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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책을 내게 주소서.(24)
말씀: 계 10:1-11.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오후 2시
천사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포한 세 가지 화(禍) 중에서 두 가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마지막 세 번째 화가 남았는데 주님은 일곱째 천사의 마지막 나팔을 불기 전에 요한에게 다른 장면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이전까지 여섯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땅에 임한 하나님의 진노, 재앙을 보았고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을 보게 됩니다. 하늘에 있는 일을 보기 전에 주님이 뭔가를 보여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것이 10장의 내용입니다.
10장의 주요 등장인물은 “강력한 천사”(1)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로 증인으로서 보고 듣고 기록하는 것이 주 임무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단순한 구경꾼이나 방관자가 아니라 기록자가 직접 사건에 개입해서 묻고 답하는 일이 있습니다. 일곱 봉인을 떼는 장면에서 일곱째 봉인이 열리기 전에 요한은 하늘에 있던 장로와 큰 환란 성도들의 정체에 대해 묻고 답했습니다.
장로가 요한에게 “흰 예복을 차려입은 이들은 누구냐? 그들은 어디서 왔느냐?”(계7:13)고 묻자 요한은 “장로여, 당신이 아시나이다.”(계7:14)라고 대답합니다. 여섯째 봉인이 열린 후에 일곱 째 봉인이 열리기 전 주님은 요한에게 하늘에 올라와 있는 “큰 환란 성도들”에 대해서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팔 재앙에서도 동일한 패턴입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난 후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기 전에 하늘에 있는 강력한 천사와 요한은 대화를 나나누었습니다. 이전에는 장로들 중의 한 명과 대화했는데 이번에는 강력한 천사와 대화했습니다.
그 강력한 천사는 요한에게 몇 가지 지시 사항을 주었습니다.
첫째, 일곱 천둥이 말한 그것들을 봉인하고 그것들을 기록하지 말라(10:4).둘째, 가서 바다와 땅 위에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펼쳐져 있는 작은 책을 취하라(10:8).셋째, 그것을 가져다가 먹으라(10:9).넷째, 네가 반드시 많은 백성들과 민족들과 언어들과 왕들 앞에서 다시 대언해야 하리라(11).
요한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는 기록관, 증인으로 해야 할 임무를 부여 받았습니다. 주의 말씀을 보고 들은 증인은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책을 취하고 그것을 먹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손에 주님의 책을 취해야 합니다.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언약의 책을 가져다가 읽었습니다(출24:7). 신자는 주님께서 주신 책을 읽고 듣는 것으로 삶이 시작됩니다. 여호수아는 주님으로부터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밤낮으로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모든 것에 따라 지켜 행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길의 순탄함과 성공의 비결입니다.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모든 것에 따라 지켜 행하라. 그러면 네가 네 길을 순탄하게 할 것이며 그러면 네가 크게 성공하리라.](수1:8).
오늘날 은사주의 교회의 목사나 설교자들이 하는 축복, 형통, 성공의 비결과 비교해 보십시오. 형통과 성공의 비결이 성경 읽기와 묵상, 순종에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신자로서의 성공, 형통의 비결은 바로 성경 읽기로부터 시작입니다.
[그가 자기 왕국의 왕좌에 앉거든 그는 자기를 위해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 있는 그것에서 이 율법 사본을 책에 기록한 뒤 그것을 자기 곁에 두고 평생토록 그 안의 것을 읽어 {주} 자기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들과 이 법규들을 지키고 그것들을 행할 것이니라.](신17:18-19).
주님은 훗날 왕좌에 앉을 이스라엘 왕들에게 제일가는 업무가 곧 성경 읽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에게 정치, 경제, 외교, 군사를 다루는 법, 민심을 얻고 다스리는 법 등을 두루 알고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경 읽기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모두 왕가의 제사장이며(벧전2:9), 앞으로 왕좌에 앉을 사람들입니다(계1:6, 5:10).
그럼 우리가 왕과 제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왕가의 법(약2:8)을 한 권 곁에 두고 그 안의 것을 읽고 배우고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쌓아 두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큰 환란 때나 성경 읽기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은 말씀에서 나오며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으로 살며, 말씀이 마귀와 싸울 수 있는 성령의 검이기 때문입니다.
자,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2억의 뱀의 꼬리를 가진 말과 말 탄 자의 재앙으로 이 땅의 사람들 1/3을 죽였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화 즉 일곱째 천사의 나팔은 계시록 11:14에서 선포됩니다. [둘째 화가 지나갔으며,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오리라 하더라.](계11:14).
10:1-11:13절까지는 여섯째 재앙과 일곱째 재앙 사이에서 일어난 일 세 가지를 보여줍니다.
첫째, 강력한 천사와 작은 책입니다.
요한은 작은 책을 취해서 먹고 증언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10장).
둘째, 강력한 천사와 두 증인의 활동입니다(계11:1-6).
큰 환란 때 두 증인은 땅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요 두 등잔대로 불리며 강력한 권능과 표적을 행하며 땅에서 활동합니다. 이들의 활동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아무도 이들을 해하거나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셋째, 두 증인의 죽음과 부활 승천입니다(계11:7-12).
두 증인은 42개월 동안 이 땅에서 대언하며 주의 말씀을 증언합니다. 이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바닥없는 구덩이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입니다(계11:7). 바닥없는 구덩이의 천사는 아바돈(히), 아폴리온(헬)이라 불리며 전갈의 꼬리를 가진 메뚜기들을 다스리는 왕입니다(계9:11).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온 메뚜기 떼들은 5개월 동안 사람들을 쏘고 고통을 주지만 이마 안에 하나님의 인을 가진 144,000명은 건드리지 못합니다(계9:4). 그러나 그 짐승은 하늘을 닫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이 두 증인을 대적하고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입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이 짐승이 누구인지 살펴보았기에 이 내용은 반복됩니다. 이 짐승은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온 천사이며, 왕이며, 아바돈(히)과 아폴리온(헬)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멸망의 아들이며 사망과 지옥이 대문자로 의인화된 인물이며 요한이 보고 놀랐던 인물로서 전에는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올 자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두 증인을 대적하고 이기고 죽이는 강력한 권능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을 통해 미래의 역사를 미리 보고 있으며, 먼 훗날에 발행될 신문 기사나 방송 보도 내용보다 더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보고 듣고 있는 중입니다. 성경이란 책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알고 미래를 압니다. 이것이 지금의 돈벌이나 실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내용보다 내일의 날씨나 부동산 경기나 증권 소식이나 이런 저런 실제적인 뉴스를 원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기록해 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고자 하는 것들,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기록한 책이란 사실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1절입니다. [또 내가 보니 다른 강력한 천사가 구름으로 옷 입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있고 그의 얼굴은 해 같으며 그의 발은 불기둥 같더라.](계10:1).
사도 요한은 여러 천사들을 보았지만 여기서 본 천사는 다른 천사들과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또 내가 보니 다른 강력한 천사가...”(1)라고 할 때 ‘다른’(another)은 성격이나 모습이나 모든 것이 보통 천사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계시록에서 힘센 천사(계5:2), 강력한 천사(10:1, 18:21)로 세 번 나오는데 본문에서 말하는 강력한 천사는 계시록 1:14-15에서 나타난 주의 천사인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들이 그냥 천사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는 증거는 11:3,4절에 나옵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능을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 동안 대언하리라. 이들은 땅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나무요 두 등잔대니라.](계11:3-4).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능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10장에(10:1,2,3,5,8,7,10,11) 이어 11장에서도 계속해서 강력한 천사라 불리는 그 천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천사가 11:3,4에서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라고 말합니다. 두 증인은 분명히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이에 그가 이르되, 이들은 두 명의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이며 온 땅의 [주] 곁에 서는 자들이니라, 하더라.](슥4:14)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곁에 서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데 10:1절의 강력한 천사가 바로 온 땅의 주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천사는 주님 자신의 현현으로서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을 “주”라고 말씀하시며 사람들의 경배를 받습니다. 일반 천사들이 ‘주의 천사’로 불릴 때에는 사람들의 경배를 받지 않습니다. 주님의 사역자로서 ‘주의 천사’이지 주님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구분이 필요합니다.
요한이 본 다른 강력한 천사는 “구름으로 옷 입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있고 그의 얼굴은 해 같으며 그의 발은 불기둥”(계10:1) 같았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나 가브리엘은 이런 모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나 롯에게 왔던 천사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야곱과 씨름을 한 천사도 이 모습이 아닙니다. 용모에서부터 일반 천사들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 천사의 목소리는 일곱 천둥이 내는 소리 같은데 이는 주의 음성입니다. 자, 이런 모습을 한 이가 누구인지 좀 더 추적해 보면 간단합니다. [그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보니, 보라, 어떤 사람이 아마포 옷을 입었고 그의 허리에는 우바스의 정금으로 띠가 둘렸더라. 그의 몸은 또한 녹주석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개 모양 같으며 그의 눈은 등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의 색깔은 연마한 놋 같으며 그의 말소리는 한 무리의 소리 같더라.](단10:5-6).
다니엘은 천사라고 하지도 않고 “어떤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이 말한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본 모든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단12:8에 보면 다니엘이 “오 내 [주]여”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이 본 어떤 사람은 주 하나님이셨습니다. 에스겔 1:26-28, 8:2, 계시록 1:14-16절에서 본 모습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계시록 10장에 나오는 강력한 천사가 주 예수 그리스도란 사실을 알아채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요한은 천사들의 나팔 재앙을 보다가 마지막 한 개의 나팔을 남겨 두고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친히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나팔 재앙 중에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 주십니다. 어린양께서 봉인을 떼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환란 성도들을 보여 주셨고 천사들이 나팔을 불 때에는 땅에 있는 두 증인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1). 계시록에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천사가 세 번 나옵니다. 10:1의 강력한 천사, 18:1에는 큰 권능을 가진 다른 천사, 20:1에는 바닥없는 구덩이의 열쇠와 큰 사슬을 가진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이들은 각자 이 땅에서 하는 일이 있습니다. 천사들의 사역은 온전히 주 하나님께서 명한 일들을 완수하는데 있습니다. 큰 환란 때 이 땅의 주된 사역자들은 대언자나 목사들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천사들입니다.
2절입니다. [그가 펼쳐져 있는 작은 책을 자기 손에 들고 자기 오른발은 바다 위에 자기 왼발은 땅 위에 둔 채](계10:2).
강력한 천사는 작은 책을 손에 들고 자기 오른발은 바다 위에, 자기 왼발은 땅 위에 두고 있습니다. 바다는 지중해이고 땅은 팔레스타인 땅입니다. 큰 환란 때 이 세상의 주 무대는 미국이나 유럽이나 아시아가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지역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여기서 시작되고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주님께서 작은 책을 손에 들고 바다와 땅 위에 서 계십니다. 하늘에서 내려 오셔서 바다와 땅 위에 서 있습니다. 발을 땅 위에 두었다는 것은 정복이나 소유를 말합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준 땅을 밟게 하셨습니다(창13:17). 여호수아에게도 그러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것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나니](수1:3).
발을 어딘가에 두었다는 것은 그곳을 소유지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발을 두었다는 것은 굴복시켰다, 정복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셨으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그의 아래 놓였도다, 하고 말씀하실 때에 모든 것을 그분 아래 두신 분은 예외인 것이 분명하도다.](고전15:27). 강력한 천사가 책을 손에 들고 한 발을 바다 위에 한 발은 땅 위에 두신 것은 소유와 정복을 의미합니다.
3절입니다.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음성으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천둥이 자기 음성을 내어 말하더라.](계10:3). 예수님의 음성은 성경에서 천둥소리, 많은 물소리, 나팔 소리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다고 하시는데 이는 그분께서 유다 지파의 사자(계5:5)이기 때문입니다.
큰 환란 중에 예수님께서 심판의 지상 재림이 아니라 힘센 천사의 모습으로 이스라엘 땅에 친히 나타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거나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주의 천사로 자주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큰 환란 때는 강력한 천사로 이 땅에 오십니다. 그리고 환란을 마무리 지으시는 심판의 주님은 흰말을 타고 그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십니다(19:11~).
그분께서 큰 음성으로 외칠 때에 일곱 천둥이 자기 음성을 내어 말합니다. 그분의 음성이 일곱 천둥의 소리로 이 땅에 쏟아집니다. 주님의 등장은 유대인들의 회심을 위한 결정적인 사건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큰 환란 중에 어느 날 민족적으로 회심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은 이를 해산하는 고통 중에 아이를 낳는 여인으로 비유합니다.
두 구절을 봅니다. [그녀가 진통을 겪기 전에 해산하고 자기의 고통이 닥치기 전에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누가 그러한 일을 들었느냐? 누가 그러한 일들을 보았느냐? 땅이 열매를 내기 위해 하루에 만들어지겠느냐? 혹은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자기 아이들을 낳았도다.](사66:7-8).
이스라엘은 큰 환란 때 자기 아이들을 낳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내아이들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왕국 복음을 전할 144,000명의 동정들과 남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산고를 겪는 그녀가 출산할 때까지 그가 그들을 내줄 것이며 그 뒤에 그의 형제들 중에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오리라.](미5:3).
미가서 5:2절은 초림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절의 산고를 겪는다는 것은 큰 환란을 말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들을 방해하고 그들을 구원할 대언자들이나 예수 그리스도나 사내아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죽이려합니다. 그러나 큰 환란 때에 남은 자들이 구원 받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처음에는 요셉을 자기들의 주요 통치자로 받지 않았지만 두 번째 가서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하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 모세를 배척했지만 두 번째에 그를 자신들의 주(主)요 통치자로 영접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다시 나타날 때 그들은 그분을 받아들이고 회심할 것입니다.
유대인들 중에 이방인들에게 주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선별된 두 사람이 있습니다. 구약의 대언자 요나와 신약의 사도 바울입니다. 이들은 모두 유대인들로서 이방인들에게 주의 심판과 복음을 선포하도록 선별된 자들입니다.
큰 환난 때에 144,000명은 그들과 같이 온 땅의 모든 민족들에게 왕국 복음을 전하도록 선별된 무리들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때리고 죽이던 자였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자신에게 나타난 예수님을 본 후 갑자기 회심하여 예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큰 환란 중에 ‘강력한 천사’로 나타나실 때 회심하게 될 것입니다. 환난 성도들은 144,000의 사역자들과 두 증인과 강력한 천사를 보고 믿습니다. 손에 작은 책을 들고 바다와 땅에 선 강력한 천사의 큰 음성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민족적 회심을 하게 될 것인데 이 날이 속죄일이라 불리는 날로(레23:27,28). 7월 10일입니다(레23:27, 25:9).
4절입니다. [일곱 천둥이 자기 음성을 내어 말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 하다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내게 이르기를, 일곱 천둥이 말한 그것들을 봉인하고 그것들을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계10:4).
요한은 일곱 천둥이 자기 음성을 내어 말할 때에 자신이 들은 것들을 기록하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한 음성이 나서 “일곱 천둥이 말한 그것들을 봉인하고 그것들을 기록하지 말라.”(4)고 하셨습니다. 3절에서 뭔가를 말씀하셨는데 요한이 그 내용을 기록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요한은 기록하고자 했지만 주님은 기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거룩한 대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기록해야 할 말씀을 영감으로 주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주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인데 대언자들이나 사도들이 알고 듣고 보고 체험한 모든 것들을 다 기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기록하게 한 것들만 성경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모세는 모세 오경에 자신이 알고 경험한 모든 것을 다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서신서에 자신이 받은 지식, 계시를 다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우리가 읽고 알기를 원하시는 것만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봉인하라는 것은 닫아 두라는 의미입니다. 봉인하라는 말은 인 친다, 도장을 찍어서 아무도 그것을 마음대로 열어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9:24절에 “환상 계시와 대언을 봉인하고...”란 말씀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또 다른 곳에 [그러나, 오 다니엘아, 너는 끝이 오는 때까지 그 말씀들을 닫아 두고 그 책을 봉인하라.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음질하며 지식이 증가하리라. 하니라.](단12:4)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은 말씀들의 내용을 알고자 했지만 성경은 [...주께서 끝이 오는 때까지 그 말씀들을 닫아 두고 봉인하셨느니라.](단12:9)고 말씀합니다. 봉인이 풀리면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열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도들을 봉인하셨습니다(요6:27, 롬15:28, 고후1:22).
이번에는 다니엘처럼 기록은 하되 봉인해 두라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천사는 요한에게 일곱 천둥이 말한 것들을 봉인하라 하셨습니다. “......일곱 천둥이 말한 그것들을 봉인하고 그것들을 기록하지 말라.”(4)고 기록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일곱 천둥에 대한 성경적 정보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음향 장치를 사용하여 작은 목소리로도 수 천, 수만 명이 한꺼번에 내는 큰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수백만 명 앞에서 공연하거나 연설할 때 사람들은 곳곳에 스피커를 설치합니다. 마이크 앞에서 내는 소리는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증폭되어 큰 소리로 울려 퍼집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일곱 천둥이 그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만든 전기 전파 장치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천둥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5절입니다. [내가 본 천사 즉 바다와 땅 위에 서있던 천사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계10:5).
계시록 4장의 수정 같은 유리 바다와 계시록 21장의 바다는 저 하늘에 있는 바다로서 이 땅의 대양들이 아닙니다. 둘째 하늘들 위에 있는 물들로써 바다들입니다(시148:4). 본문에서 말하는 바다는 지중해를 말하므로 문맥을 잘 살펴야합니다.
6절입니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 곧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분을 두고 맹세하기를 더 이상 시간이 있지 아니할 것이나](계10:6).
강력한 천사는 창조자 하나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하나님은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이시오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강력한 천사는 영원히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기를, “더 이상 시간이 있지 아니할 것이나”(6)라고 합니다. 큰 환란의 마지막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큰 환란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주님의 지상 재림과 더불어 심판이 있고 천년 왕국이 시작됩니다.
7절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음성을 내는 날들 즉 그가 나팔을 불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신비가 그분께서 자신의 종 대언자들에게 밝히 드러내신 것 같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10:7).
강력한 천사는 일곱째 천사가 음성을 내는 날들에 하나님의 신비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신비는 대언자들을 통해 성경에 미리 기록하시고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집니다. 일곱째 천사는 계시록 11:15에서 나팔을 붑니다. 그럼 이루어진다는 하나님의 신비는 무엇입니까? 왕국의 신비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 하니](계11:15).
이 세상의 왕국들이 우리 주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 대언자들에게 밝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부터 줄기차게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침례 요한과 주님과 사도들이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할 때 하늘의 왕국이 바로 이것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기 시작할 때 이 일이 이루어집니다.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결코 멸망하지 아니할 한 왕국을 세우실 터인데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할 것이며 도리어 이 모든 왕국들을 부수어 산산조각 내어 소멸시키고 영원히 서리이다. 아무도 손대지 아니하였으나 산에서 잘려 나온 돌이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수어 산산조각 낸 것을 왕께서 보셨으니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이후에 있을 일을 왕에게 알리셨나이다. 그 꿈은 확실하며 그 꿈의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라.](단2:44-45).
이 말씀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기 시작할 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구약의 대언자들은 이 땅에 하나님이 세우실 문자적이고 정치적이고 물리적이며 실제적인 한 왕국에 대해 선포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는데 그 말씀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기 시작할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의 왕국은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눅4:6, 고후4:4, 요12:31). 예수님께서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니라. ......... 그러나 지금은 내 왕국이 여기에서 나지 아니하느니라, 하시니라.](요18:36)고 하셨는데 이는 앞으로 이 왕국을 차지할 때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신적이고 영적이고 도덕적이고 우리 안에 있는 내적인 영역에서만 왕이시며 우리 마음을 통치하시는 분이란 주장은 거짓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문자 그대로 왕위에 앉으시고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실 분이십니다. 계시록 11:15에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이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크게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부는 나팔을 교회의 휴거와 연관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으켜지며 우리가 변화되리니](고전15:51-52).
본문의 마지막 나팔 소리를 마지막 나팔로 연결해서 일곱째 천사가 부는 나팔 소리에 교회가 휴거된다는 주장입니다. 교회의 큰 환란 통과를 주장하는 이들이 관련구절로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나팔(last trumpet)이 아니라 마지막 나팔소리(the last trump)입니다. 이 둘은 다릅니다. 이 나팔 소리는 일곱째 천사가 부는 나팔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음성을 내는 나팔 소리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
하나님의 나팔 소리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일곱째 천사는 하나님이 아니므로 이 구절들로 교회의 큰 환란 통과를 주장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힘센 천사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교회가 들림 받는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왕국들이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휴거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미 교회는 큰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하늘로 들림을 받은 상태입니다. 교회가 여섯 가지 나팔 재앙을 다 통과하고 일곱 번째 재앙만 피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비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의 신비가........ 이루어지리라.”(7). 성경에는 다양한 신비들이 나옵니다.
하늘의 왕국의 신비들(마13:11), 하나님의 왕국의 신비들(막4:11, 눅8:10),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를 때까지 일부가 눈머는 일이 이스라엘에게 생기는 일(롬11:25), 십자가의 신비(롬16:26, 고전2:7), 휴거의 신비(고전15:51),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고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엡3:3-6),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엡5:32), 복음의 신비(엡6:19),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골26-27), 삼위일체의 신비(골2:2), 그리스도의 신비(골4:3), 불법의 신비(살후2:7), 믿음의 신비(딤전3:9), 성육신의 신비(딤전3:16), 일곱별과 일곱 금 등잔대의 신비(계1:20), 큰 바빌론의 신비(계17:5),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의 신비(계17:7) 등이 성경에 나오는 신비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신비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신비들을 알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또한 이런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기라고 합니다. [사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그렇게 여길지어다.](고전4:1).
우리 주위의 성도들 중에는 신비와 비밀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이는 부패하고 변개된 현대 역본들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자들입니다.
방언 기도를 하는 이들 중에는 자신들이 영으로 하나님의 신비들을 말한다고 자랑합니다. 방언하는 것을 대단히 신령하고 비밀스러운 어떤 것들을 말하는 것인 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늘의 왕국, 하나님의 왕국, 복음, 믿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성도의 휴거, 큰 환란과 적그리스도, 주님의 다시 오심과 왕국 등에 대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신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이요 생명인 주의 말씀으로 이런 진리들을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들을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내가 하늘로부터 들은 그 음성이 다시 내게 말하여 이르되, 가서 바다와 땅 위에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펼쳐져 있는 작은 책을 취하라, 하기에](계10:8).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작은 책을 취하라.”말씀하셨습니다(8). 일곱 봉인으로 된 두루마리 책은 어린양 외에 아무도 취할 수 없었지만 이 책은 요한에게 취하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이 책은 작은 책이라고만 언급되어 있는데 그 안에 무슨 내용들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천사의 손에 펴놓은 작은 책은 요한에게 주어졌습니다.
시내 산에서 모세는 천사의 손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천사들을 통해 제정하신 것이요(행7:53), 약속을 받은 그 씨가 오실 때까지 범법들로 인해 더해진 것입니다(갈3:19). 큰 환란 때 요한에게 준 것은 돌 판이 아니라 작은 책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그 천사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그 작은 책을 내게 주소서, 하니 그가 내게 이르되, 그것을 가져다가 먹으라. 그것이 네 배는 쓰게 할 것이나 네 입에서는 꿀같이 달리라, 하니라.](계10:9).
요한은 그 천사에게 가서 “그 작은 책을 내게 주소서.”라고 요구했습니다. 요한은 주의 말씀에 순종해서 작은 책을 취하러 간 것입니다. 이 책은 무슨 책인지 모릅니다. 율법 책이나 생명책은 아닙니다. 다만 주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임은 분명한데 이는 요한이 이 책에 기록된 것들을 대언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 천사는 요한에게 “그것을 가져다가 먹으라.”(9)고 했습니다. 이 책은 요한이 보고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먹어야 할 책”입니다. 요한이 이 책을 먹으면 배에는 쓰지만 입에서는 꿀같이 달 것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에 먹는 음식 중에 입에 달고 배에 쓰다면 불량품이 많습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천사의 손에 있던 이 책은 입에는 달고 배에는 쓸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책)을 가져다가 먹으라.”(9).
우리는 일상에서 먹는다는 표현을 너무나 흔히 씁니다. 더위 먹었다, 한 방 먹었다, 욕먹었다, 1등 먹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먹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한 솥밥 먹는 처지에...등 온통 먹는다는 말입니다. 동사 중에 ‘먹다’란 말을 넣으면 안 되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은 000가 뇌물을 받았다가 아니라 뇌물을 받아 쳐 먹었다고 합니다.
혼자 이익을 차지하면 “혼자 다 해 처먹었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책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4:4). 주의 말씀을 먹는 방법은 듣고 믿는 것입니다. 들었다, 믿는다. 를 다른 표현으로 먹는다고 합니다.
음식은 입을 통해 배로 들어갑니다. 말씀은 귀를 통해 마음으로 들어갑니다. 음식은 몸을 위한 양식입니다. 말씀은 혼을 위한 양식입니다. 사람들은 몸에 필요한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지만 혼을 위한 양식을 얻는데 소홀합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의 혼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주의 말씀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먹으매 주의 말씀이 내게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 되었사오니, 오 {주} 군대들의 [하나님]이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불리나이다.](렘15:16).
대언자 예레미야는 주의 말씀을 먹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믿는 것이 먹는 것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몸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눈으로 읽고 귀로 듣지만 그것을 마음속으로 깊이 들여보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그분 입술의 명령에서 떠나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그분 입의 말씀들을 더 귀히 여겼도다.](욥23:12). 욥은 주의 말씀을 얼마나 귀히 여겼던지 필요한 음식보다 더 귀히 여겼다고 합니다. 욥의 인내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참으로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119:103). 다윗은 주의 말씀의 맛을 알고 그것을 먹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했는데 이는 먹은 말씀을 소화시키는 과정입니다. 말씀을 듣고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은 우리 혼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날마다 주의 말씀을 먹고 그 말씀으로 자라나야합니다. 거듭났으나 순수한 젖을 사모하지 않고 먹지 않으면 그 혼과 영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전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함이라.](벧전2:2)
10절입니다. [내가 그 천사의 손에서 그 작은 책을 가져다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으나 내가 그것을 먹은 뒤에 곧바로 내 배가 쓰게 되었더라.](계10:10).
요한은 그 천사의 손에 펴져 있던 작은 책을 가져다가 먹었습니다. 그 책은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으나 즉시로 배에서는 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갓 태어난 아이들이 먹고 자랄 수 있는 젖입니다. 순수한 말씀의 젖에 불순물이 들어 있으면 아이는 건강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구원 받았지만 모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병들고 약하고 기형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먹는 말씀의 순수한 젖에 독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역본들은 중요한 영양소가 빠지고 여기저기 독소들이 첨가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상에서 먹어야 할 빵입니다(눅4:4, 요6:35). 이 말씀이 없으면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 빈혈, 건강에 문제가 생깁니다. 늘 피곤하고 힘이 없습니다. 빈곤과 기아의 문제는 모든 경제 정책의 기본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문제가 완전히 극복된 줄로 알지만 지구촌의 3/4이 빈곤, 기근의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먹지 못하여 생기는 문제들을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의 빵이 없어서 대체 양식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철학, 종교, 각종 마술과 점성술, 명상, 신접 등은 다 그러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기’입니다(히5:14). 어른들은 고기가 필요합니다. 의의 말씀은 단단하고 질긴 고기에 해당합니다. 고기 맛은 먹어 본 사람이 알고 먹던 사람이 더 잘 먹습니다.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다루는 것들은 모두 고기에 해당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늘 은혜로운 말씀만 찾는 이들에게 의의 말씀은 감당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같고 사과들과 같고 고기와 같습니다. 충분한 당분과 비타민을 공급합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성경을 읽는다면 여러분들의 혼은 결코 갈증과 주림으로 고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은 그 책을 가져다가 먹었습니다.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지만 배는 쓰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 중에 상당히 이런 것들이 많습니다. 말씀을 읽고 공부할 때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배우고 새로운 것을 익힐 때는 정말이지 성경 공부에 이런 맛도 있구나 싶기도 하고 은혜롭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쓴 약을 삼키는 것보다 더 망설여지고 힘들고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할 때 박해가 따릅니다. 주의 말씀대로 행하고자 할 때 뭔가 문제가 터지고 불이익을 당하고 이런 저런 사건 사고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들고 이 말씀이 순수한 주의 말씀이라고 선포해 보십시오. 당장 교회를 무시한다, 파괴한다, 분열을 일으킨다... 별 소리를 다 듣게 됩니다. 기존 교인들은 바른 말씀을 외치는 이들을 이단이니 사랑이 없느니 극단적 주장을 한다느니 욕하고 배척합니다. 말씀 공부는 좋지만 치러야 할 대가는 엄청납니다.
11절입니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반드시 많은 백성들과 민족들과 언어들과 왕들 앞에서 다시 대언해야 하리라, 하더라.](계10:11).
말씀을 먹고 나서 해야 할 일은 모든 사람들에게 대언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먹으면 그 말씀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영이 거듭나면 우리는 혼을 통해 주의 말씀을 빵이요, 음료요, 젖이요, 꿀이요, 고기로 삼아 먹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몸은 음식이 필요치 않습니다.
거듭나지 않는 영은 영적 양식이 필요치 않습니다. 혼이 구원 받았다면 주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 혼은 입을 가지고 있습니다. 혀가 있고 배가 있습니다. 혼은 창자가 있습니다. 혼은 먹고 마실 양식이 필요합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의 영과 혼에 양식이요 음료입니다. 물이요 기름이요 등불이며 불입니다. 주의 말씀은 칼이며 망치입니다.
성도들은 주의 말씀을 먹을 수 있습니다. 성경책의 종이를 먹으란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 먹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주의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생활 언어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가져다가 취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다 보면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꿀, 송이 꿀보다 달다고 할 수도 있고 쓰디쓴 약처럼 쓰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시원한 냉수처럼 마실 수도 있습니다. 혼을 상쾌하게 해 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뜨겁게 해 줄 수도 있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먹고 사는 방법을 터득하십시오. 성경 책 한 권을 가지고 홀로 먹고 사는 방법을 터득하십시오.
말씀을 먹지 않는 사람은 병자, 환자입니다. 병자들은 식사량이 극히 적습니다. 아예 먹고 싶은 욕구가 없습니다. 교회를 병원인 줄로 아는 크리스천들은 와서 드러눕습니다. 그들은 식사 시간을 귀찮아합니다. 잠이나 푹 자고 갔으면 합니다. 때가 되면 영양제나 약으로 음식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목사는 마치 의사나 간호사처럼 환자들에게 약간의 음식과 약을 제공해 줄 뿐입니다.
말씀을 먹지 않는 사람은 잠을 자는 사람들입니다. 겨울잠을 자는 북극곰들이나 뱀들이나 개굴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동면에 빠져 들면 아무 것도 먹지 않습니다. 먹을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잘 때는 먹는 것조차 귀찮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동면에 빠져든 것처럼 보이는 성도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들은 마치 “때가 될 때까지 나를 깨우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은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벧전5:8). 우리는 모든 일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딤후4:5).
사도 요한은 말씀을 받아먹고 그 말씀으로 많은 백성들과 민족들과 언어들과 왕들 앞에서 다시 대언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받아서 먹고 그 말씀을 선포하고 증언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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