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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살펴주시는 하나님을 대면하며 살아봐요 = 창세기16;1-16(200419)
PW : 믿음 BIW : 믿으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우리들의 딱한 처지를 살펴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소통이 안 되는 사람
사오정이 물건을 사러 편의점에 갔습니다.
“아줌마, 햄버거하고 아이스크림 주세요”
“햄버거는 여기 없는데…”
잠시 망설이던 사오정...
“그럼, 햄버거하고 콜라 주세요”
“햄버거는 없다니까”
“그러면, 햄버거하고 사이다 주세요”
“이 사람이, 햄버거 없다니까!”
사오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 이 가게는 왜 그렇게 없는 게 많아요,
그럼......
그럼......
그럼...햄버거만 주세요!”
사오정은 자기 말만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오정은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들 주변에 보면 이런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들은 안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이런 사람을 두고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소통이 잘 되려면 상대방의 말을 기울여서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그 말의 뜻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과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인가요?
하나님과 소통을 잘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여서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잘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P4.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 지 10년이 되던 어느 날에 사래는 남편 아브람에게 뜻밖의 제안을 하나 한다.
사래는 남편에게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라고 하면서 ‘자신의 여종을 통해서 자식을 얻읍시다.’라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사래는 하갈이라는 여종을 택하여 남편의 품에 첩으로 준다.
아브람은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하갈을 품게 되고, 하갈은 임신하게 된다.
임신하게 된 하갈은 자기 주인인 사래를 업신여기는 사태가 발생한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임신이 되지 않아서 늘 임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있는데, 그래서 여종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얻으려고 여종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기까지 했는데, 그 여종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사래는 몹시 불쾌하고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사래는 임산부인 하갈을 학대하면서 못살게 군다.
하갈은 주인 사래의 학대를 견딜 수 없어서 광야로 도망치게 된다.
광야로 도망간 하갈 여인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시고 만나주시고 살펴주신다.
창세기12;16에 보면 가나안 땅에 발생한 기근으로 인하여 애굽으로 내려간다.
애굽의 바로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취하는 대가로 양 떼와 소 떼와 수나귀들과 남종들과 여종들과 암나귀들과 낙타들을 주었다고 한다.
많은 여종들 중에 하갈 여인이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사래는 많은 여종들 중에서 하갈 여인을 예뻐해 주면서 남편의 첩으로 주는 것이다.
하갈은 여러 여종들 중에서 특별히 사래에게 인정받고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으면서 산 여종이다.
왜 사래는 여러 여종들중에서 하갈이라는 애굽 여인을 남편의 첩으로 주려고 했을까?
하갈이 아니라 다른 여종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하갈이 아니라 다른 여종을 뽑아서 남편의 첩으로 줄 수도 있었는데, 왜 사래는 하갈이라는 여인을 남편의 첩이 되어서 아들을 낳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D4.
① 지역사회 문화를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
사래는 갈대아 우르에서 이복 오라버니인 아브람과 혼인하여 아무리 임신하려고 노력해봐도 본래부터 불임녀이었기 때문에 임신이 되지 않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서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여 10년 동안 살았지만, 사래는 본래부터 불임녀였기 때문에 임신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분명히 자식을 주시겠다고 언약해주셨는데, 하늘의 총총하게 빛나는 별들처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자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자식은 고사하고 자식 하나 낳을 수 없는 처지는 계속된다.
사람은 너무 오래 기다려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 저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 하면서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찾아 나서게 마련이다.
극히 인간이기 때문에 찾아 볼 수 있는 방법은 다 찾아보려고 애쓴다.
이 방법도 가능할 것 같고, 저 방법도 가능할 것 같다.
현대사회에는 각종 임신 방법이 발달하여 불임을 치료하여 임신하려는 치료 방법들이 많다.
자연 임신하는 방법이 가장 합당한 방법이겠지만, 자연임신이 되지 않으면 각종 다른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시험관시술, 인공수정 시술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정자은행, 난자은행이 있어서 남편의 정자가 아닌 다른 남자의 정자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고, 아내의 난자가 아닌 다른 여인의 난자를 이용하여 임신하는 방법들도 있다.
씨받이, 대리모를 통해서 자식을 낳으려고 하는 가정들도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미혼모가 낳은 자식을 입양하는 방법들도 있다.
지금 사래가 여종인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얻으려는 방법이 바로 대리모, 씨받이 하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종은 인격이 없는 소유물에 불과하다.
종은 무언가를 가질 수 있는 소유권이 없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하다.
그러기 때문에 여종이 자식을 낳더라도 여종의 자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그 당시 중동 사회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사회통념이다.
사래만 이런 방법을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동지역에서 다른 가정들도 얼마든지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중동지역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사회문화를 배척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회문화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사용하시는 분이다.
물론 아브람이나 사래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때까지 끝까지 믿음으로 기다리면서 믿음을 지켰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아브람이나 사래는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여 10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그 10년이 지났는데도 강산이 변하기는커녕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 10년 동안 무엇인들 생각해 보지 않았겠는가? 기도는 안 했을까?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보고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도도 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면서 서원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인간적인 방법을, 지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자식을 얻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금지시키시는 분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하게 믿는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시지만, 때로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문화와 방법도 그대로 인정해 주시는 분이다.
② 본래 살던 대로 복종하며 살라고 하시는 하나님.
사래의 제안으로 아브람이 하갈을 첩으로 취해서 자식을 낳는 방법은 믿음의 방법은 아니다.
사래에게 많은 여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래는 다른 여종을 뽑는 것이 아니라 하갈을 뽑아서 남편의 첩으로 세워주고 있다.
그만큼 사래는 하갈을 다른 여종들보다 더 신뢰하고 신임하고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리모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도 보면 먼 나라로 여행을 하는 주인이 자기 집에 많은 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장 신임하는 3명의 종들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맡기면서 잘 장사하라고 맡겨주시는 것이다.
사래는 자신이 못 낳는 자식을 첩을 통해서 낳으려고 할 때, 아무 여인에게 남편의 첩으로 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가장 자기를 잘 따르고 자신의 말에 신임하고 좋아하고 예뻐하는 여종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일을 맡기는 것이다.
하갈은 사래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아브람의 첩이 되어서 곧바로 임신하게 된다.
하갈이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기뻐하고 좋아한 사람이 누구일까?
하갈을 첩으로 준 사래가 가장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이제야 나도 자식을 얻게 되는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이제야 남편의 아들이 생겨서 상속자가 되는구나.’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생겨나고 만다.
사래가 가장 신임하고 좋아하고 예뻐해 준 하갈 여인이 주인도 못 하는 임신을 자기는 곧바로 임신하였다는 자만심에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을 넘고 마는 것이다.
4절에서 임신한 하갈은 주인 사래를 멸시했다고 한다.
멸시한다는 것은 가볍게 여긴다는 의미이다.
사래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곧바로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했다는 핑계로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면서 제대로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사래가 시키는 말에 투박하게 대답하거나 튁튁거리고 반항한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한다.
여종이 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이제는 주인인 사래가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면 눈감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이다.
사라는 ‘내 생각에 내 발등이 찍혔구나.’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여종이면 여종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데, 하갈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여종이 아니라 마치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려고 한다.
이쯤 되면 아무리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 해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래는 하갈에게 따끔하게 ‘여종이면 여종답게 살아라. 아무리 네가 임신하였다고 하더라도 내 몸종이면 어디까지도 내 몸종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이르고 타일러도 좀처럼 하갈이 몸종처럼 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래가 하갈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는 계속 되어진다.
사래는 이렇게 변해버린 하갈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 사래는 수심이 깊어만 간다. 사래는 생각이 많아진다.
하갈을 통해서 자식을 얻으려고 했던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었다고 후회도 한다.
사래는 더 이상 참지 못 한다. 더 이상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한다.
하갈이 학대받는 것은 순전히 하갈의 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얻은 자업자득이다.
하갈은 사래의 학대가 점점 심해지자 견딜 수가 없어서 광야로 도망하게 된다.
광야의 샘물 곁 술 길 샘 곁까지 도망간다.
이렇게 광야 술 길 샘으로 까지 도망간 하갈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 주시는 것이다.
광야로 도망간 하갈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자는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라고 묻는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갈이 어떤 신분의 여인인지를 이미 잘 알고 계신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하갈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사래의 여종 하갈”이라고 정확하게 호칭하고 계신다.
하갈은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갈에게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하갈에게 주인 사래에게로 돌아가서 여종으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도망쳐 나온 하갈을 만나주신 하나님은 하갈에게 주인의 집으로 돌아가서 여종으로서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하갈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하갈의 신분을 바꾸어주지 않는다.
하갈의 본래 신분 그대로 살라고 말씀하신다.
주인 사래의 학대로 도망쳐 나왔음을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갈의 신분을 여종에서 주인으로 바꾸어주지 않는다.
주인 사래를 떠나서 자유롭게 독립하여 살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신다.
주인댁으로 돌아가서 여종이라는 신분으로 계속 주인에게 복종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미 자신에게 현재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들은 간혹 누군가로 인해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내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되어서 복수라도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내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역사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울고불고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그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면 무언가 확 바뀌어야 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나님께서 무언가 확 바꾸어주셔야 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도 바꾸어주지 않는다.
본래 주어진 신분 그대로 잘 복종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종의 신분이면 종의 신분답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직장인이면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롭게 사업하면서 보란 듯이 사장이 되어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인답게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라고 말씀하신다.
가정주부면 가정을 떠나서 딴짓거리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주부답게 살림을 잘 하면서 살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인이면 이 교회 아니면 내가 신앙 생활할 교회가 없냐 하면서 다른 교회로 훌쩍 옮겨버리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답게 말씀과 기도 속에 잘 살라고 말씀하신다.
목사면 목사답게, 목회자면 목회자답게, 장로면 장로님답게, 권사면 권사님답게, 집사면 집사님답게, 봉사대원이면 봉사대원답게, 찬양대원이면 찬양대원답게, 주일학교 교사면 교사답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무언가 확 바꾸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내가 좋은 신앙인, 좋은 성도가 되면, 그러면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다.
내가 먼저 좋는 성도가 되어라. 그러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다.
내가 먼저 좋은 직장인이 되면 좋은 직장이 될 수 있다.
내가 먼저 좋은 아내가 되면 좋은 남편이 되어주고 좋은 가정이 될 수 있다.
내가 먼저 좋은 남편이 되면 좋은 아내가 되어주고 행복 가득한 가정이 될 수 있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좋은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다.
③ 지금 겪고 있는 처지와 환경을 살펴주시는 하나님
하갈에게 본래 주인 사래에게로 돌아가서 여종의 신분답게 복종하며 여종으로 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임신한 아이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하갈에게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 나귀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갈은 여호와 하나님은 주인 아브람의 하나님, 사래의 하나님이신 줄로만 알았다.
주인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주인의 하나님뿐이지, 종인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하나님이신 줄로 알았었다.
특히 자기는 애굽 출신이고, 여종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인 줄로만 알았었다.
주인 아브람, 사래의 하나님으로만 알았는데, 자기처럼 애굽 여인에게도, 여종에게도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 그런가 하면 앞으로 자기가 낳을 아이에 대해서도 무언가 꿈과 비전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만나주시는 그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대단하신 분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갈은 13절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하갈은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만나러 와 주신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Beer Lahai Roi)”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갈은 브엘라해로이에서 자신을 만나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래에게로 돌아가서 몸종으로, 여종으로 살면서 아들을 낳아서 젖을 먹이면서 키우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딱한 처지도 살펴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의 아픔과 쓰라림과 고통과 가난과 질병도 살펴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온갖 고민거리와 갈등과 한과 스트레스를 살펴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나라와 한국교회와 가정과 생업터전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더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고 계신다.
하나님은 지금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21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의 상황을 주시하시면서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서민들의 경제가 무너지고 신뢰가 깨어지고 삶의 기초, 기본이 무너져버린 지금 상황을 두 눈을 부릅뜨고 주시하시면서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다.
④ 주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하갈이 임신하여 낳을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Ishmael)이라고 지어준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고통과 아픈 상처와 처지를 들으셨다.”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이런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본래 아브람이나 사래에게 하갈이 낳은 아들의 이름으로 이스마엘이라고 지으라고 말씀해 주신 이름이 아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본래 하나님께서 광야로 도망가 있는 하갈에게 주신 이름이다.
종은 자식을 낳아도 자기 자식이 될 수 없고, 자기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 해도 자기가 이름을 지어줄 수 없다.
종은 자신이 낳은 자식이라도 자기가 이름을 붙여줄 자격이 없다.
이름을 붙여주는 분이 그 사람의 주인이다.
그러기 때문에 비록 하갈이 아들을 낳았다고 하더라도 사래가 주인이기 때문에 사래가 하갈이 낳은 아들의 이름을 붙여주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갈이 낳은 아들의 이름을 광야에서 하갈에게 붙여준 이름 그대로 이스마엘이라고 붙여주는 것이다.
아마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도, 사래에게도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도록 감동을 주시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하갈은 사래의 처소로 돌아와서 여종의 신분으로 살면서 아이를 낳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을 부르라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아와서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어쩌튼 하갈이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어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갈이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의 주인이 되어주시겠다고 확고하게 선언해 주시는 말씀이다.
이스마엘은 본래 태어나서는 안 되는 아들이다.
믿음의 사람이 믿음으로 살지 못한 대가로 낳은 아들이다.
어쩌면 이스마엘은 불신앙의 대가로 낳은 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마엘은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이스마엘의 주인이 되어주겠다고 선언해 주시는 것이다.
자기 주인의 하나님으로만 알았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가 낳은 아들의 주인이 되어주겠노라는 말씀을 들은 하갈은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어주셨는가.
비록 자신은 여종의 몸으로 여종으로 살고 있지만, 자기가 낳은 아들 이스마엘만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주인이 되어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는 말씀이었겠는가.
우리 하나님은 하갈 여인과 아들 이스마엘이 지금 당하고 있는 처지, 앞으로 겪게 될 온갖 일들을 살펴주시는 브엘라해로이 하나님으로 다가와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들에게도 우리들이 겪고 있는 온갖 일들을 살펴주시는 브엘라해로이 하나님이시다.
애굽 여인이요 이방 여인이요 여종이요 여종의 아들이요 이방인의 대명사처럼 불리워질 하갈과 이스마엘의 처지와 아픈 사연을 살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마지막 남아 있는 한 방울의 피도 물도 남기지 않고 다 쏟아주시면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지 않은가.
그러니 다른 이방인들도, 불신자들도 지켜봐 주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못 본 척 두 눈을 가리시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는 분이다.
우리들의 처지와 환경과 모든 모습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살펴보시면서 찾아와 주시고, 새로운 비전의 세계,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를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L4 & B4
우리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의 모든 처지와 환경과 아픈 사연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펴주시는 분이다.
머리카락까지도 하나하나 다 세어주시고, 공중 나는 참새들까지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들에 피는 이름 없는 들풀까지도 보살펴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와 가정과 교회와 생업터전을 살펴주신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우리들의 모든 것들을 살펴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온전하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쉽지가 않고 만만치도 않다.
우리들은 무턱대고 믿음으로 살겠노라고 큰소리칠 수 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겠노라고 하늘을 향하여 맹세하면서 결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 쉽지만은 않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듯이 결심하고 곧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우리들은 작심삼일(作心三日)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매일매일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믿음으로 살겠노라고 결단한다면 우리들의 삶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매일매일 실패하는 삶을 살면서 거짓말쟁이처럼 사는 것처럼 보여도 매일매일 작심삼일 하면서 살다 보면, 어느새 우리들의 삶도 아주 약간씩 달라지고 성장해 가고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추겨세우는 아브라함도 한꺼번에 믿음의 조상이 될 만큼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아브라함도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와 좌절 속에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과 은혜 속에서 아주 약간씩 성장하고 변화 받으면서 믿음이 성장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수많은 불신앙의 삶을 살아가면서 아주 약간씩 자라고 성장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면, 우리들도 아주 약간씩 성장하고 자라면서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의 사람으로 거듭 세워지지 않겠는가.
분명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우리들의 약한 점과 결정과 약점을 보완해 주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갈 것이라고 믿는다.
대전와우리교회 http://cafe.daum.net/GRACEOFJESUS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프레임설교의 이론과 실제(1권, 2권)
② 청중마음열기 2권(유머편, 예화편)
③ 감(感)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④ 은혜로운 물붓기
⑤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⑥ 사무엘 & 왕들의 이야기
모두 10권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