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한 국민성을 가진 일본에서는 경차의 보급률이 전체 승용차 판매량의 절반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네,
우리나라에서도 경차는 연비도 좋고 세금도 싸고 공영 주차장 주차료도 할인되며 고속도로 톨게이트비도 쌉니다.
당연히 경제적인 메리트가 있죠.
하지만 IMF 이후 최대의 불황을 맞은 작년에도 경차의 수요는 그다지 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모닝이 히트를 쳤지만
그만큼 마티즈가 덜 팔리는 바람에 전체 경차 판매량을 놓고 보면 그닥 변화가 없었죠. 대체 왜 그런 걸까요?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자신의 신분을 자신이 소지한 옷이나 시계,
자동차와 같은 상품으로 인정받으려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가 유독 심한 건 분명합니다. 외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인의 특성을 조사해보면
항상 순위에 빠지지 않고 있고 가깝게는 미수다에서도 언니들이 자주 지적하는 내용이기도 하죠.
외국인들의 동호회와 우리나라 동호회들을 봐도 그 차이가 확연합니다. 자전거 동호회를 예로 들면,
외국에서는 값이 싼 자전거와 비싼 자전거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고가의 자전거를
위주로 회원들이 형성되어 있는 역피라미드 구조죠. 정확한 비율은 모르겠습니다만
게시판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개 100만원짜리 이상을 타고 있더군요. 거리에는 10만원짜리가
제일 많은데 말이죠. 뭐 그만큼 자전거를 좋아하니까 비싼걸 타는 거고 동호회 활동 씩이나 하게 되는 거다…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모터사이클 동호회 중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H사나 B사의 일부 동호회들은 더 심합니다.
양사 모두 가장 가격이 저렴한 저가형 모델은 같은 브랜드로 쳐주지 않기도 합니다. 물론 개 중 일부이긴 합니다만,
이는 제가 직접 겪은 일화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고가 모델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더군요.
그제서야 알아차리고 “이런 속물들…” 하면서 탈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돈 많은 사람 모임이지 어디 모터사이클
동호회입니까? 얕잡아 보이는 건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으니 참을 수 있어도 속물들과 어울리기는 죽어도 싫더군요.
갑자기 흥분해서 글이 옆으로 샜는데-_-; 경차의 판매량도 물론 얕잡아 보이기 싫거나
자동차로 인해 나의 신분을 낮추고 싶지 않은 이유가 제일 클 겁니다. 이른바 한국인의 체면 의식 같은 것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실제 부당한 대우를 겪기도 합니다. 경차 타고 청담동 카페 가보셨나요? 저는 가봤습니다.
심지어는 경차 타고 명품관도 가봤습니다-_-; 자기 가게에 경차 타는 사람이 들어왔다는 게 쪽팔려서 그러는지,
발렛도 해주지 않고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다 세우라고 지시하더군요. 나아가 소개팅이나 선자리에 경차 타고 나오면?
동창회에 경차를 타고 나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런데도 경차가 실용이라고 할 수 있나요?
때론 경제적 실용보다 사회적 실용이 앞설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속물들이라 경멸하는 저 역시 길거리에 나앉는 한이 있더라도
경차는 안 탈 것 같습니다. 그것은 체면 치례 따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차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공도라는 현실에서 운행되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사고 나면 죽을까봐 일까요? 아닙니다. 까짓 거 사고 안 내면 되죠. 세계에서 운전 험한 나라로 손가락에 꼽는
대한민국에서 죽을까봐 중형급 탄다는 거 보면 정말 우습습니다. 운전이 험한 사람일수록 안전한 차를 강조하더군요.
정말 웃깁니다. 경차로 인해 비하 당한다면 어차피 저부터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길 거부할 테니 무시하면 그만이고요.
그런데 공도에서는 경차로 인해 실제적인 위협을 종종 겪습니다.
진짜루요. 이와 관련해 EBS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군요. 일단 영상을 한 번 보시죠.
보시다시피 신호등 앞에서 비키라고 빵빵대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에쿠스는 10초, 마티즈는 3초입니다.
공중파 방송이라 젊잖게 실험해서 그렇지, 만약 끼어들기로 실험해봤으면 아주 난리 났을 겁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대학교 다니던 시절 우연히 친구의 경차를 몰고 동대문에 갔었습니다.
남산을 넘어 내려오는데 누가 자꾸 뒤에서 클락션을 울려대더군요. 그냥 급한가 보다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나중에 쇼핑몰 쪽으로 진입하는 구간에서 그 차 앞으로 끼어드려 하니 하이빔이랑 클락션을 동시에 울려대면서
아주 생 난리를 치더군요. 제가 무리한 끼어들기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운전자들 사이에서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 One by on-e 이라고… 어쩔 수 없이 끼어들어야 하는 교통 상황에서
하나 보내주고 하나 가고, 요런게 반복되는 일상적인 상황. 저보다 한참 앞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진행되던 상황이었고
제 차례가 왔을 뿐입니다. 뭔지 아시죠?
영동대교 진입로입니다. 오른쪽 진입로를 잘 보시죠.
두 개의 진입로가 하나의 차선으로 합쳐지는 형태입니다.
one by on-e이 이루어지는 케이스라 할 수 있죠....
제가 또 욱한 성질이 있어서 오기로 끼어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차에서 내려 제 차로 성큼성큼 다가오더군요.
저도 성질이 있던지라 (평소에는 진짜 상냥합니다. 오해마시길-_-;;;) 차에서 확 내려 “뭐? 어쩌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마티즈에 이렇게 덩치 큰 사람이 타고 있을 줄은 몰랐나 봅니다-_-; 안 그래도 제가 덩치가 좀 큰데다
인상도 무섭다는 얘길 많이 듣는 편이라 그런지 갑자기 꼬릴 내리며 “아 위험하게 끼어들면 어떡해요…
그냥 가세요.”라더군요ㅡ_ㅡ 대체 누가 위험한 건지… 쩝. 그냥 갈리가 있나요.
“눈 깔아라” 해놓고 한참을 도로 한복판에 세워놓고 일장 훈계를 늘어놓고 왔죠.
그런데 거의 서있다시피 한 정체상황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고속도로에서 저런 사람들과 조우했다면 어땠을까요? 심각한 사고를 겪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위협운전에 끼어들 타이밍을 놓치고 우왕좌왕하다 무리하게 끼어들어 큰 사고를 낸다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길거리에 나앉는 한이 있더라도 안 타겠다고 했지만, 백번 양보해 저는 탄다고 치더라도
부모님이나 제 아내가 될 사람에게는 절대로 경차를 못 타게 할 겁니다.
사고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제 소중한 사람들이 다른 운전자들에게 겪게 될 위협과 수모를
알게 된 이상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죠. 일본처럼 경차 보급률이 절반에 가까운 상황이 되면 모를까… ‘
까짓 거 나는 대접받고 싶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 시선 따위 신경 안 쓰니까 괜찮아’라 생각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같은 민족의 국민성을 비하하며 제 얼굴에 침 뱉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이런 뿌리깊은 속물 근성은
대통령이 나선다 해도 바꾸기 힘들 겁니다. 인종 차별법 이전에 경차 차별법부터 만들어 규제라도 해야 하나
쩝… 이럴 땐 한국인이라는 게 솔직히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