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영의 꽃香詩향] 투구꽃
2011년인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란 영화가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지요. 정약용(?)으로 분한 김명민과 개장수 역의 오달수 콤비의 코믹 연기로 당시 4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이기도 했는데, 영화 속 살인 사건에 이용된 것이 바로 각시투구꽃의 독이었지요.
오늘은 투구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지난번에 독초 이야기를 들려드린 적이 있는데, 오늘 투구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할 수 있겠네요.
가을 산에 오르면 흔히 만나게 되는 꽃들은 어떤 꽃들일까요? 흰색 혹은 노란색의 꽃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리고 그 꽃들은 대부분 국화과 식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그 가을 숲에서, 희고 노란 국화과 식물들로 가득한 가을 숲에서, 홀로 보라색 꽃을 피우며 자태를 뽐내는 꽃이 있지요. 바로 투구꽃입니다.
투구꽃은 8월과 9월이면 꽃이 피기 시작해서 10월에 절정을 이루는데요, 그 꽃의 모양과 색이 다른 국화과 식물과는 전혀 다른 모양, 다른 색을 띠고 있지요. 가지나 줄기 끝에 보라색 꽃이 한 송이씩 여러 송이가 모여서 피는 투구꽃은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식물입니다.
투구꽃의 이름은 꽃의 모양이 로마 병사들이 쓰던 투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승려들이 쓰던 고깔을 닮기도 했지요. 영어 이름은 ‘멍크후드(Monk’s hood)‘라 하여 ‘수도승의 두건’을 뜻합니다. 한자로는 ‘오두(烏頭)’로 불리는데, 까마귀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요. 한방에서는 ‘초오(草烏)’라 하여 약재로 쓰이기도 합니다. 우리말로는 ‘돌쩌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돌쩌귀는 문 문틀을 연결해주는 경첩을 말하지요. 그러고 보면 전부 그 꽃의 모양새를 보고 붙인 이름들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투구꽃은 맹독을 지닌 식물입니다. 식물의 독으로는 가장 강한 독을 지녔다고도 합니다. 조선 시대 악명을 떨친 장희빈이 결국 사약을 먹고 죽었는데, 그 사약이 바로 이 투구꽃의 독으로 만든 사약이었지요. 조선 시대 궁중에서 쓰인 사약의 재료로는 주로 투구꽃과 천남성이 쓰였다고 합니다. 또 인디언들은 투구꽃의 즙으로 독화살을 만들었다고도 하지요. 고대 그리스 키오스섬에는 늙고 병든 사람의 안락사용으로 투구꽃의 독을 사용하였다고도 합니다.
이쯤에서 시 한 편 읽고 가는 게 좋겠지요. 최두석 시인의 「투구꽃」입니다.
사노라면 겪게 되는 일로
애증이 엇갈릴 때
그리하여 문득 슬퍼질 때
한바탕 사랑싸움이라도 벌일 듯한
투구꽃의 도발적인 자태를 떠올린다
사노라면 약이 되면서 동시에
독이 되는 일 얼마나 많은가 궁리하며
머리가 아파올 때
입술이 얼얼하고 혀가 화끈거리는
투구꽃 뿌리를 씹기도 한다
조금씩 먹으면 보약이지만
많이 넣어 끓이면 사약이 되는
예전에 임금이 신하를 죽일 때 썼다는
투구꽃 뿌리를 잘게 씹으며
세상에 어떤 사람이 독이 되는지 생각한다
진보라의 진수라 할
아찔하게 아리따운 꽃빛을 내기 위해
뿌리는 독을 뿜는 거라 짐작하며
목구멍에 계속 침을 삼키며
뜨거워지는 배를 움켜쥐기도 한다
― 최두석, 「투구꽃」 전문
투구꽃의 독성분을 떠올리며 시인은 “사노라면 약이 되면서 동시에 / 독이 되는 일 얼마나 많은가 궁리”하고 아찔하게도 “투구꽃 뿌리를 잘게 씹으며 / 세상에 어떤 사람이 독이 되는지 생각”합니다. 또한 투구꽃의 보랏빛을 보면서 “진보라의 진수”라고 합니다. 그 “아찔하게 아리따운 꽃빛을 내기 위해 / 뿌리는 독을 뿜는 거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 얘기하고 싶었던 것을 한 편의 시에 다 담아내고 있네요.
또 한 편의 시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성해 시인의 「각시투구꽃을 생각함」입니다.
시 한 줄 쓰려고
저녁을 일찍 먹고 설거지를 하고
설치는 아이들을 닦달하여 잠자리로 보내고
시 한 줄 쓰려고
아파트 베란다에 붙어 우는 늦여름 매미와
찌르레기 소리를 멀리 쫓아내 버리고
시 한 줄 쓰려고
먼 남녘의 고향집 전화도 대충 끊고
그 곳 일가붙이의 참담한 소식도 떨궈 내고
시 한 줄 쓰려고
바닥을 치는 통장 잔고와
세금독촉장들도 머리에서 짐짓 물리치고
시 한 줄 쓰려고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난 각시투구꽃의 모양이
새초롬하고 정갈한 각시 같다는 것과
맹독성인 이 꽃을 진통제로 사용했다는 보고서를 떠올리고
시 한 줄 쓰려고
난데없이 우리 집 창으로 뛰쳐 들어온 섬서구메뚜기 한 마리가
어쩌면 시가 될 순 없을까 구차한 생각을 하다가
그 틈을 타고 쳐들어온
윗집의 뽕짝 노래를 저주하다가
또 뛰쳐 올라간 나를 그 집 노부부가 있는 대로 저주할 것이란 생각을 하다가
어느 먼 산 중턱에서 홀로 흔들리고 있을
각시투구꽃의 밤을 생각한다
그 수많은 곡절과 무서움과 고요함을 차곡차곡 재우고 또 재워
기어코 한 방울의 맹독을 완성하고 있을
― 문성해, 「각시투구꽃을 생각함」 전문
문성해 시인은 자신의 시 쓰기와 각시투구꽃이 독을 만드는 과정이 닮았다며 “수많은 곡절과 무서움과 고요함을 차곡차곡 재우고 또 재워 / 기어코 한 방울의 맹독을 완성”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문득 시를 쓰는 일이 참으로 독한 일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가 독자에게 과연 약으로 작용할지 독으로 작용할지…… 시를 읽는 일도 무척 조심스런 일이곘다 그런 생각도 드네요.
혹시 ‘투구꽃 살인 사건’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유해물질 의문 100』(보누스, 2016)라는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1986년 5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일인데요, 33세의 젊은 여성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는데, 알고 보니 보험금을 노린 카미야 치카라(당시 46세)라는 남자가 13세 연하인 아내에게 복어와 투구꽃을 함께 먹여 살해한 것으로 밝혀진 사건입니다.
복어도 투구꽃도 맹독을 지녔는데, 하나만 먹여도 될 것은 왜 두 가지를 함께 먹인 것일까요? 바로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서였습니다. 복어와 투구꽃은 모두 신경독인데 효력은 정반대라고 합니다. 한쪽은 나트륨 통로의 역할을 저해하는 것에 반해 다른 한쪽은 활성화시킨다고 합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먹으면 체내에서 두 가지 독이 상쇄되다가 남은 독이 퍼지게 되는데, 한마디로 길항 작용을 하는 것이지요. 그 결과 독을 섭취하고 나서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걸리는 점을 노려 그 사이 알리바이를 조작한 사건입니다.
‘투구꽃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범인 카미야 치카라에게는 조사 결과 과거 두 명의 아내가 더 있었는데, 둘 다 젊은 나이에 심부전으로 사망했다고 밝혀졌고, 두 사람 모두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결국 카미야 치카라는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지만, 자백을 거부한 채 지난 2012년에 암으로 의료교도소에서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식물은 독을 지녔다고 합니다. 세상의 무수한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방편인 것이지 결코 누구를 해하려 하는 것은 아니지요. 독을 품은 식물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정작 그 독을 살인의 도구로 쓰는 사람이 정작 독보다 무서운 독이 아닐까요?
투구꽃에 관하여 이런 저런 자료를 찾다보니 덕성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권순경 명예교수께서 쓴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끝으로 그 글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투구꽃의 신기한 점은 식물이 매년 조금씩 움직인다는 것인데 이동 방식이 독특하다. 지금까지 자라온 원뿌리는 자기 임무를 다 마친 후에는 썩어 없어지고 이듬해에는 옆에 달린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오게 된다. 이렇게 해서 움직이는 거리가 매년 1센티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백 년 후면 1미터 정도 움직이게 되는 셈이니 땅에 뿌리박고 사는 식물의 고충을 이해할 것 같다. 동일한 장소보다 옆의 토양에 양분이 더 많을 터이니 현명한 생존전략인 셈이다.”(약업신문, 2019. 4. 3.)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라는 티비 프로에서 브라질의 ‘워킹팜(walking palm)’이라는 걸어다니는 나무를 본 적이 있고, 쿠바의 씨엔푸에고스 식물원에 가면 ‘아르볼 께 까미나(arbol que camina)’라는 걸어다니는 나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투구꽃이 걸어다니는 식물인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투구꽃이 백 년에 일 미터를 움직이는 것도, “수많은 곡절과 무서움과 고요함을 차곡차곡 재우고 또 재워 / 기어코 한 방울의 맹독”을 만들어내는 것도, 결국 살아내고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겠지요. 사람이 사는 일도 어쩌면 그와 같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더디고 더디더라도 독하게 한 걸음 내딛으며 독하게 버티어내는 것이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월간 춤, 2019년 10월호
[출처] [박제영의 꽃香詩향] 투구꽃|작성자 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