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이 시간에 “성도 삶의 8대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은혜 생활을 갈망하는 사람은 오늘 말씀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신령한 성전인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상태가 중요합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하나님을 모실 수도 배척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에 파수꾼을 세워야 하는데 이때 우리가 통과 기준으로 삼아야 할 삶의 지혜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지혜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그 지혜를 8가지로 가르쳐줍니다.
1. 첫째 기준은 성결입니다.
17절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성결한가 성결하지 않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여기 “성결”은 ‘하그노테스’로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결함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성결은 본래 구약의 제사 용어로 제사장들이 하나님이 계신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씻고 또 씻고, ‘하나님께 성결’이라고 기록된 띠를 이마에 두르고 자나 깨나 하나님께 거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모시고 은혜 생활하려면 첫째로 우리 마음의 통과 기준이 성결한가 하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거룩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했어요. 우리가 새 예루살렘입니다. 성결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서 통과시켜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잘못하면 다 무너집니다. 그래서 히12:14-15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2. 둘째 기준은 화평입니다.
“다음에 화평하고” 화평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화평한 가운데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평이 두 번째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회개하며 마음을 씻는데도 마음이 화평하지 않으면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을 깨닫는다는 건 축복입니다.
양심의 화평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보혈 없는 그 심령에 사탄이 왕노릇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속죄의 복음을 말하면서도 아직도 율법의 정죄에 빠져 마음에 사망이 왕노릇하고 마음의 지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그 진리를 적용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롬7:24).
주님을 그토록 사모하고 은혜받기를 갈망하지만 심령은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답답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32:4에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기 전에도 후에도 나를 의롭다 하신 보혈의 공로에 담대히 서서 양심의 화평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롬5:1-2).
그리고 마음의 화평을 깨는 생각은 다 물리쳐야 합니다. 감당하지 못할 문제를 마음에 붙들고 밤새 시험 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화평이 무너지면 하나님을 모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셋째는 관용입니다.
“관용” 하다는 말은 “너그럽고 부드럽고 사려 깊다”는 의미로 이해하려는 용납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용납이란 타인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롬15:7에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받으실 때 이 모습 이대로 받으신 것처럼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엡4:32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용납하지 못해 가장 큰 손해를 볼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어떤 사람이 딴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습니다. 갈 곳 없는 부인은 모진 고생 다해 가며 삼남매 모두 대학까지 보냈지만 평생 남편을 저주하는 마음으로 불행하게 살다가 50세 젊은 나이로 죽게 되었습니다. 목사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죄지은 사람은 저토록 건강하고 형통한 데 억울하게 버림당한 성도는 일생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그때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죄 지은 사람의 죄보다 믿는 사람이 용서해주지 못한 죄가 더 크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너 자신을 위한 것이다.”
주님은 마18:35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 하셨고, 십자가 상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기도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자기를 관용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동방의 의인 욥을 보세요. 욥이 큰 환난을 당하고 몸에 병까지 들었지만 자기를 정죄하고 책망한 친구들을 용서하고 복을 빌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욥42:10)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욥의 친구가 남일 수도 있지만 내가 나를 정죄하는 내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남도 용납하지만 자신을 용납하세요. 용납하지 않으면 욥의 환난이 닥칩니다. 욥의 환난은 죄가 많거나 경건이 부족함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지나친 완전주의에 빠져 자기를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납을 모른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4. 넷째는 양순함입니다.
“양순” 이란 ‘유페이데스’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함을 말합니다. 말씀에 순종함이 얼마나 귀한지 우리 심령을 깨끗하게 합니다. 벧전1:22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순종하는 그마음이 그렇게 착하고 깨끗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삼상15:22-23). 말씀 존중이 하나님 존중이요, 말씀 거부가 곧 하나님 거부입니다. 그가 말씀을 버리자 왕위는 물론 능력이 떠나고 대신 귀신이 들어와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생활하려면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 절대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한때 아브라함도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다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13년이나 끊어졌습니다. 그 13년은 사탄에게 내준 세월이었습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선하고 신령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에는, 긍휼입니다. 그다음은 선한 열매입니다. 그다음은 편견과 거짓이 없음입니다. 오늘 다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3:18)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합왕 시절, 이스라엘에 400명의 선지자가 있었는데 모두 거짓선지자이고 참 선지자는 미가야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 상태가 사람의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우리도 아합 같은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 늘 성경 읽고 기도함으로 멸망할 땅의 생각이 아니라 위로부터 난 지혜로 충만하여 온전히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