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에 본 영화인데,
까마득하게 생각이 안 나서 '안 보았다고 생각한 영화' 입니다.
다시 한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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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 영화, 폭력 영화에는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그 외 다양한 영화를 보는 편이지요.
요즘 겨울방학이 없는 관계로 어찌나 피곤한지 퇴근하면 소파에 쭉 뻗기 일쑤인데
'아, 이러고 살면 안 되겠다. 이것도 습관이 되겠어.'
그리하여 본 영화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
18세기 프랑스의 여성화가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확 땅겼지요.

어, 포스터를 보니 퀴어영화 같기도 하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어떤 정보도 알아보지 않는 관계로 이렇게 짐작만 하고 영화관에 들어섰지요.
화가인 마리안느는 귀족의 딸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외딴 섬으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 출렁이는 바닷물 속으로 화판이 빠지자, 마리안느는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들어가 그걸 건져냅니다. 이 장면으로, 마리안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죠.
그 시대에는 결혼을 앞두고 신랑 집으로 예비신부의 초상화를 보내는 풍속이 있어 백작부인은 딸에게는 산책친구라고 하고서 마리안느를 고용한 것이에요.
엘로이즈는 수녀원에 있다 결혼하기 위해 나온 것이고(언니가 결혼을 앞두고 자살을 해서)
엘로이즈와 바닷가를 산책을 하면서, 책을 빌려주면서, 음악을 들려주면서
둘은 서서히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18세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내었고
그림을 그리는 스케치 장면, 거친 파도 소리, 장작 타는 소리 등의 소리도 자연 그대로를 살려냈어요.
영화는 느리게 흘러가지만, 지루하지는 않았어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에게 빠져드는 장면은 그야말로 아름답고 환상적이었지요.
‘마리안느’는 평등의 개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결혼을 본인이 유무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주체적인 인물이지만 정작 본인이 그린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걸지 못한 채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전시회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마리안느와 마찬가지로 귀족의 딸인 엘로이즈도 역시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해야만 하는 '억압과 차별'을 겪고 있었지요.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와 자신의 관계를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가 서로 멀어져 가며 서로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죠.
그리스 로마 신화 중 가장 비극적인 사랑으로 알려진 오르페우스 신화는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가 하데스를 찾아가 지하세계의 문턱을 통과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 출구 문턱에 발을 내딛는 순간,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궁금한 마음에 조급하게 뒤를 돌아 보게 되고, 아내는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가고 오르페우스는 영원히 그녀를 그리워하며 산다는 내용이지요.
세 명의 여성(마리안느, 엘로이즈, 하녀 소피)은 이 신화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펼치고, 그들은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힘든 미래가 보이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따를 것인지 의견을 나눕니다.
사랑하지만,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두 사람,
마리안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림을 출품했고
그곳에서 엘로이즈와 그녀의 딸 초상화를 만나게 되고.
콘서트장에서도 마리안느는 건너편 2층 구석에 앉아 있는 엘로이지를 발견합니다.
비발디의 사계(겨울 1악장)를 들으면서
예전에 마리안느가 들려주었던 그 음악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여러가지도 생각할 점이 많았던 영화,
여자라는 이유로 참 많은 억압과 편견 속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구나.
지금은 참 좋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어디에선가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그러고보니 난 어렸을 때부터
'난 왜 여자로 태어나 이렇게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 했더랬습니다.
'난 다시 태어나면 꼭 남자로 태어날 거야.' 했던 적도 있었구요.
휴, 갑자기 한숨이....
첫댓글 결국은 모두 현실을 사는 것이군요.
신화 이야기 나눌 때 하녀 소피는 어떤 생각을 나타냈는지 궁금하네요.
소피는 두 사람의 얘기를 듣다가, 왜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돌아봤냐고 분개한 듯.
우리 학교 후배교사가 이 영화 보고 별로라고 했는데, 저는 참 괜찮았어요.^^
저는 얼마전 숙대 트렌스젠더 뉴스를 보고 이 영화가 생각났어요.
약자인 여성이 자기보다 더 약자인 상대에게 매몰찬 모습을 보였죠.
숙대 동문들이 환영 연서명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고 그 친구는 포기했죠.
열걸음을 한꺼번에 갈 수 없다고 위안하는 것밖에는 더 할일이 없었어요.
뉴스 보면서 참 안타까웠어요. 숙대가 왜 그랬을까...
학교보다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거지요. 함께 화장실 쓰는 거 못한다고.
아니 예전 여대도 아니고 요즘은 남학생들도 다 강의 듣고 자유롭게 왕래하고 그러는데 그 무슨...
자신의 조금의 이익이 걸리면 사람들은 돌변하지요.
서명 해달라고 제가 아는 동문에게 몇군데 돌렸는데 거의 모두가 침묵.
그래서 진짜 놀랏어요.
평소 말과 너무 달라서. ㅠㅠ
그렇죠. 사람들은 대부분 말과 행동이 다르죠.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나아지는 그 날을 기대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