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타 제국
인도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는 굽타 제국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쇼카 왕으로 대표되는 마우리아 왕조가 망하고 쿠샨제국이 뒤를 잇는다. 쿠샨제국은 인도 전역을 지배하지 못하고, 북부 인도만 지배한다. 이때 남부 인도를 지배한 왕조는 시따마리다 왕조이다.
AD 3세기 경이면 남, 북의 두 왕조가 멸망하고, 그 뒤를 굽타왕조가 잇는다. 굽타왕조는 외부에서 들어온 왕조가 아니다. 인도 땅에 뿌리받고 있다고 제국으로 성장하였으므로 인도적인 문화가 아주 강했다. 왕위 계승에 관한 확실한 규범을 정하지 못한 굽타 왕조는 왕권이 불안하고 약했다. 그래서 굽타 왕조는 브라마한 교와 사제에게 많은 제물을 바치고, 특히 사제에게는 토지를 하사하여 토지 관리를 하는데 거의 독립에 가까운 권한을 주었다. 대신에 브라흐만은 왕을 비쉬누로, 왕비를 비쉬누의 부인 락슈미로 상정하여 선전해주었다.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브라흐만 교세가 급격히 신장하여 힌두이즘으로 발전한다.
그렇다고 하여 불교를 탄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불교의 교세도 강하였으나 앙실의 보호를 받지 못하자 교세는 약화되어 갔다. 더군다나 불교의 교리는 대중들이 따라가기 벅찼다. 인도의 민속신앙을 그대로 간직한 브라마한 교와 대중은 더욱 밀착되어 가서 힌두이즘으로 태어난다. 굽타왕조도 자기가 보호받을 목적으로 브라흐만 교에 손을 내밀었다고 할까.
이때 중국에서 최초로 인도를 방문한 스님이 법현이다. 법현의 기록에 의하면 아직도 인도에서는 불교가 성행하더라고 하였다.
브라흐만이 힌두교가 되자 대중과 밀착되어 있는 힌두교 사원에서 우상 숭배도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이때는 상업도 쇠퇴하여 불교의 지원세력도 사라지고 있었다
힌두교가 서서히 인도인의 뿌리로 자리잡아 갔다.
이러한 사실은 엘로라 석굴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