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맞는 비(김혜영, 사비나,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함께 한다는 것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빛(프란치스코)이 떠난 후 친구, 동료에게서 한빛이 비정규직 등 약자와 소외된 이웃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청년이면 누구나 고민했을 아름다운 삶이지만, 선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한빛 같은 청년에게 이 사회가 그만큼 절망적인 것이 저를 더 처절하게 했습니다.
그만큼 세상에는 애도조차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산재(산업 재해)·재난 참사 유가족들입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잃은 고통을 보듬지도 못한 채 죽음의 진실 규명을 위해 생계와 일상을 버리고 외롭고 힘겹게 싸워야 합니다. 아울러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사회적, 제도적 구조 개선을 외치고,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외면하면 매일 7~8명씩 더 이상 퇴근하지 못하게 되는 현실은 바뀌지 않음을 호소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함께 비를 맞아 주었고 집중해주었습니다. ‘왜?’라고 질문했습니다. ‘태안에서, 평택항에서 청년 노동자가 왜 죽었지?’ ‘특성화고 학생이 왜 실습 중에 사망했지?’ ‘한빛은 왜?’ ‘차별금지법이나 비정규직 문제는 왜 계속 얘기되지?’ 하고 질문하며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할지 끝없이 묻고, 안전한 세상과 존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답을 함께 찾았습니다. 그 부축의 힘으로 ‘다시는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위한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이 만들어졌고, 비록 내 가족은 죽었지만 그 슬픔을 넘어 다시는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피해자 운동에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교구 노동사목위원회에서도 지난 4월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 미사로, 5월 ‘산재 유가족 곁으로’로 유가족을 위로하고 함께해주었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은 모든 것 위에 있다’는 복음 말씀은 ‘자본보다 인간’,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상식을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부축해주는 아름다운 사람도 만났습니다. 흑산도 어부는 힘들게 수확한 해산물을 판매할 때마다 수익금의 일부를 뚝 떼어 후원합니다. 반짝반짝 등대가 될 수 있어 기쁘다는 그의 나눔의 삶은 큰 응원이 됩니다. 불광동 작은 서점 ‘한평책방’에서 열렸던 ‘괜찮으시다면 한빛을 밝혀주시겠어요?’에서는 도서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를 읽는 만큼 세상이 따듯해진다는 믿음으로 책이 판매될 때마다 촛불을 밝혔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책방지기가 성모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자신만의 예식이라고 했을 때 한 번도 이런 나만의 전례를 해 본 적이 없던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175개의 촛불이 켜지는 기적이 일어났음에도 내내 무모한 일이라고 의심했었습니다. 나보다 더 상대적인 약자에게 손 내밀고, 귀를 기울이고, 주어진 시간을 그들에게 배려하기 위해 쓸 때, 부축이 또 다른 부축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때 순간순간 예수성심의 신비를 느끼며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에 울컥합니다.
오늘도 함께 비 맞아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