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창세기 26:5)
민수기 27장을 보면 슬로브핫의 딸들이 언급됩니다.
슬로브핫은 므낫세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는데, 다섯 딸을 남기고 광야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섯 딸이 모세와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을 찾아와서 비록 여성이지만 자신들에게도 기업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연한 요청이었지만, 여성의 권익이 잘 보장되지 않던 당시에는 어려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여성에게도 기업을 줄 것을 명하셨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남성과 차별 없이 똑같이 가나안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기업을 받는 데 있어서 여성도 소외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습니다. 또 이 일이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은 기업이 지파별, 가문별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았고, 또 종족별, 가문별로
받았습니다. 종족과 가문은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받아, 함께 누리는 공동체임을 알려줍니다.
이런 면에서 가정은 매우 중요한 공동체입니다. 모든 사람이 가정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이
양육되고 유지되는 현장도 가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을
함께 받아서 함께 누리는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 주는 예가 아브라함의 가정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이삭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이삭의 복은 야곱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부모가 받은 복을 자녀가 함께 누렸습니다. 부모로 인해
자녀가 복을 누리는 예가 창세기 26장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삭은 큰 흉년을 만났습니다.
그는 나일강이 있어서 가뭄과 흉년을 피하기 용이한 애굽으로 내려갈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하나 님께서는 야곱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26장 3~4절입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중요한 말씀은 5절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복을 끼칩니다.
또 하나님의 복이 가정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예는 부모가 자녀를 축복한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또 야곱도 열두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자녀를 축복하는 영적 권위를 주셨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축복하고, 자녀는 그 복을 누리고,
그 자녀도 또 그 다음 자녀를 축복하면서 대대로 이어지는 모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정생활의 백미입니다.
며칠 전 밤 열시가 넘어서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든 생각은 '낮에 길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도로가 텅 비었습니다. 저녁 이후에
돌아가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모두 어디로 돌아갔을까요? 물론 잘 곳으로 갔겠지요. 그러나
단순히 잘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숙박업소로 간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숙박업소와 가정은 전혀 다릅니다. 하룻밤 눈을 붙이고 잠을 자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숙박업소는
문자 그대로 숙박만 하는 곳인 반면, 가정은 사랑으로 영혼까지 어루만지는 곳입니다. 호텔은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피로가 쌓이지만, 가정은 누추해도 안락한 쉼이 있습니다. 사랑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1인 세대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혼자 살면서 모든 것을 혼자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화가 없습니다. 체온을 느낄 수 없는 스마트폰, TV, 컴퓨터 앞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제 우리는 가족과 함께하는 데 마음을 쏟았으면 합니다. 거기서 행복하길 원합니다. 가족과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길 원합니다.
조희선 시인의 <선물>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 지나고 보니 / 가장 귀한 선물은 / 당신이 내게 준 일상
하루의 일을 서로 주고받으며 / 이야기할 수 있었던 /
그 자그마한 나눔이었습니다.
나는 예전 목걸이나 / 시계 따위의 정표가
가장 귀한 것인 줄 /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이제 더 이상 일상을 /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이것이 바로 절연인 것을
이것이 바로 숨통이 끊어지는 / 아픔의 실체인 것을
이것이 바로 내가 쉬이 잠 못 드는 / 불면의 이유인 것을
지나고 나서야 / 당신이 내게 준 선물 /
너무 소중해서 눈물이 납니다 >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에서 하나님의 복을 함께 누리길 소원합니다.
- 김운성 위임목사님, 영락교회 발간 월간 ‘만남’ 24년 5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