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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전문 안내산악회 계획에 따라 '용화리 경로당 → 운곡저수지 → 전망바위 → 낙대봉 → 갈림길 → 기룡산 → 823봉 → 갈림길 → 꼬깔산 → 전망대 → 영천호(湖) → 성곡리 복지회관'의 11km 코스를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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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룡산[騎龍山]
높이: 961m(고깔산: 737m)
위치: 경북 영천시 자양면
기룡산(騎龍山)은 경북 영천시 자양면에 있는 산으로 일반인에게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관계로 아직은 때 묻지 않은 능선을 따라 호젓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이기도 하고 정상에서 남쪽 3.3km에 있는 꼬깔봉과 연계하여 능선을 이을 수 있으며 남쪽 아래 영천댐(자양호)의 시원하고 넓은 호수를 굽어보는 맛은 일품이다.
특히 북쪽 보현산 천문대를 건너다보며 정상 서릉을 따라 이어지는 0.8km의 아기자기한 암릉을 오르내리는 길은 기룡산 산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정상 남쪽 아래에는 신라 천 년 고찰인 묘각사가 있고 기룡산이란 이름도 이 묘각사를 창건할 당시 동해 용왕이 의상대사에게 설법을 청하고자 말처럼 달려왔다는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 한다.
산행 들머리인 성곡리 여름철에는 효자 정윤량의 전설을 품고 있는 천하의 명당이 있기도 하다. 영천댐 건설공사로 이전 복원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인 오회당, 사의당, 삼휴정 등을 둘러보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 한국의 산하
애초 이번 주는 토요일인 4월 15일 천고지 중 하나인 오지 중의 오지 봉화 달바위봉에 오를 예정이었다. 오랜만의 오지 산행이어서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답지 않게 버스 한 대는 만석, 다른 한 대는 성원을 넘길 정도로 신청자가 많았다. 해서, 성원을 채우지 못해 취소됐던 과거 오지 산행과 달리 별문제 없이 오를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산행 준비를 하고, 산행 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목요일 산행 당일 기상청의 전국적인 비 예보에 하나둘 취소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군, 독일, 유럽 등의 자료를 토대로 매일 일주일의 한국 기상정보를 알려주는 유튜브를 시청하는 나는 산행 당일인 토요일, 오전에만 비가 조금 내리고, 바로 그친다는 정보에 따라,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을 거로 믿고 있었다. 그래도, 취소 사태가 어디까지 갈지 몰라, 만약에 대비해 Plan B를 준비했다.
각 안내산악회 게시판에서 다음 날인 일요일 출발하는 적당한 산을 찾아보니, 달바위봉 산행을 진행하는 같은 안내산악회의 기룡산이 유일한 초면의 산이라, 일단 Plan B로 염두에 뒀다. 그리고 달바위봉 산행 취소 추이를 주시했는데, 목요일 24시까지, 버스 한 대는 취소, 나머지 한 대는 성원을 넘기는 정도로 취소 사태가 진정되는 분위기다. 해서 예정대로 달바위봉에 갈 수 있을 거로 믿고, 취침에 들어가려는 순간, 안내산악회 카페지기로부터 취소자 속출로 취소한다는 문자가 왔다. 그 문자를 받고 바로, '그럼, 기룡산에 한 자리를 달라!'고 답장을 보내고, 다음 날, 기룡산행에 제대로 이름이 올라갔는지 확인차 산악회 게시판을 방문했다. 그런데, 산꾼은 다 같은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달바위봉 취소자 몇이 보인다. 그리고, 달바위봉은 비 때문에 신청자들이 취소한 거라, 산악회에서 완전히 취소한 게 아니라, 5월 27일에 다시 진행하는 걸 발견하고 바로 신청했다. 여담이지만, 금요일 기상청의 토요일 달바위봉 일기예보를 보면, 유튜브의 예보가 정확했다!
일요일 오를 예정인 기룡산은 2022년 12월 말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의 게시판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산으로 초면인 거 같지만, 혹시나 해서 산행 계획을 정리한 목록에서 찾아봤다. 그런데, 있다! 즉 익숙하지 않으나, 언젠가는 오를 생각으로 목록에 넣어두었던 산이다. 해서 당시 2월 11일 기룡산행을 신청했으나, 이후 다른 중요한 산행과 겹쳐 눈물을 머금고 취소했으나, 당시 성원을 채우지 못해 안내산악회에서 4월 16일로 연기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당시 기룡산행을 망설임 없이 신청한 건 소개 글에서 본 "특히 북쪽 보현산 천문대를 건너다보며 정상 서릉을 따라 이어지는 0.8km의 아기자기한 암릉을 오르내리는 길은 기룡산 산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라는 문장에서 천고지 산행 중 하나로 2021년 12월에 오른 보현산[산행기]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과 아기자기한 암릉이라 게 마음에 들어서다. 황사로 조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안내산악회 산행 계획을 보면, A 코스는 용화리 경로당에서 시작해 성곡리 복지회관에서 마감하는 11km, B 코스는 A 코스와 같이 용화리 경로당에서 시작해 묘각사에 들른 후 묘각곡을 따라 내려와 경로당에서 마감하는 환 종주 9km라는데, 소요 시간에 관한 내용이 없다. 추측건대, 대략 5시간 30분에서 6시간 정도가 아닐까? B 코스의 천년고찰 묘각사와 묘각골도 궁금하나, 다시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A 코스를 탐험할 예정이다. 해서 지도로 날머리를 살펴보니, 면 소재지로 영천댐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 몇 개 보인다. 해서, 4시간 이내에 산행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식당에서 먹을 예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요 산행이라,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구할 방법이 없다. 다른 준비는, 영상 15도 내외의 기온에, 흐리고 바람이 5m/s 강하다는 예보라, 평소와 같다. 토요일 확인한 일요일 날씨는 오후에 비라, 빨리 산행을 마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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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신사역에서 7시 10분, 출발하는 안내산악회 버스라, 집에서 평소보다 늦게 출발해도 문제가 없는데, 일요일은 신사역 구내에 있는 김밥 전문점과 틈새 상품으로 김밥을 파는 즉석 빵집이 쉬는 날이다. 때문에, 점심용 김밥을 사기 위해서는 불광역이 아닌 연신내역으로 가야 한다. 해서 6시경 집을 나서 구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연신내역으로 향하며, 코로나 이전 안내산악회를 이용할 때, 김밥을 사던, 24시간 김밥 전문점이 영업 중인지 확인했다. 코로나가 한참이던 2022년 8월 백두대간 연결 산행으로 사다리재에서 은티재까지 달릴 때는 문을 열지 않아, 건너의 연서시장에서 소위 마약 김밥이라는 걸 사서 갔다[산행기]. 하지만, 사실상 코로나가 종료된 현재는 영업할 수도 있을 거라는 약간의 기대가 있다. 다만, 요즘 나라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달리는 버스에서 창으로 확인했는데, 예상대로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코로나와 경제 상황이 24시간 영업이라는 한국 고유의 영업 방식을 없앤 게 분명하다.
당연히 길 건너 연서시장으로 가자, 예상대로 대여섯의 여성이 열심히 김밥을 싸, 단체주문인지 김밥을 상자에 넣고 있다. 그중 영업 담당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김밥 한 줄 달라고 하자, 열심히 상자에 넣고 있는 김밥 중 하나를 꺼내 준다. 그걸 받아 배낭에 넣고, 연서시장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연신내역으로 향해, 6시 19분 오금행 열차를 탔다. 집에서 나올 때는 불광역 6시 27분, 연신내역 6시 25분 열차를 탈 예정이었으나, 김밥 사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적게 걸려, 그 앞차를 탔다. 고로 신사역에 그만큼 일찍 도착했다는 얘기다. 신사역에 도착해 계단으로 개찰구로 올라가며 그 옆의 김밥집을 힐끗 봤다. 휴일이다. 그리고 통로 건너편의 즉석 빵집 또한 휴일이다. 최소 하루는 쉬어야지! 그럼, 연서시장은?
계획보다 일찍 신사역에 도착해 딱히 할 일도 없어, 급한 건 아니나, 화장실로 가 일을 본 후, 추위나 더위를 피할 것도 아니라, 바로 4번 출구로 나갔다. 신사역 4번 출구는 두 곳의 안내산악회와 가끔 동호회의 전세 버스가 정차장으로 이용하는데, 오늘은 경북 영천 기룡산으로 가는 버스가 유일하다. 양재에선 한 안내산악회에서 20대를 출발시키고, 다른 두 개는 각각 서너 대를 출발시킨다. 오지는 산행 자체도 힘들지만, 들머리까지 가는 게 지난한 과정이다. 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등산객이 몇 없다. 그들과 어울려 시청에서 출발한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는데, 7시 3분경 정체불명의 버스가 들어왔다. 우리가 이용하는 산악회 버스는, 대개 출발 시각에 도착하는데, 너무 일찍 들어온 차라,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버스에서 내려 우리 방향으로 오는 사람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돼서 인솔 대장이라는 걸 알고, 인사 후 바로 버스로 가 짐칸에 배낭을 넣고, 버스에 탔다.
이번 기룡산행은 전날 봉하 달바위봉에 오르려다가, 비 때문에 취소된 대안이라, 내가 선택한 자리가 아니라, 빈자리 중 하나를 불하받은 자리다. 고로 자리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늦게 선택했으니, 불평할 상황이 아니다. 늘 그렇듯이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최대한 편한 자세로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문의 청남대 휴게소를 지나고 있다. 어제 갈 예정이었던 봉화 달바위봉도 멀지만, 영천 기룡산은 그보다 멀어, 대략 4시간 정도 걸린다. 해서 휴게소도 신사역 출발 2시간이 조금 안 된, 9시 5분에 화서로 들어갔다. 화서는 몇 주 전 갑장산 갈 때 방문했던 곳이라 익숙하다. 휴게소로 들어왔으니, 해야 할 일을 하고, 다시 버스에 타 책을 보며 출발을 기다렸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해도 계속해 책을 보고 있는데, 앞자리에서 무언가가 넘어오는 거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지도다. 그걸 옆자리의 산꾼이 받아, 한 장을 줘, 확인해 보니, 산악회 게시판에 있는 걸 조합해 인쇄한 거다. 해서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인솔 대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라 새로울 건 없었는데, 기룡산 정상에서 바로 하산하는 B 코스로 진행할 등산객이 몇 명이나, 되는지 확인하고는 생각보다 많다며 의외라는 표정이다. 아니, 다섯이 많다는 거야? 내가 보기에 대장은 원활한 진행을 위해 아무도 없기를 바란 게 아닐까? 그러자, B 코스에 손을 든 여성 등산객이 비가 오면 B 코스로 서둘러 하산할 거라고 한마디 했다. 그 말을 듣고는 대장도 인정하는 표정이다.
예상보다 빠른 10시 48분경 버스는 들머리인 영천 용화리 경로당에 도착했다. 버스가 도착하기 직전 인솔 대장이 마감을 발표했는데, A 코스는 17시 10분, B 코스는 16시 10분이다. 그럼, 산행에 주어진 시간이 A는 6시 20분, B는 5시간 20분이 조금 넘는다. 물론 모두 일찍 도착하면, 일찍 출발한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A 기준 11km에 불과한 코스라, 많아야 5시간 30분을 책정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이런 경우는 짧은 코스에, 산이 험하고 급경사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산행일 확률이 높다. 대장도 기룡산 정상의 높이가 961m인데, 들머리가 200m가 채 안 되는 고도로, 표고차가 700m 이상이라 쉽지 않다고, 코스 소개 때 언급했었다. 특히 낙대봉을 지나, 기룡산 정상으로 오르는 구간이 표고차도 크고 급경사로 쉽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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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등산객이 등산 준비를 하는 동안 이미 버스에서 준비를 끝낸 후라,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핸드폰과 스마트 워치의 등산 앱을 기동하고, 현재 고도를 확인했다. 인솔 대장이 200m 정도라고 했으나, 정확한 고도를 알 필요가 있다. 213m, 20m가량 더 높게 나오니, 190m 정도다. 고로 대장이 언급한 높이가 거의 맞아, 770m 이상의 고도를 올려야 하는 산행으로 최근 산행 중 가장 높다. 와중에 이미 버스에서 준비를 끝냈을 뿐 아니라, 배낭까지 들고 탔던, 등산객은 이미 산행을 시작해 저만치 가고 있는 걸 보며, 용화리 주변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10시 55분에 들머리 입구 100m 지점에 도착해서 보니, 갈림길로 건너편에는 B 코스 하산길이자, 묘각사로 오르는 임도로, 자가용 두 대가 주차 중이다. 등산객?!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자, 저 앞으로 댐이 보인다. 영천댐이라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은 게 운곡저수지다. 밧줄로 안전시설이 설치된 등산로는 저수지 오른쪽 옆으로 나 있고, 그리로 올라가는 일행이 보인다. 그들을 따라, 급경사의 저수지 둑에 올라서서 보니, 마을 저수지치고는 꽤 크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등산로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데, 시작부터 급경사다. 비록 날은 흐리고, 기온은 낮으나, 습도가 높아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흐르기 시작해, 추워서 입고 있던, 넥워머와 바람막이 벗어 배낭에 넣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산행을 시작해 급경사를 오르는데, 왼쪽 아래에 밖으로 툭 튀어 나간 바위 전망대가 있어, 그리고 가 아래를 보니, 용화리와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등산로로 올라갔는데, 다른 등산객은 경치에 관심이 없는지, 전망대는 무시하고 앞만 보고 올라가, 졸지에 후미로 떨어졌다.
급경사 등산로를 따라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는데, 저 앞에 암봉이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그 바위 봉우리에 올라가는 산꾼을 본 거 같다. 등산로는 암봉을 우회하고 있으나, 암봉으로 오르는 방향에도 희미한 인적이 있어, 우회전해 암봉으로 향했다. 그리고 맨손으로 바위 봉우리를, 피까지 흘리며 7부 능선까지 올랐으나, 그 이상은 너무 위험해 포기하고 다시 내려와야 했다. 비록 중간에서 내려왔으나, 암봉을 오르느라 긴장해서인지, 입술이 마르고, 허기져, 준비한 오이를 꺼내 먹으며, 밧줄로 가드가 설치된 우회 등산로를 따라 올랐다. 그리고 능선에 도착해 보니, 상처까지 입으며 기어오르려고 했던 암봉 정상이자 전망대다. 고도가 높아졌으니, 아래 전망대와는 달리, 운곡저수지뿐만 아니라, 저 멀리 영천댐이 만든 영천호도 보인다. 당연히 그 모습을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긴 후 다시 산행을 진행하기 위해 뒤로 돌아서 보니, 올라가야 할 봉우리가 앞을 막아서고 있다.
위치나, 높이로 봤을 때 오늘 산행 코스에서 이름을 가진 첫 번째 봉우리인 낙대봉으로 보인다. 설사, 아니더라도, 저 봉우리 바로 뒤에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암릉으로 올라, 등산로를 따라 10여 미터 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갈림길을 보니, 나눠준 지도에 낙대봉 직전 ‘암릉’이라 적힌 곳이, 최고의 절경으로 산행 재미가 좋으나, 약간 위험해 우회로가 있다는, 코스 소개 때, 인솔 대장인 한 말이 기억났다. 당시 그걸 보고, 한국의 산하에서 본 것과 부합하지 않아, 약간 의아했는데, 어쨌든 바로 아래 전망대부터 낙대봉 직전 암릉인 건 맞다. 그럼, 앞에 보이는 길 중 직진이 우회로,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계속 암릉이라는 거라, 망설임 없이 그 방향으로 올라갔다. 위에 도착해서 보니, 바로 아래에서 본 암봉으로, 낙대봉은 아니나, 고도가 더 높아졌으니, 보이는 것도 아래와는 달라,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겼다.
감상할 건 강상하고, 기록이 필요한 건 사진으로 남긴 후 걸음을 뒤로 돌려, 가까운 곳에 있을 거로 생각되는 낙대봉을 향해 200여 미터를 가자, 등산 앱이 '낙대봉'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당연히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가, 11시 42분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니, 기룡산까지 3.44km라는 이정표가 있고, '진렬'이라는 앞선 산꾼이 만든 '낙대봉' 정상석이 있다. 큰 둘을 주워다 세우고, 그가 준비한 명패를 그 돌에 줄로 고정한 거라, 정상 명패라고 해야 정확하다. 그런데, 정상의 첫인상은 이름을 붙이고, 명패까지 만들어 설치할 정도의 봉우리는 아니다. 고로 아래에서 이 봉우리 모습을 보고 '낙대'라는 이름을 붙였을 텐데, 한글만 봐서는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해서 한자를 추측해 보니, 대는 '臺'로 뾰족한 게 아니라, 널찍하다는 의미로 생김새와 부합한다. 그럼 "낙"은? 落? 樂? 駱? 등 많은데, 뭘까? 떨어질 낙이면 낙대가 아니라 낙조대라 칭했을 거고, 신선이 놀던 樂臺?!
한자로 기록된 모든 명칭을 의미에 맞게 한글로 바꿀 게 아니라면, 한자도 혼용하자는 평소 내 소신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그 정상석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사실 정상석이야, 마을 주민이 아니라, 인증을 좋아하는 산꾼이 세웠을 확률이 99.99%라 '낙대'라는 명칭의 유래에 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을 거다. 어쨌든 인증을 남긴 후 다시 기룡산을 향해 가는데, 바로 앞에 오른쪽으로 튀어 나간 바위가 있어 그리로 올라가, 오른쪽을 보니, 기룡산에서 뻗어 나온 능선이 영천호 방향으로 내려가는 게 보인다. 그 능선상의 가장 높은 봉우리, 저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마지막 목표인 '꼬깔산'이다. 이름만 들어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 봉우리를 보며, 꼬깔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런데, 11시 30분이 지났으니, 점심시간이고, 진작부터 배가 고팠던지라, 배낭에서 연서시장표 김밥을 꺼내 먹으며, 기룡산으로 향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혹자는 마약 김밥이라고도 부르던데, 내 입맛에는 신사역표, 양재역표 김밥이 더 맞다. 원래 마약이란 의미가 맛이 아니라, 중독성을 강조하는 거니, 당연한가!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로 가기 위해서는 고개로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하는 게 당연한 거라, 김밥을 먹으며,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내려가는데,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능선이 보이다. 오른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기룡산 정상이고, 그 좌우로 뻗어 나간 게 주 능선이자, 기룡지맥으로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만 놓고 보며, 정상까지 3.4km, 표고차가 400m 이상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주 능선까지 2km가 조금 넘어 보이고, 표고차가 400m가 넘어, 급경사에 쉽지 않은 구간이라는 대장의 말은 이해가 된다. 이번 산행 종료 목표를 3시 반으로 잡았는데, 그 목표 달성 여부는 앞에 보이는 주 능선에 얼마나 빠르게 올라서느냐에 달렸다. 해서 서둘러, 고개로 내려가는데, 고개 또한 대다. 고개를 통과해 다시 능선을 향해 올라가자, 보이지는 않으나, 인기척이 들린다. 그리고 50여 미터를 더 가니, 묘지 앞에 앉아서 점심 중인, 일행이다. 이 높이에 웬 무덤? 결론만 얘기하자면, 현재는 길을 찾기 힘든 곳으로 하산했는데, 거기에도 무덤이 있을 정도로, 능선 따라 묘가 즐비하다. 무덤이 이렇게 많은 산은 하동 성제봉 이후 처음이다[산행기].
그들을 뒤로하고, 주 능선을 향해 다시 올라가는데, 오른쪽 울창한 숲사이로 뱀처럼 구불거리며 위로 올라가는 임도가 보인다. 묘각사다! 애초 등산로 입구 직전 갈림길 임도가 묘각사를 위한 거라는 건 알고 있으니, 놀라울 건 없는데, 절이 이렇게 높이 있을 거라곤, 미쳐 생각을 못 했다. 과장 조금 더해 높이 960m가 넘는 기룡산 정상 바로 아래다. 고로 정상 바로 아래까지 차로 갈 수 있다. 평소 지론이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 하자인데, 저기까지 버스가 안 다니니 이용할 방법이 없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절을 감상하며, 위로 갈수록 경사각 심해지고, 와중에 쌓인 낙엽도 발목을 넘어, 등산지팡이 없으면, 오르기 힘들 정도로 미끄럽다. 당연히 스틱 따위는 없으니, 이런 상황을 고려해 설치한 밧줄 가드를 간간이 의지하며 올라가는데, 방울을 울리며 위에서 내려오는 등산객 보인다. 임도에 주차해 있던 자가용의 주인 아니면, 산악회 코스를 무시한, 묘각사로 올라 기룡산 찍고 내려오는 일행이다. 그런데, 숨이 가빠 지나가는 순간 물어보지 못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급경사를 오르자, 묘각사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며, 묘각사다. 그나마 완만한 갈림길에서 숨을 가라앉히며, 비록 울창한 숲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으나, 뒤로 돌아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당연히 이정표도. 이후 오른쪽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기룡산 정상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된 급경사를 올라, 12시 45분에 주 능선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갈림길로 왼쪽은 시루봉, 오른쪽은 기룡산 정상으로 향하고, 의자가 설치된 쉼터로, 일행 예닐곱이 쉬면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있다. 그런데, 이정표에는 시루봉이 아니라, 용화로 표기하고 있다. 시루봉에서 하산하면 용화라 틀린 거 아니다. 나를 쳐다보며, 점심을 먹고 있는 일행을 뒤로하고, 우회전해 기룡산 정상으로 향하는데, 완경사로 거의 산책로 수준이다.
정상을 향해 200여 미터를 가자, 한국의 산하 기룡산 소개에서 본 0.8km의 암릉이 시작되고, 왼쪽으로 관목에 가린 전망대가 있다. 나뭇가지에는 산악회 리본도 걸려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소개에서 언급한 보현산을 조망하기 위해 전망대로 갔다.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게 뿌옇게 보이는 좌우로 뻗은 능선에서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보현산, 오른쪽이 포항의 최고봉 면봉산이다. 둘 다, 정상에는 멀리서 보면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이 서 있다. 왼쪽 보현산은 천문대고, 오른쪽 면봉산은 기상용이라 생각되는 레이더 돔이다[산행기]. 뿌옇다고 지나칠 수 없어, 일단 기록으로 남기고, 전망대에서 나와 암릉을 따라 다시 정상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왼쪽으로 암봉 전망대다. 당연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올라갔다.
예상했던 바지만, 전면에 보이는 능선은 아래의 전망대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아래보다 높은 위치라 거기서는 보이지 않던, 좌·우로 기룡지맥이 보이고, 뒤의 나무에는 지맥이라면 당연히 있는 '준·희'의 '기룡지맥' 명패가 달려있다. 그 모든 걸 파노라마 등 기록으로 남기고, 암봉에서 내려와 바로 앞에 있는 이정표를 자세히 확인했다. 직진 기룡산 0.6km, 우는 탑전이라는 곳으로 1.9km 거리다. 모든 이정표를 묘각사에서 세운 건지, 이정표의 모든 정보는 묘각사 중심이다. 하긴 등산로도 묘각사를 향한다. 그리고 보니, 묘각사를 지나서는 제대로 된 이정표를 본 기억이 없다. 진실이든 아니든, 앞에 보이는 기룡산 정상을 보며, 비록 0.8km에 불과한 거리나, 암릉을 즐기며 진행하는데, 또 전망대다! 하긴 어느 산이나, 암릉은 곳곳이 전망대인데, 기룡산이라고 다르면 이상한 거다.
지나온 전망대와 비슷한 조망이라는 걸 알고 있으나, 그래도 정상에 가까워졌으니, 무언가 다른 게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전망대에 올랐다. 예상대로다, 앞에선 보이지 않던, 탑전이라 생각되는 마을이 아래로 보인다. 그리고 묘각사 방향 절골 왼쪽으로 가야 할 능선과 그 위의 꼬깔산이, 오른쪽으로는 낙대봉과 지나온 능선이 조망된다.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긴 후 가끔 뒤로 돌아 지나온 암릉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찍기도 하며, 정상으로 가는데, 등산 앱이 정상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역시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 1시 14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비록 급경사 암릉이기는 하지만, 정상에 도착하는데, 반경 50m 내라고는 믿을 수 없는, 3분이 걸렸다. 정상은 널찍한 바위로 쉴 수 있는 의자가 있고, 그 의자에는 대여섯의 일행이 쉬면서 점심을 먹거나, 다 먹고 정리하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힐끗 보고, 먼저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긴 후, 인증을 부탁할 분위기가 아니라, 삼각대를 꺼내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좀 전에 정리를 끝내고 떠났던 등산객이 여기에 정상석이 또 있다고 외치는 게 들린다. 해서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약간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니, 그의 말대로 밑에 있는 것보다 먼저 설치된 거로 보이는 騎龍山人(기룡산인)이 세운 정상석이 있다. 정상석에는 한자로 '騎龍山'과 세운 사람, 그리고 방위, 높이 등이 음각되어 있다. 용왕이 의상대사의 설법을 듣기 위해 용을 타고 왔다는 전설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렇게 한자를 함께 적으면 의미를 알 수 있어 좋잖아! 아, 병기는 아닌가? 역시 그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도 찍었다. 삼각대를 설치하기 좋은 위치가 아니라, 인증은 엉망이지만. 해서, 그 아래 널찍한 바위에 정상석을 다시 세우지 않았을까?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1시 14분, 목표 마감 시각이 3시 반이니, 2시간 15분가량 남았다. 비록 하산까지 기복은 있겠으나, 정상에서 보이는 꼬깔산 능선의 기복이 심하지 않고, 높낮이가 심하지 않다. 그리고 전체 거리와 지금까지 달린 거리로 계산했을 때 남은 거리가 6km 내외라, 2시간 15분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어, 기룡산 구 정상석에서 인증을 남긴 후 유유자적 하산을 시작했다. 정상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가자 바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다. 여기의 이정표 또한 묘각사를 중심으로 정보를 제공해, 계속 내려가면 묘각사 0.9km로 B 코스 하산길이고 다시 올라가도 묘각사다. 꼬깔산은 좌로 3.4km 거리다. 갈림길을 떠나 꼬깔산 방향으로 300여 미터를 내려가자, 전망대다. 모든 게 보이는 게 아니라, 가야 할 능선과 그 위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뿌옇게 보인다.
페이스를 유지하며, 능선을 따라 꼬깔산을 향해 가는 동안, 일행 몇을 추월했다. 그러다가, 길이 헷갈리는 곳을 만났다. 직진 방향 10여 미터 거리의 나뭇가지에는 산악회에서 매단 노란 리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꽤 높은 봉우리도 보이나, 길은 희미한 게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되어 보인다. 그리고 좌로 꺾이는 방향에는 리본도 없고, 길 또한 직진과 다를 바 없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으나, 애당초 등산로가 없다. 그럼, 리본을 믿을 수밖에 없어, 직진을 선택했다. 그 순간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이 ‘왼쪽이 아니냐?’고 물어, 직진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자, 수긍하는 분위기다. 당연히 그가 뒤를 따라올 거로 생각하고, 빠르게 내려가는데, 갈수록 길이 희미해진다. 그나마 길이라 믿을 수 있는 건 중간중간 언제 관리했는지 모를 무덤이 있다는 거!
가끔 길을 찾아 헤매기도 하며, 빠르게 내려가는데, 가면 갈수록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예상대로다, 꼬깔산 능선에서 한참 벗어나, 묘각사로 올라가는 임도 방향으로 하산 중이다. 그걸 깨닫고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해서, 생각지도 않았던 오지 산행을 즐겼다는 것에 만족하고, 계속 하산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저 아래로 포장 임도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현재 시각 2시 8분, 그런데, 임도까지 거리는 멀지 않은데, 고도차가 너무 난다. 말인즉 임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급경사를 내려가야 한다. 설상가상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던 길도 없어져, 길을 찾아 방황하다가, 그냥 임도를 보고 똑바로 내려가는 걸 선택했다. 온갖 가시에 찔려가며, 길이 아닌 급경사를 15분가량 내려가자, 바로 아래에 비포장 임도가 있다. 과거의 임도를 보자, 다른 것보다, 이제는 길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는 것에 일단 안심이 됐다.
등산로가 아닌 산기슭이 다 그렇듯이 막바지가 직벽에 가까운 급경사다. 말인즉 임도로 내려가는 게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은 뛰어내린다고 해도 크게 다치지는 않을 높이라, 그냥 미끄러지듯이 내려가, 2시 19분에 구 임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래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가다가, 길목에 있는 작은 바위에서 신발을 벗고, 깔창까지 꺼내, 갈림길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등산화에 들어간 이물질을 빼냈다. 그렇게 하체를 재정비하고, 다시 임도로 가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다. 포장 임도와 갈수록 고도차를 벌리고 있다. 고로 하산이라 생각하는 방향은 봉우리로 올라간다. 하다못해 등산로도 위로 올라가기 위해 갈지자를 그리니, 임도야 더 말할 나위 없어, 고도를 높이기 위해 포장 임도에서 반대쪽 위로 향한 거다. 하산하려며, 묘각사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들자 망설임 없이 바로 뒤로 돌았다.
묘각사 방향으로 구 임도를 따라 내려가자, 예상대로 앞에 절로 올라가는 포장 임도가 보인다. 그 직전의 잔뜩 쌓인 낙엽을 뚫고 내려가며 보니, 자가용도 한 대 주차해 있다. 차 주인은 등산 중? 그럼, 어디로 올라갔을까? 2시 25분, 포장 임도에 도착해,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니, 지금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던, 노출된 피부가 끈적거리고 간지럽다. 해서 포장 임도를 따라, 산행 들머리였던 용화리로 향하며, 계곡으로 내려갈 만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2시 28분경 적당한 곳을 발견해 바로 계곡으로 들어가 노출된 곳을 깨끗이 씻었다. 물론 세족도 하고 싶었으나, 등산화나 양말의 여분이 없어, 발은 식당의 화장실에서 씻기로 하고, 계곡에서 나와 다시 용화리로 향하며 식당이 있는 성곡리까지의 거리를 확인했다. 지도 앱에 의하면 5.6km, 1시간 26분 거리다. 현재 시각 2시 32분, 이 속도로 가면 4시 전에 도착한다. 그럼, 더 고민할 것도 없다. B 코스 날머리인 용화리 경로당을 거쳐, A 코스 날머리인 성곡리 복지센터까지 간다!
허기도 지고, 갈증도 나, 남은 오이 한 조각을 먹으며, 용화리로 향해, 2시 53분에 산행을 시작했던 갈림길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오전에 주차해 있던 자가용도 그대로 있다. 그 지점에서 조금 더 내려가자, 산행을 시작할 때는 보지 못한, 왼쪽으로 낙대봉과 그 능선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후 갈림길에 도착해 오전에도 봤던 지도를 보며, 도대체 어디서 길을 헷갈렸는지 확인하려 했다. 지도를 기준으로 꼬깔산 능선에서 절곡으로 내려오는 가는 선 세 개 중 가운데 선으로 내려온 거다. 그걸 확인하고, 다시 길을 재촉해 2시 59분에 용호리 경로당에 도착했으나, 버스는 없고, 언제 내려왔는지 모를 일행 중 한 명이 의자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어, '버스는?' 하고 물으니, '아직!'이란다. 그리고 계속 가자 '어디 가냐?'고 물어, '성곡리까지 간다!'라고 하자 '너무 멀지 않냐?'고 반문하는 그를 뒤로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당연히 시간이 남아돌아 식당으로 향하는 거지만, B 코스 날머리인 경로당에서 빨라야 4시 10분에 버스가 출발하니, 1시간 10분 이상 남았다. 그럼 남은 시간을 멍청히 경로당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정대로 4시 10분, B 코스 등산객 모두가 도착해 A 코스 날머리인 성곡리 복지센터로 출발해도, 최소 4시 20분이 넘어, 늦은 점심을 먹는 게 쉽지 않다. 고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성곡리로 가는 게 현명하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렇게 성곡리로 향해 내려가는데, 경로당 200여 미터 아래에 주차해 있는 버스가 보인다. 경로당 앞이 협소해 그 아래에서 기다리는 거다. 그걸 보고, 배낭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은 후, 배낭을 버스 짐칸에 넣고, 홀가분한 상태로 길을 재촉해, 3시 16분에 용화리 입구이자, 영천댐이 만든 영천호 또는 자양호라 불리는 호수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영천호 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 또는 자전거 도로로 자양면 소재지가 있는 성곡리까지 가면 된다. 산책로 중간중간 있는 호수 전망대에서 댐과 호수를 구경하기도 하며, 빠르게 전진해 목적지가 가까워지니, 스피커 소리가 요란하다. '아무리 유원지지만,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닌가?' 속으로 투덜거리며 계속 전진하니, 당연히 목적지가 더욱 가까워지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도 뚜렷하게 들린다. '35기 모모', '29기 누구누구', 총동창회로, 당연히 모교에서 하는 걸 거다. 어쨌든 요란한 스피커 소리를 배경으로, 우로는 영천호의 모습을 좌로는 화려한 무덤과 정자 등을 감상하며, 성곡리로 향해 3시 46분에 면사무소 앞에 도착하는 거로, 산길과 포장도로의 거리가 거의 비슷한 기룡산행을 사실상 종료했다.
3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관공서, 영천호가 보이는 오른쪽은 식당가다. 당연히 첫 번째 식당부터 메뉴를 확인하며,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을 때까지 전진하고 있는데, 두 등산객이 핸드폰의 지도를 확인하며 내게 길을 묻는다. 등산복을 입고 있기는 하나, 배낭을 메고 있지 않아, 이 동네 사람을 착각한 거 같다. 해서, '혹시 00 산악회가 아닌가요?'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아니, OO도 왔나요?' 한다. 해서 "네!"라고 대답하고, 식당을 찾아 계속 아래로 내려갔으나, 호수가 식당답게 모든 메뉴가 매운탕이다. 낭패다. 매운탕이라도 먹어야 하나 고민하며 계속 가는데, '새임고'라는 식당에 '고디탕·정식·분식'이라는 광고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 식당은 생선구이 전문이나, 영업하는 거 같지 않다. 혼밥이 가능할지 걱정하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일행으로 보이는 두세 명의 등산객이 각자 테이블 하나씩을 차지하고 밥을 먹고 있거나, 다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날, 아는 체한다. 해서 그를 보니, 오지 갈림길에서 뒤를 따라올 거로 생각했던 산꾼이다. 그 산꾼 말에 의하면, 본인도 직진해 내려오다가, 무언가 이상해 되돌아갔다는 거다. 그 사람이 현명했다. 해서 당시의 얘기를 나누며 어떤 메뉴가 있나, 차림표를 찾아봤는데, 매운탕 외에는 보이는 게 없어, 그들이 먹은 게 뭔지 물어보자, 이 식당은 고디탕과 매운탕만 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고디가 '올갱이'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럼, 그는 충청도 사람일 확률이 높다. 지리산 촌구석에서는 '고동'이라 불렀고, 경북 지역 '고디', 표준어는 '다슬기'로 알고 있다.
뭐라고 부르든 선택의 여지가 없어, 고디탕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 산꾼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길거리에서 만난 두 등산객에게 '00 산악회'라고 얘기한 게 커다란 실수였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는 '△△ 산악회'와 왔는데, 나도 모르게 '00 산악회'라고 말해 버린 거다. 그런데, 산악회명을 실수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매번 혼동한다. 잘못을 깨닫고, 그걸 해명하고 있는데,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처음, 탕 아니 국을 보고 시래깃국이 아닌가 착각했다. 그리고 한 숟갈 떠먹어 보니, 다슬기가 없다. 추어탕처럼 갈아 넣은 거 같다. 내가 기대했던 다슬기국이 아니다. 원래 고디탕은 갈아서 넣는 건가?
지역마다 같은 재료로 다른 음식을 만들기에 산행 후 그 지역 음식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해, '지역 경제를 살리자'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현지에서 하산주를 먹고자 노력한다. 이 식당의 반찬이나 국은, 특별히 다른 맛은 없고, 지극히 표준적인 맛이다. 그렇게 고디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4시 15분경이라, 계산하고 밖으로 나와, 면사무소 마당에 있는 정자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오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있다가, 산악회 버스가 도착하는 걸 보고, 차로 가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고, 슬리퍼를 신고 내렸다. 이후 면사무소 화장실로 가, 계곡에서 씻지 못한 다리와 발을 씻었다. 그렇게 깨끗이 씻고 밖으로 나오니, 굵은 비가 내리는 중이다. 당시 B 코스에서 버스를 타고 온 등산객은 근처의 공원 또는 식당에서 고디탕을 먹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비로 서둘러 버스로 돌아왔다. 덕분에, 공식 마감보다 20분 정도 이른 4시 50분경 서울로 출발할 수 있었다.
성곡리에서 버스가 출발하고, 바로 잠이 들어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깼다. 그리고 패드로 책을 보고 있다가, 6시 40분경 휴게소에 도착한 후, 스트레칭이 필요해 버스에서 내렸다. 물론 휴게소의 정체도 궁금했다. 문의 청남대 휴게소다. 일단 화장실로 가 일을 본 후, 여기에 뭐가 있나, 궁금해 건물 뒤로 가는 통로가 보여 가봤다. 물론 화장실로 가는 동안 앞쪽에는 별다른 게 없다는 걸 확인한 후다. 사실 뒤도 별 기대 없이 갔는데, 아래로 내려가는 갑판 계단이 보이고, 그 앞에는 아치가 있다. 아치에는 '자연을 품은 동화사'라는 글이 있다. '동화사?', 내가 아는 그 동화사는 아니다.
같은 이름의 사찰이 한두 개가 아니니, 놀랍지는 않다. 어쨌든 현재 계단으로 내려갈 시간이 없어, 계단 정상에 있는 전망대로 가서 아래로 내려다봤다. 절이다. 그리고 꽤 넓은 주차장에 서 있는 차량도 꽤 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버스로 돌아갔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다시 달리기 시작해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최고의 속도를 달려, 신갈, 죽전에 승객을 내려주고 아침에 출발한 신사역에 도착한 시각이 8시 27분이다. 4시 50분경 출발했으니, 3시간 37분가량이 걸린 거로, 내려갈 때보다, 10분 정도 빠르고, 9시경 도착할 거라는 기대를 뛰어넘는 도착이라, 모두 박수로 기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집에 9시 10분경 도착하는 거로 경북 영천 기룡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안내산악회의 A 코스를 따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꼬깔봉 가는 길목에서 길을 혼동해 '용화리 경로당 → 운곡저수지 → 전망바위 → 낙대봉 → 갈림길 → 기룡산 → 823봉 → 갈림길 → 비탐방 → 임도 → 영천호(湖) → 자양동 면사무소의'의 15.5km(트랭글) 구간을 5시간 4분 동안 탐험했다. 이동 4시간 56분, 휴식 8분!
산 소개에 있듯이 탁월한 조망처임은 분명하나, 날이 흐려 제대로 된 절경을 조망할 수 없어 아쉬운 산행이었다.
의도치 않게 꼬깔봉 가는 길목에서 산악회 리본에 혹해, 길을 혼동하는 바람에 오지 산행을 즐겼고, 덕분에 늦은 점심을 위해 성곡리까지 임도와 도로를 따라 6km 가까이 걸었다.
시간이 되면 한 번 정도 가보는 것도 괜찮은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