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원과 미나렛

사원안의 분수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 사원
인도 델리의 회교 본당으로 찬드니 초크 남쪽 랄 킬라의 붉은 성벽 앞에 서 있는 델리 최대의 모스크이다. 붉은 사암으로 지은 폭 60m, 길이 36m의 거대한 모스크와 흰 대리석의 돔, 높은 첨탑은 15년이나 걸려 건조되었다. 한꺼번에 2,000명의 예배자가 들어갈 수 있으며, 샤 자한의 마지막 건축물이자 인도와 이슬람 양식이 융합된 무굴 건축의 걸작이다.


타지마할 이슬람 사원

타지마할 전경
타지 마할을 이루고 있는 하얀 대리석은 각도에 따라 다른 색감을 보여 아침과 한낮 그리고 석양 무렵의 느낌이 다르고, 달빛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르다. 달빛 아래의 타지 마할을 보고 싶다면, 부근에 있는 높은 건물의 옥상에 오르면 된다. 타지 마할 건물의 정면 마당에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 수로는 무더운 한낮에 아지랭이 현상을 볼수 있게 만든다.

타지마할 대리석 무늬

본관에 있는 묘
본관에 있는 두묘는 아무 것도 내장되어 있지 않고 본관 아래층에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이 나란히 묻혀있다

타지마할 내부

본관 과 서쪽 별관

타지마할 서쪽 별관 사원

타지마할 서쪽 별관

타지마할 서쪽 별관 입구 현관
꼭대기에는 앞뒤 22개씩의 장식물이 22년간 건축되었음을 나타내고있다
타지마할 사원
타지마할 사원은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아그라 교외 아그라성 동쪽 약 2 km, 자무나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만들어진 궁전형식의 묘묘(墓廟)이다. 타지마할이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으로 샤 자한(Shah Janhan)이 17년의 결혼기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의 아이를 나으려다 1629년 세상을 떠난 부인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을 추모하여 만든 무덤이다.
샤 자한은 부인을 기념하여 타지 마할과 같은 호화 분묘를 조성하는것 뿐만이 아니라 수도를 델리로 옮기기로 계획하고 레드 포트(Red fort) 등과 같은 엄청난 공사들을 계속적으로 진행하여 국가가 흔들릴 정도로 제정을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러한 실정을 구실삼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는 (Aurangzeb) 반란을 일으킨다.아우랑제브는 샤 자한의 총애를 받고 왕위를 이를 아들 다라 시코(Kara Shikho)를 포함한 모든 왕자들을 죽이고 1658년 아버지인 샤 자한에게서 왕위를 박탈한다.
아우랑제브(Aurangzeb)는 샤 자한을 타지 마할이 마주 보이는 아그라 포트의 8각형 탑과 같은 형식의 구조물인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에 가두게 되는데, 감금된 후 그곳에서 타지 마할을 바라보며 죽을 때까지 지내야 했던 샤 자한은 1666년 죽어서야 부인 곁에 나란히 묻히게 되었다.타지 마할은 이란의 쉬라즈(Shiraz) 출신인 우스타드 이샤(Ustad Isa)에 의해 설계된 것인데, 설계된대로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등지에서 동원된 장인들을 포함하여 총 인원이 2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건축 자재 운반을 위해 1,000여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되었으며 라자스탄의 마크라나(Makrana)에서 채취된 대리석을 비롯하여 건물 안의 세세한 장식을 위하여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수입 했던 여러 가지의 돌이 사용되었는데,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준비 과정과 장인들을 동원하여 만든 타지 마할의 건축비는 상당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1631년에 짓기 시작하여 22년만인 1653년에야 완공된 이 건물의 정면 마당에는 수로가 있는 정형적인 무굴(Moghul) 양식의 정원을 두고, 좌우로는 회교사원과 회당을 둔 구조로 되어 있다.
타지 마할의 뒤편으로는 야무나(Yamuna)강이 흐르고 있는데, 높은 축대로 쌓여진 야무나 강 쪽의 뒷면을 제외한 타지 마할의 삼면은 모두 높은 담이 둘러져 있다.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에 타지 마할로 들어서기 위한 1차 관문이 있고 이 1차 관문을 통과하면 널찍한 마당이 나오는데 타지 마할은 이 마당을 건너 또다른 문을 통과해야 볼수 있다. 타지 마할로 통하는 최종 관문으로 세워진 붉은 사암으로 된 문에는 아랍어로 코란(Kolan)의 경구들이 새겨져 있다.
첫댓글 즐감하다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