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산악회 6월(98회. 금오산) 정기산행 안내
□ 일 시 : 2008. 6. 28(일)
□ 산 명 : 금오산(976.6m) - 경북 구미시 남통동, 칠곡군 북삼면, 김천시 남면
□ 코 스 : 약 10Km, 5시간 정도
○ 금오산도립공원 주차장→금오산성→대혜폭포→내성→금오산 정상(현월봉)→법성사→금오산도립공원 주차장
□ 준 비 물 : 중식, 간식, 식수, 여벌옷, 방풍의, 등
□ 회 비 : 20,000원
□ 차량코스
○ 시민회관(06:00)→롯데후문(06:05)→현대코아(06:10)→교보빌딩(06:15)→장미장(06:20)→운동장(06:30)
□ 예 약 : 다음 카페『예약코너』
○ 회장 011-653-9349. 부회장 011-689-1895. 총무 011-430-1206
○ 예약은 6. 25까지 부탁드리오며 성명,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세요(여행자 보험 가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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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개요
금오산은 구미의 남서쪽을 우두커니 막아선 수문장 같은 산이다.
예로부터 금오산은 태양안에 산다는 황금 까마귀 금오(金烏)가 노닐었다는 전설과 함께 신령스러운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해발 976.6m의 높이에 규모 또한 작은 산이지만 옹골차게 맺힌 벼랑바위들과 울창한 산림이 수려한 풍광을 이루고 있어 경북의 금강산이라 불리운다.
정상인 현월봉 아래로 약사봉, 보봉 등 여러 봉우리들이 생동감 있게 펼쳐지고 있으며, 도선굴, 대혜폭포, 해운사, 약사암등의 명소가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고려때에는 남숭산(南嵩山)이라 했으니 그 유래 는 중국의 황하강 유역 하남성에 숭산이라는 중국의 오악 중의 하나로 유명한 산이 있는데 그와 생김새가 흡사하여 숭산이라 명명하면서 남쪽에 있다해서 남숭산이라 하고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두어 남북으로 대칭케 되었다.
고려시대 문종은 왕자를 출가시켜 이 산에서 수도하게 하였고, 훗날 대각국사로 봉하여 호국불교로 포교와 국정의 자문에 임하도록 했으니 남숭산의 품격과 위상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금오산은 1970년 6월1일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온 국민의 자연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금오산에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명소가 채미정이다.
1768년(영조 43년) 영조 임금의 명으로 지어진 이 정자는 고려말의 대학자 야은 길재의 충절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채미( 採薇)란 다른 왕조를 섬기지 않으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는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따온 말이다.
채미정은 정면3칸, 측면3칸의 정자로 총 열여섯 개의 기둥이 지붕을 떠 받치고 있으며, 중심에 방 한 칸이 있다.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오산 북쪽 계곡 중턱에 자리한 도선굴은 금오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자연전망대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신라말 도선대사가 수도한 곳이라해서 도선굴이라고 불리우며, 임진왜란 때에는 양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도선굴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마주치는 절이 해운사이다.
1925년 척화스님이 창건한 이 절은 대웅전과 제하당, 종음각, 삼성각이 옹기종기 들어선 아담한 절이다.
해운사에서 조금 비껴 올라선 곳에는 금오산이 자랑하는 보물 대혜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높이 27m의 벼량을 세찬 기운으로 떨어져 내리는 이 폭포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릴 정도로 우렁차다고 명금폭포(鳴金暴布)라고도 불리운다.
이곳은 매년 여름철이 되면 폭포수를 맞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금오산에서 가장 인기높은 등산로는 채매정 - 케이블카 승차장 - 해운사 - 대혜폭포 - 흘송대 - 내성북문 -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에서는 보물 제490호인 마애보살입상과 용이 승천하면서 자욱을 남겼다는 용회암(용돌이 바위)등의 볼거리가 있다. 흘송대에서 시작하여 대혜계곡 - 내성중문 - 성안(마을) -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한적한 산행로로 더없이 좋다.
이 길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 금오정이 샘솟고 있어 등산객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금오산 정상 바로 밑에는 거대한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약사봉이 있다.
약사봉 아래에 위치한 약사암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암자로 불자와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외에도 금오산 입구에는 놀이동산인 금오랜드와 금오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자연학습원과 야영장이 금오지에 이어서 나타난다.
□ 주변 볼거리
대혜폭포
대혜골의 중간지점 해발800여m 지점에 위치하는 폭포로 높이가 27m(28m라고도 함)인 이 폭포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의 위력은 금오산을 진동시키고도 남는다. 금오산을 소금강이라 하는 것도 폭포 주변의 경관이 크게 한 몫을 차지했으리라.
주변의 기암괴석의 천애 벼랑이 병풍처럼 에워싼 유곡에 짚동같이 쏟아지는 물소리며, 물보라에 7색 무지개가 하늘높이 솟아 오르곤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여기가 바로 신선세계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곳이다.
1935년인가 경상북도 도지사인 일본사람이 이 곳을 찾아 주변 경관과 물소리에 그만 매료 되어 한참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 얼마만일까 옷 속에 스미는 한기에 정신이 간신히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눈앞이 막막하여 사물은 보이지 않고 그저 쾅쾅 울리는 소리만 있어 "하하 금오산을 울리는 소리"라고 탄복을 하고 자기의 시상(詩想)같은 것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석수를 불러 명금폭(鳴金瀑)이라 새기고는 신비의 극치인 이 곳 대자연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가노라고 기쁜 마음으로 취기에 흥얼거리며 하산했으리라.
그후로 한 사람 한 사람 그 글자를 보고 읽어 내려온 것이 오늘날 예사로 본 이름인냥 부르고 있다
또한 삼복더위 때 폭포물을 맞으면 땀띠가 싹 가신다고 하고 견비통(肩臂痛)이나 요통이 있으면 물을 맞아 치유했으니 요사이 성행하는 물리요법의 극치이라, 그래서 30∼40년전에는 부녀자들의 물리치료장이 되어 남정네는 감히 범접을 못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
도선굴
대혜폭포에서 병풍처럼 펼쳐있는 벼랑을 끼고 북으로 따라 가노라면 쇠사슬로 만든 난간을 손잡이로 하여 간신히 발붙일 수 있도록 약간은 다듬은 듯한 흔적이 있는 천길 벼랑 중간을 붙어 오르다 보면 해운사가 발아래 가물거리고 다듬은 길이라 하나 몇 번이고 숨을 가다듬어야 한발 한발 내 디딛을 수 있으니 오뉴월 삼복(三伏) 더위 때도 소름이 끼치니 납량(納凉)에는 다시 없는 곳 이기도하다.
구미공단과 낙동강하며 멀리 해평의 냉산(冷山) 등도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眺望)이라, 그것이 바로 극치의 풍경이라 하겠다. 수억 만년의 기나긴 세월에 풍마우세(風磨雨洗)로 시달리다 못해 움푹 패인 천연동굴로 이따금씩 박쥐나 새들이 쉬어 가는 곳을 신라 말 도선(道詵)이라는 고승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들어 참선(參禪)하여 도를 깨우쳐 우리 나라 최초의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의 창시자가 되었다 한다.
그 후 언제부터 도선굴 이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인재 선생의 일선지(一善誌)에 의하면 넓이가 16척, 높이가 15척, 안으로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구옥(構屋-얽어 만든집)이 두칸이었다 하니 내부가 30평은 됨직하고 임진왜란 때는 인동(仁同), 개령(開寧)의 수령과 향민 5 ∼ 600명이 피난했으며 왜군은 빤히 보고도 범접을 못했다 하며 통로가 개설되기 전이라 바위틈에 가느다란 쇠못을 박고 칡이나 등·넝클을 휘어잡고 올라갔다 하며, 일선지에도 도선굴이라 했으니 조선조 초(初) 부터 이름이 불려졌으리라 추측된다. 고려때는 아마 대혈(大穴) 즉 큰 구멍이란 뜻으로 불렀던 것이 굴 아래 대혈사(大穴寺)라는 절이 있었다 했으니 여기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채미정
경북 구미의 금오산 기슭에 자리한 채미정은 지방기념물 제55호로, 백이숙제의 덕을 사모하여 후학을 가르치던 야은 길재 선생의 높은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여기서 채미(採薇)는 고비(薇:고사리 비슷한 식물)를 캔다는 뜻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며 금오산에 은거한 길재를, 고비를 캐먹으며 수양산에 은거했던 백이와 숙제에 비유하여 '채미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채미정은 영조 44년(1768년)에 세워졌으며, 경모각, 구인제, 유허비, 홍기문이 있다.
약사암
경북 구미의 금오산 정상의 낭떠러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약사암(藥師庵)은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지리산 석불삼구 중 일구가 법당에 봉안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약사암의 겨울 설경은 일품이다
금오산성
금오산(金烏山, 976m)의 정상부와 계곡에 이중으로 축조한 산성이다. 규모는 외성이 길이 약 3,700m, 내성이 약 2,700m이며, 성벽의 높이는 지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북문 근방은 약 3m, 험준한 절벽 위는 1m 정도이며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말기 왜구(倭寇)의 침입 때 주변지역의 백성들이 이 성에 들어와 지켰다. 그후 조선 태종(太宗) 10년(1410)에 나라에서 크게 고쳐 쌓았으며, 왜란(倭亂)·호란(胡亂) 직후와 고종(高宗) 5년(1868)에 계속해서 고쳐 쌓았다.
성내에는 고종 때 대원군의 지시로 세운 '금오산성 중수 송공비(金烏山城重修訟功碑)'가 있는데 이것은 산성과 건물을 중수한 후 세운 기념비로 백성의 생업 종사 및 태평성대를 구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박정희대통령 생가
제5대∼제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이 태어난 가옥이다. 1917년 11월 14일 아버지 박성빈과 어머니 백남이 여사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구미초등학교와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박대통령은 재임 중에 조국 근대화, 새마을운동,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경부고속도로 건설, 자주국방 확립 등 여러 방면에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
대통령이 태어난 아랫채는 좌측에 앞뒤로 1칸씩의 온돌방을 두고 우측에 방앗간과 외양간 1칸씩을 배치했으며, 앞쪽 온돌방이 박대통령이 공부한 방이다. 그 외에 안채, 관리사가 있으며, 생가 입구 좌측에 분향소가 있다
첫댓글 생생한 사진과 자세한 설명.. 금오산 한바퀴 다돌고 온 기분입니다... 역사와 문화적가치가 있어 꼭 가고픈 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