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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여러분, 지난 16일 지체장애인이 이곳에 다리가 빠져 10분간 껴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이동하기 싫습니다. 안전하게 이동하게 해주십시오.”
19일 오전 9시경 서울 3호선 동대입구역 약수 방면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취재진들을 향해 지하철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 넓은 단차를 가리켰다.
직접 수동휠체어를 몰아 앞바퀴가 빠지는 상황을 연출한 그는 지하철을 탄 시민들에게 “수없이 단차 문제 해결을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장애인은 이렇게 안전하지 못한 지하철을 이용하며 다쳐야 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6시 이곳 동대입구역에서 지체장애인이 지하철에서 하차하려다가 오른쪽 다리가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 틈에 끼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칸에 있던 승객 30여명이 10여분간의 사투를 벌인 끝에 다리를 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최근 발간한 ‘일상의 목숨 건 사투, 지하철 승강장에서 전동휠체어 구하기’ 정책리포트에 따르면, 도시철도건설규칙에는 차량과 승강장 연단 간격이 10cm가 넘는 부분에는 안전발판 등 승객의 실족사고를 방지하는 설비를 설치해야 하지만, 2004년 이전에 지어진 곳은 적용되지 않는다.
서울교통공사 책임이 없는 268개 역 1만8856 곳 승강장 중 연단 간격이 10㎝가 넘는 곳은 151개 역(56.3%) 3607곳 승강장이며,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3-3칸은 무려 28cm에 이른다.
국민의힘 성중기 서울시의원이 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지하철발빠짐 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2017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발생한 발빠짐 사고는 총 340건이다. 이 중 사고 발생 승강장이 특정되는 곳은 244곳이다.
▲ 3호선 동대입구역 약수 방면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 넓은 단차에 휠체어 앞바퀴가 빠진 모습.ⓒ에이블뉴스
박 상임공동대표는 사고가 난 지체장애인이 10여분간 다리가 끼어있었다며, 역시 10분간 지하철 발차를 막고 “같이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먼저 출근길 불편을 겪는 시민들에 대한 사과부터 시작했다.
“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희 행동이 옳지 않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철 출근길 너무 많은 불편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오는 20일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요구하는 장애인권리예산을 설명하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도 전했다. “저희는 내일(20일)까지 인수위에 제출한 2023년도 권리예산을 제대로 반영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지하철 이용해야겠습니다. 저희들도 여러분들처럼 출근하는 노동의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 19일 오전 9시경 서울 3호선 동대입구역 약수 방면 승강장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취재진들을 향해 지하철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 넓은 단차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에이블뉴스
전장연은 인수위에 내년도 장애인권리예산(탈시설 807억원, 활동지원 2조 9000억원)과 장애인권리 민생 4대법안(권리보장법, 탈시설지원법, 평생교육법, 장애인등특수교육법 개정)에 대한 답변을 20일까지 회신 요청한 상태다.
특히 장애인이동권 중 특별교통수단 지역 간 차별을 철폐할 수 있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과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지원’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 소관 법률인 ‘보조금법 시행령 제4조’를 정부차원에서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10분간 지하철 발차를 막은 박 상임공동대표는 인수위가 책임 있는 답변을 주지 않으면, 오는 21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지하철 2·3·5호선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을 펼치겠다고 미리 공지했다. 그에 따른 출근길 불편에 대해서도 미리 “늦어짐으로 인해 죄송한 마음도 같이 전한다”면서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물러섰다.
▲ 19일 오전 8시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7-1)에서 개최된 ‘제20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맞이, 윤석열 정부 인수위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 전경.ⓒ에이블뉴스
한편, 이날 전장연은 한 시간 전인 오전 8시부터 서울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7-1)에서 ‘제20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맞이, 윤석열 정부 인수위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윤석열 당선인의 핵심 장애인공약인 ‘개인예산제 도입’을 언급하며, 장애인권리예산이 우선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개인예산제’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서비스 전 영역을 일정한 사정 절차를 걸쳐 금액으로 총량을 산출하고, 그것을 장애인 개인이 자유롭게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윤 당선인은 먼저 돌봄 영역에 도입 후, 단계적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개인예산제가 필요할 수 있어도 먼저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나오기 위해서는 장애인권리예산이 실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예산 보장 없는 개인예산제는 허구다. 갇혀진 예산 갖고 말로만 선택과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은 껍데기”라면서 “장애인권리에 맞춘 예산부터 보장해놓고, 선택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개인예산제를 서구의 제도라고 선전하고 있는데, 서구의 장애인예산과 한국의 장애인예산을 먼저 비교해야 한다. 그 비교 없이 말로만 하는 것은 장애인을 또다시 기만하는 것”이라고 장애인권리예산 확대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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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lovely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