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날자를 보니 '82. 9. 30 일입니다.
그땐 동문체육대회가 아니라 기수 별 각기 동창회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동안 동창회에 몇 번 참석지도 못했지만
이 모임을 마지막으로 약 18년 동안 다시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년 후인 83년도 9월엔 내가 울산으로 직장을 옮겨 울산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부 시책으로 내가 속해 있던 충주비료공장은 폐쇠하고
나주비료공장은 옥타놀공장으로 변환하여 계속 가동한다고요...
갑자기 실직자가 될 운명... 앞으로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그래서 우리들은 운전면허라도 따 놓아야 겠다는 마음에서
회사버스로 단체로 근무시간에 운전학원에 가서 운전교습을 받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회사에서는 나를 호남에칠렌으로 출장갔다 오라고요...
나주비료공장을 옥타놀공장으로 변경시키면 원료를 호남에칠렌에서 공급받아야 하는데
호남에칠렌공장에 철로를 이용할 수 있는 하역시설 설치 여부를 검토하고 오라는 임무였습니다.
나주비료엔 없지만 우리 충주비료엔 그런 시설이 있었기 때문에 충주에 있는 나를 보냈던가 봅니다.
그런데 거기서 정말 뜻밖에도 우리 동창 엄재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넓고 거대한 공장 한쪽 구석진 곳에서 일을 보는데 엄재하가 찾아 왔습니다.
졸업 후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정말 반가웠습니다.
어떻게 내가 출장오게 된 줄 알았는지, 또 그곳에선 엄재하와 내가 동창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마도 회사간에 인적 정보 교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날 저녁 엄재하가 거주하는 사택(아파트)으로 함께 갔고, 여수 시내에 가서 저녁을 사 주더라구요...
곧 실직하게 될 처지에 있는 나로서는 얼마나 그가 부러웠던지요...
그는 울산 유공(지금의 SK)에 있었는데, 노조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이 회사로 옮겼다고요.
그 후 몇 달이 안되어 내가 그가 근무했던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될 줄은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유공에 가서 엄재하 이름을 대었더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유명했던 모양입니다.
그 후 한 번 내 사무실에 찾아 왔는데 모두들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더군요.
오늘도 코로나로 무료히 집에서만 지내는데 엄재하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답니다.
반갑게 받더군요. 지난 출장 때 얘기를 하며, 그때의 부러움과 고마움을 얘기했지요.
또 여수에서 식사할 때 무대에 나체의 여인이 나와서 춤을 추었는데,나는 그런 곳 이름도 모른답니다.
그의 손자가 남양주 진관읍에 다섯 달 전부터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어 가끔 온다고요..
진관읍은 여기 호평동에서 가까운 거리..다음에 오면 만나자고 내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답니다.
첫댓글 엄재하 참 오랫만에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전여소식이없든친구를 80이넘어 소식을듣는군요
손자가 공무원이라니 손자를 나보다 일찍 보았네요
손자들이 이제 취업들하였으니 우리가 많이 늙었지요
나는 손자가 군대가서 이제3개월 반되었는데
막네아들손자는 이제5살이구 그게취업하는거는 못보겠지 허무합니다
엄재하는 초등시절 6.25전까지 한 반에서 공부한 동창인데
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찌기 결혼 했었지요..
그러니 손자가 벌써 취업할 수 있나 봅니다.
엄재하 소식을 들으니 무척 반갑네요~
그동안 소식을 전혀 들울 수 없어서 생사를 모르고 있었는데
건강하게 잘 있다니 무척 다행입니다.
엄재하가 우리 동문 체육대회에서 만났던 기억도 얼마나 오래인지
기억도 가물가물 하네요?
그리고 이 사진은 내가 첨 보는 사진인데 82년에 찍었다면 벌써 40년
전이 아닌가.? 엄재효도, 엄광호도 보이고...
정말 오래 된 보물급 사진이구려!
오랜 세월이 지나면 남는 건 사진 뿐이고 그 속에서 추억을 더듬어 보는
유일한 자료이지요~
좋은 추억 더듬어 봅니다.
네. 이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어떻게 지금까지 보관하게 되었네요.
그동안 엄재하가 체육대회 때 참석한 일이 있었군요.
나는 정년퇴직 후부터 다시 동창회에 참석하게 되었구요.
엄재하와 수년전 통화를 했네요.
재하는 덕포 구사택에 살 때 친하게 지냈는데
6.25후 울 큰형님이 발전소 지서주임으로 있었고
집은 폭겨으로 소실되어 한정에서 제공한 구사택에 살았는바
그때는 덕포에 가건물 봉래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네요.
구 후 96년도인가 원주에서 김필황과 이영세가 주선한 치악산자락의
모임이 있었는데 모임장소로 오는도중 엄재하가 살아져서 찾는냐구 난리를 친 일이 있었다요.
말없이 앤을 만나 살아져서 결국 나중에 다 밝혀졌고 그 후 영원한 불참, 건강이 안좋타는 얘기 듣고
통화를 한적이 있음. 어눌한 투의 대화를 했음.약 10년전임
그랬었군요.
내가 통화할 때는 말소리 분명하고 밝은 목소리였답나다.
재화가 덕포에서부친은 발전소 다니셨고 처가는 남면 창원리 새술막에 안석순 목상님이 장인
어른임이 기억 나네요,
인산님은 그의 처가에 대하여도 잘 알고 계시네요.
새술막이란 이름 어렸을 적 듣던 지명이었는데 그곳이 남면이란 것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