재와 당위]
사계四季 2013.06.10. 10:06
포도나무와 가지와 열매의 유기적 연결 관계
···({양무리 마을} 시절에 옮긴 본문 생략)···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표상하는 독점적인 사실
···({양무리 마을} 시절에 옮긴 본문 전략)···
그러니까 거듭되는 말이지만,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과실을 맺고 안 맺는 사실을 보이려고 한 것이지, 그것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지체가 되는 사람과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의 사실을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비한 연합체의 사실이란 그 가지가 어떠한 결과를 내든지 못 내든지 하기 전에 이미 발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비한 연합이란 과실을 기대하는 것과 상관없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교회는 어떤 과실을 보이든 안 보이든 이미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생명의 연결의 관계가 있으면 그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관계란 단순한 생명의 연결로 나타나는 존재의 형식을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활동, 즉 생명력의 작용의 현상’을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확실히 구분하자면, “존재의 형식을 보이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이 두 가지의 문제가 늘 붙어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는 ‘존재(being)’의 문제요, 다른 하나는 ‘당위(oughtness)’의 문제입니다. 이를 간단한 말로 표시할 때 독일어를 사용하는데, 하나는 ‘존재’를 뜻하는 ‘자인(sein)’, 다른 하나는 ‘당위’를 뜻하는 ‘졸렌(sollen)’이란 말로 표현합니다. 이 ‘자인’과 ‘졸렌’의 관계를 늘 주의해야 하는데 성경에서도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가지고 이야기하신 내용을 혼동하면 중대한 오류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알미니언(Arminian)의 오류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알미니언 오류란 뭐냐 하면 “사람이 구원을 얻었다가도 어떤 조건이 불합(不合)할 때에는 구원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영원한 생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시험적(probational)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조건적인 혹은 시도적인 영원한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시도적인 상태 가운데 있어서 자기가 어떤 확실한 조건을 다 충당해야 완전하게 되고, 만일 충당하지 못할 때는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 할지라도 무실역행(務實力行)을 해서 자기가 구원을 지속해 온전히 이루지 못하면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양무리 마을} 시절에 옮긴 본문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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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창피한 일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글은 다음 글을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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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MDcs/4527
Re: 마 13장 <씨 뿌리는 비유>를 중생론 관점에서 볼 수 있을까요? →
반론의 글: 벌콥의 글 제시하겠습니다.
호 딮손 2013.12.27. 23:05
{구원론} [중생과 효과적 부르심] 부분에서 나오는 벌콥의 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때때로 “중생이 말씀을 통하여 일어난다는 의견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이 비유에서 씨앗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다. 생명이 씨앗에 있고 씨앗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새 생명은 하나님 말씀의 씨앗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첫째, 이는 도에 지나쳤다. 왜냐하면 성령이나 새 생명의 원소가, 마치 살아있는 싹이 씨앗 안에 둘러싸여 있듯이 말씀 안에 봉쇄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이 말씀 안에 계셔서, 인간이 걸림돌을 두지 않는다면 부르심은 항상 효과적이다.”고 주장하는 루터파의 부르심을 연상케 한다.
둘째, 이는 본의에 없는 점을 강요하고 있다. 구주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어떻게 말씀의 씨앗이 어떤 경우에는 열매를 맺고 어떤 경우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가?’를 설명해 주기 원하셨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경우에만 열매를 맺게 된다. 즉 마음을 예비한 자가 진리를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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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관련한 글에 대한 송인규 교수님의 설명
루터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개혁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실 때만 말씀이 효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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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평가
어떤 면에서 보면 말씀의 효력에 대한 지나친 연중론의 해석은 루터파의 해석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댓글
holyjoy 13.12.28. 07:34
이 글은 이미 제가 인용했고 제가 아멘으로 받은 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글을 연중론를 비판하는 데 활용할까요? 참으로 어이가 없는 비판이군요. 마음을 넓히지 않으면 그 마음의 틀로 억지 해석이나 적용이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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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제가 인용했고 제가 아멘으로 받은 글입니다.” → 인용해 “아멘!”만 하시면 뭐합니까? 연중론을 지지하는 글로 생각되면, 연중론에 꿰맞춰 “억지 해석이나 적용”을 해도 아무 분별 없이 무조건 “모든 회원 분들이 갭투유 님과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반기시는 일에 발이 빨라 이단한테도 창피를 당하시는데, 말입니다.
아래 글은 위 본문 글과 똑 같은 글입니다만, 무송정 목사님 댓글이 중요한 댓글이기 때문에 링크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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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MDcs/4535
Re: 씨(마 13)는 곧 중생의 열쇠입니다. →
님의 주장은 루터파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호 딮손 2013.12.28. 13:24
...(본문 생략)...
댓글
...(댓글 전략)...
무송정 13.12.28. 16:48
부르지저 님은 자기만이 성경의 오묘한 비밀을 안다고 주장하시는 인상이 짙습니다.
마 13장의 <씨 비유>는 제가 앞의 글에서 단 댓글 이상의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신비스런 어떤 의미가 함축돼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알레고리 그 이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수사학적으로 ‘부당축의’의 해석 밖에는 없습니다. ‘부당축의’에 대한 예는 가령 “계시의 정신을 허락하사”라는 구절을 통하여 일반계시가 어떠니... 특별계시가 어떠니... 하는 데까지 진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건데, <씨 비유>에서 뿌려진 씨가 맞이하는 환경을 말할 뿐이지, 그것이 중생의 씨앗이라는 데까지 유추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 호 딮손 13.12.28. 17:45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함축적이나 핵심을 파악한 무송정 님의 앞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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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홀리죠이/중생한 자라면서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교제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일 것입니다라 하셨는데 중생한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한자이지만 교제를 충만히 누리지 못할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홀리죠이님은 이것을 중생중의 사람을 말하는 것인듯 한데 중생하고도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수 없습니다. 가짜 중생이거나 연합하고도 연합의 교제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가능한것입니다,
결국 이분은 연합이 회심후에 온다는 것으로 중생의 씨를 받았을 때에는 연합이 안된상태 즉 불신의 상태로 보는군요. 주님이 중생을 하게 하셔도 불신자상태라고 하는것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2.08 1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