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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하나님을 섬기는 농부목사 서정운
서목사님은 강화도에서 최초로 유기농을 시작하셨고 사회적기업인 콩세알 농장을 만들어 사회적 취약 계층 사람들과 직접 농사를 지으시고 전통방식으로 두부를 만들고 대안교회인 일벗교회를 만들어 새로운 교회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다. 강화에 이사와 콩세알 농장에도 여러번 가보고 논에서 함께 일도 해보고 일벗 교회에도 가보고 개인적으로도 여러번 만나 뵈면서 이분이야말로 참씨알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이분의 생각과 삶,하시는 일을 널리 알리고 싶은 사명을 느꼈다.
홍;서목사님은 제가 머리로 배우고 입으로 말하고 다니는 씨알 사상을 몸으로 삶으로 그대로 보여 주시는 씨알 중의 씨알이십니다. 씨알사상에 대해 듣거나 배운적은 있으신지요?
서;전 그냥 평범한 농부일뿐인데 그런 말씀을 들으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특별히 배운건 없고 심도학사에서 2박 3일간 일벗 교회 교인들과 김경재선생님께 함석헌의 생애와 사상을 배웠는데 참 좋았어요. 그리고 감리교신학 대학 다닐 때 김흥호 이정배 선생님으로부터 유영모선생님 말씀를 많이 들었어요.
홍; 저도 감신 다닐 때 김흥호선생님을 뵙고 동양사상이나 불교에 대해 배운게 많았고 이렇게 훌륭한 목사님도 계시구나하고 감탄했어요. 강화에 내려와 농사지을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서:원래 고향이 강화도고 제가 11대 후손이에요.대대로 농사를 지었으니 농부 유전자가 저에게도 있나봐요.농부 집안에 살다보면 아주 어려서부터 눈뜨면 곧장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공부는 뒷전이고 돼지,소 풀 뜯어 주는 일을 했어요. 어머니가 왕골로 화문석 돗자리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왕골 베다 저수지 뚝방에 말려 놓고 저수지에서 놀던 생각이 나네요
홍;저도 시골 사람인데 우리 어머니는 넌 일하지 말고 공부하라 하셔서 난 농부가 못됬나 봐요. 늦게라도 농사 지으려 강화 왔는데 쉽지 않네요.
서; 일 안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하지요. 일이 몸에 베야 되요
홍;농사 이야기 좀 더 해보지요
서;대학을 축산과를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5-6백마리 돼지를 길렀는데 돼지파동이 나서 망했어요. 그래도 참고 계속 했어야 하는건데 그만둔게 후회가 되요. 그래서 대학 다닐 때 대학선교회인 ccc 활동을 열심히 한 것(연순장;켐퍼스 책임자 역할을 함)이 계기가 되 감리교신학대학에 들어갔어요.
홍;저도 감신대 신대원을 나왔는데 반갑네요. 신학교 생활은 어땠어요?.
서;제가 입학하니 마침 변선환 홍정수교수 종교재판(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여 김홍도 목사등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함) 이 있어 학교가 난리였어요. 총학생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배운게 많았어요. 교권을 가진이들이 진리추구를 떠나 자기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모습이 너무 추악하고 충격이었어요.
홍; 무교회주의자였던 저도 비슷한 시기에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 제도교회에 대한 실망이 컸지요. 농촌 목회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갔게 됬나요?
서; 감신에서 제가 처음으로 흙사랑동아리를 만들어 농천교회를 하시는 선배들 찿아 음성,홍천,포천등을 다녔고 포천에서는 콩농사도 짓고 감신대 내에서 텃밭가꾸기도 했어요. 골수 농부 후손이라 신학교 입학할 때부터 농촌에 뼈를 묻겠다 생각했지요. 신학교에서 이정배선생님께 생태신학을 배우며 녹색세례를 확실히 받았지요. 그래서 논문도 생태학적 인간에 대해 썼구요.
홍;저도 요즘 녹색가치에 심취해 아내 딸과 함께 녹색당에도 가입하고 내가 먹을 것은 내 손으로 짓자고 벼농사 고구마농사 텃밭가꾸기를 하는데 재미있어요.졸업 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서;차흥도 목사님과 함께 농도생협 일을 했어요.농촌목회자들이 농촌에서 친환경적인 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도시교회에 직거래 하는 일인데 저는 농도생협 사무국장으로 3-4년간 전국을 다니며 농산물 배송하는 일을했어요.
홍;씨알사상이 요즘 생협,협동조합에 관심이 많은데 앞으로 목사님께 많은 것을 배워야 겠어요. 그 일 하시다가 강화에 오셨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서; 아버님이 아프셔서 농사일을 못하게 되 제가 강화로 왔지요. 이 곳에 와서 윤여근목사님과 강화생협을 만들었고 강화에선 최초로 유기농을 했지요.
홍;지난호에 이곳 농민 최형찬씨와 인터뷰하면서도 유기농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좀더 말씀해 주시지요.
서;처음에 유기농 한다고 논에 그물치고 오리 풀어 놓으니까 주민들이 다 비웃었어요.화학비료도 농약도 안쓰고 아주 우직하게 유기농을 고집했지요. 그래서 강화에선 서정운은 진짜 유기농한다고 인정을 받고 있어요.
농약을 뿌려 곤충이나 벌레와 같은 다른 생명을 죽이면서,다시 말해서 자기 이익을 위해 생태의 그물을 파괴하면서 농사짓는 것은 생명과 자연에 대한 죄라고 생각했어요.. 서로 살리면서 나도 살아야지요.농약 없는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명이 생명끼리 더불어 살며 서로 축하하고 건강하게 살아야지요.
홍;유기농하면 힘도 더 들고 수익성도 떨어질텐데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서;유기농을 잘 하면 관행농(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기존 농법)의 70퍼센트는 수확할 수 있어요. 물론 제초제를 안쓰니 노동력은 최소 두배는 더 들지요.유기농하면 논에 풀씨와 잡초를 퍼뜨려 논을 버린다고 논 빌리기도 쉽지 않지요.그러나 화학비료를 쓰면 땅이 딱딱해져 공극(공기의 간격)이 좁아져 미생물이 활발하게 살 수 없는데 풀퇴비를 많이 쓰면 토양의 질이 좋아져 작물 자체가 내병성이 강해지고 튼튼하여 병이 잘 안걸리지요.
우리 나라에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부는 5퍼센트 정도인데 무농약(화학비료를 씀), 저농약이 대부분이고 유기농은 0.5퍼센트 밖에 안되요. 외국에선 유기농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좋아 유기농산물 가격이 관행농산물의 세배는 되는데 우리는 두배도 안되요. 그 적자를 저임금으로 버텨야 하니 농민들만 죽어나지요. 소비자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나라에서도 환경세를 도입해 보조를 해주어야 해요.
홍; 말씀 들으니 유기농 하시는분들은 이 시대의 성자라는 생각이 듭니다.가장 귀한 일을 하면서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 고통을 온 몸으로 지고 사는걸 보니 그들이 오늘의 그리스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농사 규모는 얼마나 됬나요?
서;논 4-5천평,밭 만평 정도로 최형찬 채일병(내가 참여하고 있는 강화꿈사모 회장님)등 대여섯명과 함께 감자,고구마,고추 배추 순무등을 심었어요.
홍; 그것이 발전하여 지금의 사회적 기업인 콩세알 농장이 됬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을 말씀해 주시지요.
서;IMF를 겪으며 대량실업이 발생하자 취약계층의 일자리 확보가 시대적 과제였고 사회적 필요성은 있으나 수익성이 약한 분야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이 생겨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제정됫지요. 그 때 농촌일자리 창출과 전통식품 보존 발굴이라는 취지로 강화에서는 최초로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됬어요.
농사에는 본래 영농뿐 아니라 가공도 포함되지요. 간장 된장 고추장 담기 두부생산등은 본래 농민들이 하던 것인데 위생시설 운운하며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이 들어 왔어요. 저는 가공은 농민이 해야된다는 생각으로 두부공장응 했어요.처음부터 우리 콩만 썻지요. 우리 콩을 직접 재배도 하고 구입도 하는데 수입콩 가격 보다 여섯배나 비싸요. 소포제 유화제등 화학첨가물을 쓰지 않고 화학간수도 쓰지 않고 신안앞바다에서 가져온 천연간수만 사용하고 스팀으로 하지 않고 전통방식으로 가마솥에서 끓여 두부를 만들지요.
홍;저도 콩세알 두부만 구입해 먹는데 맛이 아주 좋아요.그런데 그렇게 원칙대로 하면 사회적 기업도 기업인데 살아 남을 수 있나요?
서;사회적기업이 되면 몇가지 혜택이 있어요.45명에게 3년간(해마다 비율이 조금씩 낮아지다 3년 후엔 없어짐. 콩세알은 지원이 끊어짐) 최저임금을 보장해 줘요. 장애인 청소년가장,여성가장,이주민 고령자 저소득층을 50 퍼센트 이상 고용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우선구매.세금감면(수익이 나야 세금을 내는데 수익이 없고 적자라 해당사항 없음) 저리융자등의 혜택이 있어요.
기업이 어느 정도 되려면 원가.생산비 경비.인건비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원가는 많이 들고 두부 값은 싸서(일반두부의1.5배) 운영이 힘들지요.빚을 많이 졋습니다
홍;안타깝습니다.저라도 부자라면 후원을 해주고 싶은데. 후원회도 없이 혼자서 다 책임을 지니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콩세알농장 하시려 농토와 선산 수천평을 공여하셨다는말을 들었는데 이건 아니 잖아요( 인터뷰 하는 도중에도 어디 은행에선가 이자 입금 안하면 운운 하는 전화가 걸려와 가슴 아팠다.서목사 딸 보슬이를 내가 가르치고 있는데 아버지는 참 훌륭한분이라 했더니 다음 날 교회와서 고백시간에 홍선생님은 아빠를 훌륭하다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고 하더란다. 선한 일 하느라고 가족이 껶는 고통이 마음에 와 닿았다.함석헌선생님 가족들은 어땠을까?) 힘들어도 이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인데 계속 하셔야지요?
서; 많은 사회적 기업이 인건비 지원이 끝나면 기업도 문을 닫는데 저희는 계속 해야지요.사방에서 견학도 오고 또 두부체험이나 농사 체험하러 와요. 사회적기업 하고 싶은 마을 공동체들도 많이 오고. 빛좋은 개살구지만 저도 제법 인기가 있어요(웃음).격려가 되요. 빛 독촉 받고 월급날 돈 못구해 걱정될 땐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요
홍;함선생님이 즐겨 쓰신 말 가운데 하나님의 발길에 차여 여기까지 왔다 했는데 서목사님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세요( 이 시대에 이렇게 숨어서 자기를 죽이며 싹을 티우는 씨알이 있다는 생각에 인터뷰 내내 가슴이 뭉클 했다). 저라도 견학오신분들 안내나 학생들 체험교육하는 일 있으면 도와드릴께요
서;말씀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저희는 살아 남을 겁니다. 지역 네트워크가 잘 되 있고 품질이 우수하고(그건 사실이다.제가 보증한다) 유기농의 진실성이 있고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고 사회적 목적에 충실하고 홍형 같은 분도 계시니 잘 될겁니다.
홍;씨알이 우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함께 짐을 지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참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서목사님은 목사님이신데 늘 일하시는 모습과 일 끝나고 일벗들과 음주가무를 즐기시는 모습만 뵈었는데 일벗교회를 하고 계신데 교회 소개 좀 해주세요.
서;아,그래요 목사가 목사 같지 않아 미안합니다(사실 이런 목사가 있다는 것이 나에겐 얼마나 자랑스럽고 큰 기쁨인지). 교회할 생각이 크진 않았는데 일벗들이 함께 공동체를 하자 해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을 길벗이라 하듯 함께 일하는 벗들의 모임이라 해서 일벗교회라 했어요.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이 성경에 있잖아요. 우리 모임엔 기독교인 아닌 사람들 불교신자도 있어요.
처음 뜻을 모으고 강화에 있는 봉천산(하늘을 받는다는 뜻)에 올라 제를 지내듯 마음을 함께 하고 교회를 시작했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농부로 보고 찬송가도 농부 찬송가를 쓰지요.저도 목사지만 같은 농부니까 사례비도 안받고(이 교회에선 그런 목적이라면 헌금 낼 사람 하나도 없다) 설교도 한달에 한번만 하고 매일 자주 보니 주일 모임 외에는 별도 집회가 없고 예배도 남녀노소 성직자 평신도가 다 평등하다 하여 둥글게 둘러 앉아서 하고 교인이 20여명 되는데 고백시간이라 하여 일주일간 지내면서 자신이 겪고 생각한 일을 말한다(나도 한번 참석 했는데 고백시간에 어떤 주부가 50이 넘은 나이에 먹고 살 걱정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그 진솔함과 직접성,그리고 함께 위로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을 보고 감동했다.설교듣는 것보다 이 시간을 귀하게 여겨 어린아이라도 자기 얘기를 길게 할 수 있다. 도중에 중단시키는 일이 없다)
교회는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나라 실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해요.우리 교회는 강화의 현안문제애 대해 토론도 하고 필요하면 직접 행동도 해요. 환경 평화에 대한 강연회도 개최하고 문화패나 놀이패들이 공연도하고. 설교 없는 예배 시간도 정해 가정문제 자녀문제 환경문제등에 대해 고백적인 대화도 하고요. 아무튼 이 시대에 참교회가 어떤 모습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홍; 바쁘신데 이틀이나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담하는데 이곳 동지들인 오성기형, 대안학교인 마리학교전교장 성국모 친환경농민회 채일병등이 함께 하며 좋은 시간을 가졌다. 그분들께도 감사).8월에 전국 씨알 모임이 있는데 일벗교회 교인들과 참석하셔서 하시는 일을 소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서;저도 씨알사상에 관심이 많고 시간 내서 참석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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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된 노동을 마다않고 손해 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런 농부들이 진정 고마운 분들입니다. 내대신 짐을 지신 예수요, 당신은 굶으면서 저를 거두어 먹이신 어머니입니다. 이분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대접해주고 그 아들,딸들을 가르쳐 주고 그가치를 알아주신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볼줄 아는 선생이 진짜 씨알입니다. 농부 하나님께서 이분들의 고통을 들어 주시고 힘들었던 땀방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