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 2024. 9. 15(일)
◇ 산행장소 : 지리산 우번암 - 종석대
◇ 산행코스 : 천은사 - 상복골 - 상선암 - 우번암 - 종석대 - 차일봉 - 법성봉재 - 도계암 - 천은사 주차장
◇ 거리 및 시간 : 16km, 6시간 54분
▲천은사 주차장. 뒤로 간미봉
▲천은사 상생의 길.
☆천은사(泉隱寺)
천은사는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 지리산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화엄사·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의 하나로서 828년(흥덕왕 3) 인도 승려 덕운(德雲)이 창건하였으며 앞뜰에 있는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여 감로사(甘露寺)라고 하였다.
그 뒤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건하였고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로 승격되었다가 임진왜란의 전화로 완전히 불타버렸으나 1610년(광해군 2)에 혜정(惠淨)이 중창하였고 1679년(숙종 5)에 단유(袒裕)가 중건하여 천은사라 하였다.
중건 당시 감로사의 샘가에는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났으므로 한 승려가 이를 잡아 죽였더니 그 뒤로부터는 샘이 솟아나지 않았고 샘이 숨었다 해서 천은사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절 이름을 바꾼 뒤 이상하게도 이 사찰에는 원인 모를 화재가 자주 일어나서 절에 큰 걱정거리가 되었지만 재화가 끊이지 않자 주민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 주는 뱀을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 하였다.
그 때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이광사(李匡師)가 수체(水體)로 물 흐르듯 智異山泉隱寺라는 글씨를 써서 수기를 불어 넣은 현판을 일주문에 걸게 한 뒤로는 다시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천은사 일주문(泉隱寺 一柱門)
2022년 12월 28일 보물 제2203호로 지정되었다.
사찰의 최근(2015년) 사적기(事蹟記)에 따르면 1723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일주문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曺溪門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일주문을 의미하는지는 불확실) 앞쪽에는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1705~1775)가 쓴 지리산천은사(智異山泉隱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천은 저수지
▲천은계곡에서 상선암으로 가는 길은 여기 명상쉼터에서 정비된 길을 따라가면 쉽다.
▲상복골로 가는 길
▲노고단로에서 상선암 가는 들머리
☆ 상선암
상선암은 지리산의 서쪽 종석대 아래 해발 780미터 고지에 있다. 천은사의 산내암자로 나옹 스님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건물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세운 것이다. 상선암은 그 옛날 우번조사뿐만 아니라 경허, 수월, 진응, 용성, 용하, 호음 등 수많은 선승들이 수행하던 곳이었다.
뛰어난 수행력과 방광불사로 세상을 뒤흔든 수월 스님은 마흔둘이 되던 1896년에 지리산 천은사와 상선암, 그리고 우번대에서 봄, 여름, 가을 한철을 보냈다. 수월 스님은 염불을 한번 듣고 암기 한 뒤 염송(念頌)에 몰두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문자를 몰라 경전을 읽거나 쓰지는 못했지만 어떤 물음에도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수월 스님은 천수삼매를 얻은 후 평생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한 도인으로 알려졌다.
수월 스님은 젊어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1884년에 충남 서산군 천장암으로 출가하여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경허(1846~1912) 스님의 제자가 됐다. 경허 스님의 제자로는 '삼월(三月)'이라 불리는 수월(1855~1928), 혜월(1862~1937), 만공(1871~1946) 스님이 있었다. 그의 세 제자 또한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들이다. 경허는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수월 스님은 금강산에서도, 지리산에서도, 두만강을 건너 생을 마친 간도에서도, 일하는 수행자로 일생을 살았다.
▲토굴가는 길
▲상선암 토굴
1998년 외국계 파란눈의 현각스님께서 지리산 빨치산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100일동안 솔잎가루와 약간의 과일만 먹으며 매일 1300배와 묵언수행으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우번암(牛飜庵)
신라 승려, 우번은 지리산에 입산, 상선암에서 10년 수도를 결심하고 9년째 수도를 하던 어느 봄날, 아름다운 미녀가 나타나 그를 유혹했다. 여인에 홀린 우번은 그녀를 따라 나선다. 그 여인은 기화요초 만발한 아름다운 숲을 지나 산 정상으로 오른다. 우번도 여인을 놓칠세라 정신없이 차일봉 정상까지 따라 올랐는데, 여인은 간데없고 관음보살이 굽어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우번, 관음보살이 시험한 것을 알고 그 자리에 엎드려 참회하니 관음보살은 간데없고 바위만 우뚝 서 있다. 우번은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닫고 차일봉 자락에 토굴을 파고 수도정진하여 도승이 되었는데, 우번대사가 도 통하던 순간, 석종소리가 들여왔다고 한다.
우번대(牛飜臺)는 우번조사의 전설과 함께 '소가 몸을 바꾼자리'라는 뜻도 있다. 신라때 문수보살과 함께 길을 가던 길상동자가 어느 밭에서 조 세알을 따 먹은 후, 그 빚으로 길상동자가 소로 변했다. 소로 변한 길상동자는 3년 동안 밭 주인에게 일을 해주고 다시 동자로 화신했다는 전설도 있다. 우번조사 이후로도 많은 고승들이 우번대에 머물렀는데 열심히 기도하여 깨우침을 얻은 스님들은 종석대에서 울러퍼지는 돌종소리를 들었다고 전한다.
☆종석대(鍾石臺)
돌종이란 의미를 지닌 종석대(鍾石臺·1361m), 정상 암봉이 종 모양을 닮아서라거나 바람이 바위에 부딪칠 때 돌종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우번조사가 도를 통하던 그 순간, 이곳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른다. 명칭도 여러 개다. 우번조사가 도를 깨쳤던 곳이라 하여 ‘우번대’라고도 하고 관음보살이 현신했던 곳이라 하여 ‘관음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석대(鍾石臺)에 오르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 지리산 빨치산들이 이곳 종석대에 올라 사방을 파수했다고 한다. 구례들판과 섬진강, 노고단 방면, 주능선 쪽, 만복대 등의 북쪽 능선 등 동서남북 보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지리산 서쪽 방면에서 토벌대의 이동을 파악하기에는 이곳만 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노고단
▲ 뒤에 만복대가 보이는 서북능선.
▲하산할 차일봉 능선
▲갑자기 노고단으로 구름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