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메시지는 간단한다. 나의 메시지는 신인간, 호모 노부스(homo novus)이다. 인간에 대해 오래된 개념은 양자택일, 즉 물질주의이거나 영혼주의, 도덕이거나 비도덕, 죄인이거나 성자였다. 그것은 분열, 분리에 근거한다. 그것은 정신분열증에 걸린 인류를 만들어냈다. 인류의 전과거가 병들어 있고, 건강하지 못하고, 제정신이 아니다. 3천년 동안 5천 번의 전쟁이 일어났다. 이것은 아주 미친 것이다. 그것은 믿지 못할 정도이다. 그것은 어리석고 비지성적이며, 비인간적이다.
일단 사람을 둘로 나누면 그에게 비참함과 지옥을 주는 것이다. 그는 결코 건강하지 못할 것이고, 전체적이지 못할 것이며, 부정되어 온 나머지 반이 계속 복수를 할 것이다. 그것은 계속해서 그대가 스스로에게 강요해온 부분을 극복할 방법을 찾고 시도할 것이다. 그대는 전쟁터가, 내란이 될 것이다. 그것이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과거에 우리는 진정한 인간 존재를 창조할 수가 없었고, 인간 비슷한 것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인간 비슷한 것(humanoid: 원인(原人))은 인간 존재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불구이고 장애인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전체성 속에서 꽃 피어나도록 허락 받지 않았다. 그는 반쪽이며, 반쪽이기 때문에 항상 화를 내고 긴장하며 누리지(celebrate) 못한다. 누림은 전체적인 상태에서 나오는 향기이다.
전체적으로 살아온 나무만이 꽃피울 것이다. 인간은 아직 꽃피우지 않았다. 과거는 매우 어둡고 음침했다. 그것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었다. 그리고 억눌려 있었기에 공격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것이 억압되면 인간은 공격적으로 되고, 부드러운 자질을 전부 잃어버린다. 그것은 지금까지 항상 그랬다. 이제 우리는 낡은 것이 떨쳐지고 새로운 것이 포고되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신인간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둘 다일 것이다. 신인간은 세속적이면서 신성할 것이다. 이 세상에 속하면서 다른 세상에도 속할 것이다. 신인간은 자신의 전체성을 받아들이고 어떤 내적인 분열도 없이 살 것이며,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신은 악마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도덕성은 비도덕성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떤 대립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중성을 초월할 것이며 정신이 분열되지 않을 것이다. 신인간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신인간은 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고 그가 전에는 살아 보지 못한 완전히 다른 삶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비가, 시인, 과학자 그 모두가 될 것이다. 그는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선택 없이 자기 자신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가르치는 것, 호모노부스(homonovus), 신인간이다. 휴머노이드(humanoid)가 아니다. 휴머노이드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다. 휴머노이드는 사회, 성직자, 정치인, 교육자가 만들어낸다. 휴머노이드는 만들어진다. 제조되는 것이다. 모든 아이는 인간으로서, 완전하고 전체적이고 살아 있는 채로, 어떤 분열도 없이 온다. 사회는 즉시 아이의 숨통을 막고, 질식시키고, 조각조각 잘라내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이 되지 말아야 할지를 말한다. 그의 전체성은 곧 사라진다. 그는 자신의 존재 전체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는 자연스러운 것을 많이 부정하고 바로 그 부정 속에서 비창조적으로 된다. 이제 아이는 단 하나의 조각이 될 것이고, 조각은 춤 출수 없고 노래할 수가 없다. 조각은 항상 자살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는 스스로의 의지를 갖지 못할 것이다. 남들이 그의 의지를 대신해 왔다. 부모, 선생, 지도자, 성직자; 그들이 그의 의지를 모두 가져가 버렸다. 그들이 의지력을 갖고 명령하며, 그는 따르기만 한다. 휴머노이드는 노예다. 나는 자유를 가르친다. 이제 인간은 모든 종류의 구속을 부수어야 하고 모든 감옥에서 나와야 한다. 더 이상 노예는 안 된다. 인간은 개인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혁명적으로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이 혁명적으로 될 때마다... 가끔 소수의 사람들이 과거의 학대로부터 탈출했다. 하지만, 단지 어쩌다 한 번씩이었다. 예수, 붓다가 여기저기에 있었다. 그들은 예외다. 그리고 그 사람들, 붓다와 예수도 전체적으로 살지는 못했다. 그들은 노력했지만, 사회 전체가 반대했다.
신인간에 대한 나의 개념은 신인간은 그리스인 조르바(Zorba)가 되며 또한 고타마 붓다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신인간은 조르바 붓다가 될 것이다. 그는 감각적이면서 영적이고, 완전히 육체적이고, 몸속에 있고 감각 속에 있고, 몸과 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기면서 여전히 위대한 의식과 위대한 주시가 있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와 에피쿠로스가 동시에 될 것이다. 구인간의 사상은 포기였다; 신인간의 사상은 환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신인간은 매일 오고 있다. 그는 매일 도착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아직 알아보지 못한다. 사실 그는 이미 시작되었다. 옛 것은 죽어가고 있고, 죽기 위해 누워 있다. 나는 그것을 애통해하지 않으며 애통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이 죽는 것은 좋다. 왜냐하면 그것의 죽음으로부터 새로운 것이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낡은 것의 죽음은 새로운 것의 시작이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은 오직 낡은 것이 완전히 죽을 때에만 올 수 있다. 낡은 것이 죽도록 도와라. 그리고 새로운 것이 태어나도록 도와라! 그리고 기억하라, 낡은 것은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 전 과거가 낡은 것의 지지 속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은 매우 이상한 현상일 것이다. 새로운 것은 매우 새로워서 존경받지 못할 것이다. 신인간을 파괴하기 위해 모든 것이 시도될 것이다. 신인간은 존경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신인간과 함께 전 인류의 미래가 있다. 신인간은 도래되어야 한다.
나의 일은 신인간이 태어날 수 있는 붓다필드, 에너지장을 창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신인간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세상에 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산파일 뿐이다. 신인간은 그를 이해하는 사람들, 어떤 혁명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때는 무르익었다. 이처럼 무르익은 적이 없었다. 시기가 적당하다, 이토록 적당한 때가 없었다. 신인간은 자신을 주장할 수 있으며 헤쳐 나갈 수 있다. 구인간은 너무 썩어서 모든 도움을 받는다 해도 살아남을 수 없다; 그것은 운명이다! 우리는 미룰 수 있고, 구인간을 계속하여 경배할 수 있다; 그것은 그저 과정만을 연기하고 있을 것이다. 신인간은 와야만 한다: 기껏해야 우리는 그것이 좀더 빨리 오게 돕거나 그것을 숨겨서 그것이 오는 것을 연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을 돕는 것은 좋다. 그것이 더 빨리 온다면 인간성은 여전히 미래를, 훌륭한 미래, 자유의 미래, 사랑의 미래, 기쁨의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새로운 종교를 가르치고 있다. 이 종교는 기독교가 되지 않고 유대교가 되지 않고 힌두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종교를 수식할 만한 어떤 단어도 없을 것이다. 이 종교는 순수하게 전체적으로 되는 종교적 자질일 것이다. 나의 산야신들은 수평선 위로 오는 첫 번째 햇살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엄청난 일이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불가능하기에 그것은 자기 안에 어떤 영혼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전부 유혹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속에 숨겨진 약간의 모험을 갖고 있는 사람, 용기 있는 사람, 대담한 사람들 속에 거대한 열망을 만들어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정으로 용기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붓다에 대해 그리스도에 대해, 크리슈나에 대해, 짜라투스투라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최고의 것, 모든 좋은 것이 보존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몇몇 예외일뿐이다. 전 인류가 거대한 노예상태, 속박 상태, 분열되고 미친 상태로 살아왔다. 나는 나의 메시지가 간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나게 하려면 매우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불가능할수록, 그 도전은 더 위대해진다. 그리고 시기가 적당하다. 종교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과학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시기는 적당하다. 동양이 실패했고, 서양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종교와 과학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더 높은 통합된 어떤 것이 필요하다. 종교는 실패했다. 그것은 다른 세상을 지향하고 이 세상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는 이 세상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세상을 부정하는 것은 그대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과학은 실패했다. 그것은 다른 세상, 내면의 세상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는 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대가 꽃을 부정하면 존재와 삶의 내면 깊은 곳의 핵심을 잃는다. 나무에게 뿌리가 필요하듯, 인간에게도 뿌리가 필요하며, 그리고 그 뿌리는 오직 지상에만 있을 수 있다. 나무는 성장할, 거대한 잎에 닿고, 수천 송이 꽃을 피울 열린 하늘이 필요하다. 오직 그 때에만 나무는 충족이 되고, 오직 그 때에만 나무는 중요함과 의미를 느끼며 삶은 중요해진다. 인간은 나무다. 종교는 실패했다. 그것은 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 꽃들은 철학적으로, 추상적으로 남아 있다; 결코 물질적이지 않다. 그것은 물질적일 수가 없다. 땅의 도움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은 실패했다. 그것은 뿌리에만 신경 쓰기 때문이다. 뿌리는 추하며 아무것도 꽃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서양은 지나친 과학 때문에 고통 받고 있고, 동양은 지나친 종교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종교와 과학이 한 인간의 두 가지 측면이 되는 새로운 인간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다리는 예술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인간이 신비가, 시인, 과학자가 될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는 오직 예술만이 시, 음악, 조각이 다리가 될 수 있다. 이 신인간을 존재로 가져온다면, 대지는 처음으로 그것이 되고자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대지는 낙원이 될 수 있다. 바로 이 몸이 붓다가 되고 바로 이 땅이 낙원이 될 수가 있다! 수비라(Suvira)는 용기 있다는 뜻이다. 용기는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유일한 다리다. 용기는 그대를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데려 갈 수 있는 유일하게 가능한 다리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것은 신이다. 내가 말하는 용기란 친숙한 것을 떨쳐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가장 큰 용기다. 친숙한 것에 집착한 채 남아 있는 것은 아주 쉽다: 그것은 매우 보호적이고 아늑하고 따뜻하며, 그대는 줄곧 그것을 알아왔다. 그대는 그것에 속해 있는 듯 보인다. 그대는 그것과 동일시되어 있다. 그것을 떨치는 것은 죽음을 통과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용기는 가장 위대한 종교적 자질이다.
첫댓글 번역이 어색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양해해주시고요... 여러분 모~두, 새해에는 더욱 깨어 있으세요!!!
형님!! 넘 좋아요 이거 전체메일로 보냈으면 해요!! 허락해 주셔욧! ^ㅅ^
그러세요^^ 그리고 카페 배경화면 바꾼 것 아주 멋지네**
감사합니다. 좋은글 많은사람과 귀하게 나누겠습니다.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