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후백제의 꿈>/구연식
어떤 외압적인 행위도 없는데 집안에만 붙박이처럼 틀에 박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으니, 평소에는 잘 나가지 않던 외출의 유혹이 더 등을 떠민다. 인터넷을 뒤적거려 강경읍 금강지류에 있는 ‘옥녀봉’과 연무읍 부근에 있는 ‘견훤왕릉’이 색다른 곳이어서 나들이 목적지로 정했다.
옥녀봉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하며 놀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옥녀봉 공원으로 올라가는 소라 등껍질 같은 나선형 길을 돌고 돌아서 봉화대까지 오르니, 갑작스러운 짭조름한 강경 새우젓 강풍이 불어 단단히 신고식을 치르게 한다. 강풍에 갈댓잎들은 성난 파도처럼 그칠 줄 모르며 금방이라도 쓰나미가 되어 옥녀봉으로 밀려올 기세였다. 옥녀봉 정자에서 바라보면 사방이 거칠 것 없이 훤하고,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강 건너 들녘에는 논산지역의 특용작물 재배 딸기밭 집단단지 수만 평의 비닐하우스가 강풍에 살아남기 위해서 땅에 넙죽이 엎드려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강풍 속에서도 산과 강과 들이 끄떡없이 의연함을 보니 조상님들의 호연지기를 길러줬던 대자연의 경외스런 마음이 숙연해진다.
강경읍을 벗어나 연무읍 쪽으로 자동차로 15분가량 가니 견훤왕릉甄萱王陵에 닿았다. 이곳은 내가 수없이 지나다녔던 길목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왜 지나치고 이제야 왔을까? 1,000여 년 전의 견훤대왕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설렘을 가득 안고 왕릉 둘레 길을 오르고 있다. 그런데 성공하지 못한 왕릉이라 지방문화제 보호지역이라는 선입감이 곳곳에서 눈에 밟힌다. 노면은 잡초로 무성하다. 왕릉이 있는 정상에 오르니 아직은 이른 봄이기는 하지만, 잡목이 너무 많이 우거져 모두 이파리가 무성하면 시야가 가릴 것 같다. 휴식 벤치도 변변치 않고 각종 쓰레기 투기도 방치된 느낌이어서 국가 문화재 승격이 아쉽다.
산등성이 넘어 연무대鍊武臺에서는 대한민국의 국방을 책임질 젊은 군인들의 힘찬 훈련 기합 소리가 이곳까지 지축을 울린다. 후백제로 후삼국을 통일하려다가 지하에 묻힌 견훤의 영혼 응어리가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육군이 훈련하는 요람으로 만들었으며 이제는 후삼국의 통일이 아닌 남북통일 염원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자연의 세계는 필연적이고 우연은 없다. 그러나 인간 세계 위업偉業은 노력과 영감靈感 없이는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인간의 영감은 영특한 총명聰明의 발상도 있겠지마는 신神의 계시를 믿고 싶다. 어느 군사 전략가에게 견훤 장군의 원혼冤魂의 울부짖음이 은연중 수없이 있었으리라 믿어진다. 후백제 부흥의 꿈을 이루고자 칼을 갈고 활시위를 수없이 당겼을 견훤대왕, 묘지 형태나 주위의 조형물을 볼 때 그 당시는 후백제의 부활도 실패하고, 몰락한 죽음이어서 장례 의식도 초라하게 치러졌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들 가운데 작은 야산에 묻었으리라. 이곳이 견훤왕릉이라는 표시는 행정관청에서 설치한 작은 안내판과 1970년 견 씨 문중에서 세운 비석 「後百濟王甄萱陵(후백제 왕 견훤릉)」이 유일하다. 소박하다 못해 쓸쓸하고 적막하기까지 했다. 정말 여기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묘란 말인가?
견훤이 넷째 아들 금강金剛에게 왕위를 잇게 하려다가 맏아들 신검神劍의 반란으로 실패하고, 금산사金山寺에 갇혔다가 몰래 도망하여 고려에 항복, 후백제가 멸망하자 울분과 번민에 싸인 채 등창背瘡으로 연산連山에서 죽었다고 한다. 견훤은 죽음 앞에도 제국의 꿈 남쪽 하늘 끝 완산 벌 전주를 그렇게 그리워하여, 묘의 좌향도 전주 쪽을 향했다는 전설이 있다. 묘지의 참배를 마치고 주위를 살펴보니, 허름한 철책 아래 석축 사이에 때 이른 제비꽃 한 송이가 보랏빛으로 견훤대왕의 피멍을 토해내듯 나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눈시울을 젖게 했다.
아쉬운 견훤왕릉 참배를 마치고 주차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출입문을 열자마자 자동 센서에 의해 동시 홍보 녹음방송이 나왔다. 견훤 왕릉 해설보다는 행정당국의 홍보 내용 일색이었다. 견훤 왕릉이 있기에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는데 견훤 왕릉 방송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참으로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후백제의 영토로써 나는 후백제의 유민遺民이 틀림이 없다. 한때는 영토와 백성을 지키려 했던 장군에게 죄스러움을 가득 안고, 장군이 그렇게 가고 싶었던 모악산 기슭을 돌아서 어느 사이 나의 애마愛馬는 전주성에 입성하니 천여 년 전의 후백제 군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귓전을 진동하며 다가오는 것 같았다. (2024.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