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하루는 머리에 이고 왔다
오래된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소리가 들린다. 장터의 왁자한 목소리, 양은 대야가 부딪치는 소리,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는 소리, 골목에서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까지. 사진에는 색이 없는데 기억에는 색이 있고, 움직임이 멈춰 있는데 그 시절 사람들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게 흘러간다.
여인들은 무엇인가를 머리에 이고 있다. 커다란 광주리와 함지박, 대야와 보따리다. 한 손은 머리 위 짐을 붙들고 다른 손은 몸의 균형을 잡는다. 등에 진 짐도 모자라 머리 위에 또 하나를 얹은 여인도 있다. 지금 바라보면 어떻게 저 무게를 견뎠을까 싶지만 그 시절 어머니들에게 그것은 특별한 풍경이 아니었다. 장에 가는 길이었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길이었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참 많은 것을 머리에 이고 살았다.
쌀도 이었고, 나물도 이었고, 생선도 이었다. 장에 내다 팔 물건을 이고 십 리 길을 걸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식 걱정도 이었고, 살림 걱정도 이었으며, 내일 끓일 국거리 걱정까지 머리에 얹고 살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어쩌면 광주리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길게 늘어선 나무 사이로 여인들이 걸어온다. 머리 위에는 커다란 대야가 얹혀 있다. 허리를 곧게 펴고 걷는 모습이 신기할 만큼 단정하다. 바람이 불어도, 길이 울퉁불퉁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어머니들의 삶도 그랬다. 가난이 흔들고 세월이 흔들어도 가족 앞에서는 좀처럼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삶은 아름다움을 말할 겨를보다 살아내야 하는 일이 먼저였다.
연탄을 날랐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았으며, 뜨거운 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먹을 것을 만들었다. 겨울이면 손등이 갈라졌고 여름이면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새벽부터 일하고 돌아와서도 집에는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의 옷을 꿰맸다. 하루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어머니의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되었다. 한 여인이 작은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무엇인가를 먹는다. 두툼한 옷을 여미고 앉아 급하게 한술 뜨는 모습이다. 밥상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자리다. 반찬이 몇 가지인지 따질 수도 없다. 따뜻한 국 한 그릇이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부엌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늘 가족부터 먹였다. 아버지 밥을 퍼놓고 아이들 그릇을 챙긴 뒤 마지막에야 자신의 밥을 떴다. 우리는 따뜻한 밥을 먹었는데 어머니의 밥은 자주 식어 있었다. 생선 한 마리가 밥상에 올라오면 살은 아이들 쪽으로 갔고 어머니 앞에는 머리와 꼬리가 남았다. 그때는 어머니가 그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서야 알았다. 어머니에게도 가장 부드러운 살을 먹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가난은 사람을 일찍 철들게 했다. 아이들의 무릎에는 덧댄 천이 보인다. 옷이 해어지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꿰매 입었다. 형이 입던 옷은 동생에게 내려갔고, 소매가 짧아지면 천을 덧대었다. 새 옷 한 벌은 명절을 기다려야 했고 새 운동화는 오래 바라보고도 쉽게 사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가난만 남아 있지 않다.
골목에는 아이들이 있었고, 저녁이면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느 집에서 부침개를 부치면 냄새가 담장을 넘어왔고, 김치를 많이 담근 집에서는 이웃집에 한 그릇씩 나누어 주었다. 간장 한 종지가 모자라면 옆집 문을 두드렸고, 아이 하나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찾았다. 가진 것은 적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지금보다 가까웠다. 젊은 여성들이 한곳을 바라보는 모습도 눈길을 붙잡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지, 공연을 보는 것인지 사진만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젊음이 있다. 시대가 어려웠다고 해서 청춘까지 사라졌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웃었고 사랑했고 꿈꾸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어머니로 기억되는 사람에게도 한때는 이름으로 불리던 처녀 시절이 있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어머니에게도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날이 있었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웃던 오후가 있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지고 누군가를 기다리며 가슴 설레던 저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한 여자의 이름은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대신 누구 엄마, 누구 아내, 누구 며느리라는 이름이 앞에 놓였다.
그러는 사이 청춘은 지나갔다. 버스에 오르는 여인의 얼굴에는 힘겨움이 묻어난다. 누군가를 밀어 올리는 것인지, 자신이 오르려는 것인지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한 장면만으로도 그 시절의 고단함이 전해진다. 버스 한 번 타는 일조차 지금처럼 편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만원버스에 몸을 싣고 시장으로, 공장으로, 일터로 향했다. 그렇게 벌어온 돈으로 쌀을 샀다. 아이의 학용품을 사고 등록금을 마련했다. 자신의 옷 한 벌은 미루면서 자식의 교복부터 맞췄다. 자신은 걸어가면서도 아이에게는 버스비를 쥐여주었다.
그 돈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우리는 늦게 알았다. 어머니의 지갑에서 나온 천 원은 단순한 천 원이 아니었다. 몇 시간의 노동이었고, 굽은 허리였으며, 새벽잠을 줄인 시간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돈을 반듯하게 펴서 지갑에 넣었다. 동전 하나도 쉽게 버리지 않았다. 가난해서만은 아니었다. 돈 속에 자신의 시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진 속 연탄을 바라본다. 구멍이 송송 뚫린 연탄은 한 시대의 겨울을 데웠다. 연탄불이 꺼지지 않도록 밤중에도 살폈고 새벽이면 아궁이에 연탄을 갈았다. 방바닥이 따뜻해지면 아이들은 이불 속으로 발을 넣었다. 밖에는 눈이 내려도 작은 방 안에는 가족의 체온이 모였다. 지금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방이 따뜻해진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뜨거운 물이 나오고 전화기 하나로 음식이 집까지 온다. 세상은 놀랍도록 편리해졌다.
그런데 가끔 묻게 된다. 우리의 삶은 편리해진 만큼 따뜻해졌을까. 그 시절에는 한 방에서 여러 식구가 잤다. 좁아서 발이 부딪쳤고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며 다투기도 했다. 그래도 아침이면 같은 밥상에 둘러앉았다. 지금은 각자의 방이 생겼지만 서로의 하루를 모르는 날이 많다. 손에는 세상을 연결하는 전화기가 있지만 정작 옆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은 줄었다. 그래서 오래된 흑백사진이 때로는 우리보다 더 따뜻해 보인다.
사진에는 화려한 것이 없다. 좋은 옷도, 근사한 자동차도, 세련된 건물도 없다. 대신 사람의 손이 있다. 짐을 드는 손, 음식을 만드는 손, 누군가를 붙잡는 손이다. 삶은 결국 그런 손들이 이어온 것이 아닐까.
우리는 오늘을 너무 당연하게 살아간다. 따뜻한 밥, 밝은 방, 깨끗한 옷,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길. 그러나 그 편리한 오늘의 바닥에는 수많은 사람의 굳은살이 깔려 있다. 특히 가족이라는 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조용히 내어준 어머니들의 시간이 있다. 흑백사진 속 사람들은 늙었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머리에 광주리를 이던 여인의 허리도 이제는 많이 굽었을지 모른다. 골목의 아이들은 백발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는 모두 젊다. 시간은 그들의 얼굴을 늙게 했지만 사진 한 장은 그날의 햇빛과 표정을 그대로 붙잡아 두었다.
그래서 오래된 사진은 과거가 아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여인을 바라본다. 머리 위에 커다란 광주리가 놓여 있다. 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채소일 수도 있고, 살림살이일 수도 있고, 장에 내다 팔 물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광주리 안에는 한 가족의 저녁밥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학비가 들어 있었고, 내일을 향한 작은 희망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머리에 인 채 어머니는 걸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걸었고, 힘들다는 말을 삼키며 걸었다. 오늘보다 자식의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어쩌면 그들이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두 손으로 밀어 올리며 만들어온 자리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나는 오래도록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주 늦은 인사를 건넨다. 어머니, 그 무거운 것을 다 이고 어디까지 걸어오신 겁니까.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다만 오래된 흑백사진 속에서 한 여인이 다시 광주리를 고쳐 이고 천천히 길을 걸어간다. 그 길 끝에, 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