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 외 1편
조 창 규
달력은 원룸이다 31개의 방이 있다 열두 달에 잠시 세 들어 사는 나는 윤달, 홑화살괄호 대열의 철새 떼가 내 방 창문을 지나간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저 새들은 거꾸로 가는 날짜의 낮과 밤에도 철을 바꾸지 않는다 무덤 속 할아버지를 꺼내 화장시킨다
공달이 옥상에 뜬다 나는 건조한 눈에 인공눈물을 뿌리는데 평생 우는 새들의 눈은 촉촉하다 죽은 새들의 그늘엔 울음도 묻힌다 달력의 집주인은 백로에게 방 한 칸을 내주었으나 초가을에 떠난다고 한다 음력이 재배치되는 달, 객실이 서로 뒤바뀐 손들을 나는 배웅한다
나무 한 그루가 내 방에서 자란다 달력은 나무의 유산 날짜에 동그라미를 칠 때마다 붉은 과일이 맺힌다 새를 품은 나무 그늘에 숨어 사는 나는 이제 적도가 지나가는 국가에서 지낼 요량이다 나의 오래된 독거에 모처럼 열린 길일을 새들이 쪼아 먹는 날, 윤달처럼 나는 진다
b 내리는 마단조의 날씨
b 내리는 마단조의 날씨, 임시표가 붙은 듯 잠시 햇빛이 비친다
네 귀밑 높은음자리표 타투
태어난 별자리에 운명이 있듯, 함께한 음자리에 이별이 있었다
우리는 건조하게 닮았다
꽃을 싫어하는 것도, 사막을 좋아하는 것도
너에게 피아노를 쳐주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
노래를 만들어 너에게 불러주기도 했다
우산 없이 맞는 비가 내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고
되돌이표는 발단을 좋아한다
지금 만든 곡에 네 번 변주되는 날씨를 집어넣었다
문양의 다른 말은 흉터
내 귀밑 높은음자리표 타투는 붉은 부작용을 앓고 있다
다시 내리는 차가운 플랫들
이 연주를 마치면, 문신을 지우러 간다
조창규 1980년 전남 여수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쌈으로 등단 ─작사·작곡가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