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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필 풍속도 화첩(金弘道筆 風俗圖 畵帖) <길쌈>
규방가사에 나타난 여성들의 눈물과 해학
규방가사는 전통사회 여성들의 삶과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가 장르이다. 규방가사의 내용은 각양각색이나, 그 주제와 소재는 거의 양반부녀들의 생활주변에서 얻은 것이다. 엄격한 유교적 윤리관에 입각해서 주제와 소재를 택하였기에 교훈적인 것이 원류를 이루며, 속박된 여성생활의 고민과 정서를 호소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문물제도, 인심, 풍속, 자연에의 관조, 가문의 기쁨, 놀이의 행락 등이 아류를 이룬다. 이렇듯 규방가사는 생활을 통해 얻은 주제와 소재를 글에 나타내었기에, 전통사회 여성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되는 것이다.
여전히 생활 속에서 향유되고 있는 규방가사
전통사회 여성들의 삶은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얽매인 삶이었다. 이는 사회적인 규범으로 강요된 점도 있지만 여성들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강박적인 의식도 크게 작용하였다. 당시 여성들은 이러한 규범에 얽매여 살아가면서 그들의 삶에 대한 인식과 느낌을 방적(紡績)과 침선(針線), 민요 등을 통해 풀어내었다. 특히 전통 사회에서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일컬어지던 영남지역의 여성들이 그들의 삶과 소회를
시집가는 딸네에게 시집에 가서 살면서 지켜야 할 도리를 일러주는 <계녀가誡女歌>, 일년 중 한차례 꽃 피는 봄철에 이웃들과 화전놀이를한것을 기록한 <화전가花煎歌>,출가외인으로 치부되어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친정 부모와 동기들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한 <사친가思親歌>와 <붕우소회가朋友所懷歌>, 일가친척들의 경사(慶事-혼인, 급제, 환갑, 회혼, 돌)를 축하하는 <경축가慶祝歌>, 명승고적을 여행하고 느낀 소회를 읊은 <유람가 遊覽歌>와 <노정기路程記> 등 다양한 양상의 작품들이 전승되며 아직도 영남지역 반가(班家)여성들의 생활 속에서 향유(享有)되고 있다.
02 사적 제83호 서울 선잠단지.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씨를 누에신(잠신蠶神) 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옛 여성들 에게 빠질 수 없는 일과는 옷을 짓는 일이었다.
여자로 태어남에 대한 원망과 탄식, 남성의 졸렬한 행동에 대한 비난을 토로
이들 작품 중 여자로 태어난 것과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자탄과 원망, 그리고 그들의 상대인 남성들에 대한 부러움과 이중적 행동에 대한 비난 등을 읊은 작품에서 그들의 눈물과 해학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경북 김천시 남면 운봉에서 수집된 <여자탄식가> 일부를 보자.
어와우리 동류들아 여자탄식 들어보소 의관문물 갖추어서 예의염치 닦아놓고
(표기는 현대 철자법으로 필자가 고친 것임)
04 <화전가>. 화전가는 화전놀이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가사 내용 가운데 “근친길이 제일이요 화전길이 버금이라.”라는 말이 있듯이, 새봄을 맞아 상춘(賞春)한다는 의미와 함께 시집살이의 굴레에서 하루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어하는 부녀자들의 간절한 염원이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도 음양의 분별로서 남자, 여자로 태어난 것을 수긍하면서도 출가하면서 시작되는 여자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하는 안타까움과 자유분방한 남자들의 삶에 대한 동경을 토로하고 있다.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서 수집된 같은 제목의 가사 중에서 출가 후 여성으로서의 도리를 하며 살아가는 삶의 고달픔에 대한 토로를 살펴보자.
여자몸이 되어나서 인들아니 원통한가 된소래 큰걱정이 비정지책 무삼일고
비록 여자로 태어났지만 본가에서는 부모의 자애로운 보살핌 속에 금이야 옥이야 자랐는데, 출가하여 반가의 며느리로 입문하게 되면 봉제사(奉祭祀),접빈객(接賓客)과 방적과 침선으로 온종일 시달리며 사는 여성으로서의 숙명을 참고 견뎌낸다. “가는 허리가 부러지고 열 손가락이 다 파이도록" 일을 하고, “청렴하고 조심하야 굴나라고 하건만은 치하는 고사하고 애쓴 공덕 바이없다” 라고 탄식한다.
오히려 남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멸시와 꾸중만 일삼으니 “여자 몸이 죄가 되어 유구무언 말 못하고 구곡간장 타는 분을 속 치부만 하자하니 사사事事이 생각하니 그 아니 분할손가” 라며 지위가 낮은 여자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면서도 남자들의 무기력함과 추태를 “몇 푼어치도 안 되는 남자” 라고 가소롭고 같잖다며 강렬히 비난하고 조롱하며 여자로서의 고단함을 카타르시스하고 있다.
05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金弘道筆 風俗圖 畵帖) <신행길>.
신혼의 조심스러움,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해학적 표현으로 승화시켜
한편 혼례 후 아직 익숙하지 못한 신랑과의 해후, 그리고 시집살이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조심스러움에서 오는 불편함을 해학적인 표현을 통해 발산하기도 하였다. 경북 영천 자양면에서 수집된 <종제매 유희가>를 살펴보자.
그렁저렁 당혼하여 백년연분 즐길적에 정반상을 먹을적과 세수성적 하올적에
이 가사에서는 누구나 겪게 되는 초야의 기대감과 수줍음, 그리고 신랑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해학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첫날밤에 신랑을 바로 바라볼 수 없어 돌아 앉아 있자니 목이 빠질 듯하다는 것과 신랑 앞에서 기침이 날까 두려워하는 일 등 신혼부터 신랑에게 흉한 모습을 보일까 조심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긴장되는 시집의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함과 조심스러움을 다양한 삽화를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가사작품을 돌려 읽고 필사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의 고단함과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해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규방가사는 전통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읊어지고 있다.
06 <경계가>. 어머니가 혼인을 앞둔 딸에게 결혼해서 경계해야 할 도리에 대하여 지은 가사.
글·조춘호 대구 한의대학교 한국어 문학부교수 사진·문화재청,간송미술관,한국학중앙연구원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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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