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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 5장 13~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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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행함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너무 지나쳐서 믿음 보다 행함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분명한 것은 행함 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덕목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행함은 믿음이라는 본체, 기초, 출발점에서 기인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이다 라고 야고보서에서 말하지만, 믿음 없는 행함은 바람에 날리는 쭉정이와 같다는 것이 우선입니다.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굳게 믿음으로 인하여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성령의 감동 주심으로 인하여 행함의 열매를 맺어가게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행함입니다.
어떤 사람이 너무나 성실하게 많은 행함으로 공적을 산 산같이 쌓았다고 할지라도 그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하나도 없는 공허한 상태라면 그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결과만 얻을 뿐입니다.
행함은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히 중요 하지만, 그 이전에 나의 믿음의 흔들리지 않도록 믿음의 주인을 굳게 붙잡고, 그의 마음 안에 항상 거하며, 그와 일평생 동행하고 있음을 유지해 나가는데 더욱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행함을 통하여 그 믿음이 확고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주장을 역설 한 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일평생 기도에 힘쓰라는 권면을 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입니다. 야고보는 삶의 평온한 상황에서 기도를 말한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 끝까지 참아내고 인내하며 기도의 승리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에서 그토록 강조한 행함이라는 것의 대미가 고난 중에 인내 하며 기도 하라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모든 행함의 열매,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행함이라는 것을 실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가 우선 되어야만 모든 것이 이루어 진다는 의미입니다.
7절에서 “길이 참으라”, 8절에서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10절에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라는 말이 연속이 됩니다. 참고 참고 또 참으면서 고난 중에 인내하고 기도하면 주의 강림을 맞이하게 되는 그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고 강조 합니다.
옛 말에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참는 자가 강한 자이며 이기는 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고난의 길에 동참하며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는 하겠는데, 참는다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의 첫 구절이자 이 달의 암송 말씀인 13절을 읽어 드립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아멘.
이 구절은 병원 심방이나 위로 방문을 하였을 때 진짜 자주 인용 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고난을 당한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당한다라고 하니, 마치 나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외부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하여 고난이 무작정 닥쳐 오는 것을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고난은 우리에게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을 믿고 사는 한, 그 전지전능 하심의 보호막 아래에서 어떤 고난도 받지 않고 살아가도록 보호 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고난에 대하여 우리는 의문이기도 하고, 불만이기도 하고, 무기력하기도 합니다.
‘고난’이라는 단어(헬-카코페디에, 영-afflicted)는 악한, 나쁜, 위험한, 유해한, 이라는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뜻 안에는, 고난 이라는 것이 우리 내면의 숨겨진 죄와 악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에 의해서 나타날 수도 있으며, 위험하고 유해한 외부의 환경과 상황에 의하여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문제이든, 외부 환경적인 문제이든 어느 개인에게 닥쳐오는 고난을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만약 내게 닥친 고난이 죄와 악에 의한 징계라고 한다면 기도를 통하여 참되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고, 외부의 환경요인에 의하여 발생하였다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하심으로 보호를 요청해야 합니다.
즉, 기도를 통하여 내게 닥쳐오는 내적, 외적 고난을 극복한다는 것은, 곧 모든 고난의 뒤편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작동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노하심을 거두어 주심과 자비하심의 손길을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하는 해법을 찾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어서 즐거워 하는 자는 찬송하라고 했는데, 좋은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콧바람이 나고 찬송이 저절로 나오고 감사가 넘칠 겁니다. 하지만 고난 당하는 자가 기도하면서 즐거움에 이르러 찬송까지 부르게 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당장 육체의 고통이 심각하고 마음이 찢기는 아픔이 가중 되는데, 기도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만약 내가 겪을 수 최대치의 육체의 고난을 갑자기 당한다면 나는 마음을 부여 잡고 기도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솔직하게 제 자신도 감히 장담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신앙경험에 의하면 고난이라는 난관을 맞이하여 외부에서, 사람에게서, 다른 어떤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 고난을 일시적으로 잊어버리게 하거나 “금방 괜찮아 질거야”라는 공허한 말들만 오고 갈뿐 실제적으로는 고난이 가중 되고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결과를 보았습니다.
고난 중에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는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 무거운 고난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서 다 내려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의 문제에 직접 개입 하시도록 위탁하고 나는 더 이상 고난과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의 평안을 선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 허무한 것은 육체의 질병이나 마음의 불편함과 상처들이나, 하여튼 그토록 내 삶을 피폐하게 했던 모든 종류의 고난이라고 하는 것들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가지고 나왔더니 한 순간에 치유 되고 회복 되는 강력한 은혜를 경험케 하신다는 겁니다.
이런 결과를 주시기 위해서 고난 중에 기도하라고 한 것이고, 그 결과를 받은 사람은 당연히 즐거워 하고 찬송이 저절로 나오지 않겠습니까? 고난 덩어리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간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즐거움의 마음으로 어루 만져 주시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술로 살아가며 세상이 줄 수 있는 기쁨과 회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3절 암송 하시면서 묵상과 기도 중에 주의 하셔야 할 점은, 이 구절이 내게 오는 고난을 말끔하게 씻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게 닥쳐오는 고난 중에도 내가 하나님만을 의지 하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모든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끝까지 참아 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임에는 틀림 없지만,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문제를 스스로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우리와 동행 하시기를 더 원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는 것만이 낙심과 절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시고, 간절한 기도 중에 정말로 몸과 마음이 회복 되는 놀라운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시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야고보서는 고난의 여러 가지 종류 중에서도 특별히 육체의 병든 자들을 예로 들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을 읽어 드립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아멘.
육체의 질병은 극심한 고통과 고단한 치유의 과정을 겪게 만듭니다. 질병을 가진 환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연약해져서 어느 누구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낙심 가운데 지내게 됩니다.
이때 그 병든 자는 자신이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선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했습니다. 장로는 연장자 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병든 자들을 방문 했던 예는 예수님에게서 자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려 환자의 집에 방문 하셨고(마 8:14),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병을 앓다가 이미 죽었음에도 그 집을 방문(눅 8:51) 하신적이 있습니다. 장로들은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병든자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장로 한 사람이 아니고 장로들로 기록된 것처럼 여러 명을 청하라고 했습니다. 연약하고 병든자를 찾아가고, 위로하며 함께 기도하는 것은 여러명이 합동으로 진행 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장로 혼자 방문 하였는데 혹시 병든자의 병이 호전 되거나 회복 되어 낫게 되는 경우 장로 자신의 능력과 실력으로 병이 나았다는 생각으로 자만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에 여러 명이 함께 가라는 안전 장치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초청 받은 장로들은 병든자에게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병든 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이 생소할 수 있으나 고대에는 환자의 환부나 이마에 기름을 바르고 낫기를 기도하는 것이 치료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의 상처를 치료 할 때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맸습니다.(눅 10:34)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송 했을 때 흩어진 제자들은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낫게 했습니다.(막 6:13)
이처럼 병든 자의 집을 방문한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행위는 물론 이거니와 치료의 행위를 겸하여 하여야 했으며, 당시에는 이렇게 기름을 발라 치유하려는 의료 행위가 자연 스럽게 이루여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고난 중에 기도하라, 장도를을 청하라, 장도들은 기름을 바르며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한 이러한 순서는 그냥 진행 시키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곧바로 치유와 회복을 일으키는 성령의 역사와 직결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구절은 14, 15절 말씀입니다. 읽어 드립니다.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아멘.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라고 했습니다. 병든 자를 일으키시는 최종적인 판단과 능력을 행사하여 주시는 분은 우리의 구원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한 분 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병든 자를 일으키시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병든 자를 위하여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됩니다.
오직 전심을 다하여, 여러 명이 합심 하여 드리는 “믿음의 기도”만이 병든 자를 일으키는 역사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주님은 일으키시는 능력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것은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과정 속에서 죄를 범한 사실이 있다면 그 죄까지도 용서함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고백하며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기도라는 행위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을 구하는 것이 먼저 선행 되어야만, 진정한 믿음의 기도로 드려 진다는 의미입니다.
즉, 죄가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기도, 간절한 기도, 합심 기도를 한다 하여도 그 기도는 절대 믿음의 기도가 될 수 없으며, 주님 께서는 그러한 기도 소리에는 일절 응답하지 않으시고 병든 자를 일으켜 주시는 구원(치료,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16절 마지막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의인의 간구, 의인의 기도가 곧 믿음의 기도입니다.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충만하게 채우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 된 사람입니다.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우리의 질병이 죄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일까요?
유다 왕국의 제 10대 왕이었던 웃시야 왕은 제사장만이 드려야 분향을 자신이 직접 하려고 성전에 들어갔다가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대하 26장 19-21) 하나님 앞에서 저지르는 범죄로 인해 질병이 올 수 있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을 보시고 질병이 부모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모든 질병이 죄 때문은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고보서의 경우는 인간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죄 문제가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례를 보여 준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징계의 질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죄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이라면 그 질병은 반드시 죄를 참회하고 속죄함을 받기 전까지는 치료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15, 16절에서 강조한 것 같이 모든 교회 공동체에 속한 지체들은 고난 가운데 기도로 승리 할 수 있도록 의인의 자세를 항상 갖추도록 노력 하여야 하며, 특히 교회의 장로들은 병든자와 아픈 자와 낙심 된 자들을 찾아가서 언제 든지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의인의 마음, 의인의 자세를 겸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야고보는 특별히 강조하여 “서로 기도 하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나만 의인으로 살아가면 된다는 뜻도 아니고, 상대 방이 의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면 내 질병은 중보 기도를 통해 나을 수도 있겠다고 안심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장로들을 포함한 교회 안의 모든 지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언제든지 믿음의 기도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의인의 모습을 유지하며, 강화하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모든 성도가 다 함께 의인이 될 수 있다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는 말씀처럼 상상하지 못하는 강력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파송 하시며,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낼 것이라”(마 10:8)고 말씀 하신 것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간구하는 힘이 큰 의인의 역사를 이루어 가게 될 것입니다. 애사 곧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의인으로 우뜩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물을 소개하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의인의 삶을 짊어지고 고난 가운데 기도의 길을 걸어간 역사적 인물이 많지만, 췌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 2023년 5월 19일, 72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팀 켈러(Timothy J. Keller, 1950년 9월 23일~2023년 5월 19일) 목사님이 계십니다.
팀켈러 목사는 이 시대에 존경 받고 영향력이 매우 큰 목회자 였으며 특히 우리 나라의 젊은 목사님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근래에 이 분의 책이 한국 기독교 출판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 되었을 겁니다. 팀켈러 목사님의 목회의 중심에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 오직 은혜, 대속적 속죄에 있었습니다. 가장 기본에 충실하며, 가장 복음적인 목회를 했다고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췌장암과 투병하면서,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아닌 아내를 두고 떠나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어떤 날보다 더 행복하다, 전에 한 번도 즐기지 못했던 방식으로 내 주변의 것들을 즐긴다. 난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기도 생활을 더 즐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들인 마이클 켈러(Michael Keller)는 페이스북에서 팀 켈러의 유언을 알려주었습니다. 팀켈러 목사가 이땅에 남긴 마지막 유언은, “하나님께서 제가 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저를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해주시옵소서.” (“I’m thankful for the time God has given me, but I’m ready to see Jesus. I can’t wait to see Jesus. Send me home..”)
고난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은 가장 큰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고난 가운데 죄를 고백하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의인이라고 불릴 만 합니다. 의인들 끼리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간구는 큰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게 될 때, 주님은 우리 모두를 죽음에서, 궁핍 함에서, 괴로움에서, 막막함에서, 깊은 절망감에서 반드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질병과 고통을 위해 이미 앞서 십자가 고난을 다 받으셨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다시는 눈물 흘리지 않는 강건한 육체와 맑은 정신으로 평안 가운데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받고, 누리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13절 말씀을 한 달 동안 암송 하는 가운데, 믿음의 기도, 의인의 간구를 위해 힘쓰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고, 치유와 회복으로 일으켜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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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에 수 많은 아픔과 상처들로 인하여 고난 가운데 있음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진심으로 참회 하는 마음으로, 전심으로 간구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고난 중에 기도하도록 도와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