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3세마 ‘싱그러운아침’이 어미인 ‘싱그러운’의 활약을 뛰어넘고 있다.
‘엑스플로잇’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싱그러운아침’은 2세 때만 해도 단거리에서 뚜렷한 개성을 보이지 못했으나
상위군 장거리를 만나면서 진가를 발휘하는 중이다. 최근에만 2연승.
특히 1700m에서 맞상대들에 비해 우월한 경주력을 드러낸 것이 고무적이다.
내달 부경에서 있을 「KRA컵 마일」을 비롯해 3관 경주에 출격할 채비를 서두를 만하다.
그를 소유하고 있는 조창석 마주는 제주 〈명마목장〉의 대표이기도 하다.
2세 때까지 판매되지 않아 직접 입사시킨 조창석 마주에게 ‘싱그러운아침’은 ‘희망’이다.
목장출신인 ‘천지호령’까지 부경에서 펄펄 날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하다고.
‘풀조이’‘싱그러운’‘에버니스톰’‘스페셜볼포니’ 등
매년 꾸준히 대표급 국산마를 생산해내고 있는 명마목장을 소개한다.
〈제주=이희경 기자〉
‘풀조이’Vs‘에버니스톰’
무관의 제왕 ‘풀조이’에 울고
‘에버니스톰’의 반란에 웃고
명마목장을 알게 된 계기는 ‘풀조이’였다.
2002년 데뷔해 2007년 은퇴할 때까지 35전을 치르는 동안
순위권 밖을 벗어난 적은 단 3번뿐이었던 정상급 국산마다.
‘고려방’‘비천봉’‘플라잉캣’‘가야산성’‘쾌도난마’ 등과 시대를 공유했던 탓에
한 번도 정상은 밟아보지 못한 불운한 경주마이기도 했다.
2005년 처음 만났던 조창석 대표는
“경마는 억지로 안 되는 것”이며 “운 없으면 1등이 될 수 없다”고 말했었다.
2008년 「코리안더비」의 우승후보는 ‘레인메이커’와 ‘절호찬스’‘개선장군’이었다.
그러나 출전마 14마리 중 인기꼴찌였던 ‘에버니스톰’은
시종 힘겨운 몸싸움 끝에 ‘개선장군’을 목차로 따돌리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대회는 역대 최고의 이변으로 남아있다.
실력은 있었으나 한 번도 정상에 서보지 못했던 ‘풀조이’와
실력은 모자랐어도 기어이 최고의 성과를 낸 ‘에버니스톰’이 묘하게 대비되는 것이 흥미롭다.
두 마리를 직접 받아 키워낸 조창석 대표에게는 그보다 더 확실한 보상은 없었을 것이다.
획일적인 예상은 거부하되 자유로운 상상은 허용하는,
“경마의 묘미란 이런 것이다”라고 다시 한 번 확인시킨 게 아닐지.
생산계의 “소리 없는 강자”
16년 간 정상급 국산마 꾸준히 배출
「농협중앙회장배」 우승마 ‘싱그러운’, 「스포츠서울배」 우승마 ‘에스키나’,
「문화일보배」 우승마 ‘금강이’, 최근에 뛰고 있는 ‘스페셜볼포니’와 ‘싱그러운아침’‘천지호령’ 등
우리에게 익숙한 경주마 가운데 이곳 출신이 생각보다 많다.
오랜 기간 꾸준히 정상급 국산마를 배출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창석 대표가 생산한 국산마만 130마리가 훌쩍 넘는다.
명마목장 역시 초반 5년이 고비였다.
경주마 생산이라는 게 장기간의 기다림과 막대한 투자를 요하면서도 확신할 수 없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풀조이’가 태어나며 목장의 이름이 알려졌고 찾아오는 조교사와 마주들이 늘면서 안정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2007년 초지를 확장해 총 8만평에 이르는 규모로 이는 개인목장치고는 제법 큰 축에 속한다.
18두의 씨암말을 보유하고 있고 현재 노쇠한 몇몇은 교체 중이지만 그래도 연간 생산량은 14두 안팎에 달한다.
통상 1세, 늦어도 2세 초반에는 대부분 개별거래로 팔리지만 원하는 가격에만 거래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가격이 맞지 않거나 부상 등으로 주인을 찾지 못하는 망아지는 조창석 대표가 직접 서울경마장에 입사시킨다.
이럴 때 마주 자격은 큰 도움이 된다고.
16년 생산경력, 노하우와 철학 선사
악벽순치 등 전기육성은 확실히
“좋은 초지에서 명경주마 나온다”
“한 발이라도 더 걷게...”
16년 간 경주마 생산을 해오면서 굴곡을 지나는 동안 나름의 철학과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였다.
일단 육성, 조 대표는 생산자가 직접 육성시켜야만 제 값 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람과 망아지간 애착관계가 형성되도록 공을 들이면서 굴레와 안장 등에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게끔 길을 들인다.
사람을 겁내지 않고 잘 따라야 경마장 입사 후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도 기승자의 의도에 충실할 수 있다.
조 대표가 신경 쓰는 또 한 가지는 초지다.
초지가 충분하지 않으면 사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내실 없이 체격만 커진다고.
기자가 찾은 때가 한겨울이었음에도 명마목장은 10월에 파종한 덕에 초지가 기름지면서도 짙고 풍성하며 푸르렀다.
또 한 가지는 적게 먹이고 많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경주마는 2분 내에 폭발적인 힘을 써야하기 때문에 근골격계가 빨리 손상되고 운동기질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골격에 비해 체구가 커지면 부상 위험은 그만큼 증가하는 셈이다.
“말은 초식동물이에요. 반드시 초지를 먹여야 합니다.
살찌는 가축용 사료를 무분별하게 먹여 외형만 키워놓으면 절대 좋은 경주마가 될 수 없습니다.
적당히 먹고 운동하며 정상적으로 성장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많이 움직이도록 해야해요.
그러기 위해선 넓은 초지는 필수죠. ‘남들 보다 한 걸음 더!’ 이게 제 육성 철학입니다.”
“경주마는 정교한 공산품”
생산-육성-관리-훈련-기승, 잘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완성
좋은 경주마는 이미 생산단계에서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난다고 한다.
좋은 씨수말과 씨암말의 배합, 체계적인 전후기육성이 좋은 경주마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조 대표는 경주마야말로 정교한 공산품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생산-육성-관리-훈련-기승까지 각 단계가 잘 맞아떨어져야만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고 경주마의 클래스도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마주와 마방과 조교사와 기수 역할이 각각 다른 만큼 누가 더 크다 작다 할 수 없습니다.
좋은 경주마는 어느 한 단계에서 특정인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없어요.
제 손으로 좋은 씨수말과 씨암말을 고르고 정성껏 육성하고 나면 그 후는 이제 마필관계자들의 몫이에요.
저는 우리말 맡아주고 타주는 모든 분들이 고마워요.”
‘하쉬타임즈’‘소너러티재즈’ 대표 씨암말
18두의 씨암말 중 조창석 대표가 자랑하는 모마는 ‘하쉬타임즈’와 ‘소너러티재즈’다.
‘하쉬타임즈’는 올해로 18세가 된 고령마지만 건강 상태가 양호한 편.
지금까지 6두를 생산해 4두가 1군에서 활약했고 1두는 2군까지 올랐을 정도로 평균 능력이 탁월하다.
부경의 ‘인디언울프’와 ‘아침노을’, 서울의 ‘에스테반’과 ‘금강이’가 그의 자마들이다.
이중 대표격인 ‘에스테반’과 ‘금강이’ 모두 ‘리비어’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최근엔 계속 ‘리비어’와만 교배해왔고 내주에 당세마가 또 하나 태어날 예정이다.
‘소너러티재즈’는 유전력이 강한 ‘딕시랜드밴드’의 자마로
‘에버니스톰’과 ‘천지호령’을 낳아 최근 각광받고 있는 씨암말이다.
현재 목장에는 ‘메니피’와의 1세 수말이 있다.
이밖에 ‘막크스걸’‘댄싱도트’‘채트’ 등이 평균이상의 자마들을 배출하고 있다.
명마목장의 또 다른 특징은 경주 퇴역 암말이 많다는 점이다.
‘싱그러운’‘어키쓰윈’‘에스키모’ 등 익숙한 암말들이 은퇴 후 이곳에서 활발히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경주퇴역마의 자마들이 잘 뛰어요. 그리고 아직까지는 경주와 생산의 연결고리로서 암말이 거의 유일하니까요.”
“천지호령, 에버니스톰과 똑같이 생겼어요”
‘싱그러운아침’ 선전에 3관 자신감 쑥쑥
조 대표는 지금 조심스럽게 3관 경주에 대한 기대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주 서울에서 ‘싱그러운아침’이 라이벌격인 ‘오펠리아’‘광야제일’을
큰 차이로 제치고 우승한 모습에서 힘을 얻었다.
장거리에서 비로소 진가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시장에 내놓았을 때만 해도 ‘엑스플로잇’ 자마들이 아주 부진했어요.
모두들 그 자마라고 ‘싱그러운아침’을 외면했죠. 그래서 못 팔았어요.
그런데 저는 모마를 믿었으니 직접 입사시키기로 했죠.”
‘엑스플로잇’은 올 시즌 리딩사이어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런 ‘엑스플로잇’의 최다상금수득마가 ‘싱그러운아침’이다.
‘엑스플로잇’이 뒤늦게 진가를 발휘한 것인지, ‘싱그러운아침’의 선전에 힘입어 그 진가가 인정받는 것인지,
어떤 게 우선 순위인지는 불확실하다.
어쨌든 마주와 조교사들로부터 외면 받았던 악재가 불과 1년 만에 호재로 돌아선 이 순간이 흥미롭기만 하다고.
내달 3일 부경에서 열릴 「KRA컵 마일」부터 올 시즌 3관 경주에 당차게 도전할 계획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조 대표는 부경의 ‘천지호령’에게 더 큰 기대를 품었었다.
「브리더즈컵」에서 3위에 머물렀지만 성장과정이 남달라 애착을 갖고 지켜보던 중이었다.
“‘에버니스톰’의 동생인데 생김새가 아주 똑같았어요. 경마장에 들어가면 잘 뛸 줄 알았죠.
김상석 조교사가 열심히 키우고 있으니 잘 클 겁니다.”
내년 야심작은 ‘메니피’-‘소너러티재즈’의 수말
올 교배는 ‘메니피’‘크릭캣’‘엑톤파크’ 등에 집중
2011년 교배가 막 시작됐다.
조창석 대표는 올해 ‘메니피’‘크릭캣’‘엑톤파크’‘비와신세이키’‘리비어’ 등 화제의 씨수말이나
유난히 결과가 좋았던 씨수말을 골라 다양한 교배를 시도할 계획이다.
지난해 목장 보유마 중 9두가 우수마로 선정돼 선택의 폭이 넓어진 건 다행이다.
현재 목장에 있는 1세마들은 올 연말과 내년 목장에 힘이 돼 줄 밑천이다.
그 가운데 조 대표가 공을 들이고 있는 마필은 ‘메니피’와 ‘소너러티재즈’ 사이에서 태어난 1세 수말이다.
‘에버니스톰’를 낳은 ‘소너러티재즈’가 최고의 씨수말로 손꼽히는 ‘메니피’를 만나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에버니스톰’이나 ‘금강이’나 모두 대상경주에서 우승할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함부로 예측할 수 없고 다수의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그 게 경마에요.
10년 넘게 경주마 생산을 하면서도 여전히 재미있게 그러면서 진지하게 할 수 있는 이유죠.
내가 길러낸 자식 같은 마필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건 특별한 경험입니다. 매년 희망을 품을 수 있어요.
생산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죠.(웃음)”
▲주요 1-2세마
소너러티재즈자마(2010년 2월生 수 메니피/소너러티재즈)
막크스걸자마(2010년 4월生 암 비와신세이키/막크스걸)
막크스걸자마(2009년 3월生 암 포트스톡턴/막크스걸)
싱그러운자마(2009년 4월生 암 메니피/싱그러운)
에스키모자마(2009년 3월生 암 피코센트럴/에스키모)
채트자마(2009년 4월生 암 포리스트캠프/채트)
▲주요 출신 경주마
싱그러운(2001)/농협중앙회장배 우승(2006)
에스키나(2003)/스포츠서울배 우승(2006)
에버니스톰(2005)/코리안더비 우승(2008)
금강이(2007)/문화일보배 우승(2010)
그 외, 풀조이(2000) 에스테반(2004) 스페셜볼포니(2007) 싱그러운아침(2008) 등
▲대표 씨암말(총 18두)
하쉬타임즈(영국, 1993, Efisio/Larnem-금강이 에스테반 6두 중 4두 1군)
막크스걸(미국, 1996, River Special/Rose of Wendover-스페셜볼포니)
소너러티재즈(미국, 1994, Dixieland Band/MS. Charity Ball-에버니스톰)
채트(미국, 1996, Distinctive Pro/Pipit)
댄싱도트(아일랜드, 1993, Durgam/Canty's Gold)
퍼시픽채트(한국, 2003, 퍼시픽바운티/채트)
싱그러운(한국, 2001, 미스터아도라블/램볼리나)
리치뮈지크(미국, 1999, Rizzi/La Musique)
어키쓰윈(한국, 2000, 컨셉트윈/어키쓰포케이트)
에스키모(한국, 1997, 무자지프/크레스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