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존재들을 향해 이은 무지개 울타리에서
동심과 협심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함민복 시인이 동심으로 길어 올린 연못에는 무지개가 담겨 있다. 누구 하나 배척하지 않고 고양이며 수련 꽃이며 달과 얼음까지 모두가 온 계절을 즐기고 가도록 훤히 문을 열어 둔다. 시인은 우리가 쉽게 잊고 마는 존재들에게로 계속해서 손을 뻗는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곳은 비단 인간만이 아닌 모두가 연결된 세계이기에. 그가 세 번째로 펴낸 동시집 『내 눈에 무지개가 떴다』는 어린이를 비롯한 작은 존재들의 크디큰 외침을 그러안은 시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어둠처럼 보이는 그늘을 보고도 “분명 내 편!”을 외치는 두더지처럼 밝은 기운을 껴안고, 시험을 못 보고 반려동물과 예기치 않은 이별을 겪더라도 “울음지고 (…) 피어나자”고, “째-각, 째-각, 째-각” 앞으로 나아가 보자고, 시인은 소소(小少)하며 소소(炤炤)한 존재들을 향해 너른 무지개 울타리를 잇는다.
함민복의 동시는 질문을 남긴다.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삶일까. 좋은 언어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 완전한 상실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기를 수 있을까. 질문을 얻은 것만으로 충만해진다. 우리 삶은 수많은 관계 속에 존재한다. 함민복 시인의 동시를 읽으면 세계를 관계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 - 우경숙(아동문학 평론가)
저자(글) 함민복 현대문학가>시인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재학 중 『아동문학평론』과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지금은 강화도에 머물며 계속해서 시를 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날아라, 교실』(공저), 시집 『우울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등을 썼습니다. 권태응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림/만화 송선옥 그림책작가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립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내가 안아 줄게』 『다람쥐 로로』 『토끼 그라토』 『상자가 좋아』 『딱 맞아』 등이 있고, 그린 책으로 『토마토 기준』 『고양이 2424』 『달걀귀신』 『덜덜이와 붕붕이』 등이 있습니다.
출판사 서평
작고 사소한 존재로부터
“무지갯빛 생각의 춤”이 피어오른다
작은 연못에는 누가 다녀갈까. 물을 터로 삼는 생물뿐만 아니라, 시인은 연못에 비친 무지갯빛 존재들을 모두 끌어안는다.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이들에 주목하며 시를 써 온 그의 세계관은 있는 그대로를 눈여겨보는 어린이들의 세계와 일견 맞닿는 구석이 있다. 시인은 작은 존재가 지르밟고 간 무지갯빛 흔적에 귀를 기울였다.
고양이는 부드러운 눈보다
딱딱한 얼음을 좋아하나 보다
아니, 얼음장 아래 갇힌
금붕어들 숨이 막혀 죽을까 걱정되어
숨구멍을 뚫어 주려 했었나 보다
한곳만을 반복해 핥다 간
고양이 혓바닥 자국
옴폭!
- 「고양이와 연못」 부분
연못에 새겨진 “고양이 혓바닥 자국”에서 고양이보다 더 작은 금붕어의 숨결을 떠올리는 시인의 눈길은 계속해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작디작은 존재에게로 향한다. 복숭아나무 잔가지는 참새의 가느다란 발가락에 비하면 오히려 너무 굵고(「참새 발가락」), “하얗게/ 질려/ 매끄럽던 살갗이/ 까슬까슬”해진 튀밥의 몸체에서 처음 세상으로 나서는 어린이의 두려움을 떠올리는가 하면(「튀밥」), 시침, 분침도 아닌 초침의 “째-각, 째-각, 째-각” 소리에서 “지나온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마음”을 아로새긴다(「시계 소리」). 함민복 시인에게는 거대한 이들보다 작은 것들의 목소리가 더욱 생생하다. 작은 목소리가 층층이 쌓인 이 동시집은 누구보다 어린이들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 것이다.
“마음속에도 연못이 있습니다. 동심이 파 놓은 연못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설렘과 푸른 호기심이 늘 출렁거립니다. 그 투명한 연못이 비춰 준 무지갯빛 생각의 춤들을 여기 시로 옮겨 보았습니다.” - 시인의 말에서
홀로 우뚝 설 수만은 없는,
저마다의 손을 맞잡고 나아가는 세계
동시집의 대문을 연 시 「나도 몰래」에는 함민복 시인이 지향하고, 또 모두가 일구어 나갔으면 하는 삶이 깃들어 있다. “웃고 있는 아기를 보면/ 따라 미소가 번지”듯, 이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신기한/ 끈”이 이어져 있다. “선한 이는 자신의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고 믿으며 살아간다”(우경숙)고 했듯이, 우리는 연대의 품 안에서 삶을 이어 갈 수 있다.
엄마, 아빠 생일
동생, 친구 생일
강아지, 고양이 생일
학교, 나라 생일
(…)
다른 생일들이 없다면
내 생일은 건너뛸 수 없는
너 무 나 먼
징검다리 돌
- 「징검다리」 부분
자신의 생일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어린이들이 많을 터, 시인은 그 평범한 순간에서 어린이들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발견하는 눈을 키울 수 있게 “너 무 나 먼/ 징검다리”로 이끈다. 이 징검다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가 잊고 지낸, 한때 생명이었던 존재에게로까지 이어진다. 똥으로서 새로운 길을 떠나는 생명들은 인간의 몸을 향해 “우리가 소중한 목숨을 바쳐 쌓은 탑이야”(「똥탑」)라는 기똥찬 선언을 내비친다. 자못 유쾌하면서도 서늘한 선언은, 생명의 숨소리를 가까이하기 어려워진 오늘날의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은 사계절의 한 층 한 층을 덮고 살아가니(「지구 이불」), 냉장고에 갇혀 있고 가두어 버린 자연의 외침을 나 몰라라 하지 않아 달라고(「냉장고 문 빨리 닫아라!」) 시인은 나지막이 전한다.
울음 지고 피어나자
모두가 둘러앉은 세상에서
너랑 산책하던
이 길에
토끼풀도 있고
돼지풀도 있고
강아지풀도 있다
무지개다리 건너간
너만 이제 없다
앞서 걷다 뒤돌아보던
네 눈동자 어디로 간 거니!
- 「내 눈에 무지개가 떴다」 전문
허전한 길 앞에서 시인은 또 다른 길을 떠올린다. “무지개다리 건너간/ 너”를 그리워하는 순간에 피어난 무지개, 여느 때보다 환상적인 무지개는 눈앞에 오래 자리한다. 몇 해 전 떠난 작은 존재를 잊지 않으려는 시인의 다짐은 하늘에서 땅 끝까지 이어진 무지개다리로 연결되고, 그 길을 타고 새로운 가족이 찾아온다. “무지개다리 건너간 네가/ 어느 날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 치우지 못한 네 집에/ 길고양이 두 마리가 들어와 산다”(「새 가족」) 빈자리를 그리움이 채우고, 그리움이 더 두터운 사랑을 불러온다. 시인은 “까치랑 참새랑도 밥을 나눠 먹던/ 착해 빠진”(「새 가족」) 작은 존재에게서 나누는 삶을 배운다. 모두를 그러안는 무지개가 시인의 눈에 뜬 까닭일 것이다. 부디 이 동시집을 읽는 어린이들의 품 안에도 널따란 무지개가 자리하기를 바란다.
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