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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꾀 12:10~15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 들인지라
하나님의 일하심 12:16~20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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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아브람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바로에게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바로는 사래로 인해 아브람을 후대합니다. 하나님은 사래를 아내로 삼은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십니다. 아브람은 아내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애굽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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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축복의 땅이라고 생각했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는 자처럼 행동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라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근이 심하여도 그곳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천수답과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기근이 들어 애굽으로 가고자 했던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가나안 땅을 떠나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모든 아내가 분노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숨 때문에 아내를 누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무능한 남편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문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가나안을 떠났던 것처럼,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고 그의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숨과 아내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아브라함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합니다. 바로는 거짓말하는 아브라함에게 후대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합니까? 세상의 상식으로는 아브라함이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가 큰 재앙을 받습니다. 바로는 "내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분통을 터트리지만, 아브라함을 해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받은 큰 재앙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바로는 그들이 자기와 상관없는 자가 되길 원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십니까?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사건을 통해서 그는 얻은 소득은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얻은 소득은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기 위하여 복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불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순종하기보다는 세상의 힘에 의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하늘의 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그의 언약을 지키셨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하게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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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속의 땅을 벗어남 (10절)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간다(8-9절). 이곳이 약속의 땅인 줄 알면서도 이미 정착한 가나안 사람들이 있으니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옮긴 것이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온다. 아브람은 기근이 와서 남방으로 간 것이 아니다. 남방으로 옮겨 가는 중에 기근이 온 것이다. 결국 그가 약속의 땅을 벗어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결론으로 심한 기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성도는 자기 욕심 때문에 기근이 온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 거하며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약1:4).
●내 욕심과 염려 때문에 겪게 된 기근은 무엇인가? 기근을 핑계 대며 약속의 땅을 벗어난 적은 없는가? (10절)
2. 아브람의 거짓말 (11-16절)
아브람은 자신의 아리따운 아내 사래가 애굽 사람의 표적이 될 줄 알면서도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아내 때문에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려웠던 그는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다. 또한 애굽의 고관들이 사래를 바로에게 바치겠다고 하자 아내를 파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2절)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은 채 예수님의 조상이 될 사래의 몸을 함부로 여긴 것이다. 그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며 자기 염려를 합리화하다가 거짓말하고, 아내를 팔아먹기까지 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염려와 두려움이 나의 신앙을 좀먹고 거짓말로 이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다가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는가? (11-13절)
3. 바로의 집에 내려진 재앙 (17-20절)
비록 사래가 바로의 궁으로 들어갔어도 약속의 자손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은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다. 장차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될 사래이기에(17:16) 아브람이 큰 실수를 저질렸음에도 은혜로 구원해주신 것이다. 한편 하나님이 재앙을 주신 것을 알게 된 바로는 아브람을 원망하며 그에게 사래와 그의 소유를 내어준다. 우리는 나의 연약함 때문에 바로처럼 수고하는 가족과 이웃이 있음을 알고 그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또한 이 모든 과정에서 잠잠히 순종한 사래처럼 가족과 이웃이 큰 실수를 해도 은혜로 구원해주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그럴 때 그 은혜를 누리며 영적 자손을 낳게 된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나 때문에 수고하고 있는 가족과 이웃은 누구인가? 하나님을 믿고 잠잠히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7-20절)
기도하기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벗어나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을 염려하다가 심한 기근을 만난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럼에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저희 가정을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 내 염려와 불안을 내려놓고,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아멘.
오늘의 중보기도-
염려와 불안 가운데 있는 학생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여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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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20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아브람의 후손에게 주신다 약속하시는데~ 아직 자손이 없을 때 아브람에게 약속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약속이 아닙니다
그 땅에 머물라 하시는데 이미 살고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피해 점점 남방으로 내려가다 기근이 들어,
기근이 심히 들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나오미도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자 모압 땅으로 내려갑니다
성경에서 기근이 들자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나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난 일에 대해
아무런 말씀을 안하시기에 나도 남에게도 무슨 힘든 일이 있어도 그곳에 머물러라 강요하거나, 그
교회에 머물지 않아서 사래가 고난을 당하고 나오미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다라고 정죄해서도 안되고
정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서 그렇게 고난 당했다고 ,여기가 약속의 땅이니 떠나면 고생 죽어라 한다는
이 정죄감을 심어주는 말들에 사로 잡혀 참 괴로웠습니다
믿음으로 할 수 있다 믿음으로 견딜 수 있다면서 여기 머물러라 밀어 부치면 결국 그것이 바벨탑입니다
내 능력을 증명해보이고 내 의를 챙기기 급급해지는 정신이 바벨 정신입니다
아브람이나 나오미나 우리 모두 다 연약한 존재,나는 그저 연약한 존재일뿐입니다
그 일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연약한 나를 위해 일하신 하나님,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었으니 은혜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가까이 이르러서 사래에게 말하기를 나는 애굽 사람들이 두려우니 아내가 아니라
내 누이라 하라 합니다
그런데 사래는 아브람의 말도 안되는 그 말에 순종합니다
바보같은 남편,자기 살기 위해서 아내를 팔아먹은 이기적인 사람인데 사래는 이런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
이 모습을 통해 사래가 아브람 보다 더 낫다거나 그런 윤리 도덕적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 중인데~ 아브람의 이런 연약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더욱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람을 순종하였듯이 아내들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딸이 된다고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
나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딸이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남편일지라도 순종하도록 그 순간 붙들어 주신 것이었지
내가 더 잘나서 순종한 것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나보다 믿음이 없어 보여도 예수를 믿고 있으면 남편을 대할 때 주님처럼 대하는 순종,분통 터지고
찌질이 같고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의 요구를 순종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람과의 약속을 ,아브람을 축복하면 복을 받고 아브람을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다 하신 약속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는 아브람을 만나며 나의 인생이 성경으로 해석되고 해결 됨을 볼 수 있으니 은혜입니다
사래의 아름다움을 보고서 바로의 대신들이 바로 왕에게 보고하자 바로 왕이 사래를 자기 아내로 데려오면서
아브람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나귀와 약대를 주었으니~ 아브람은 마누라 팔아서 부자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안에 큰 재앙을 내리자 바로가 놀라서 아브람에게
왜 그렇게 말하였느냐면서 사래를 데려 가라고 해서 아브람은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데리고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이 잘못하였는데 재앙은 바로 왕이 받습니다
바로왕은 사래를 강제로 빼앗아 온 것도 아니고 아브람의 여동생이라 하니 지참금을 후히 주고
정당하게 데려왔는데 하나님이 바로의 집안에 재앙 내린 것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려주십니다.
이 세상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기에 세상의 기준을 무시,세상의 질서를 보시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관점이 아직 세상의 기준과 인본주의 관점에서 완전하게 벗어 나지 않은
나에게 어려운 부분입니다만~
그러나 알아야 하는 중요한 관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단지 이 세상의 윤리 도덕적 삶에서 조금 나은 삶으로 착각하고
살 수 있다는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별 소용이 없게 되는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하셨는데 아이를 못낳는사래에게서 이삭이 나오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기에 아브람이나 바로 왕이
하나님의 약속을 망칠 수 없음을 알게하시고 !
연약하고 하는 일이라고는 실수 투성이인 나이지만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셨기에 보호 하시는
은혜를 알게하십니다.
하나님 약속의 능력이 이 연약한 아브람에게 나타난 것을 통해 나를 양육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이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간 일로 바로 왕이 재앙을 만나 아브람을 함부로 손대면 안되는
사람인줄 알고 놀랍니다만 바로왕 보다 더 놀란 사람은 아브람입니다.
내가 잘 못해놓고, 잘 못 안한 사람처럼 깨끗하고 순결하다 인쳐주시는 이 기적에 가장 놀란 사람은 나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뭐고 간에 자기 살기에 급급하였는데 세계 최대의 강대국인 애굽의 왕
바로가 벌벌 떠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아브람 하나 죽여도 상관없는 바로 왕에게서 살아 나왔고
재물도 얻고 아내도 찾고...
놀랠루야를 외친 아브람!
이런 기적을 만난 자가 바로 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복의 사람으로 부르셨기에 아브람을 선대하면 복을 받고 아브람을 해치면 해를 받는
하나님의 약속,세상이 그 약속을 알든 모르든간에 세상의 윤리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시는 하나님을 알면서
두렵고 떨리는 일은 예수의 죽음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던 세상과 나의 죄입니다
교회와 예수님을 핍박하고 조롱하던 나는 저주 받아 지옥 가도 당연했는데~내가 예수님을 죽인 자가 맞다
시인이 되고,오직 예수님으로만 복을 받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 되고 믿어지는 지금 이 순간이
날마다 묵상하게 하시는 순간들이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는 자로 재창조 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 죄에 대한 개념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롭게 세워져가고 하나님이 죄라 하시면
죄이고 아니라 하시면 아닌 나로 지어져 갑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아브람이기에 그가 연약하여도 누구도 그를 해하지 못하도록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거합니다
아브람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나가시니 은혜가 하시는 일을 찬송할 일만 있습니다
연약한 이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셨으니~ 한 걸음 더 가까이 하나님의 은혜에 다가가게 하신
오늘입니다
아브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신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열심히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고 계시는
그 사랑에 놀라며~두 손 들고 찬양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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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7절 깨어질 위기에 놓인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내십니다. 사람은 연약하기 때문에 늘 실패할 위험이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실패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우리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부르신 자들의 실수까지도 은혜로 극복하셔서 궁극적으로 우리 삶에 유익이 되도록 이끌어주십니다(참조. 45:5-8; 롬 8:28)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0절 극심한 기근을 만난 아브람은 곡식이 풍족한 애굽에 ‘거류’하려 내려갑니다. 잠시 머물려는 것이 아니라 오래 정착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선택은 ‘땅’에 대한 약속을 좌초시킬 위기를 가져옵니다. 곧바로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들을 나라 밖으로 인도하신 것을 보면(20절) 아브람의 결정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의 결과였습니다(46:2-4). 가나안에 머물러야 할 때도 있고, 애굽으로 내려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내 욕심인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 살펴야 합니다.
11-16절 애굽에서 아브람은 사래를 누이라 속임으로, 하나님이 주신 ‘후손’에 대한 약속마저 위기에 빠트립니다. 자기 목숨을 염려한 탓에, ‘큰 민족’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잊은 것입니다. ‘약속’을 기억하고 사래를 보호해야 마땅할 아브람이 오히려 사래를 팔아 자기 안위를 보장받고 바로의 재물을 얻습니다. 삶에 기근이 찾아오고,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아브람처럼 불신과 불순종의 대가로 헛된 안전을 도모하지 않습니까?
18-20절 바로가 아브람을 꾸짖습니다. 그의 책망은 정당합니다. 아브람의 불신이 바로를 재앙에 빠트렸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는 자로 부름받은 아브람이 바로에게 ‘저주’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소망을 주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오히려 세상의 근심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꾸짖고 회개를 촉구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꾸지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입을 빌어 교회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어야겠습니다.
기도
삶에 닥친 기근과 혼란한 상황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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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20 인간의 실수에도 무효화되지 않는 언약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
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복의 근원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이다.
믿음의 조상으로 삼기 위해서 이였다.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하란 땅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갔다.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러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7)
말씀에 순종해서 떠나라 하면 떠났고 또 여호와를 위하여 예배도 드렸다.
이정도 했으면 하나님도 만사형통하게 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르심을 좇아 가족도 버리고 친척도 버리고 정든 고향 마저 버리고
최선을 다해서 온전히 순종해서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 끝 행복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그 땅에 어렵게 찾아 갔는데 당장 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10) 고민스럽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브람에게 배우는 한가지는 갈대아 우르 땅으로 되돌아 가지 않았다.
고향 친척 집으로 되돌아 가지 않았다.
생존을 위협 받는 정도의 문제에 부딪칠 때 어떻게 해야하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브람은 약속의 땅을 버리고 생존을 위하여 애굽에 살기 위하여 내려간다.(10)
잠시 고난을 피해 볼 속셈이였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11)
애굽 사람이 볼 때 나는 죽이고 당신을 살릴 것이다(12) 추측한다. 걱정한다.
아내의 예쁜 것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은 아브람 밖에 없지 않을까?
아브람의 마음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아브람이 잔 머리를 굴린다.
아내라 하지 말고 나의 누이라 하자(13)라고 사래에게 부탁한다.
아브람이 이 거짓말 한 것 때문에 톡톡히 고난을 당하게 된다.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 (14)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고(14)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다.(15)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던 때가 75세였다.(4)
그러면 아내 사래는 65살이다. 127세에 돌아 가셨다.(창23:1)
65살 아내가 심히 아리따웠으니 더 젊었을 때는 어떠했을까 싶다.
90살에 첫번째 아기를 낳았으니 65살이면 아직도 한참 때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래는 참 예뻣었나 보다.
아내를 빼앗은 애굽의 바로 왕은 결혼지참금 같은 하사품을 아브람에게 준다.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다.(16)
애굽이 왕이 참 흡족했나 보다 생각보다 많은 보상을 해 준 것 같다.
그러나 아브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세상에 자기 아내를 팔아 먹는 못난 남편이 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하여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갔지만
아내까지 빼앗기고 망연자실 멘붕 상태일때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향할 때도 침묵하시던 하나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일 때도 침묵하시던 하나님
아내를 바로 궁으로 데려 갈 때까지도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린다.(17)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리고 가라(19)라고 한다.
바로가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20) 할렐루야
그러나 아브람은 이방 사람 바로에게 심하게 책망을 받는다.
네가 어떻게 내게 이렇 수 있는냐?(18)
네 아내라고 왜 말하지 않았는냐?(18)
하나님을 대신한 이방 사람에게 욕을 먹는 모습이다.
이런 책망을 받을 때 아브람은 참 부끄러웠을 것 같다.
특히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이런 부끄러움 당하지 않도록 믿음으로 살자.
더구나 불신자들 앞에 부끄러운 일 당하지 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아멘.
하나님 아버지
믿음으로 순종하며 갔지만 생각지 못한 기근을 만날 때
생존의 문제로 고민을 해야 하는 그 때에도
당신의 약속을 굳게 붙잡는 인생되게 해 주옵소서.
기근 위에 역사하시는 당신의 손길을 봅니다.
비록 생존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해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인생의 삶에도 개입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바라는 것은 불신자들에게 부끄러움 당하지 않도록
성령님 나를 붙잡아 주옵소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의 보혈의 손길을 거두지 마옵소서.
실수가 없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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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근과 애굽 이주(12:10~13)
아브람이 신앙을 위해 믿음의 결단을 내린 직후에 바로 시련이 닥칩니다. 약속의 땅에 기근이 온 것입니다.
아브람은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이주합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최우선으로 삼지 않은 행위입니다.
하지만 애굽에는 더 큰 어려움이 놓여 있습니다. 사래의 미모 때문에 남편인 아브람의 목숨이 위험해진 것입니다.
그는 생존을 위해 아내를 누이로 속입니다. 그는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힘없는 이주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 묵상 질문
약속의 땅에 기근이 찾아왔을 때 아브람이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나요?
● 적용 질문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모면하고자 쉽게 타협하지 않나요?
☞ 바로가 사래를 취함(12:14~16)
아브람의 예상이 적중합니다. 사래의 자태는 애굽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아브람은 바로에게서 그의 아내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바로가 사래를 데려가 버리고, 아브람은 언약을 함께 성취할 동반자를 빼앗깁니다.
아내를 누이로 가장한 덕에 아브람은 목숨을 건지고
오라비로서 바로의 호의와 보상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위기에 처했고 그의 가정은 파괴되었습니다.
● 묵상 질문
남편을 살리려고 바로의 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사래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 적용 질문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으면 내게 불리해지는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옳을까요?
☞ 하나님의 개입(12:17~20)
하나님은 기지를 발휘한 아브람도, 무소불위의 권력자 바로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바로를 똑같이 벌할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 경고를 받은 바로는 아브람을 책망하지만,
다행히 사래를 무사히 돌려보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위기에 빠뜨렸지만, 하나님은 약속이 무효화되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 묵상 질문
약속의 성취는 결국 하나님과 사람 중 누구에게 달려 있나요?
● 적용 질문
바르지 않은 행실로 인해 불신자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한 경우는 언제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보다 문제를 크게 보고, 저 자신을 위해 상대방을 희생시키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눈에 보이는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동역자를 먼저 배려하며,
굳은 심지로 약속의 말씀을 좇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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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20절)
- 비겁하지 않는 믿음의 삶 -
가나안에 기근이 들어 아브람은 애굽에 거류하기 위해 내려갔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그의 아내를 바로 왕 앞에서 누이라 속입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립니다. 바로는 아브람을 꾸짖은 후에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를 갖고 떠나도록 하였습니다.
✔ 비겁하지 않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 불확실한 내일과 당당하게 맞서는 것입니다(10~13절).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내려갑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약속된 땅에 기근이 들었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여정에 기근이라는 큰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타고 계신 배도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러고 보면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은 풍랑이나 기근 없이 평온하기만 한 삶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아브람의 선택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은 가는 도중에 아내 사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11~13절)라고 하는 제안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남자를 죽이고 그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레짐작 하여 나름의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브람의 모습은 참으로 이기적인 것이요, 불신앙적인 모습이요, 비겁한 타협입니다.
믿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내가 가진 지혜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다가오지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해 염려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염려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없고, 약속과 소망도 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내 안에도 내일에 대한 불안과 염려와 초조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얄팍한 지혜와 능력과 경험으로 지금의 상황을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마 6:34)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겁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는 것은 불확실해 보이는 내일과 당당하게 맞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 불필요한 제물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입니다(14~16절).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게 되자 그가 예상했던 대로 일이 진행됩니다. 애굽 사람들이 사래의 미모에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로의 고관들도 사래의 미모를 바로 앞에서 칭찬합니다. 결국 바로는 사래를 궁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비록 아브람은 자신의 목숨은 건졌지만, 그의 아내 사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으로 전개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래 덕분에 바로의 후대를 받아 많은 재산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16절).
하나님이 없이 세운 계획의 열매는 그 자체가 선하지 않는 열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불의하게 손에 거머쥔 된 제물은 나를 건강하게 살찌우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피폐하게 하고 메마르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 못할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나의 계획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디게 가고, 삶 자체가 무기력하게 만든 상황이 연출이 되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불의한 방법을 쓰지 않겠노라 결단해 봅니다. 불필요하게 모아왔던 것들을 과감히 벗어 던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삶이 비겁하지 않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바름 모습입니다.
- 불완전한 세상에 정직함을 보이는 것입니다(17~20절).
사래 덕분에 아브람은 많은 것을 얻었지만 반대로 바로는 사래의 일로 그 집에 큰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17절)...이는 하나님이 이 일에 직접 간섭하셔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고 있음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택한 사람을 향한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 나가십니다. 바로는 세 번에 걸쳐 ‘...네가 어찌하여...네가 어찌하여...네가 어찌...’ 라고 물으면서 아브람을 책망(18~19절)합니다. 이에 대해 아브람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침묵은 아브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로는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20절)내보내도록 지시합니다.
아브람은 모든 족속과 민족을 향하여 복의 통로가 되도록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복의 통로는커녕 오히려 바로에게는 큰 생명의 위기를 겪게 하였습니다. 오늘 나는 복의 통로로 쓰임 받고 있는가, 아니면 신앙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내 이익만을 바라고 있는가... 질문해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복의 통로가 되지 못하니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복의 통로, 복음의 통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가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꾸짖을 수 있을 만큼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교회를 향한 아니 내 자신을 향해 책망하는 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하나님이 그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비겁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하게 복음의 빛을 나타내어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비겁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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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10-20절은 가나안에 기근이 들어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간 이야기입니다.
궁금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면서 허락하신 땅 가나안에 어떻게 기근이 들 수 있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면 책임을 져야 되는 것 아닙니까?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으면 먹고 살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기근이 들었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기근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거든요.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축복의 통로로 세워가시는 데 분명히 다루실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기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면서 기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러세요?”하고 대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근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약속하신 것을 성실하게 행하는데 기근과 같은 어려움이 닥친다면 그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힘들지만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아브람은 심한 기근 때문에 힘이 들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근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쉬운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기 목숨 건지자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거짓말이 탄로라도 났다면 아내도 잃고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않았다면 큰 일 날뻔했습니다.
사실 창세기 12:10-20절은 믿음의 조상 아브람 입장에서 볼 때, 숨기고 싶은 이야기입니다.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런 이야기는 숨기고 싶지 않았을까요? 아내에 대한 자신의 비겁함과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해 두었을까요? 아브라함에게 창피를 주려고 기록한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실수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자기 입맛 – 자신의 생각 – 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이 원독자(Original Leader)입니다.
원독자는 기록된 창세기를 가장 먼저 읽었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창세기는 우리를 위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우리에게 주시려고 기록된 말씀은 아닙니다. 창세기를 가장 먼저 읽었던 원독자들은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가는 내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쏟아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이야기와 아브람이 실수한 사건을 연결해서 뭔가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아브람이 순종하여 가나안땅을 얻은 것처럼 광야를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약속하신 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아브람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광야 길을 걷고 있는 출애굽 백성들에게 애굽에서 나온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지금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12:10-20절을 기록한 목적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안 믿고 잘못했다는 것을 지적질하는 게 아닙니다.
아브람은 실수하고 잘못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