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절에서 22절까지의 말씀은 야곱이 벧엘을 떠나 도중에서 아들 베냐민을 낳고 죽은 아내 라헬을 장사하고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치고 거기서 르우벤의 부정한 행실을 알게 되는 내용입니다.
야곱의 일행이 에브랏으로 향하던 중 라헬이 득남을 하는데 그는 베냐민입니다(16,17절). 심한 고생으로 베냐민을 얻은 라헬은 죽게 되는데, 그는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됩니다(18~20절).
라헬은 혼이 떠나면서 자신이 낳은 아들 이름을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베노니’라 불렀지만 야곱은 그 아들의 이름을 ‘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베냐민’이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야곱의 열두 아들 즉 열두 지파를 채우시고자 마침내 라헬을 통해 아들을 낳게 하십니다(창30:24 참조). 그리고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먼저 죽게 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라헬의 묘비를 세웠는데 오늘날까지도 이 묘비가 라헬의 무덤이라 일컫습니다.
위의 18절에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에서 ‘떠나다’는 원어로 ‘빼체트(בצאת)’라고 하는데, 이는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위치를 옮기는 경우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라헬의 혼이 떠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육체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이 육체를 떠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는데 그곳에서 아들 르우벤이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였고 이를 이스라엘이 들었습니다(21,22절). ‘에델 망대’는 ‘가축 떼의 망대’라는 뜻으로, 가축을 살펴보기 위하여 들판 한가운데 높이 쌓은 탑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정착하여 거주하고자 말뚝을 박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인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한 것입니다. 적어도 여호와의 언약 자손의 집안에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실 때에 그가 에서보다 의롭거나 깨끗하여 택한 것이 아니라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에 아무런 조건 없이 택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로 야곱의 자손들을 ’택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여 무조건 불택자들보다 더 깨끗하고 선량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불결한 일들은,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언약자손으로 선택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확증하여 줍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조상의 땅을 떠나 하란에 가서 큰 부자가 되어 조상의 땅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는 것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의한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안에서 선택을 입은 성도가 믿음으로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도, 불신자들보다 더 선량하고 깨끗하고 의로워서 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야곱의 집안에서 일어난 불결한 사건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계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와 은혜의 풍성함을 더욱 드러내어 준다는 말입니다(롬3:5). 그래서 성경은 야곱의 경우만이 아니라 여러 언약 자손들의 불결한 행동들을 숨기지 아니하고 적나라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하였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참으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는 조상의 땅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나 많은 시련이 주어집니다. 하란을 떠나올 때 외삼촌 라반의 추격을 당한 일과, 형 에서와의 충돌이 있을 뻔했던 일과, 세겜에서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두 아들이 세겜 성을 멸한 일과,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아들을 낳고 죽은 일과, 아들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하는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는 어렵고 수치스러운 일들을 통하여 많은 시련을 겪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겪은 시련을 통하여 그의 믿음을 키워가시며 단련하시고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23절에서부터 29절까지의 말씀은 야곱이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종들에게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과, 이삭이 죽어 에서와 야곱으로 장사하게 하시는 섭리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야곱의 열두 아들을 소개하는 것은(23~26절),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확장되고 있음과, 새롭게 지어 주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이름에 합당하게 앞으로 축복하시며 역사하실 것에 대한 언약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기럇아르바 근처 마므레로 가서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었고(27절), ‘마므레’는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사하기 위하여 헷 족속에게 값을 지불하고 산 땅으로(창23:17~18) 아브라함 역시 이곳에서 정착하여 살다가 죽어 장사되었습니다(창25:9). 때에 이삭의 나이는 일백 팔십세였습니다(28절). 이삭이 나이가 많아 늙어 장수하다가 숨을 거두고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합니다(29절).
이삭이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은 곧 야곱에게 언약 계승의 임무가 끝났음을 말하여 줍니다. 그의 임무가 끝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라에 대한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을 그의 아들 이삭에게 계승하게 하신 다음에 그로 죽어 장사하게 하시고 그리고 이삭으로 하여금 야곱에게 나라에 대한 언약을 계승하게 하신 다음에 죽어 장사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야곱에게 계승된 ‘나라 세움’에 대한 언약은, 그의 자손인 다윗에게까지 계승이 되어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고 다윗이 통치하게 되면서 모형적으로 모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첫 아담에게 세우신 ‘나라 세움’(창1:28)에 대한 언약을 실체적으로 완전하게 이루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문에 소개된 야곱의 아들들의 명단은 장차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가 오실 여명을 보여주는 언약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29절)는 것은 단순히 조상들에게로 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돌아가니’로 번역된 원어는 ‘아싸프(אסף)’인데 뜻은 ‘모이다’, ‘옮기다’. ‘제거하다’. ‘떠나가다’. ‘거두어 들이다’ 등입니다. 여기서 ‘모이다’라는 해석이 가장 적당한데, 이것은 먼저 간 조상들과 모두 모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육체를 벗는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서 함께 모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성경이 조금 보이십니까? 창세기를 공부하시면서 계시록까지 열리십니까? 성경은 한 권이며 하나의 내용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경 전체의 내용이 ‘하나’의 덩어리로 일관되게 정리되어서 각자의 머리와 가슴에 꽉 차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하나’의 내용으로 정리가 되어 나의 몸에 주어지면 우리의 머리는 아픔이 사라집니다. 가슴 안에 갇혀 있는 응어리가 풀립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인생관은 물론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이 바뀌게 됩니다. 점점 더 확연히 드러나 보이리라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