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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계곡]
찬 기운이 스멀스멀 몸을 움츠리게 하더니 얕은 기척에 잠이 깼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냥 내쳐 정자에서 잠이 들었나 보다.
그래도 준비해 간 매트리스며 담요를 덮고 있는 걸 보니 사람의
시간으로 끝을 맺긴 했나 보다.
다행이다.
파주마루 형님이 기상 시간인 6시가 다 되도록 안 일어나는 아니 못 일어난 나를 인기척으로 깨운다.
번쩍 잠이 깼다.
아. 지난밤이 한 순간의 꿈인 양 선명했다가 그 끝이 흐려지며 기억에 없다.
다만 나는 깨어 있고 지난밤의 흔적들은 널브러져 있다.
덜 깬 술이지만 다 깬 술이다.
이런 걸 두고 홀딱 깬다고 말한다.
다시 또 일용할 양식을 준비한다.
된장국을 끓여서 해장을 했다.
숙경네가 어젯밤 민호랑 나의 새벽송을 듣고 뭐라고 뭐라고는 하는데, 귓전에 들어오진 않는다.
대성골...대성계곡이 오늘 오를 우리의 길이다.
두 번째 산장인 장터목 산장은 예약이 살아 있으므로 오늘의 목적지로 삼고 내려왔던 능선길을 다시 이어 보리라 다짐해 본다.
다시 민호의 차에 올라타 화개장터로 향한다.
의신까지 가려면 한참을 가야 하는데 어제 못 본 “메가 커피숍”이 입구에 딱 들어온다.
파주형님은 못내 아쉬운 민호와의 석별지정을 해장 커피로 달래보자고 하신다.
좋지요.
이른 시각 전국 체인점 답게 변함없는 맛과 써비스로 답해왔다.
직원분에게 기념사진도 부탁드려보고 말이다.
정말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원하게 잘 마셨다.
테이크 아웃이면 못 느꼈을 장소만이 주는 편함과 유쾌한 대화가 있었다.
그냥 갔으면 서운했을 그런...
오늘 산행만 아니었어도 이대로 관광객 모드로 남는 건데...
아쉬운 마음만 남긴 체 다시 시동을 걸고 쌍계사 십리 벚꽃길을 지나고 지나서 한참을 더 가서야 의신마을 초입의 대성골 가는 입구에 차는 멈춰 섰다.
이제 민호와는 오늘은 여기까지다.
지난 밤새 못다 한 이야기도 많고 더 할 말도 많은데...
일행들이 먼저 내리고 작별 인사차 진심을 실어 지난밤의 고마움에 대해 마음 표시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펄쩍 뛰는 통에 미안함과 무안함만 더했다.
생업의 일환으로 투잡 쓰리잡으로 일궈낸 자신의 한 부분을 아낌없이 떼어준 거다.
민호도 어제 일들이 무지 바쁘고 혼란스러웠을 거라 생각해본다.
부고는 받았지. 같은 날 일은 있지. 우리들은 내려왔지. 여러모로 신경 많이 써주고
후하게 자리를 내준 민호에게 다시 한번 고맙단 말을 전해본다.
민호가 항시 대장이였던 이 길을 이제 민호 없이 우리 넷만이 온전히 가야 한다.
잘 갈 수 있겠지.
아~술이 아직 덜 깬 것 같다.
아니 깨고 싶지가 않은 건 아니고?
다시 볼 날을 기약하며 민호차를 보내고 형님이 앞장을 서고 출발이다.
날씨는 좋다.
지리산에서는 두 번째 정도로 길고 넓고 깊은 길이 바로 이곳 대성골이다.
토벌대를 피해 남부군이 최후의 항쟁지로 싸웠던 곳이 바로 여기다.
그만큼 길도 산도 험하고 계곡도 깊고 인적도 드물다.
우리 집 큰애 중학생일 때 이 길로 내려와 민호네서 신세를 지고 갔었던 길이였고
한겨울 영신대를 간다며 눈에 쌓여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발목이 푹푹 들어가고 꺾이고를 반목하며 오르던 길이였으며 지금은 재활치료를 하고 계신 호준형님과 한여름 대성골 마을 주막집의 막걸리를 다 동내고 왔던 길이 이 길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4번째가 된다.
한참을 걷고 보니 들었던 그대로 그때의 그 주막집은 화재로 전소가 된 상태도 볼썽사나운
몰골로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가는 등산객에게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인데.
그 시원한 계곡물을 받아 올려 마음껏 마시며 쉬어 가던 곳이었고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곳이었는데...추억의 장소 하나를 잃었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계곡 산행의 시작이다.
잔도처럼 이어진 좁고 날이 선 절벽 지대도 몇 곳이 있다.
지난 며칠 간의 폭우로 계곡 수량이 엄청나다.
혹시 길이 끊겨 있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끊긴 길은 없었다.
지난밤 민호와의 회포가 더디 깬다.
박 배낭의 무게는 차제 하더라도 숙취와 수면 부족이 발걸음을 더디 가게 한다.
한창때를 많이 지나서 이제는 몸을 사리며 아끼고 달래며 써야 하거늘
아직도 이팔청춘인 양 할 거 다 하려니 몸이 신호를 보내온다.
삼보 걷고 일보는 두 발을 모아 긴 날숨을 한번 쉬어야만 가진다.
이래서는 오늘 안에 장터목은 커녕 세석까지도 힘들겠다.
큰일이다.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배고프기 전에 미리 이른 점심을 먹을 심산으로
선두의 형님께 전화를 넣지만, 통화 불능 지역...
안 터지니 속 터진다.
아직도 이곳 지리산은 이런 곳이다.
일 관계로 내게 전화했던 분들도 전화가 안 된다고 무슨 일 있었냐고...
외국에라도 갔다 왔냐고...
아~네...
형님이 선두에서 좋은 곳을 잡아 두고 후미를 기다릴 거란 막연한 기대는 적중했다.
삼보 일합으로 거친 숨과 헐떡이는 심장과 후들거리는 허벅지를 어르고 달래며
혼자 쭈그려 앉아 양갱으로 당도 보충해 가며 후미를 자처한다.
먼저들...가요... 난...
얼마를 꾸역꾸역 오르니 큰 소리의 에코가 귓전에 울린다.
~여기예요.
숙경의 목소리다.
먼발치서 보니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마치 투영된 불빛인 양 흐릿하면서도 또렷이
일행들이 서 있다.
“안.전.쉼.터”
이런 곳도 만들어 놨다.
벤치 의자 두동과 이정표 그 옆에 쌓아둔 공사용 케이블 전선 더미까지 한쪽에 가지런히
정렬돼 있다.
마침이다.
딱 좋을 위치에 시간까지 안성맞춤이다.
형님 말씀이 미리 먼저 쉬웠다가 여길 보면 얼마나 아까울 뻔했냐는...
마치 우리들을 위한 시간에 예약이라도 해둔 듯.
소소하지만 이런 기쁨이 좋다.
네 맞아요. 형님!
정확히 12시로 기억된다.
준비된 점심을 꺼내 들고 저마다 준비된 역할 분담이다.
일개미도 우리만큼 일사불란하진 않았을 거다.
빠르고 안정적이다.
넉넉히 쉬며 후식 과일까지 챙겨 먹으며...
숙경이 기차에서 건넸던 풋사과가 고스란히 나왔다.
한 시간을 내쳐 쉬어 간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산중의 우리들만의 소풍 도시락이었다.
아니 딱 한 분 산악 마라톤 복장의 남자분만이 조용히 우리 곁을 지나 하산길로 향해갔다.
아마도 저분은 세석산장에서 아침에 출발했겠다고 짐작만 하고 인사 한마디를 못 건넜다.
다음에 만나는 산객이 있다면 먼저 인사하리라.
꿀맛같이 달콤한 휴식이었다.
머릿속이 떵하니 비워진 듯도 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먹은 만큼 가고 잘 먹어야 잘 간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힘을 내서 출발한다.
잘 쉬었다 갑니다. 안전 쉼터!
앞으로는 우리 50분 걷고 10분씩 쉬기로 해요.
영신대로 향해가는 주 계곡에서 벗어나 오른쪽 남부능선과 맞닿는 가파른 6키로 정도의 길이 관건이다.
오후 1시 출발! 이 페이스대로라면 6시까지는 장터목에 충분히 도착하거라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로 그건 우리의 바램일 뿐이었다.
철다리를 건넜다.
등산로 아님의 출입금지 표지가 보인다.
영신대로 향하는 비지정 등산로 기점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오른쪽으로 접어들고 본격적인 오름 짓을 해야만 한다.
계곡과는 계속 멀어지나 싶더니 다시 또 왼편에 물소리가 크다.
이렇게 물이 많았던가?
갈수기 때에만 와본 건가?
기억을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다.
그러나 난 내 기억을 믿는다.
길은 옳게 잘 들어섰다.
명확한 외길.
선명한 표식들.
물이 없을 거란 판단으로 모두 식수를 보충하고 오른 길인데
물풍년이다.
조금씩 페이스를 찾아가고 적응도 되간다.
상단의 지류 계곡에서 손도 씻고 세수도 하며 연신 흐르는 땀을 식혀도 가며
잘 가던 그때... 어디선가 무었인지 앗! 하는 외마디에 변 서방과 난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뭐에 쏘였다.
벌은 아닌 것 같고 그 강도와 소리... 날아다니는 흔적을 보면 등에류라 짐작만 될 뿐
하여튼 날카롭게 빠르게 파~파~박 연타로 쏘고는 날아간다.
앞장서 있던 변 서방이 많이 물렸고 중간의 숙경은 무사했고 후미인 나도 너댓방을 물렸다.
정신이 번쩍 나면서 가렵고 따갑고 부풀어 오르고 다음날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려 보니 변 서방은 거의 온 전신을 다 물리고 쏘였다.
그 옛날 규학이 귀에 벌이 들어가서 쏘인 후 처음이다.
인적이 드문 험한 등산로에서 간혹 벌어지는 일이다.
주능선 상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도 이런 험로에선 주의하고 경계해야만 한다.
말벌이나 땅벌에라도 쏘였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숙경 자신은 보디가드들 사이에서 그 작은 몸을 숨긴 걸 다행으로 여기며 웃픈 얼굴이다.
남편이 남의 편인가?
웃음이 나오나...
남은 아파 죽겠구만.
계속된 오름으로 발걸음은 더 더디어져 가고 이젠 40분을 걷고 20분을 쉰다.
어쩔 수 없다.
등산로 보호를 위해 나무 트랙을 브릿지 형상으로 잘 닦아 둔 곳에서 전부가 누웠다.
아직도 형님은 제일 멀쩡한 편이다.
그 짱짱한 배낭에서 이번에는 반건조 망고가 나온다.
어제는 고구마말랭이가 나왔고 양갱이 나왔고 과자가 나왔으며
또 뭐가 그 안에서 나올까? 기대가 된다.
어쩐지 형님 배낭 무게도 만만치가 않더라니...
준비물 배정에서 예우 차원에서 버너 코펠을 제외시키고 행동식을 여유 있게 준비해 주십사 했더니 이건 뭐 화수분도 아니고 참 골고루도 끊임없이도 나온다.
마치 할아버지께서 사랑방 벽장 안에서 내주시던 왕 눈깔사탕이며 곶감이 생각나게 한다.
신맛과 단맛 비타민과 에너지 보충이다.
아주 좋은 행동식이었습니다.
망고의 힘인지.
인내의 힘인지.
다시 힘을 내서 늘어졌던 몸을 추슬러 이제부턴 내가 앞장을 서본다.
지난 폭우로 가뜩이나 희미한 길이 토사와 부러진 나뭇가지와 낙엽으로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길을 잘못들어 알바라도 할라치면 그 데미지는 크기에 눈을 크게 뜨고
감을 살려가며 계속 오른다.
항상 그렇듯 공갈 능선이 나뭇잎 사이로 보이긴 잘 보여도 오르면 또 능선이 저만치 있고 또 가 보면 또 저만치에 있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한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남부능선상에만 오르면 이후로 세석까지는 완만한 평지 수준임을 알기에
다 왔다고 오르막은 이제 끝이라고 기운을 내자고 독려도 해본다.
숙경 내외도 많이 지쳐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정에 없던 대성골 산행의 변수는 주능선만 걷기에도 버거웠을 체력과 경험치고 보면 백번 천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사람의 걸음도 무서운 거다.
오르고 또 올랐으니 못 오를 리 없다.
다 올랐다.
남부 능선상이다.
바로 전망대 바위가 보이고 앞장선 나는 저 멀리 그러고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세석산장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뱉어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며
음양수 샘까지 계산된 마지막 물 한 모금을 변 서방에게 건넸다.
항상 과묵하고 진중한 변 서방이 그 한 모금을 받아 든다.
전망대 바위에서 보는 풍경이 사치일 정도였을까?
모두들 올라서서 함께 사진도 찍고 감탄도 해야 할 타이밍인데 하질 못한다.
마른 입술에 끈적한 침이 거미줄 형상으로 쉽게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
온몸은 물리고 쏘이고 준비된 식수 자체가 적었음을 그때 난 알았다.
형님과 난 1.5리터씩을 준비했고 숙경네는 부부가 각자 500미리 생수 두 병씩만 준비했다는 걸...
0.5리터의 물병 하나 무게 차이가 이런 결과로 이어진다는 걸...
그나마 음양수샘이 가까워서 망정이지. 크게는 탈수로 인한 쇼크가 올 수도 있는...
변 서방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난 음식을 못 먹고 물만 마셔서 걸을 때마다 배에서 출렁출렁 소리가...
음양수는 풍부한 수량을 자랑했다.
처음 이곳을 지났을 때는 아주 갈수기였나보다.
돌 사이 이끼가 잔뜩 끼어 있어 선뜻 마시길 꺼렸던 때가.
어느 산객이 나뭇잎으로 연신 이끼를 닦아가며 지리산 산꾼이라면 이 이끼가 보이면
잘 닦아 주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식수를 보충하고 잠시 쉬고는 세석을 향해 가는데 기운을 차린 변 서방이 잠시 방향감을 잃었다.
우리 모두도 이정표와 펜스와 안내글을 모두 봤는데..이런...
순간 드는 생각에 시간을 대입하니 오늘 장터목까지는 무리다.
세석에서 1박을 해야겠다고 변경한다.
결과적으로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앞장을 다시 선다.
아는 길 쉬운 길 다 와 간다는 안도감이 추진력이 된다.
거의 늪지가 형성된 터다.
이리도 비가 많이 왔으니 주능선이 통제가 된게 당연했겠다.
간격을 맞추고 곧잘 갔다.
거림골 갈림길에서 드디어 두 번째 산객을 만났다.
젊은 청년인데 12시에 거림에서 혼자 올라오는 길이란다.
이때가 오후 5시...
간격이 벌어지더라도 좀 더 힘을 내서 세석산장을 향해 빼본다.
형님이 후미를 봐주실 테니...
목표가 있고 먼저 가서 해야 할 숙제들이 동기부여를 만든다.
임시 식수대를 지나니 메인 식수대가 나오고 산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지근에서 들린다.
2차 백두때가 언제던가 그때만 해도 세석평전(우리말:잔돌 평원) 너른 앞마당에 묘목을
식재해 두었던 곳이 제법 자란 나무숲으로 시야를 가린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잔돌평원과 촛대봉]
5시 40분 드디어 세석산장 도착이다.
벌써 많은 수의 산객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저녁 식사가 한창이다.
1층 테라스는 유리문을 달아두고 취사장으로 탈바꿈되어 있었고 취사장 건물은
산장의 부속 건물로 용도가 달라져 있었다.
한쪽 의자에 배낭을 풀고 후미를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숙경 내외가 살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기대어 앉는다.
상의를 했다.
형님이 계시진 않았지만.
물을 뜨고 계신가?
빠른 결정을 요했다.
장터목에 전화를 했다.
“오지 마세요. 오시면 안돼요.”
“세석으로 바꿔 드릴께요.”
부탁하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잘된 일이고 잘한 선택이다.
근데 앞장서 가셨다는 형님이 오셔야 할 시간이 지나도 안 올라오신다.
설마 내쳐 장터목으로 향하신 건 아니겠지.
부랴부랴 수화기 너머 촛대봉을 향해 오르고 계신단 걸 알고는...
허걱이다.
아무리 사전 상의가 없었어도 그렇지 내처 쉬지 않고 세석산장에 들리지도 않고 바로 가셨다고...
그래도 얼마 안 올라 돌아서게 함은 빠른 대처 덕이었다.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형님도 잘한 결정이라며 안도의 미소를 보여 주신다.
2층 사무실에 가서 방 배정을 받았다.
연락이 바로바로 되어선지 익히 알고 먼저 우리 일행의 성비와 인원을 확인해 온다.
자리가 널널해 남자 숙소 한 칸을 써비스 공간으로 한자리 더 배정받았다.
땀에 찌든 옷들을 긴팔 옷들로 갈아입고선 저녁 채비를 한다.
바람이 급격히 체온을 내린다.
다들 복장은 잘 준비해 왔다.
힘듦을 내색하지 않으려는 숙경 부부는 샘터로 물을 뜨러 가고
준비해 온 짜글이와 한 솥 냄비 밥이 잘도 익어간다.
또 그 와중에 걸려 온 규학이의 도착 안부 인사 겸 염장 전화는 바쁜 우리 정황을
알 리가 없을 터고 아마도 궁금했을 민호가 전화라도 한번 해보라고
하지 않았겠냐 라는게 내 생각이다.
“거기서 술도 못드실텐데 어찌 그 긴 밤을 보내실 겁니까”
이걸 확!
양파 반개, 주먹만 한 감자 한 개, 미리 만들어 온 양념 한 스픈,당근 반쪽, 참치 한캔이 다다.
야채가 시들고 상할까 봐 썰어 오지 않고 현지에서 썰어야지 했는데 칼을 빼먹고 온통에
형님의 비상용 그 작은 (키홀더급 크기에 가위와 칼이 달림) 거로
껍질도 벗기고 채도 썰어서 일용한 저녁거리를 만들어 냈다.
작은 손은 숙경이의 몫으로.
만족이며 평화다.
더 이상 뭘 바래.
잘 드신다.변 서방만 빼고는
무겁게 지고 와도 맛있게 먹어주면 그뿐.
변 서방의 식욕이 안 돌아오는게 걱정이다.
내색은 안 했지만 정말 힘들 거란 거 안다.
아내가 챙겨준 밥그릇도 내가 알아서 먹겠다고 하곤 한술을 뜨는 둥 마는 둥...
애처롭다.
형님과 내가 준비한 소량의 소화제?와 쏘시지로 입맛 안 돌아온 변 서방을 위로하고
간신히 저녁상을 물리고 둘러앉으니, 헛웃음이 절로 난다.
오늘 밤은 아주 아주 잘 잘 것 같다.
내일 일출이 5시 40분대이고 차 한잔하고 30분을 오르면 되니까.
4시 반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정리를 했다.
실로 몇 년 만에 다시 누워 보는 산장의 침상 바닥이던가.
없던 칸막이도 생겼고 머리맡에는 충전기 콘센트도 마련되어있다.
매트를 깔고 배낭을 칸막이 삼아 눕고는 이내...
온갖 소음으로 잠이 깼다.
살피리? 소리가 장단을 맞춰 울어대고 그놈의 카톡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고
먼 길 부지런히 나서는 건 안 말리지만 자기 짐을 조용히 쓸어 담아 밖에서 패킹을
한다면 좀 더 쾌적한 산장의 밤이 될 텐데.
아쉽다.
4시가 조금 넘어 변 서방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제 어제라 말할 수 있는 그 힘듦이 조금은 가신 느낌이다.
역시 잠이 보약이고 천만다행이다.
그럼 천하의 변씨인데 아마도 강쇠?
따뜻한 커피 한잔이 어제의 피곤함을 녹여준다.
아~ 좋다.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감사함과 소중함의 연속이다.
이래서 나는 산에서의 밤이 좋고 파란 신새벽의 어스름 푸른빛이 좋다.
형님은 수건을 놓고 나와 다시 들어가셨다.
아침에 침상 끝 물병도 챙겨 드렸건만...
형님과의 야영에서 보면 항상 제일 먼저 주무시고 밥그릇도 대형 왕초 밥그릇에 정량의 식사는 꼭 하신다.
형님의 건강과 체력의 비법이 바로 저거 겠거니.
어제 저녁 날이 흐려 일출을 볼 가능성이 적겠다 싶었는데 아니라 다를까
하늘을 보니 오늘 일출은 물 건너간 형상이다.
새벽 5시 형님은 나를 앞장세우신다.
해드랜터 불빛이 약한 변 서방이 두 번째고 다음이 숙경이 나란히 촛대봉을 향해 오른다.
조금 빠른 행보였고 무리를 이루는 다른 팀들은 없었다.
중간 습지 연결 통로가 주능선길인줄 알고 잠시 한두 걸음만 옮겼을 뿐
다시 발걸음도 가볍게 진행이다.
컨디션이 좋다.지난밤 짧지만 깊은 단잠이 보약이 됐다.
애초에 계획했던 천왕봉에서의 일출이나 일출봉에서의 일출 감상은 아니어도 같은 눈높이 대에서 두 봉우리를 바라보며 다른 각도의 일출을 내심 기대해 본다.
촛대봉 정상에는 딱 한 분만이 커다란 삼각대를 걸쳐 놓고 일출 포인트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 안쪽까지는 못 들어갔었는데...
숙경네와 난 직전의 바위 둘레를 바람벽 삼아 천왕봉을 바라보고 일출 감상을 기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형님은 더 안쪽으로 가자고 했지만, 숙경 내외는 지금 이곳도 좋다며 연신 사진 찍기에 들어간다.
이런 날씨이고 보면 일출은 못 보는 날씨다.
한마디로 날샜다 분위기다.
붉게 물들 것도 없이 그냥 환해져 버리는 맹탕 곰국 같은 일출이다.
맹한 천왕봉쪽에 불빛들이 반짝인다.
오늘 일출감상 없어요~라고 소리치면 메아리로 들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오히려 등을 돌려 저 먼 산그리매가 그 나마 지리산다운 풍경을 보여 준다.
저 멀리 노고단부터 반야봉하며 주능선에 걸쳐 넘나드는 운해가 이 맛에 지리에 들지라는
만족의 시간이다.
[이 짧은 평화와 고즈넉한 풍경이 좋다.
프르스름한 색감이며...색온도라고 하는...
기온도 가장 낮은 바로 요 시간 서늘한 찬기가 목덜미 살걑을 타고 흐르면 조금은 움칠이게도하고 때로는 확 퍼지기도 하는 것이 마치 그 구름 한 점이 내 몸에도 흐르는 양.
이대로 몇 시간이라도 느끼고만 싶어졌다.
언제 또 이런 느낌에 빠져보겠는가. 바로 지금만이 느낄 수 있는 오직 나만의 시간이다.]
그렇게 환하게 밝아온 촛대봉의 적막을 깬 한 무리의 산행팀들의 수다가 이른 새벽의 적막을 깼다.
다양하게 소리치며 포즈를 취하고 돌아가며 사진을 찍는 통에 내 감상은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다시 길을 이어가야 했다.
지금부터의 길은 지리산의 종주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연하선경의 길이다.
아마도 몇 년 전 누군가에 의해서 지어진 이름일 것도 같다.
민호와 왕성히 다닐때는 이런 지명설정이나 명명은 없던걸로 기억한다.
연하봉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이 길이 신선의 경계까지 이어진 듯 아름다운 풍경의 길이라 했나?
조금 전 촛대봉에서 만났던 일 무리의 팀들과 뒤섞여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몇 번 하니 어느덧 연하봉이다.
앞서가던 숙경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하고 그들이 휴대전화로 듣던 음악에
숙경이 호기롭게 들국화의 “걷고, 걷고”를 알려준다.
좋은 음악이라며 지금 분위기와 딱 어울린다며 좋아라 한다.
어느 아주머니 한 분(그 음악 듣던 휴대전화를 그곳에 두고 와서 장터목 직전에 파주형님께 부탁하여 자기 번호로 전화를 걸어 휴대전화를 찾았다)이 변 서방과 나와의 대화를 듣고는 연하선경은 조금 더 가야 있다고 끼어들며 말한다.
내가 웃으면 말했다.
연하선경은 어느 한 군데를 콕 찍어 말하는 지명이 아니라 여기부터 저기까지의 전체 풍경을 말함이라 알려 줬더니 조용히 말이 없다.
아마도 너무 좋은 나머지 잠시 혼동이 왔으리라.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나 본인들이 봐서 좋으면 된 거지.
한 여성분은 발을 헛디뎌 얼굴 한쪽 광대에 큰 생채기가 나 있다.
그래도 좋단다.
큰 부상이 아니긴 하지만 산에 와서 그것도 여자 얼굴에 큰 흉터 자국이라니...오래갈텐데
조심히 남은 여정도 잘 마무리하길 바래본다.
잠시 오지랖을 펼쳤고 우린 또 우리의 길을 간다.
[아~드디어 천왕봉]
연하봉을 넘으면 일출봉이고 일출봉 아래엔 바로 장터목이다.
그때도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아직도 그대로다.
등산화가 다 젖도록 이슬 먹은 풀잎을 헤치면 또르르 맨 종아리를 타고 발목을 적시던 감촉이 아직 남아있다.
일출은 일출봉이다.
왜 일출봉이라 명했겠는가?
장터목답다.
우리처럼 일찍 나서서 장터목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팀들이 많다.
발걸음을 빨리해서 뒤에 올 무리의 산행팀들과 겹치지 않게 자리 하나를 잡아본다.
촛대봉에서 아니 세석부터 함께 온 나 홀로 산객님이 혼자 자리한 테이블에
양해를 구하고 한쪽에 자리를 펴고 일행이 오길 기다려 본다.
저 멀리서 형님이 앞장서 내려 오시고 바로 숙경네...
핸드폰도 잘 찾아주고 좋은 일하고 오신 보람찬 얼굴빛이다.
지리산에 와서 덕 하나를 쌓았고 우리에게 테이블 동석을 해준 나 홀로 산객의 안경도 찾아주는 선행은 덤으로 치겠다.
아침 메뉴는 숙경이 제일 마지막으로 꺼낼 누룽지다.
어제 저녁 남은 밥과 함께 남은 부식을 전부 꺼내 조촐하게 아침을 대신한다.
식후 티타임에 오늘 마지막 일정 점검을 간단히 했다.
늦어진 일정 탓에 점심경 하산은 어려울것 같고 우선은 정상은 찍어야 하니 취사장 하부장에 모두의 배낭을 두고 간단히 물과 귀중품만 챙겨서 천왕봉 정상으로의 길로 접어들었다.
왕복의 시간과 채비의 시간을 다해보면 빨라야 오후 4시고 늦어지면 오후 5시?
동서울까지의 버스 시간이 간당간당한다.
하지만 무사히 백무동까지만 내려간다면 인월까지는 가깝고 그곳에는 다양한 교통편이 있기에 크게 제약으로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 무겁던 2박 3일간의 짐을 벗어 두고 사이드 빽에
물통 하나와 휴대폰,지갑,손수건 한 장만 챙기니 날 듯 가볍다.
내 삶의 무게에서 벗어난 이 가벼움과 자유로움이라니 살거 같다.
아니 날거 같다.
정상은 찍어야 우리 지대로의 원정이 완결이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가벼워진 만큼 속도도 내 보는데 형님은 배낭을 풀었음에도 별 감흥이 없으신 양 말씀을 하신다.
아무래도 다음번에는 더 크고 무거운 배낭에 도전하게 해도 별 무리가 없으실듯하다.
통천문을 지나 정상에 가까운 왼편의 칠선계곡 내려가는 길이 근사하게 정비 돼 있었다.
다시 옛날이 떠오른다.
1차 태극 종주에 따라나섰다가 주능선과 천왕봉까지만 함께하고 홀로 칠선계곡을 내려왔던 때를...
“등산로 아님”이 지금은 칠선계곡 내려가는 길이라고 명확히 이정표도 박아둔 그곳.
지금은 없어졌겠지. 그 지뢰밭...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이 표지석에 몇 번을 서 봤을까를 헤아리다 보니 숙경네와
형님이 올라선다.
정상석을 마치 전세라도 낸 양 많은 분들이 다양한 포즈로 구도를 잡고 또 줄을 선다.
우리도 예외 없이 사진에 담고 지난 이틀간의 산행을 떠올리며 서로를 격려하고 뿌듯해 했다.
이 또한 고맙고 감사한 일이며 진한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될 순간이다.
단순히 정상에 오르는 것 자체보다는 그 과정과 준비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으리라.
누구에게는 다시 또 와야 할 명분이 생겼고 또 누구에게는 마지막이 될는지는 그건 그 누구도 알 순 없겠지만 내려서면 다시 오고 싶은 곳이 ”지리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산을 사랑하고 한 번이라도 지리산에 와본 사람은 처음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나 역시 그랬으니까.
이제 하산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 잘해왔다.
이제 차분히 천천히 올라온 만큼의 시간을 내주고 내준 만큼의 시간을 요긴하게 써야 한다.
일행에 앞서 개인 정비도 필요했기에 좀 빠르게 내려와 배낭도 살피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양치도 하고 물도 받고 약도 먹고 바르고 전화기 속 문자들도 확인해 본다.
11시 30분 모두 잘 도착하여 다시금 장터목 야외 테이블에 넷이 함께했다.
아직 비화식 비상식량도 남아있지만, 시간 절약도 해야겠기에 행동식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바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형님의 그 화수분 같은 배낭에서는 이번엔 치즈가 들어간 말랑한 소고기 육포와 영양 곡물로 꽉 찬 에너지바가 쓩쓩하고 쏟아져 나온다.
그것도 한 사람당 두 개씩이나...
하산 내내 배고픈 줄 몰랐고 든든했다.
이건 뭐 누르기만 하면 나오는 자판기도 아니고.
형님의 주도면밀함에 다시 한번 탄복이다.
12시 정각에 맞춰 하산에 접어든다.
넉넉잡아 4시간 더 늦어도 5시, 밥을 먹고 간단히 샤워를 하고도 오늘 안으로는 집에 돌아갈수 있겠다.
천천히 그러나 찬찬히 내려가자.
또 마주친 한 무리의 산객들과 앞서거 뒷서거니를 하면 내리 한 시간을 걷고는 휴식을 갖고 체크를 해본다.
내려설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걸음은 느려지겠지만 이 정도만 가 줘도 땡큐다.
걱정했던 변 서방도 잘 붙어주고 발바닥에 불이 난듯하다는 숙경도 그 외에는 아무 소리 없이
순조로운 하산길이다.
2시가 넘어서는 시각 한두 방울 내리던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장터목을 향해 올라갔던 등산객들이 다시 입산이 통제되었다며 낙담한 표정으로 비옷에 배낭 커버를 뒤집어씌운 채 내려 들 온다.
우리도 서둘러 배낭 커버를 씌우고 적당히 쉴 곳을 찾아보지만 마땅치가 않았고 계곡을 건너던 철다리 하부에서 비를 피해서 휴식을 가져 보려 했지만 새로 만든 철다리는 하부를 원천 봉쇄해 놨기에 애매하기만 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백무동 그 너덜지대를 지나며 큰 나무 아래 그나마 큰 나뭇잎으로 빗줄기를 좀 막을 수 있는 곳에서 잠시 쉰 것이 우리가 하산길에서 최종적으로 함께 쉰 3번째 짧은 휴식이었다.
간간이 외마디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면 빗길에 미끄러져 놀란 모습이 보이곤 했지만 다치지 않고 바로 걸음을 옮기기에 내심 안심을 하며 좀 더 걸음을 재촉했다.
선두로 이대로 계속 가다가 후미를 기다렸다 모여지면 다시 앞장을 서야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쭉 빼서 먼저 하산 완료 후 식당과 차표 예매를 다 확인하는게 옳은지 잠시 고민하다가 난 후자를 택했다.
빗줄기가 더욱 세차졌다고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촉박했니...
먼저 빠른 하산 후 이후의 해야 할 일들을 결정지으며 발걸음에 힘을 싣는다.
차분한 하산길의 낭만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갔다.
더 폭우로 변한다면 대략난감이다.
함참을 빗속에서 애태우며 힘겹게 걷다 보니 저 멀리 백무동 야영장이 보이고 탐방안내소의 네온사인 불빛이 선명하게 비춘다.
다 내려왔다.
먼저 숙경에게 전화를 했다.
웬걸 안 받는다.
못 받는 건 아니겠지.
든든히 형님이 후미를 맡아 주고 계시니 안심은 되지만...
그러나 이때 작은 판단 착오로 빨리 내려온 시간과 노력이 헛되고 헛되게 했다.
탐방안내소 오른편 윗길(큰길)로 계속 직진하면 될 것을 음식점에 막혀 주차된 차량을
주차장으로 오인해서 아랫길로 접어들고 가다 보니 이게 웬걸 길이 없다.
바로 백무동 행락객들을 위한 평상이 차려진 계곡에 들어서 버리고 만 것이다.
다시 올라서려니 힘도 빠지고 비에 불어 터진 손으로 휴대폰의 액정화면에 터치를 해도 미끄러지기만 할 뿐이고, 지금 생각하니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음성인식(지니)을 잘 사용할 걸 후회했다.
지니도 가끔 운전할 때만 쓰는지라.
어느 아랫집 펜션에 쪼그리고 앉아 비 맞은 뭐 꼴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차분히 불을 붙이니
그제야 울리는 형님의 전화... 화면을 밀어서 통화 쪽 녹색 버튼으로 밀기도 쉽지가 않고
순간 겨드랑이에 넣었다가 빼고 나서야 어렵게 파주마루 형님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주회장... 지금 어디야... 난
어디 지나서 어디쯤인데...“
”네, 형님 저는 다 내려와서 길을 잘 못 들어서...“
동생들을 놔두고 혼자 치고 내려와서 벌을 받나? 아닌데 그런 뜻은 1도 없었는데...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큰길로 올라서니 숙경네 내외가 비를 쫄딱 맞고 천천히 걸어 가는 뒷모습이 바로 보인다.
그리 큰 시간 차이는 아니었던...
왠지 모를 미안함이 앞서는 건 왜일까?
끝마무리가 잘돼야 아름다운 법이거늘...
앞에서 가던 형이 뒤에서 나타나니 흠칫 놀라고 나는 이제 다 왔으니, 안심을 시키고...
미리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해둔 식당 입구에는 우산을 받쳐 든 형님이 서 계셨고 난 또 다시 확인 전화를 한 후에야 모두를 식당 안에 자리를 잡게 할 수 있었다.
사진에서는 작은 크기의 고만고만한 식당인 줄 알았는데 그 규모와 하는 사업을 보니 영세한 작은 식당이 아니었다.
들어가는 입구도 불편했고 그리 반기는 표정이나 인사가 없는 주인장부터...
써빙을 보는 동남아계의 이방인들도...
주변의 몇 테이블과는 사뭇 다른 소박한 메뉴 때문만은 아닐 거란 건 나만 느끼는건 아닌듯도 하다.
그러나 어쩌랴 일단 계획대로 마지막 진행은 해야 한다.
샤워실을 물어보고 일행들이 먼저 씻는 동안 난 다시 식당을 나와 버스표를 예매하러 나섰다.
백무동 터미널 주차장에서 제일 가까운 음식점이라 거리라 멀지는 않았지만,
그곳 매표소는 직원이 상시 근무하는 곳이 아니라 휴대전화로 예약만 받고 발차 10분 전에야 티켓팅을 한단다.
우선 전화로 오후 6시 차 4명을 예약해 두고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먼저 씻고 나온 일행들은 나를 기다려 준비된 식사에 손도 안 대고 계셨고 내가 씻고 나온 다음에야 함께 첫 하산주를 들 수 있었다.
마주한 표정들에서는 언제나처럼 그리 기쁜 표정들만 읽히지는 않았다.
흠뻑 젖은 몸을 샤워 후 환복은 했지만.
너무 힘들고 지친 모습들이 역력하다.
서두에 이야기 했던 산행의 즐거움 중 그 네번째 즐거움인 하산 후의
안도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을 함께한 이들과 소박한 음식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정감의 시간들이 빠져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이런 때는 아주 소담한 작은 가게에서 주인장과 너스레도 떨며 분위기라도
바꿔보면 좋으련만...이곳은 작은 만족을 찾기에는 너무 큰 음식점이었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보며 몇 잔의 맥주를 더 마시고는 차 시간에 맞춰 일어섰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린다.
지리산은 우리가 가는 게 슬픈가보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 그래도 이번 산행의 의미를 생각해 봤다.
출발 전야의 부고와 예정에서 벗어난 산행, 그로 인한 일정의 과부하에도
큰 변고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오랜 공백기? 이후의 종주 산행을
최선의 선택과 노력,그리고 합심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에 이정도의 족함이면
된거 아니냐는 위안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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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리산 종주대의 길 일명:지.대.로 팀의 지리산 종주가 마무리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야만 그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듯이 빠듯한 가운데
별다른 큰 이변 없이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함께한 파주마루 형님과 악양의 양참판,
민호와 숙경네 부부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해본다.
어느 가을날 이번에 못다 한 종주길을 다시 이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미련으로 남지만
그런 시간이 쉬 오진 않을 듯하고...
그래도 동서울서 헤어지며 형님이 내게 건넨 한마디가 아직도 귓전에 남는다.
~멋졌어!
~(형님도 요)~
*긴 글 읽어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5년 8월 19일
주 경선 씀

첫댓글 잘 읽었어~~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