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 나이가 이렇게 편한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네요.
서로 친구라는 '정'을 부담 없이 나눌 수 있고
염려하고 보고파 하면서 이렇게 만날 수 있으니까,“
고등 학교 국어 선생을 하다 얼마 전에 은퇴를 했다는 혜자가, 귀국 한 후에 내게 보내준 편지 일부분이다. .
처음 만나자 마자, 서로 손을 잡고 인사들을 하다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 부등 켜 안는다.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하와이에서 42년 전 팔팔하던 젊은 시절의 친구들을 만난다는 일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다.
“회갑 나이가 이렇게 편한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네요.
서로 친구라는 '정'을 부담 없이 나눌 수 있고“
환갑이라는 나이가 정말 편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실감을 하게 된다.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정다운 이야기를 길게 나누어도 아무런 부담들이 없다.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꼭 오래 만에 만난 오누이들의 감정이고 기분이고 모습들이다.
우리가 묵었던 Waikiki Beach Marriot Resort Hotel 아래층 로비는 벽이 막히지를 않아 언제나 시원한 바다 바람이 자유로이 드나들게 되었다. 미국 동부 끝과 시간차가 5시간이나 된다. 자정이 되면 내 시간으로 새벽 동이 트는 시간이 되건만, 왜 그리도 기나긴 겨울밤 이 짧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선교사들이 설립한 보수성이 강한 기독교 계통 학교였지만, 우리 학년은 무척이나 자유분방한 학창시절을 보낸 셈이다. 학교 교훈이 “사랑, 진리, 봉사“이어서 인지, 학업 성적보다는 농장, 목장, 목공소, 철공소, 인쇄소, 기숙사 식당 등에서 성실하게 일을 하도록 권장을 하였다.
지금이나 그때나, 전반적인 추세였던 소위 입시위주의 수업이 아니었다. 치열한 경쟁심을 유발 한다 하여 운동 경기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자연히 우등상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 동기 동창들 중에서 자랑스러운 친구들이 여러 명이 있다. 우석 의대(지금의 고려대)에 입학을 한 창세는 줄 곳 우등으로 졸업을 하고, 한국 전국 의사 면허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을 했다.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미국 하바드 의대에서 레지던트를 마치고, 지금까지 칼리포니아에서 의사생활을 하고 있다.
명술이는 육이오 전쟁 때, 아버님이 전사하셔서 대학 진학을 못하고, 군산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을 하여, 야간 대학을 나오고, 착실하게 올라가서 35살에 중앙 관서 국장이 되었다. 대통령 최고 모범상도 두 번씩이나 받고, 이어서 3도시에서 환경청장을 지내고 작년에 정년 은퇴를 했다. 지금은 회사 자문 역할을 하여 공무원 시절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중학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점심도 굶어가며 피아노에 앉아 연습을 하고, 바이올린도 수준급이던 경석이는, 농과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학교 재학당시 아르바이트로 시작을 한 Heater 사업이 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광명 히터 사장이 되었다.
좋아하는 음악도 쉬지 않고 꾸준히 계속하고, 선후배들과 같이 교려대학교 Orchestra를 키운 공로로 단장 일을 오랫동안 맡아 해 오고 있다.
사업가의 아들이었던 달삼이는 본래 성격이 호탕해서 인지, 젊어서부터 사업계 친구들과 잘 어울려 한때 동갑내기 였던 한국일보 장강재, S K 의 최 모 사장 등 서울 시내 요정에서 팁을 제일 많이 주는 소위 7 공자들 중에 한명이었단다. 한국 골프협회 회장을 오랫동안 맡아왔고, 김포 한양 컨트리클럽 회장으로 있다. 쌍둥이 형인 우삼이는 태양 금속 회장이다.
정박이는 미국에 이민을 와 처음에 Vacuum Cleaner 수리 점으로 시작하여 급속한 사업 성장을 하여 LA에서 한국 교포로는 제일 규모가 크다는 정스 백화점의 회장이다. 서글서글하고 인정 많고 적극적인 성격이라 모든 일에 앞장에서 솔선수범을 하는 형이다. 그리고 우리 동창회 회장을 맡고 있다.
또 특별한 일은, 미국에서 제일 입학하기 힘든 의과대학들을 나와, 미국에서 의사가 된 동창들이 여러 명이 된다.
광수가 제일 처음 유학으로 와서 치대를 나와 San Diego 에 개업을 하고 있다, 근순이와 화섭이가 의대를 나와 산부인과 의사로, 대석이는 치과 의사로, 태영이가 늦게 의대를 나와 내과 의사를 한다.
군식이는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와서 다시 의대를 졸업하고 Denver에서 의사 개업을 하던 중에, 한국에서 아버님과 형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귀국하여 삼육재활원 재단의 총수 역할을 맡고 있다.
석태는 본래 한국에서부터 약사였는데, 미국에 이민을 와서 다시 약대 졸업하여, 훌로리다 템파에서 병원 약사로 아직도 근무하고 있다.
신업이는 어려서부터 명석한 두뇌를 가진 수재였다. 동경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 공대 교수를 지낸 아버님과 어머님의 피를 이어 받아서 인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반장을 줄 곳 여러 번 하던 친구이다. 미국에 이민을 와서 스텐포드 대학원 과정을 이수 했다. 컴퓨터를 전공했다고 들었다. 지금 Silicon Valley 근처 San Jose에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제일 존경하는 동창 하나가 있다.
키다리 병휘와 늘 붙어 다니던 작달막한 키에 별로 말수가 없던 매자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어려서부터 중량 교 밖 면목 동에 있던 모의 보육원에서 자랐다. 내가 매자라고 부르지만, 나보다 나이가 무려 서너 살이 위이다.
면목동 모의 보육원은 육이오 전란 후에 최형국 장노 님이 세우신 고아원이었다. 별로 부유하지도 않으셨던 그분은, 눈에 보이는 데로 고아들을 데려다가 친 자식처럼 돌보는 일에 일생을 마치신 분이셨다. 추운 겨울에 길을 지나시다가 헐벗은 사람을 보시면, 사모님이 짜증을 내시건 말건, 입던 옷을 벗어 주고 오시던 분이셨다.
내가 어려서 회기동에 있는 중학교에 다닐 때, 그 곳 출신 여러 명들이 먼 길을 걸어서 통학을 하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정부기관의 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고 운영을 하셨다.
최 장노님은 친 아들하나와 두 따님들이 있었다. 아침마다 등교를 하기 전에 모두 한 줄로 세워 버스 값을 나누어 주는데, 자기 친 자식들을 항상 맨 뒤에 세우셨다고 한다. 앞에서부터 나누어 주다 보면 언제나 돈이 모자랐다고 한다. 돈이 모자라게 되면 뒤에서 있는 친 자식들은 걸어서 등교를 하곤 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정열적이시고 건강 하시던 최 장노님이 갑자기 일찍 돌아가시게 되었다. 고아들 중에 제일 맏이였던 동열 형이 장노님의 큰 따님과 결혼을 하여 큰 짐을 떠맡게 되었다.
남 달리 인정 많고 책임감이 강했던 매자 누님은, 그 많은 고아원 원생 막내가 자립하여 나갈 때 까지 남아서 모든 뒤처리를 도맡았던 강인한 여성이 바로 제일 자랑스러운 매자 누님이시다.
착한 신랑을 만나 아들 딸 하나씩 낳고 행복하게 살려는데, 소양강 호수에 버스가 추락하여 115명의 승객이 몰사를 당한 끔찍한 사고에 이 누님의 남편이 끼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어린 남매를 잘 키워 결혼을 까지 시켰다고 한다.
2년 전, 울며 말리는 아들 며느리의 호소를 단호히 거절하고, 4남매를 두고 혼자되신 분과 재혼을 하여 충주 시골에 살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날 저녁, 먼저 출발하는 나를 택시 타는 곳까지 쫓아와 꼭 껴안아 주며 섭섭한 정을 나누었다.
첫댓글 돌베개님! 정말 자랑스런 친구들을 갖고 계시군요.흐뭇한 마음으로 글 잘 읽었습니다.나이가 들수록 좋은 친구들이 많아야 삶이 윤택하겠지요.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우정 나누시며 사시길 빕니다.
돌베개님의 자랑스러운 친구들 정말 자랑스럽네요. 거명한 친구들 중 거의 반은 저도 아는 사람들이라 더 반갑습니다. 건강하셔서 다시 만나는 기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돌베개님, 훌륭하고 좋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부럽습니다. 제 동창들도 금년에 모이는 가 본데 기대가 되는군요. 그런데 이젠 환갑도 되시어승깨, 그 무거운 돌베개 그만 쓰시고 가벼운 놈으로 한분 바꿔보시면 워짤란가 모리견는디...ㅎㅎㅎ
돌베개님 나도 서울 사대 동창 친구인데 왜 끼워주지 않는거요? 기분나쁘다이. 그 영문학 강의실에서 피천득 교수의 영시강독 듣던 기억을 상기해 보시라우요.
그 날 정말 뿌듯하셨겠네요. 언젠가 읽은 chicken soup 시리즈의 글이 생각납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써올리지요 ^^
돌베개님, 달빛님 말씀처럼 저도 그 이름들 상당 수를 알고 있지요. 김창세는 한 반년 전에 산호세에서 만나보기도 했고. 아무튼 즐거웠겠습니다. 그런데, 벌써 환갑? 아이코 그러고 보니 나도 벌써....^^
돌베게님의 자랑스러운 친구들의 이야기 함께 자랑스러워하며 읽었습니다. 돌베개님도 그 들 중에 당당히 맨 윗 자리 차지하실 진짜 자랑스러운 분이시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시리즈 기다립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친구분들을 많이 가지신 돌베개님은 복이 많으신 분 같습니다. 계속되는 여행일기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