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397) / 포르투갈
신트라 문화 경관(Cultural Landscape of Sintra; 1995)
19세기 신트라(Sintra)는 유럽 낭만주의 건축의 첫 번째 중심지가 되었다. 페르디난드 2세(Ferdinand Ⅱ)는 성채 안의 폐허가 된 수도원을 새로운 감각으로 탈바꿈시켰다. 그것은 건축물에는 고딕 양식・이집트 양식・무어 양식・르네상스 양식 등의 요소를 사용하고, 정원은 토종・외래종 수목을 혼합하여 조경하여 창조한 것이었다. 세라(Serra) 주변의 길을 따라 형성된 여러 호화로운 저택들은 공원과 정원이 독특하게 조합된 건축물들이며, 유럽 전역의 조경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세라와 신트라 마을의 문화 경관은 낭만주의 조경의 선구자로서 이곳의 경관은 유럽 내 다른 지역의 개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역대 건축 문화를 표현할 때 필수적인 완전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정 지역에서의 문화 활동을 보여주는 독특한 예이다. 문학과 예술의 영향 속에 탄생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정제된 풍경과 토종 식물을 조화롭게 조경하였다. 그러나 그 완전성은 무분별하게 관리, 사용하거나 방치할 경우 손상될 수 있다. 세라는 비교적 밋밋한 주변 풍경에서 다소 두드러져 보인다. 여기서 가장 높은 지점은 크룩스 알타(Crux Alta)이다. 약간의 지역 변화와 문화 경관 차이를 살펴봤을 때 생태 구역은 세 군데로 나뉘는데 이 생태 구역에는 소나무 수풀 구역과 다양한 수종의 자연림[떡갈나무・소나무・밤나무] 구역, 그리고 산림 수종에 올리브가 더해져 대규모로 자라는 구역이다. ‘신성한 산[Sacred Mountains]’인 바로(Varro)와 콜루멜라(Columela)와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의 ‘달의 산[Mountain of the Moon]’은 1840년 무렵 페르디난드 2세가 건설을 시작한 페냐 공원[Parque de Pena]을 비롯한 다양한 인공 공원과 정원을 둘러싸고 있다. 여기에는 토종 식물과 함께 많은 외래종 식물이 있다. 한편 고행을 상징하는 카푸소스(Capuchos) 수도원은 아주 우아한 법원 관저와 이웃해 있어서 상당히 대조적으로 보인다. 타파다 두 모카(Tapada do Mocha)와 무어(Moor) 양식의 성이 포함된 공원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높은 지대에는 정교한 화단, 일부 주목할 만한 표본과 함께 참나무・사이프러스(Cypress)・소나무 숲, 그리고 더욱 고전적 분위기의 정원이 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이 정원이 동백나무 정원이면서 ‘영국식 정원’이라는 점이다. 1755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기존의 거의 모든 유산이 파괴되었지만 일부 뛰어난 법원 건물과 군사 건물은 종교 건축물과 고고학적인 표본으로서 남아 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왕궁은 신트라를 돋보이게 하는 건축적 특징이 있다. 무어 양식의 성 유적 위에 구축된 것으로 짐작되는 그 건물은 15~16세기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여러 차례 덧칠하고 타일로 장식하였는데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데하르(Mudejar) 기술의 훌륭한 견본이 되는 타일 아줄레주(azulejo)로 장식된 표면은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세라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페냐 궁전은 포르투갈 건축가인 포시도니오 두 실바(Possidonio do Silva)가 설계한 순수 낭만주의 작품이다. 19세기 궁전 안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교회, 수도원과 수도원의 식당이 있다. 또한 몬트세라테(Montserrate) 궁전은 저명한 영국 건축가인 제임스 놀스 주니어(James Knowles, Jr.)가 프랜시스 쿡 경(Sir. Francis Cook)을 위해 설계한 것이다. 이는 19세기 중반 절충주의(折衷主義; eclecticism)의 일례이며, 인도 건축물에서 파생된 요소를 네오고딕 양식[neo-Gothicism]과 혼합한 것이다. 몬트세라테 궁전은 정원으로 유명한데 조성된 정원은 반(半)자연 참나무 숲[semi-natural oak]에 둘러싸여 있다. 16세기 포르투갈의 선장이며 총독인 주앙 데 카스트루(Joao de Castro)는 킨타 다 페냐 베르데(Quinta da Penha Verde) 유적의 초기 건축물을 지었으며, 그의 상속인과 계승자들의 손으로 확장되었다. 유적군은 다소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리바프리아스(Ribafrias) 궁전은 시내 중심부에 있으며, 1514년에 위대한 궁정 시중인 가스파르 곤살베스(Gaspar Goncalves)가 지었다. 엄격했던 선 문양들은 이후 개조 과정에서 오히려 더 부드러워졌는데 마누엘(Manueline) 양식과 폼발린(Pombaline; 18세기 포르투갈 건축 양식) 양식의 창이 파사드(facade)에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세라의 정상부에 있는 무어 성의 기원은 짐작컨대 서고트 족[Visigothic]일 것이며, 무어 점령기인 9세기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포르투갈 인의 레콘키스타(Reconquesta; 국토 회복 운동)가 성공하면서 무어 인들이 떠나자 이곳은 폐허로 남았다. 유적 중 감시 망루 유적은 유지되고 있으며, 암반이 노출된 곳에 요새가 건설되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와 같은 종류의 건물로는 세테알스(Seteals) 궁전, 헤갈레이라(Regaleira) 궁전, 도시 청사 등이 있다. 아라발드(Arrabalde)의 삼위일체 수녀원은 1374년 리스본에 있는 삼위일체 수녀원 출신인 수도사들이 설립한 것이지만 한 세기 후에는 다른 수도원으로 대체되었다. 작은 수도원은 1570년에,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는 18세기부터 생긴 것이다. 마을에 있는 다른 교회로는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상 마르티뇨(Sao Martinho), 상 미구엘(Sao Miguel), 무어 성 안에 있는 옛 상 페드루 드 카나페링(Sao Pedro de Canaferrim) 교구 교회, 그리고 노사 세뇨라 다 미제리코르디아(Nossa Senhora da Misericordia) 교회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