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달려오신 목사님과 코치님, 민혁형제님, 저희 부부와 아이들, 영성학교에 한번 다녀간 후 기도훈련을 받겠다고 했으나 미루고 있던 저희 시누이가 멀리서 참석을 했구요. 퇴근후 늦게라도 함께하러 달려오신 우림과 둠밈님이 참석하셨습니다. 우림과 둠밈님의 찬조로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여 나누고 목사님과 코치님께서 말씀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후 각자의 사정에 맞게 목사님의 구체적인 조언으로 다시한번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는 성령의 사람으로 성장할 것을 소망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깨를 다쳐서 팔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유난히 통증이 더 심했다는ㅠㅠ) 후기를 쓰려고 몇번이나 컴퓨터앞에 앉아 시도를 했지만, 결국 큰 딸 보배의 도움을 받게되어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다음은 보배가 목사님 말씀을 요약해 주었습니다.
[기도를 어려워하는 이유 : 의무감]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기도가 신앙인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각종 기도회를 참석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한테 소중한 분이고 그런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유함이 없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형식적인 것도 필요하고 주변사람들의 격려와 통제가 필요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가면 본인 스스로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쉽지도 않고 단기간에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내가 정말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라는 생각없이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아침에 한 시간 밤에 한 시간은 최소한이며, 하루 종일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귀며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근데 내가 몇 시간 이상 기도해야 하고 꼭 해야하는 것 등의 의무라도 생각하고 하면 기도를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영성학교의 목적 : 정예용사]
영성학교에서 기도한 지 3년이 넘었습니다. 기도훈련을 해보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모두 다 기적을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성학교의 목적은 문제해결과 병의 치유가 아닙니다. 영성학교의 목적은 정예용사, 즉 영적전쟁을 치르는 하나님의 군사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악한 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영적능력 (=성령의 능력)이 요구됩니다. 문제해결과 기도습관을 들이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일 뿐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년동안 기도훈련을 한 결과 네가지 열매(성품의 변화, 가족의 구원, 삶의 회복, 귀신쫓아냄 / 질병치유)를 맺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성령의 사람이 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입니다.
기도 한 번에 병도 다 낫고 귀신도 다 나가고 죽은 자도 살아나는 성경과 비교해 봤을 때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사나운 귀신을 쫓아내는 것만 해도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처음부터 기도훈련을 시키기 위해서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가지고 왔으니 해결해준 것일 뿐이었으며, 이는 우리의 현재 상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기도훈련을 목적으로 시작했으며 문제만 해결하는 사역이 아니기에, 그것에 맞춰서 성령님도 커리큘럼을 운영하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성학교의 목적이 문제 해결이라면 그 사람을 붙잡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도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정예용사 배출이기에 본인이 기도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1) : 전심(全心)]
영성학교는 기도학교라기보다는 기도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에 따르면 하나님은 항상 최상급을 요구하십니다. 예를 들어 ‘죽도록 충성하라 (계2:1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마22:37)’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마음을 다하’는 것, 즉 전심은 내 영혼을 다하고 내 목숨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새벽기도, 봉사, 수련회 참석, 교육프로그램 참석, 밤샘 기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기도훈련은 밤을 새웠나 안 새웠나, 기도하다가 몇 시에 집에 갔나와 같은 물리적인 시간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형식적인 행위가 아닌 숨은 속내를 본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2) : 선택]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상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 수준을 낮추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같은 잣대를 대시는 공의의 하나님이며 과거의 하나님이 아닌 현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자 나의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과 나에게 주실 축복이 동일하다는 의미로 해석하지만, 이는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믿음과 나에게 요구하실 믿음 또한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포도야 못먹어~’라 생각하며 먹을 시도를 안 합니다. 즉,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뜻인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며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또는 ‘1주일에 두번도 항상이야’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기도에 결과가 없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인정을 안 해주신다는 겁니다.
둘째, 내가 그 수준에 맞추는 것입니다. 첫번째 상황은 불가능 하기에 우리의 선택은 그 수준에 맞추냐 vs 관두냐 입니다. 영성학교에서 성령님의 증거가 나타난 사람들은 누가 보더라도 정말 자기 목숨을 다 바친 사람들이었습니다.(각자 다 다르지만 나름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3) : 하나님이 가능케하심]
따라서 여러분이 영성학교에 남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요셉과 다윗에게 요구하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11:45)’
하나님은 ‘극상품의 포도’ 즉, 전세계에서 한 명 있을까 말까하는 최고의 수준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도 우리가 못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왜 요구하십니까? ⇒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능력을 누구에게 주십니까? ⇒ 최상급의 믿음을 보이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결국 믿음의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믿음을 보이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나에게 적용]
내가 왜 아직 부족한 2%를 채우지 못하고 있나 질문해봐야 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 만나는 일에 목숨걸고 있나 질문해봐야 합니다. 목숨을 건다는 것은 10시간 이상 기도하거나 20시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이 하루종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목사님께 구체적으로 “혼자있을 때 기도하는 것이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엣날과 비교해서 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잘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변화된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처음부터 그 수준을 맞춰야 합니다. 기도응답과 기적은 처음부터 많이 일어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 수준이 됐을 때 가능합니다.
[김코치님 말씀]
목사님 말씀이 ‘다’입니다. 사실 이렇게 해도 성령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 마음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다 자신이 ‘전심으로’한다고 생각하거나 ‘전심으로’하고 있다는 생각을 귀신이 넣어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열매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이유는 희망고문을 지양하고 처음부터 ‘이렇게 해야지 하나님을 만날까 말까다.’ 라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a : 기도할 때의 감정]
기도할 때에 마음이 간절해지고 있는가 너무 따지지 마십시오. 내가 하루종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게 감사하는 마음이 올라오고 있는가 간절해지고 있는가 평가하는 것은 내가 평가자가 되고 내 만족, 내 힘으로 기도하게 합니다.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고 그저 기도하는 기계처럼 감정 없이, 하나님의 종처럼 시키는 대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기도하는 것이 즐겁고 감사하면 좋겠지만 그런 마음과 결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는 것 자체를 기뻐하십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보배로운 따님덕택에 다시 되새길수있어서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후기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