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꿈
송찬호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
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
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 기울이곤
한다
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
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
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
하지만 나는 바다의 목로에 앉아 여전히 고래의
이야길 듣는다
해마들이 진주의 계곡을
발견했대
농게 가족이 새 뻘집으로 이사를
한다더군
봐,
화분에서 분수가 벌써
이만큼 자랐는걸……
내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있다 내일은
5마력의 동력을
배에 더 얹어야겠다 깨진 파도의 유리창을 갈아
끼워야겠다
저 아래 물밑을 흐르는 어뢰의 아이들 손을 잡고
쏜살같이 해협을 달려봐야겠다
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꿈이 하나
있다
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
---송찬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에서
꿈,
꿈,
고래가 되는
꿈----.
송찬호 시인의
[고래의 꿈]은 더없이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꿈이었으면서도,
이제는 그만큼 울림이 크고
장중한 시인의 꿈이 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라는 시구나,
마지막 최종 연의
“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꿈이 하나
있다/
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이라는 시구가 그것을
말해준다.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의 ‘늘’은 그 꿈이 어린아이 때부터 갖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꿈이 하나 있다/
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은 이제는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꿈은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꿈이며,
꿈은 그 모든 것을
미화시킨다.
오래오래 묵을수록 더욱더
좋은 것이 술과 우정이라면,
이제는 오래오래 묵을수록
더욱더 좋은 것은 꿈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고래의 꿈]은 어린시절의 자그만 씨앗처럼 싹이
트고,
이 [고래의 꿈]은 떡잎이 되었다.
떡잎을 보면 그 꿈의
미래를 알 수가 있듯이,
고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몸통을 지녔고,
그 거대한 몸통에서 모든
근심과 걱정을 다 씻어줄 수 있는 분수를 뿜어댄다.
고래는
포유동물이고,
고래는 바닷물고기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나 고래는 폐로 숨을
쉬고,
자궁 속에다가 태아를
키우고,
365일만에 새끼를
출산한다.
고래의 종류는
돌고래,
쇠고래,
밍크고래,
흰긴수염고래 등
100여 종이 있으며,
흰긴수염고래는 몸통의
길이가 30m
정도이고,
그 몸무게는 코끼리의
25배 정도에 해당된다고 한다.
아무튼 고래의 분수는 삶의
원동력----삶의 숨구멍----이며,
이 분수를 뿜어올리는
힘으로 대서양과 태평양과 인도양과 북극해와 남극해를 자유자재롭게 돌아다니며,
이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되었다.
고래는 예로부터 조난을
당하는 어부를 구해주는 등,
큰 은혜를 베푸는 동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래는
고래이고,
고래의 앞길에는 막힘이
없다.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고래가 하얗게 물을
뿜어올리면 만물이 경의를 표하고,
이 넓고 넓은 바다는
고래의 영원한 제국이 된다.
송찬호 시인은 깊은 밤 고래방송국에 주파를
맞추고,
고래가 동료들을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 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 수평선 너머의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
아름답고 멋진 꿈에 위대한
꿈이 덧붙여져,
망원경으로 고래의 항로를
추적해보는 것을 “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
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라는 더없이 아름답고 멋진 시구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
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
하지만,
그러나 송찬호 시인은
오늘도 바다의 목로주점에 나가 앉아 여전히 고래의 이야기를 듣는다.
낭만주의자는 발밑의 현실을
부정하고,
머나먼 이상세계를
꿈꾼다.
이상주의자는 발밑의 현실과
머나먼 세계도 부정하고,
자기 자신의 마음과 그
생각대로 모든 것이 완벽한 지상낙원을 꿈꾼다.
시인은 머나먼 세계를
꿈꾼다는 점에서는 낭만주의자이고,
그 머나먼 세계를 완벽한
세계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이상주의자이다.
송찬호 시인은
낭만주의자이면서도 이상주의자이다.
아니,
그는 이상주의자이면서도
낭만주의자이다.
낭만주의자와 이상주의자는
모두가 다같이 꿈꾸는 자이고,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그 모든 것을 미화시킨다.
시인은 끊임없이 읽고 사유를 하며 꿈을
꾼다.
그는 꿈의 바다를
헤엄쳐나가 꿈의 산물들을 걷어 올리며,
그의 제국에 꿈의 깃발을
꽂는다.
시인은 순수하고 때문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어린아이가 되고,
꿈의 왕국을 건설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는 모든 고통들을 그의 충신으로 만들어버리는 제왕이 된다.
시인은 키가
크고,
시인의 키는 늘
자라나고,
시인은 어떠한 이야기도 다
만들어낸다.
시인은 소설가이자
화가이고,
그는 하늘마저도 감동시키는
종합예술가이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
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라는 말을 들어도 시인은 전혀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가 본 바다의 모든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오늘도,
지금 이순간에도 시인은
바다의 목로주점에 나가 “해마들이 진주의 계곡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농게 가족이 새 뻘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도
알려주고,
자기 자신의 화분에 분수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시인은 고래가
되고,
고래는 시인이
되어,
그의 낡고 낡은 꿈에다가
“5마력의 동력을”
더
얹는다.
어느덧 파도에 깨진
유리창도 갈아 끼우고,
바다밑의 어뢰들과 그 모든
장애물들을 어린아이들처럼 다스리며,
더욱더 넓고 넓은 바다로
달려나간다.
꿈은 상상의 대가이자 천하무적의
용사이고,
꿈은 천하무적의 용사이자
모든 미학의 완성자이다.
꿈은 슬픔을
모르고,
꿈은 고통을
모른다.
꿈은 슬퍼해야 할 때에도
기뻐하고,
꿈은 더없이 고통스럽고
아파해야 할 때에도 행복하게 산다.
꿈은 전지전능한
신이며,
만물의
창조주이다.
태초에 꿈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고,
태초에 꿈이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을 창조했다.
꿈은 삶의 기쁨이자
젖줄이고,
꿈은 삶의 의지이자 삶의
목표이다.
꿈과 생명은
하나이며,
꿈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꿈을 잃으면 나의 생명줄도
끊어진다.
아름다움은 크고 장대한 것을
말하고,
송찬호 시인의
[고래의 꿈]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꿈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고래,
고래의
꿈----.
오늘도 넓고 넓은 바다에서
고래들이 하얗게 분수를 뿜어올리고,
이 분수의 은총으로 너와
나의 삶과 우리들의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비가 내린다.
‘나는 꿈을 꾼다,
고로 나는
창조한다.’
우리는 꿈 꾸는 존재이고,
우리가 꿈을 꾸기 때문에
이 세계는 창조된 것이다.
천국도,
지옥도,
큰곰자리별도,
작은곰자리별도,
북극성도,
은하수도,
예수도,
부처도 우리 인간들이
창출해낸 상상력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가능한 이 세계가 가장 좋은
세계이고,
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자는 꿈꾸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