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후 백과사전의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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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의 화가. 호 부려(缶廬). 1844년 저장성 안길에서 태어났다.
10세 무렵부터 각인(刻人)을 좋아하고 역대 인인(印人)이나 진한 금인(秦漢錦印)의 장점을 취하여
신기축(新機軸)을 열었다. 특히 석고 문자(石鼓文字)를 모방한 글씨를 잘 썼으며,
30세 이후에는 전서(篆書) 필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50세가 넘어서 시작했으며,
화훼화를 잘 그렸다. 화풍은 서위(徐渭)나 석도(石濤)를 모범삼아 독특한 경지를 열었으며,
글씨 쓰는 법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림이 힘차고 생명감이 넘쳤다. 인보(印譜)에는
'삭고려인존', '후려인존', '오창석인존', 등이 있으며, 서화집에는 '고철쇄금', '후려근묵' 등이며,
시집에는 '후려별존'이 있다. 그림으로는 "자등도(紫藤圖)". "벽도개화도(碧挑開華圖)",
"등화난만도(藤華爛漫圖)", "옥란도(玉蘭圖)"등이 있으며, 1927년 작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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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 작, 석고문(石鼓文) 임서(臨書) 일부
중국측(학습대사전) 기록 :
이름은 쥔칭[俊卿]. 자는 샹부[香補]였는데, 중년 이후에 창숴로 바꾸었으며,
창숴[倉碩],창스[蒼石]라고 쓰기도 한다. 저장 성[浙江省] 안지[安吉]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수재였으나, 53세에 이르러 비로소 장쑤 성[江蘇省]
안둥[安東 : 지금의 롄수이(漣水)]의 현령이 되었지만 1개월 만에 사직했다.
오랫동안 뤼수이[濾水]에 살면서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저서로는 〈부려시 缶廬詩〉(4권), 〈부려인존 缶廬印存〉(2권)과 많은 화집이 있다.
그는 시,그림,글씨,전각에 조예가 매우 깊었다. 일찍이 한대의 비문을 많이 읽었고,
석고문(石鼓文)을 연구하면서 글씨를 배웠다고 한다. 전서(篆書),예서(隸書),해서(楷書),
행서(行書),초서(草書)에 모두 정통했다. 중년에는 석고문을 모방하는 데 힘을 기울였는데,
그의 글씨는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고 소박하면서도 중후하다. 만년에는 전서,예서,광초(狂草)를 썼는데,
호쾌하고 분방하다. 또 해서는 굳세고 힘이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도장 새기는 것에서는
처음에는 절파(浙派)의 기법을 배웠고, 등석여(鄧石如),오양지(吳讓之),조지겸(趙之謙)의 영향을 받았으며,
나중에 금석문(金石文)을 깊이 연구해 일가를 이루었다. 서법과 전각 분야에서도 업적이 탁월하다.
1904년 항저우[杭州]에 서령인사(西印社)가 세워져 초대 사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림은 서위(徐渭),석도(石濤),팔대산인(八大山人),양주8괴(揚州八怪)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석도의 영향이 컸다. 매화와 국화 그림은 맑고 도도하며, 운필법이 자연스럽고 붓의 힘이
종이 뒷면에 배어들 정도로 힘차서 금석문의 참맛을 맛볼 수 있다.
그의 필묵은 노련하고 중후하며 웅혼하기까지 하다. 색조는 질박하고 온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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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 작, 평평범범(平平凡凡)
마저님의 홈페이지에 실린 요약글 :
*오창석
-상해의 '해상파' : 양주팔괴의 전통을 이음
오창석, 임능, 조지겸
-초기 30~50세 : 팔대산인 영향 → 사군자, 노송 많다.
-중기 50~70세 : 조지겸, 오양지 영향 → 매화로 유명
-말기 70~84세 : 호로 복숭아 많이 그림 → 전면구도, 대각선 구도
-화려한 색과 담백한 색의 조화가 미묘한 색의 배합으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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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의 자인(字印)
①서법 → 석고문의 영향
②필법 →중봉법
③화법 → 사의적 몰골법
④화재 → 사군자, 화훼류
⑤구도 →대각선구도, 전면구도
⑥필치 → 매우 빠른속도 , 힘찬 필력
⑦색채 →연지, 청, 노랑, 밤색위주, 호분 사용하지 않았음
⑧거칠고 매우 대담하였으되 섬세와 부드러움이 조화
⑨화제, 그림, 낙관이 삼위일체
⑩화제로 인해 그림에 득특한 시의 경지가 자연히 용해됨
⑪전각과 서예에서 쌓아온 높은 수양
⑫불안한 당시 시대를 극복한 문인화가
⑬한국회화에 영향 → 민영익, 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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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 작, 홍매도(紅梅圖)
* 아래는 노시경 기자의 여행기에서 발췌한 '서령인사'소개글입니다.
신선이 살다간 고산(孤山)의 예술 향기
[2005.10.01 23:49:48] [오마이뉴스 노시경 기자]
항주 서호의 유람선에서 육지로 내려섰다. 서호 유람선은 호수 이곳저곳을 한 티켓으로 모두 둘러볼 수 있지만 일단 호수 밖으로 나가면 그 티켓으로 다시 유람선을 탈 수는 없다. 백제(白堤) 위에 놓인 도로는 온통 정비를 위해 파헤쳐져 있다. 중산공원(中山公園)도 재단장 중이라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중산공원 바로 왼편에 서령인사(西령印社)라는 곳이 있다. 입장료가 따로 없고, 그 안쪽에 중국 고가옥이 운치 있게 자리잡고 있어서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서령인사 바로 안쪽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에 서령인사 건립 85주년이라는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기념비 한자의 색이 푸른색으로 채워져 있어 묘하고 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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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령인사 회랑의 도장 작품
서령인사 기념관 안에는 서령인사 초기 설립자들의 업적과 현란한 작품들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기념관 오른편 회랑에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의 서예작품이 수도 없이 걸려 있고, 건물 왼편 회랑에는 붉은 색과 검은 색의 도장 예술작품이 즐비하다.
전자(篆字)로 새겨진 도장 예술작품들은 서령인사를 결성하여 중국 예술의 한 장르를 개척한 도장 예술인들의 걸작품들이다. 도장 안에 새겨진 문구들은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나타내고 있다.
서령인사 본 건물 뒤편으로는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언덕길의 돌계단이 이어진다. 이 돌계단은 서호의 유명 관광지와 같이 수많은 인파로 둘러싸여 있지는 않다. 그 한적함이 계속 우리 가족을 계단 위쪽으로 끌어 올렸다. 신영이는 계단을 깡충깡충 뛰어올라 엄마, 아빠를 내려보며 웃고 있다. 신영이는 요새 앞 이 두 개가 빠져서인지 웃는 얼굴이 너무 희극적이다.
이 돌계단 중간에 언덕과 돌계단을 배경으로 한 조그마한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아주 작은 연못이지만 연못이 산언덕에 둘러싸여 있으니, 그 자태가 아주 포근하다. 신영이는 역시 내 예상대로 연못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연못을 관찰하고 있다. 어린 아이도 아름다운 정경을 알아보는 눈은 어른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신영이가 연못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도록 내버려뒀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외국 여행은 시간의 촉박함을 이유로 서두르는 조급함을 버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령인사 계단 위에는 흰 벽에 목재를 붉게 칠한 건물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정말 욕심나는 도장들을 잘 포장해서 팔고 있다. 위 부분이 현란한 용 조각으로 장식된 도장도 있고, 도장을 상징하는 거북이가 한 마리씩 올려져 있는 도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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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령인사의 도장
중국에서의 도장은 관리의 직급에 따라 형태가 다른 관인으로 발달되어 왔다. 도장들 중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도장이 지위가 가장 높은 지방관리가 사용하던 도장이고, 정사각형 모양은 중급의 행정관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고위 지방관리와 중급 행정관의 관인은 은(銀)으로 만들었고, 직급이 낮은 관리는 요새도 많이 볼 수 있는 단순한 목도장을 사용하였다.
서기 960년 송나라 건국 이후 중국에서는 모든 관리들이 관인(官印)을 지급 받았고, 이때부터 중국 도장의 예술성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특히 금나라의 공격으로 송나라는 항주로 천도하여 남송(南宋, 1127~1279년)을 열었으니, 이 곳 항주는 중국 도장 문화의 역사를 장식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 서령인사가 자리한 항주의 고산(孤山)은 중국 도장문화의 아름다움을 현대에까지 전해주고 있다.
현대에까지 맥이 이어지는 중국 도장은 고급 재료를 사용하여 외국인 여행자들을 현혹시킨다. 특히 이 항주 인근에서 많이 산출되는 계혈석(鷄血石)이라는 돌로 만들어진 도장은 특히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색을 세밀하게 조합한 듯한 붉은 색의 계혈석 도장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호기심을 가지게 만든다.
서령인사의 도장들은 진열장에 예쁘게 진열되어 있고, 상품으로 팔기 위해 잘 포장되어 있다. 아내가 이 도장들을 둘러보며 내가 사용할 인감용으로 도장을 한 개 사자고 한다. 이 도장들은 예술작품에 속하지만 그 가격이 너무 비싸다. 중국은 어느 곳이나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많이 씌우므로 도장의 시세를 확인한 후 나중에 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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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에서 바라본 서호
서령인사의 돌계단은 점점 고산의 위쪽으로 이어진다. 고산에서 내려다보는 서호의 아름다움은 내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보다 더하다. 아늑한 호수 위에 호심정(湖心亭)과 원공돈(阮公墩)이 외로이 떠 있다. 산 위에 바람이 불어 마음까지 시원하고 호수에 떠다니는 유람선들은 인생의 시름을 잊은 듯이 한가로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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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령인사의 암벽동굴
고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바위에 동굴을 뚫어 통로로 사용하고 그 아래에는 연못을 만들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일본이 모방하려 했던 중국의 정원들은 직접 와서 보니 신선들이 살아가는 이상향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고산 서냉인사 암벽 앞에 자리한 정원은 묘하게 신비한 분위기를 뿜고 있다. 이 곳을 지은 신선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이 평화로움을 찾아 이 곳에 왔는지 모르겠다.
기사 출처 :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3&articleid=2005100123494818424&newssetid=768
* 블로그 파라다이스의 기사에서 발췌한 자료들입니다.
출처 : http://kr.blog.yahoo.com/ovli56/804901.html?p=5&pm=l&tc=76&tt=114890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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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령인사 현판
* 아래의 여러 사진들은 오창석 등 주요 전각가가 창작한 전각 도장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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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그림은 블로그 주인이 서령인사에 들러 그 풍경을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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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에 새겨진 서령인사의 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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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난 10월 황산을 구경하고 이튿날 서호를 가려고 소형버스로 6시간 가량 이동하면서
절강성(저장성) 지역을 지나가면서 마을들을 보니 산 아래 마을 있고 마을 앞에 백사장을 낀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마치 한시 속에서나 묘사되고 있던 그런 마을들을 많이보았습니다.
문득 산수가 인재를 만든다는 생각을 해보며 귀한 자료와 작품에 한참을 머물러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