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5년 6월 13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지난 목요일....인터넷과 영상 협력하는 교회에 도착하니
교역자들은 아무도 계시지 않고 장립 집사님 한 분이 컴터 앞에 앉아서
무엇인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무슨 작업하느냐고 물었더니
경찰서 고발장 작성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장립 집사님은 건축관련 일을 하시는데
자재는 건축주가 부담하고 인건비만 받기로 하고 일을 사직하였습니다.
일반 주택 1층과 2층을 완전 리모델링하는 공사였는데
공사를 다하고서 인건비를 주지 않아 받지 못하였다고 하소연 하였습니다.
건축주는 자재비에 인건비가 포함되었다고 우겨서
결국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하의 집사님을 상대로 무모한 싸움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하였더니
건축주가 경찰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나누는 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허 전도사님의 전화였는데
심방 중에 무슨 전화냐고 하였더니 충청도의 어느 기도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웬 기도원이냐고 물으니
여름 수련화와 단기 선교를 앞두고 담임이 기도원에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가면 귀신이 역사해서 기도가 안될 텐데라고 걱정하며
이왕지사 기도원에 갔으니 스님 염불하듯 기도하지 말고 산행을 하며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등산로를 따라가지 말고 길 없는 길로 정상을 등정하며
야성의 산행을 통하여 뱀과 벌의 위험을 느끼며 인공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자연의 산에서 창조의 신성을 느껴보라고 하였습니다.
나뭇가지를 잡고 풀을 잡고 산을 오르면서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긴장 가운데 다윗의 기도를 경함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콘크리트 벽장 속의 기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가 온다고 하길레......
비를 맞으며 야생의 산행을 하면서 기도하면
엘리야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가늘고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산당과 기도원 신앙이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카페의 글을 준비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기도원은
불교의 암자와 성경의 산당 신앙이 혼합된 샤마니즘적인 기도 처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원 신앙이란 기복과 무속 신앙의 진원지요,
언약적 복음 신앙과는 대조적인 신앙의 패러다임을 가졌습니다.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실로의 성막을 언약의 신앙으로 계승하지 못하고
바알을 여호와로 섬기는 산당 신앙으로 타락하였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산당 신앙의 매력은
바알의 제의식에서 매춘행위를 하기 때문입니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바알 신앙은
제의식의 매춘 행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타락한 종교의 늪에 완전 함몰시켰습니다.
사무엘 때까지 350여년의 사사기간 동안
모세 율법의 흔적이 없고 유월절 등 절기마저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하나님을 섬겼던 광야의 이스라엘과는 완전 다른 세대의 타국인과 같았습니다.
사사기는 서론의 서두에서 여호수아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죽고 난 후부터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전혀 모르는 다른 세대의 이스라엘이라고 전제하며 그 정체성을 밝혔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사들 가운데 모세 율법의 영향을 받은 사사가 없고
또한 모세 율법의 이상을 실현한 사사도 없었습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마치 출애굽의 과정 없이 애굽의 이스라엘을 그대로 가나안 땅에 옯겨다 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어떤 신학자들은
사사기에서 언약의 맥이 끊어져 모세와 광야의 이스라엘은 설정된 역사라고 의혹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모세 율법을 전혀 계승하지 못하고 가나안의 바알 신앙에 토착화되었습니다.
가나안의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 뿐만 아니라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도 바알을 섬기는 산당 신앙으로 타락하여 심판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잃어 버린 이스라엘은
언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계승 발전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의 복음을 깨닫지 못한 기도원 신앙의 세대는
기복과 무속 신앙을 후손에게 물려 주었습니다.
진리의 복음, 곧 구원의 말씀을 잃어 버린 한국 교회는
산당의 하나님, 곧 기도원 신앙의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기도원 신앙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교회가 없을 정도로
기도원 신앙은 한국 교회 부흥 신앙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기도원 신앙은 곧 산당의 하나님을 기복과 무속으로 찾는 샤마니즘 신앙의 진원지인데
그곳으로 언약적 복음 신앙으로 연단 받은 우리 허 전도사님은 불가항력으로 보내졌습니다.
기도원을 찾는 사람......
이스라엘의 산당 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름철의 기도원은
산당 신앙의 열정으로 타오르고 기복과 무속의 꽃으로 만발할 것입니다.
풍요의 복과 무속의 능력을 받기 위한 굿당......
산당의 기도원 신앙의 정체성이요, 영적 패러다임입니다.
그러나 기도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온전히 행하는 언약적 개혁주의 복음 신앙을 가진 곳도 있을 것입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 천을 남겼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성도를 남겼을 것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선한 왕에 대한 평가를 다윗의 길과 산당 신앙을 대조하였으며
산당은 역대 악한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왕상3:2-3)
☞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왕상11:6-8)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악한 왕이었으며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왕상14:22-24)
아사 왕은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였습니다.
아사 왕의 아들 여호사밧은 선한 왕으로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고 말씀하였습니다.(왕상22:43)
요아스 왕에 대해서는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고 말씀하였습니다.(왕하12:2-3)
요아스의 아들 아먀사 왕에 대해여서는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고 말씀하였습니다.(왕하14:3-4)
웃시야라고 하는 아사랴 왕에 대해서는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고 말씀하였습니다.(왕하15:3-5)
웃시야의 아들 요담에 대해서도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왕하15:34-35)
요담의 아들 아하스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고 말씀하였습니다.(왕하16:3-4)
이스라엘의 열왕들 가운데 산당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린 선한 왕은
오직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뿐입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찢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왕하18:3-6)
히스기야 왕이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유월절을 지킬 때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겼습니다.
요시야 왕은 남 왕국 유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들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습니다.
이스라엘의 열왕들 가운데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그 두 선한 왕이 산당을 제거하였다면
산당 신앙을 모티브한 오늘날 한국 교회의 기도원은 누가 개혁할 것입니까?
한국 교회의 무속과 기복과 샤마니즘과 범신론의 진원지가 된 기도원을 개혁할 수 있는 종교 지도자는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와 기도원은 종말론적인 바벨론 교회의 아성으로
무속과 샤마니즘과 범신론과 융합된 신앙으로 이스라엘의 산당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예가 되어 끝없이 성장하고 번창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