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증은 기질적인 원인은 성호르몬 장애나 대뇌의 장애에 있습니다. 치료방법이야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본성은 억제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계속 쳐다보는 것도 관음증일겁니다.
- K대학 L교수 관음증에 관한 해법 강의 중에서 -
입사한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내게 찾아온 코엑스는 그저 ‘넓다’ 였다. 코엑스는 넓다. 전시장을 비롯해서 각종 회의실, 지하주차장, 우뚝 솟아 있는 양옆의 건물들. 넓기는 넓었다. 오늘도 나는 어제처럼 그 안을 헤집고 다닌다. 헤집은 기억 하나 하나를 갈무리해서 내 머릿속 깊은 곳에 담아둔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들이 내 생활을 더 편하게 할테지.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별로 안 보인다.
옆의 회사 상사는 뭐가 궁금한지 계속 물어보고, 나는 그저 대충 대답을 해 줄 뿐이다.
화재 순찰이라는 것은 언 듯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걸어 다니는 거니까. 하지만 다니면서 꽤 많은 것을 봐야 한다. 소화기의 위치라던가, 스프링클러 헤드의 처짐 여부, 혹시나 모를 동파 대비와 화재 가능성 지역 파악 등이랄까? 어찌 보면 그렇게 중요한 시간이 지나 점심이 되었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
구내식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코엑스 몰 내에 있는 음식점 중 아무 곳에서나 먹는다. 5000원의 식사비용이 아쉬워서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직원들도 꽤 있었다. 내가 속한 방재 팀 같은 경우는 다른 곳보다 점심을 빨리 먹는 편이다. 일찍 먹으면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 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폭풍 전 고요와 같은 점심시간 바로 전에 한가롭게 점심을 먹는다.
점심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다양하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 탁구를 치는 사람, 잠을 청하는 사람, 볼일 보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신참인 경우. 안절부절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고, 책을 읽기에는 왠지 어색하고, 가만히 있자니 나 혼자 적응을 못 하는 소외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그 와중에서 아직 코엑스 내부의 지리에 익숙하지 못 한다는 생각과 ‘돌아 다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굵직굵직한 최근의 화재 사고들은 대개 피난 유도를 제대로 하지 못 해서겠지. 코엑스 몰 같은 경우 정말 만약의 사태라면 어찌할까 싶은 경우가 있을 정도로 길이 복잡하다. 탈출이 힘들 것이란 생각을 한다. 명색이 만약의 경우 소방관들이 오기 전엔 내가 야전 사령관 아닌가!
점심시간, 식당은 사람들의 물결이다. 양옆의 건물에서도, 전시관람 하는 사람들도, 코엑스 내부의 모든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몰리게 된다. 점심시간에 관한 나만의 정의는 ‘하루 중 가장 분주하며, 행복한 시간’ 이라고 각인 되어 있다. 나는 천천히 그들 속을 뚫고 코엑스를 누빈다. 음반 매장을 지나서, 오락실을 지나서, 그렇게 걸으며 내 시각 속의 사실들을 작은 도면에 보고한다. 어디엔 뭐가 있다더라와 같은 기록들을 정리하던 중에, 시선이 한 곳으로 고정이 된다.
일주일동안 그녀를. 매번 아침마다 그녀를 봐왔다. 정갈하며 깨끗하다. 그저 말이라도 한 번 건네 보고 싶은 사람이다. 통로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서 주변을 관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아침에 그녀가 나의 시선에 느껴지면 훔쳐본다. 무표정 보다는 약간 미소 지움에 가까운 그녀의 표정은, TV에서 보던 무언가에 달관한 사람들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 표정으로 주변을 보고 있다.
나는 하던 것을 멈추고 훔쳐 볼 수 있는 사각의 지대로 간다. 거기서 계속 쳐다보게 된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오랫동안 훈련받은 사람들의 조건반사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라고 생각되었다. 스스로도 놀랍고 우습기도 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어떻게 나를 생각 할까 하니, 지금의 화끈거림은 아마 그것 때문이겠지. 결코 그녀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주위를 계속 둘러보았다. 내내 웃고 있다. 아니 웃음 짓는 것처럼 느낀다. 간혹 찡그려 보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들어온다. ‘찡그리기 보다, 웃는 게 더 어울려요’ 혼잣말을 하고 킥킥댄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지만, 개의치 않고 그녀를 계속 훔쳐본다. 어쩌다 찡그릴 때의 표정에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면 그곳에는 휴지 같은 것들이 있다. 이내 청소업체 직원들이 치우고 가지만. ‘혹시 청소업체 직원인가?’ 라고 생각 할 쯤 내 하루 중 가장 분주하며 행복한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벨소리가 들린다.
“김진수씨 지금 어디야? 일 안할 거야? 회의 참석 안 해?”
“네, 죄송합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네. 네.”
아쉽지만 그녀를 다시 한 번 쳐다보고 이내 사무실로 뛰기 시작했다. 오후 일을 위한 회의가 시작 된 지 10분이나 지난 상태였다.
7-2 12월 12일 12시30분경
가만히 주위를 둘러본다.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그들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하나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 사람은 매일 나를 보고 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보지만, 관심 있게 쳐다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나에게 호감을 갖아 준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매일 나를 쳐다보면서 그 사람은 어떻게 나를 생각 하는 것일까? 정말 한 길 사람 속이 더 어려운 걸까? 그는 한참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어디론가 뛰어간다.
첫댓글 오호~ 잘읽었어요^^ 그런데 전 코엑스를 한번도 안가봤어요 ㅡㅡ;;
넘치는 즐거움이 가득한 코엑스로 놀러오세요.^^
-0- 방재군, 그녀를 매번 아침마다 그녀를~ 에서 앞의 그녀를은 빼는게 나을거 같은데요.....=_=;; 뭐 태클은 아니고, 재밌게 읽구 있어용.ㅎㅎ
아.. 마침표를 빼놓았군요.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