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동안 기차, 버스, 4 wheel drive, 비행기로 남한 보다 70배가 큰 호주의 1/4를 돌았다.
시드니에서 1150 km 떨어진 호주의 내륙에서 가장 큰 광산 도시인 broken hill로 가는 길이었다. 가는 도중 사방을 돌아 보아도
지평선뿐인 한 없이 밑밑한 평원을 달리다가 잠시 쉬어가기 위해서 화장실이 있는 Rest area에 들렸다. 놀랍게도 사람은 없고 야생의 염소들이 모여 있었다. 웬 염소 떼가
모였는가 했더니 빗물을 받아 놓는 물탱크가 있어서 물 냄새를 맛고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뭄으로
탱크에 물은 없고 수도 꼭지 부분이 습기에 젖어 있을 뿐이었다. 불쌍하게도 양 한 마리가 혀로 습기를
핥고 있었다. 양들은 모두 비썩 말라 있어서 모두 비루 먹은 강아지처럼 초췌한 모습들이었다. 도대체 양들이 한 모금 마실 물도 없는 이 황량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자연발효식 화장실이 있고 용변 후에 손을 씻을 수 있는 물을 저장해 놓은 물탱크에는 물이 있었다. 가는 길을 늦더라도 양들에게 물을 주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물을 줄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급한 김에 차에 있는 아이스 박스에 있는 음식들을 꺼내놓고 물을 받아서 주기로 했다. 혹시 레인저가 보더라도 사람의 손을 씻는 것 보다는 생명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는가라는 주장을 할 생각으로 수도 꼭지를 열고 아이스 박스에 물을 받았다. 수도 꼭지를 틀자마자
염소들이 서로 싸우며 달려드는데 새끼들과 약한 놈들은 먹을 기회가 없었다. 물이 한 없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질서유지 차원에서 약간의 공권력(?)을 행사해서 힘센 놈은 뿔을 잡아서 뒤로
빼고 약한 놈들이 물을 먹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거친 황야에서 자라서인지 교양이 없는 염소가 물을
먹을 만큼 먹고 감사 하다는 '음메' 소리 한 마디 없이
유유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세상에 태어나서 최대로 보람을 느낀 날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동영상을 찍어서 페북에 올렸더니 호주는 야생 염소가 너무 많아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좋은 일도 상황을 모르고 하면 넌센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황량하고 끝이 없어 보이는 호주 내륙의 한 복판에 있는 out back 오지의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Broken Hill에 도착해서 놀란 것은 이런 곳에 누가 올까 싶었는데 숙소를
잡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영화 mad max의 촬영장이기도
한 120년 전에 지어진 Silverton이라는 동네에 들어가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동네 감옥의 2평 감방의 방문들이 10 mm의
철판으로 되어 있던 것이었다. 한 사람을 가두어 두는 곳에 10 mm의
철판을 사용할 정도로 나무 보다는 철이 더 흔한 광산촌이기 때문이다. 담장도 나무는 볼 수가 없고 전체가
철제로 되어 있었다. 철 구조물을 만들기가 용이해서 Mad Max를
촬영하기가 수월했다고 한다.
세계 최대의 철광석을 생산하는 BHP회사가 태동한 곳이기도 해서 차에서
내려 걸으면 땅만 보고 다녔다. 혹시라도 파다가 떨어뜨린 금이나 은 조각이라고 줍는 행운(?)이 있을까 싶어서......
.
그러나 금 덩어리를 줍는 것 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더 귀한 일이다. Broken
Hill에서 다시 560 Km를 달려 아델라이드로 가서 박세진 교수를 만났다.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박 교수와 북한에 관한 대담프로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최근에 북한을 2번 방문한 박 교수는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 사회학자로서
냉정하게 제 3자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박 교수는
외국인으로서 민족, 조국, 통일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신은미, 주성하 기자와는 또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에게 있어서 먹고 배설하는 생리작용 다음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런데 생각을 하는 일에는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도구가 있어야 한다. 책, 컴퓨터 등이 도움이 되는 도구이지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대부분의 깊은 생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이번에 4박 5일 동안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일 매일 만나는 사람이 모두 나의
생각의 도구들인 것이다.
이민생활의 어려운 점 중에 하나는 사람 수가 적다 보니 마음 편하게 만날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평생 직업이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점이 가장 힘든 것이다. 가만히 누워서 누구를 만나볼까 하고 생각해보면 정말로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해보면 모두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다른 사람 입장에서 나를 생각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을 생각할 때 내 입장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균형감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균형이 맞지 않는다. 건물이 구조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으면 불안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모두가 치우쳤다’는 바울의 말대로이다.
실제로 말과 행동, 이성과 감정. 공감능력과
표현능력 등의 균형이 맞는 사람을 찾기는 매우 힘들다. 한 사람씩 따져보면 모두가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편한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는 내 자신이
얼마나 수용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맞추어야지
별 수 있나?”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을 칭찬 하는 일에 절약정신이 투철한 아내는 나에게 “당신은
속도 없냐?”고 한다. 아내는 어느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고 그 대신 자기 기준에 적합하다
싶으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누구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나중에 실망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한다. 생각해 보면 아내의 말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아내는 누가 실수를 크게 하면 ’나쁜
사람은 아닌데…’라고 말한다. 반면에 나는 “결과가 나쁘면 나쁜 사람인 것이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사람을 품었다가 버릴 때도 미련 없이 버리고 아내는 사람을 잘 품지도 않으니 버릴 사람도 별로 없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나 자신도 아내의 기준에 의하면 균형이 맞는 사람이 못 되는 것이다.
매사에 첨예하게 대립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북한 문제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균형감각을 가지고 바라 볼 수 있는 시각이 중요한 것이다.
대담 내용은 다음 주소에서 볼수 있다.
ttps://www.youtube.com/watch?v=O4Ii6Ufu0co&t=8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